소설리스트

형아, 나 귀엽지 외전-24화 (449/500)

외전 24화 환경미화부장 (2)

돈을 그런 데 쓸 수 없다고 실랑이를 벌인 뒤에야 간신히 다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카메라. 이것 역시 살 수 없었다.

다음은 옷 소개 코너였다.

“음. 그거 좋은 거 같네.”

담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션 너튜버도 많으니 그런 코너 하나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매번 바꿔야 하는 귀찮음이었다.

“선생님. 다음은 랩이에요.”

“그건.”

“스피커 있으면 되는데요.”

“힘들겠네.”

랩이라고 하는 순간 누가 의견을 제시했는지 알 수 있었다.

뭐 아무튼 이래저래 들어본 결과.

“시하야. 꼭 의견을 다 넣을 필요가 없어. 그리고 음. 예산의 문제로 축소될 수도 있는 거고.”

“다 못 사요?”

“응. 게시판 꾸미는 데 그런 큰돈은 안 나오니까.”

아무리 강인 초등학교에 배정되는 예산이 많다고 해도 함부로 마구 써도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산이 많은 만큼 쓴 곳에 대해 철저히 기록을 남기고 확인하는 편이었다.

“이제 어떻게 꾸밀지 나중에 선생님이랑 고민해 볼까?”

“네!”

“대충 스케치도 해서 생각해 보는 거야.”

“저도 고민해 볼게요.”

“그래. 고마워.”

시하가 꾸벅 인사하고 교무실을 나갔다.

담임은 의자에 등을 묻었다.

뭔가 심력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옆에 선생님이 말을 걸어온다.

“저 애가 혹시 강인 어린이집 출신이에요?”

“네.”

“역시. 뭔가 1학년 애치고는 남달랐어.”

“다른 애들도 그래요.”

“역시. 역시. 우와. 게시판에 대해서 저렇게 의견 가지고 온 아이는 없지 않아? 대부분 우리가 많이 도와주니까.”

“그건 그렇죠.”

“그리고 재테크라니. 역시. 역시.”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스피커랑 카메라는 못 사지만요.”

그 주어진 돈으로 10배 이상 불리기 시작하면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확실한 재테크가 있다면 자신도 하고 싶다.

“그래도 좋은 생각이니까.”

“그건. 뭐.”

담임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근데 왜 그런 거 있잖은가. 혼자 하는 건 편한데 다 같이 하면 피곤한 거.

물론 애들이 재밌기도 하지만 기운이 넘치다 보니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잘 생각해서 또 주지 않을까?”

“하하하.”

게시판 꾸미기는 담임 선생님들의 엄청난 숙제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시하가 가져온 아이디어들이 상당히 쓸 만해서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점심시간.

시하는 오늘 담임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고 있었다.

스케치.

저런 그림을 그리는 부분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려왔으니 익숙한 거기도 했다.

게시판에 기계를 못 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종이들로 꾸밀 수밖에 없다는 것.

“우웅.”

“시하야. 뭐 해?”

승준이 시하 옆에 나타났다.

“게시판 어떻게 꾸밀지 그리려고.”

“오! 공책에?”

“응.”

“대박! 나 구경해도 돼?”

“응. 근데 구경하면 재미없을 건데?”

“아니야. 재밌어.”

오늘은 축구할 애들이 안 모여서 점심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시하도 그래서 책상에 앉아서 공책을 펼 수 있었다.

“그럼. 그릴게.”

“벌써 고민 다 했어?”

“응.”

시하가 공책을 폈다.

공책 한가운데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오! 사커장!”

굳이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을 그리지 않아도 접힌 부분이 선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제일 왼쪽에 축구장 전광판을 그렸다.

그것도 과장되게. 아주 크게 말이다.

“전광판 엄청 크네!”

“응.”

거기에 ‘시간표’를 적었다.

“오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그려나간다.

스피드 드로잉.

보는 승준으로서는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더 흥미진진했다.

빠르게 그려져 나가는 건 그만큼 보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솟게 했다.

“카메라.”

전광판 옆에 위쪽으로 카메라를 그렸다.

대각선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를 잡는다.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찍히는 건 우리의 추억.”

그려진 사커장에 사진들이 놓일 자리를 네모로 그린다.

“오! 3-3-4 포메이션.”

골키퍼와 선수들이 서는 자리에 네모가 그려진 것이다.

11명의 선수.

상대 팀도 11명.

총 22개의 사진이 들어갈 네모 칸이다.

거기에 아래위로 네모 칸을 하나씩 추가한다.

“감독이야?”

“응. 24개가 있어야 해.”

“왜?”

“우리 반이 24명이니까.”

“오오!”

그렇게 카메라에 찍히게 되는 24장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비워진 제일 오른쪽에 스피커를 그린다.

“봄에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

이로써 아이돌 노래와 랩을 다 넣을 수 있다.

그 밑에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을 그린다.

사람들 머리 위에는 이렇게 적는다.

“봄에 입을 패션 소식.”

“오오! 대박이네.”

“다 넣었어.”

정말로 모든 의견을 다 넣어버린 시하였다.

승준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게시판은 이미 초록색이니까 흰색 선만 그리면 되겠다.”

“응.”

사커장에 있는 전광판, 카메라, 스피커, 관중석까지.

모든 걸 활용해서 의견을 종합해서 때려 넣었다.

그 누구 하나의 의견도 버리지 않고 허투루 하지 않고 모두를 포용시켜서 만들었다.

그게 시하의 따뜻한 바람이었다.

실제 현실이었다면 필요 없는 의견을 버려야 할 상황이 오겠지만 게시판에까지 그럴 필요가 없다.

“시하야.”

“응?”

“진짜 대박이야. 엄청 빨리 그렸네.”

“응. 대충 그렸으니까?”

“그래도!”

아이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시하의 주위에 몰렸다.

“와. 시하 진짜 그림 잘 그린다.”

“우와. 이거 어떻게 그렸어?”

이미 시하의 그림 실력에 대해서 알고 있던 쌍둥이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시하 원래 그림 잘 그려. 사커도 잘해.”

“이거 아무한테나 안 보여주는 거야. 신비주의니까.”

종수도 괜히 코를 스윽 문지른다.

“시하가 공부보다는 그림을 더 잘하지.”

재휘는 옷 그림을 보고 흥분한다.

“시하야. 이거 후리스잖아! 어디 꺼야? 디자인 마음에 들어.”

연주는 수정 요청을 한다.

“카메라 좀 더 크게 그려주면 안 돼?”

은우는 그저 푸하하 웃는다.

윤동은 마치 어디 회장님처럼 잘했다는 듯이 시하의 어깨를 두드린다.

아무 말 없이 말이다.

“???”

시하는 갑작스러운 뜨거운 반응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럼 나. 이거 선생님한테 보여주고 올게.”

아이들이 빨리 가보라고 아우성이다.

은우가 뒤에서 외쳤다.

“시하야!”

“응?”

“합격의 목걸이를 받아 와!”

“응!”

그대에게 주어지는 합격의 목걸이.

시하는 은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아듣고 교무실로 향했다.

“응? 시하야. 또 왜?”

“선생님. 이거요! 다 했어요!”

“응?”

“스케치요.”

“아! 그걸 혼자 다 했어?”

“네!”

“정말 대단하네.”

담임은 시하의 공책을 받았다.

눈을 동그랗게 떠졌다.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랑 또 다른 충격이었다.

시하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나?

전혀 몰랐다.

승준이 축구를 잘하는 것도 보았고 하나가 노래 잘 부른 것도 보았다.

종수가 공부를 잘하는 것.

은우가 랩을 잘하는 것.

연주는 아역으로 활동했으니 연기야 말할 필요도 없고 재휘는 평소에 옷을 잘 입어서 관심이 많은 것도 알고 있었다.

시하는 형을 통해 여러 경험이 있고, 엉뚱한 매력이 있는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 못지않게 찬란한 재능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다재다능했다.

영어도 잘하고 연기도 좀 하고.

거기에 미술이 추가됐다.

영어와 연기보다 미술이 더 압도적인 재능으로 비쳤지만 말이다.

“선생님?”

“응? 아! 엄청 좋네! 정말 잘했어. 그림도 진짜 예쁘네!”

“대충 그렸는데요. 빨리 그리느라.”

“언제 그렸는데?”

“점심시간예요. 조금 정도?”

“그래?”

1학년 아이가 그렇게 빨리 그릴 수 있나?

그런 의문을 접어두고서라도 잘 그린 그림이라는 건 틀림없다.

“선생님이 이걸 꾸밀 수 있게 재료는 준비할게.”

“아직 색칠 안 했는데요.”

“괜찮아. 대충 어떤 색이 들어갈지 알 것 같으니까. 그리고 초록색은 필요 없지? 게시판이 초록색이니까.”

“네!”

***

다 같이 의견을 내서 그럴까?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게시판을 꾸미기 시작했다.

특히 승준이 제일 열성적이었다.

“역시 사커장이 있어야지.”

게시판 전체가 축구장이 되는 게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역시 시하는 내 베프야.”

축구장 하나 그려내었다고 베프까지 간다.

“승준아. 선 잘 잘라야 해.”

“걱정 마.”

스피커나 카메라 같은 건 선생님이 사진을 프린트해 오셨다.

잘라서 잘 붙이기만 하면 되었다.

“선생님.”

“응?”

“다 했어요.”

“그래? 그러면 이제 좀 붙일까?”

“네!”

실컷 자르는 걸 했으니 붙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방과 후 교실은 영어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게시판 꾸미기로 대체됐다.

물론 영어를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축구는 영어로 뭘까요?”

“사커!”

승준이 아주 자신 있게 말한다.

다른 아이들도 사커라는 단어는 절대 안 잊어버린다.

승준이 하도 사커, 거려서 말이다.

“시간표에 시간은 영어가 뭘까요?”

“타임!”

이런 식으로 생활영어가 시작되는 것이다.

축구공, 선수, 관중, 사람, 스피커, 카메라 등등.

사용될 영어가 무궁무진하다.

재료들도 있다. 종이, 가위, 풀 등등.

“Hey. 은우! Can you bring me some scissors?”

“Yes! drop the beat!”

“???”

선생님은 헛웃음을 뱉었다.

가위 달라고 했는데 비트 달라는 대답이 맞는 거야?

“here!”

“thank you.”

대답은 이상했지만 가위는 가져다주는 은우였다.

은근 영어를 좀 아는 것 같다.

이렇게 다 같이 하니까 금방 완성되고 있었다.

시하는 붙이는 걸 지켜보는 감독을 하고 있었다.

“Hey! No~~~ little left. left. no. no. right. right. 오라이. 오라이.”

시하야. 오라이, 오라이는 영어가 아니야.

“yes! 거기. 거기!”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다.

어찌 되었든 정확한 위치에 붙이게 되었다.

꼭 이런 걸 꾸밀 때 정확한 각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종수. hurry up!”

“야. 왜 나만 붙이는 거 시키냐.”

열심히 시하의 말을 듣던 종수가 발끈했다.

괜히 자꾸 왼쪽으로 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놓고 다시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고.

“종수가 똑똑하잖아. 그래서 붙이는 거 해야지.”

“그럼 네가 와서 붙여봐. 자꾸 이랬다저랬다.”

“종수야. 원래 여기 대보고 저기 대보고 해봐야지. 더 괜찮은 데 고르는 게 중요하잖아.”

“그건 그런데.”

종수는 뭔가 속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시하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자. 그럼 이제 이거 붙이자.”

“이번에 네가 해. 네가 볼게.”

“종수는 잘 못 볼 거 같은데.”

“나도 잘 볼 수 있거든!”

이번에는 둘이 일을 바꿨다.

종수가 멀리 떨어져서 바닥에 있는 게시판을 바라보았다.

“종수야. 여기 붙인다?”

“아니. 왼쪽!”

“이렇게?”

시하가 성큼 왼쪽으로 간다.

“아니. 너무 갔어. 오른쪽. 조금만.”

시하가 정말 움직이는지 모를 정도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건 너무 조금이잖아!”

“종수야. 정확하게 말해 줘야지.”

“나는 정확하게 말했거든!”

“내가 생각했을 때 여기가 좋을 거 같아.”

시하가 다시 오른쪽으로 움직여서 대어 보았다.

“그럴 거면 내가 왜 여기 보고 있냐!”

“여기 이상해?”

“안 이상해! 아, 짜증나! 왜 안 이상한데! 왜 잘하는데!”

시하가 붙이는 곳이 너무 절묘해서 뭔가 더 움직일 게 없었다.

“이번에 이거는 여기.”

“어. 거기 좋겠다.”

“여기 딱 하면 될 것 같은데 어때?”

“어. 그래. 거기. 야. 이럴 거면 내가 볼 필요가 있냐?”

“종수가 딱 맞는지 안 맞는지 봐줘야지.”

“…….”

“왜?”

“다시 바꿀래?”

종수가 뭔가를 안 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바꾸자고 한다.

“아니야. 내가 할게. 내가 더 빨라.”

“야!”

“종수가 반장이니까 여기저기 다 봐줘야지.”

“인제 와서?!”

그렇게 복작복작 게시판이 완성됐다.

사진들을 붙일 네모들은 비어 있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자. 그럼 추억 사진 하나 채울까요?”

“네!”

선생님은 재료들을 다 치우기 전에 아이들의 전체 사진을 찰칵 찍었다.

같이 게시판 만드는 추억 하나.

오늘 인화해서 네모 칸을 하나 채울 생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