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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23화 (448/500)

외전 23화 환경미화부장 (1)

초등학교의 아침은 바쁘다.

사실 나 정도만 되면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다.

직장인들은 출근하려면 더 부지런해야 하니까.

나야 프리랜서이니 오늘 정해진 일감을 해내면 될 뿐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여유롭거나 하진 않는다.

띡. 티비를 켠다.

아침의 시작은 영어 쉐도잉이다.

오늘의 주제는 브레인스토밍이다.

「브레인스토밍은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창출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확연합니다. 여러 의견이 나올수록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어느 순간 괜찮은 의견으로 획일화가 될지도 모르죠.」

내가 열심히 쉐도잉을 하면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자 시하도 따라 말한다.

그리고 꼭 질문으로 이어진다.

“형아. 브레인스토밍이 뭐야?”

“좋은지 안 좋은지 말 안 하고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듣는 거야.”

“그거 하면 좋아?”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고.”

“???”

“다른 사람 아이디어를 하나씩 듣다 보면 감화될 수도 있어. 내 생각이 더 나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어서 말 안 할 수도 있고. 그리고 비슷한 사람끼리 생각이 같으니까 더 좋은 게 안 떠오를 수도 있어.”

“그러면 다양한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지.”

“그렇지. 그렇지. 그래도 잘만 하면 창의력이 상승이 된대.”

「브레인스토밍이 집단 창의성을 증진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연구 발표도 있습니다.」

나는 다시 영어를 쉐도잉했다.

시하도 따라 말했다. 알고 말하는 건지 모르고 말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알아듣는 부분이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한참을 쉐도잉하다가 시하가 나에게 물었다.

“으음. 나 게시판 꾸며야 하는데 형아는 어떻게 꾸미고 싶어?”

오호. 바로 브레인스토밍 시작인가.

그러기에는 여기 있는 사람이라고는 시하랑 삼촌, 그리고 나뿐이다.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기는 하네.

“형아는 시간표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뭔가 엄청난 아이디어를 말하고 싶은데 학급 게시판에 대한 이미지가 박혀 있어서 그런지 이런 평범한 것밖에 이야기하지 못했다.

“시간표!”

시하가 어느새 가져온 공책에 연필로 기록을 했다.

밑줄 두 개 치고 별 3개.

전체적으로 동그라미도 두 번 그렸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말한 것뿐인데 저렇게 중요하다고 확정 지으면 이미 정해진 거 아닌가?

“삼촌! 삼촌은 게시판 어떻게 꾸밀 거야?”

삼촌은 자다 일어나서 더벅머리로 배를 북북 긁었다.

어제 만지작거리던 카메라를 소파 위에서 들어 올린다.

“음. 사진을 찍어서 채워야겠는데. 매일 재밌었던 거 하나씩 채우면 좋지.”

“!!!”

의외로 재밌는 이야기가 나왔다.

좋은데? 꼭 꽉꽉 채워야 하는 건 아니다. 채우는 중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1학년 마지막쯤에 추억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

“재밌는 사진 채우기.”

시하가 공책에 받아 적는다.

밑줄 하나에 별 한 개.

아니.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에 별 하나?

삼촌도 그걸 봤는지 발끈한다.

“야! 나는 왜 별 하나야.”

“삼촌. 별 있는 거 좋은 거야.”

“그건 그런데. 내가 시혁이보다 더 좋은 의견이었잖아. 아무리 봐도.”

“삼촌. 브레인스토밍은 처음에는 좋은지 안 좋은지 말 안 하는 거야.”

“네가 공책에 좋은지 안 좋은지 적고 있잖아.”

“이거는 좋은지 안 좋은지가 아니라 중요한 순서야.”

“그거나, 그거나.”

“형아 말은 중요해.”

“내 말은 안 중요하고?”

“아니. 근데 형아가 더 중요해.”

“맨날 그렇지!”

삼촌이 소파 위에 누워서 휙 몸을 튼다.

그리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

누가 봐도 삐졌다는 제스처였다.

“이제 다른 사람 의견 물어봐야겠다.”

물론 시하는 이미 볼일을 다 봤으므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평소랑 똑같기도 했고.

“와. 사람 차별한다. 사람 차별해. 볼일 다 봤다고 가버린다. 매정하다. 매정해. 공경 배웠으면서 공경 안 한다.”

삼촌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삼촌.”

“왜?”

“나는 차별 안 해. 형아만 차별해.”

“?!?!”

형아 밑으로 다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이시하였다.

“어이가 없네?”

“나 이제 학교 가야 하니까 바빠. 나중에 내가 놀아줄게. 삐지지 말고 집 잘 보고. 알았지?”

“허헣.”

어라? 뭔가 대사가 애완동물한테 하는 대사인데.

애완앙마가 한 방 먹은 게 틀림없다.

“나도 아침에 바쁘거든? 오늘 출근하거든?”

“게임하러 출근해?”

“응?”

“삼촌. 오늘 일어나서 일일퀘스트 깨야지.”

“허 참.”

삼촌이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꾸욱 다물었다.

뭐 틀린 말도 아니다.

앱 게임이 그렇지 뭐. 하루에 해야 하는 숙제도 있고. 그걸 또 아침에 싹 해두는 게 맞다.

“삼촌. 의견 고마워. 나중에 잘 써먹을게. 삼촌 빨리 게임 출근해.”

“나 진짜 출근한다고!”

아무래도 오늘 진짜 출근하나 보다.

뭐 오늘 아침도 이렇게 떠들썩하다.

영어 쉐도잉 하는 사람이 있질 않나. 아침부터 게임 일일퀘스트 싹 다하고 있는 사람이 있질 않나.

여기에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게 맞다.

브레인스토밍이 확실히 잘되겠군.

***

시하의 의견 수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도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게시판을 꾸밀 건데 뭐 있으면 좋겠어?”

“사커공?”

시하는 공책에 사커공을 적었다.

되는지 안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넓은 사커장도 있었으면 좋겠어.”

“응. 응.”

승준이 말하는 건 거의 축구장을 건설하는 쪽이 아닌가 싶었다.

“하나는?”

“나는 게시판에 스피커를 붙였으면 좋겠어! 거기서 아이돌 노래가 나오는 거야.”

교실에 있는 스마트칠판을 보아서일까?

하나는 말도 안 되는 전자기기를 붙이는 걸 꿈꿨다.

“연주는?”

“카메라가 있었으면 좋겠어. 카메라 보고 연기하는 건 힘드니까.”

요즘 연주의 관심사를 말하고 있었다.

시하는 그런 것들을 꼼꼼히 적었다.

게시판의 행방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재휘는?”

“나? 나는. 뭐든 좋은데. 어떤 옷이 좋은지 소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재휘가 마지막에서야 슬쩍 자기 의견을 던졌다.

어찌 되었든 패션에 관심 있으니까.

“종수는 괜찮고.”

시하가 슬쩍 종수를 넘어갔다.

“야! 나는 왜! 나는 왜 빼는데!”

“종수는 반장이니까?”

“반장이 뭐. 반장은 의견 내면 안 되냐?!”

종수는 시하가 질문해 주길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시하가 그냥 넘긴 게 괘씸했다.

“응. 그러면 반장인 종수는?”

“나는 당연히 학생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시간표를 넣는 거지.”

시하는 자신의 공책을 들여다보았다.

시간표는 이미 형아가 말했다. 적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은우를 쳐다보았다.

종수가 시하의 어깨를 잡았다.

“잠깐!”

“왜?”

“내가 말한 건 왜 안 쓰는데!”

“아니야. 썼어.”

“야. 내가 손 안 움직이는 걸 봤는데!”

“진짜 썼다니까?”

“이거, 이거. 날 바보로 아나?”

“종수 바보 아니야.”

“뭘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당연히 바보 아니지!”

“???”

시하는 갑자기 종수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표는 이미 썼는데?

“진짜 썼어.”

“보자.”

“안 돼. 보면 안 돼.”

“안 썼으니까 안 보여주지!”

종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실제로 종수의 말을 듣고 시하가 연필을 움직이지 않긴 했다.

물론 시하의 입장에서는 의견을 보여줄 수 없다.

모든 의견을 모아서 보여줄 생각이니까.

브레인스토밍에서 조심해야 할 것을 시하는 알고 있었다.

혹시나 좋은 의견을 보면 생각이 한 방향으로 쏠릴지 모르니까.

그런데 시하가 아이들 있는 곳에서 의견을 물어본 시점에서 별 의미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다행히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라 다양한 의견이 나왔을 뿐.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시하였다.

“그럼 내기하자. 내기. 만약 안 적혀있으면 다음에 나 대신 우유 당번 하기. 적혀있으면 반대야. 어때?”

“으음.”

시하가 보여줄지 말지 고민하다가 종수는 이미 의견을 냈으니까 보여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래. 봐봐.”

시하가 종수에게 공책을 보여 주었다.

“어엇?!”

종수는 당황했다.

공책에는 시간표가 밑줄 두 개에 별 세 개가 그려져 있었으니까.

대체 언제 이걸 쓴 거라는 말인가?

“이게 왜 쓰여 있지?”

“내가 썼다고 했잖아.”

“이, 이상하다?”

“그럼 종수는 내가 우유 당번일 때 가지고 오는 거다?”

“으윽!”

종수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 버렸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시간표를 썼다.

시하는 그런 종수를 내버려 둔 채 은우를 보았다.

“은우는?”

“푸하하. 난 당연히 랩이지.”

“우웅.”

게시판에 랩 넣기.

굉장히 불가능할 것 같은 소재였다.

“윤동아. 춤 넣을까?”

윤동이 다른 아이들을 슬쩍 눈으로 훑었다.

“나는 별로 생각나는 게 없네.”

“그래?”

“어.”

시하는 공책에 생각나는 게 없음이라고 적었다.

그걸 본 윤동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걸 왜 적어?

***

시하는 공책을 보았다.

많은 의견이 담겼다.

여기서 필요 없는 건 빼거나 더 추가해야 한다.

아이디어들을 다듬어야 한다.

“우웅. 다 하까?”

시하는 보통이 아니라서 다 할 생각을 한다.

일단 선생님을 찾아간다.

교무실을 연다.

“선생님~”

“어? 시하야. 선생님 자리는 여기야.”

선생님이 시하에게 손을 흔든다.

다른 선생님들이 시하를 힐끗 본다.

시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똑바로 선생님이 있는 쪽으로 나아간다.

“시하야. 게시판 어떻게 꾸밀지 정했어?”

“네.”

“정말?”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은 나중에 도와줄 생각이었으니까.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건 중요하니 일단 맡겨는 놓았다.

“그럼 게시판을 꾸밀 때 뭐가 필요한지 말해볼래?”

“일단은요.”

“응응.”

“시간표랑.”

“오오!”

남다른 발상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석적이어서 놀랐다.

“사진이랑.”

“오?”

사진이라는 아이디어도 뭔가 좋은 거 같아서 놀랐다.

“사커장이랑.”

“???”

“그리고.”

“잠시만. 사커장??”

“네. 여기 사커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들어서요.”

“그렇구나.”

누구의 의견인지 확실히 알겠다.

1반에 저런 주장을 할 사람은 한 사람뿐이니까.

“사커장을 어떻게 붙일 거니?”

“만들어서 붙여야죠. 학교에 잔디를 뽑아서 붙이면 되겠다.”

“아니. 아니. 그건 잔디 뽑으면 안 돼요.”

“그럼 산에?”

“아니. 아니. 산에 풀 같은 거 뽑아서 붙이면 썩어요.”

재료비는 안 들긴 하겠다만.

“우웅.”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일단 색종이로 잘라서 붙이면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색종이가 필요하겠네요?”

“응. 그렇지.”

담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게시판을 꾸미기 위해 예산이 나온다.

많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꾸밀 수 있을 만큼은 충분하다.

“그러면 스피커도 사서 게시판 밑에 붙이고.”

“잠시만. 스피커?”

“네. 여기에 아이돌 노래 나올 거예요.”

“어…. 그게 왜 필요하지?”

“아이돌 노래 들으면 신나니까? 칠판에도 티비 붙여져 있잖아요.”

“그건 그런데.”

칠판에도 티비 붙여져 있으니 게시판에도 스피커 붙일 수 있지 않냐는 물음이었다.

물론 붙일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예산이 그만큼 안 나온다는 거였다.

“흠흠. 시하야. 이제 1학년이지?”

“네! 저 8살이에요.”

“음. 그렇지. 8살이면 알 때도 됐지.”

“다 컸어요!”

“다 큰 건 모르겠는데. 일단 게시판을 꾸미는데 돈이 들어요. 학교에서 주는 예산이라는 돈이 있는데 스피커 살 돈은 안 돼요. 그래서 스피커는 못 하지 않을까.”

예산 문제가 닥치게 되면 애나 어른이나 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드는 법이다.

벌써 현실이라는 벽이 시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 돈 많아요! 제 돈으로 할게요!”

물론 시하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했다.

실제로 시하는 돈이 많긴 했다.

임티 작가 수입. 그걸 삼촌이 보고 나서 재테크로 굴린 금액을 생각하면 스피커 하나 사는 것쯤이야 껌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담임은 그저 웃음을 보였다.

“물론 시하가 돈이 많을 수도 있지.”

담임은 스피커 살 돈이 시하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역 배우에게 얼마나 돈이 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스피커를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야. 여기 정해진 금액만큼 쓰는 것도 공부야.”

“공부?!”

“응. 그럼. 시하 개인 돈을 쓰면 안 돼요. 여기 학교 돈을 써야 해요.”

“그럼 제가 재테크로 굴릴게요!”

“???”

요즘 애들 배우는 게 빠르네.

돈 없으니까 돈을 불려서 학교 게시판을 만들 생각을 하고.

아니. 학교 게시판 하나 꾸미는데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삼촌이 잘 알아요!”

저기요? 삼촌분? 애한테 뭘 가르치고 있는 겁니까!

“주세요!”

시하가 두 손을 내밀었다.

담임은 그 모습을 보며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강인 어린이집 출신은 발상이 남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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