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9화 숙제 (1)
학교나 태권도를 다니게 되면 아이들이 숙제를 받는다.
아이들의 숙제는 엄마의 숙제가 된다.
혹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내버려 둔다.
아이들의 교육에는 정답은 없다.
지금까지 교육이라는 형태가 계속해서 바뀌어왔고 발전해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 역시도 교육이 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있기에 그것만 전해줄 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열심히 한 편이었다. 그게 숙제든 뭐든 말이다.
하지만 시하는 나와 다르니 시하에 맞게 받아들여야 한다.
믿어줘야 하는 것이다.
“시하야. 선생님이 숙제 내줬어?”
태권도 다녀와서 티비 보고 있는 시하에게 물었다.
시하는 눈을 깜빡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숙제 있어!”
“그래. 어떤 거야? 오늘 해야 하는 거야?”
“선생님이 다음 주까지 해오면 된다고 했는데.”
아직 1학년이라서 숙제는 일주일 단위로 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양이 상당한 편이다.
사립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학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팝송 외우기야. 팝송.”
“팝송?”
“응! 영어 수업에도 하고 음악 수업에도 하고.”
“그렇구나.”
강인 초등학교는 글로벌한 인재가 목표기 때문에 영어 수업이 존재한다.
방과 후 수업으로 들어가 있다.
분명 회화 위주로 수업한다고 들었다.
듣기랑 독해는 어차피 고3 내내 공부하게 될 건데 회화는 아니라서 그렇게 진행한다고 한다.
“팝송 제목이 뭔데?”
“레몬 트리. 형아. 내가 보여줄까?”
갑자기 일어나는 이시하.
그리고 노래를 부른다. 율동과 함께.
see라는 말이 나올 때는 손으로 안경을 만들며 고개를 앞으로 내민다.
기다린다는 표현을 하기 위해 손목시계를 검지로 툭툭 두드리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드라이브는 핸들을 잡고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한다.
굉장히 직관적인 율동이었다.
회화 위주라고 하더니 이렇게 덩어리로 연상하게 하는 것인가.
“Lemmon tree! 오우워어어~ 예에~ 야아아아~ 후우~워우워어~”
원래 바이브레이션이 많이 들어갔던 노래였나?
아, 우리 시하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편곡한 거다! 암튼, 그런 거다!
어쩌면 서수현이 노래하는 걸 따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노래는 원래 애드리브가 많다구!
“와. 시하야.”
“응?”
“벌써 다 외웠네?”
“응! 나, 이거 아는 노래야. 어린이집에서 배웠어.”
과연 강인 어린이집.
어릴 때부터 노래를 예습하게 한 보람이 있구만.
“뜻도 다 알아?”
“으음. 어릴 때는 대충 알았는데 지금은 다 알아. 나 이제 초등학생이라서.”
초등학생이라는 건 엄청 나구나.
근데 어릴 때도 대충 알긴 알았나 보네.
레몬 트리 같은 건 알았겠지.
“이제 영어로 잘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원래 잘하는데.”
“그건 그렇지.”
영어 노래를 덩어리로 외우는 법.
굉장히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하는 삼촌이 온 뒤로 회화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수준이 앞서 있다.
해외도 좀 다녔고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나 역시도 영어로 곧잘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시간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통역사로서 언제나 입을 풀고 계속 써둬야 하니까.
“그럼 숙제 다 끝났네?”
“아니. 수학 숙제 있는데?”
“수학 숙제도 있어?”
“응.”
“어려워?”
“몰라.”
“응. 숙제 열심히 해.”
“알았어.”
시하가 수학 숙제를 가지고 왔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해서 봤는데 더하기, 빼기 개념의 문제였다.
토끼 3마리가 있었는데 쥐 4마리가 놀러 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라고 적혀 있다.
“토끼 3마리가 있는데 쥐 4마리가 와서 같이 놀았어요. 그래서 7마리가 되었습니다.”
응. 응. 저게 맞는 답 같았다.
말하면서 답을 적는데 너무 귀여운 것 같다.
이건 찍어야지.
“그런데 쥐가 나는 태권도 가야 해. 이렇게 말하며 2마리가 가버렸어요. 그래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이 되어버렸어요.”
갑자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시하야. 그거 수학 숙제야. 그 이상은 안 적어도 돼. 그래도 우리 시하에게는 뺄셈 개념도 잡혀 있네.
“이제 토끼는 3마리고 쥐는 2마리가 되어서 토끼가 더 많아졌어요.”
누가 더 많은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숫자가 뭐가 더 큰지 알아야 하는 개념이니까.
비교가 가능해져야 한다.
“토끼랑 쥐랑 싸웠어요.”
갑자기?!
“토끼 하나가 쓰러져서. 크으.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했어요.”
아니. 그 명대사는 어떻게 아는 거야?
유다희 선생님에게 배웠나?
근데 이렇게 대놓고 싸웠는데 알리지 않아도 다 알겠다.
“토끼 중에 청개구리가 있어서 토끼 하나가 죽었다! 라고 말했어요.”
그걸 말한다고? 완전 나쁜 놈이네.
“이제 토끼 2마리랑 쥐 2마리랑 있어서 숫자가 같아졌어요. 그리고 화해를 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한 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화해할 수 있지?
엄청난 이득이 오갔나? 아니면 그럴 수가 없는데?!
“답 다 적었다!”
그…. 시하야. 선생님이 이렇게 긴 장문의 답을 바라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리고 맞춤법 엄청 틀렸어. 받아쓰기도 힘들 것 같네.
수학 숙제니까 맞춤법은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시하야. 맞춤법이 틀렸어.”
“정말?”
“응. 이렇게 많이 틀리면 받아쓰기 점수 안 좋을지도 몰라.”
“받아쓰기가 뭐야?”
“말을 불러주면 따라 쓰는 거야. 시하가 혼자 말하면서 적었지?”
“응.”
“그게 받아쓰기야.”
그래도 한글을 읽게 하고 쓰게 할 수 있게 학습지를 해둬서 다행이었다.
설마 학교에서 이런 숙제를 내줄 줄 몰랐다.
잠깐? 설마 받아쓰기도 함께 훈련시키려고 이런 수학 숙제를 준 건가?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대단한 것 같다.
이렇게 한 번에 처리하려고 하다니.
이게 수학 숙제인지 국어 숙제인지 모르겠다.
뭐가 됐든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학교가 참 잘 가르치네.”
“형아 대단해!”
“???”
갑자기 형아 대단해는 어떤 알고리즘을 거쳐서 나온 대답인가?
“내가 잘 배워.”
학교가 잘 가르치지만 내가 잘 배운다. 나는 형아를 닮았다. 고로 형아는 대단하다.
어마어마한 사고방식이구만.
“하하하.”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진짜 끝?”
“아니. 태권도 숙제도 있어.”
뭔 놈의 숙제가 이리 많아?
사실 보면 많은 양은 아니긴 하다.
그래 봤자 영어 팝송 외우기, 수학 4문제, 태권도 숙제.
“뭔데?”
“형아랑 삼촌을 곤경해야 해.”
“???”
“형아를 곤경.”
“곤경이 아니라 공경이겠지.”
“응. 곤경. 아니, 공경!”
그 말에 삼촌이 훌쩍 튀어나왔다.
“그래. 잘 말했다!”
아까 시하가 숙제할 때는 나 몰라라 숨어있더니 이런 말에는 또 당연하다는 듯이 튀어나온다.
자기 유리할 때만 나오다니.
“자. 어서 해봐.”
삼촌이 소파에 앉아서 허벅지를 짝짝 친다.
오히려 저러니까 해주기 싫은 느낌이다.
시하가 고개를 휙 돌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형아. 오늘 밥 차려주고 챙겨줘서 고마워. 숙제도 물어봐 줘서 고마워.”
“응. 응. 나도 고맙다고 해줘서 고마워.”
“헤헤.”
삼촌이 말한다.
“야. 나는.”
“삼촌은 소파에서 뒹굴뒹굴하고 나 숙제할 때도 없었고. 삼촌이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내가 태권도도 가르쳐줬는데.”
응. 응. 맞는 말이지. 시하에게 해준 거라고는 놀리는 것뿐이니까.
뭐 그게 시하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타산지석의 표본으로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크면 저렇게는 안 해야지, 라던가?
“야.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봐봐. 내가 어? 망치 거꾸로 잡아서 때리는 것도 가르쳐주고. 어?! 무조건 선빵 필승도 가르쳐주고 어?!”
굉장히 쓸데없는 것만 가르친 거 같은데?
“내가 나중에 어?! 직업적으로 어?! 여론 조작하거나 그런 것도 가르쳐줄 건데?!”
그런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세요! 초등학생한테 뭘 가르치려는 거야?!
“이래도 안 고마워?”
“우움. 필요 없는데.”
“왜? 이게 왜 필요 없어. 살다 보면 다아~ 필요하게 되지.”
“삼촌이 다 해줄 거니까!”
“???”
“삼촌이 다 해줄 거니 고마워할게. 고마워.”
“뭔가 이상한데?”
“왜? 고마워서 고마워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 사고 치면 내가 수습해 주고 열심히 굴러다니며 일해라. 뭐 이런 말인가?”
“내가 사고 칠 리가 없잖아. 나 형아 동생이야.”
“형아 동생이 뭔데 대체?”
삼촌이 어이없다는 듯이 시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삼촌이 걱정이야. 어디 가서 사고 치지 않을까. 나중에 형아가 삼촌을 처리하겠지.”
“수습하겠지, 겠지. 그렇게 말하니까 시혁이가 날 죽이려 드는 것 같잖아.”
사고 치면 삼촌을 죽인다.
어?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삼촌이 사고 치지 않으면 내가 많이 고마워할게.”
“너는 공경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그럼 내가 잘 배워서 삼촌에게 가르쳐줄게. 삼촌이 수업 들어야 해. 알았지?”
그 말에 삼촌이 고개를 돌린다.
“아이고~ 일 없다~!”
“아니야. 가르쳐줄게!”
공경받는 것보다 가르침 전파받는 게 더 손해다.
뭐 오늘은 숙제를 열심히 한 것 같다.
***
승준과 하나의 집.
하나는 성실하게 숙제를 하고 있다.
피아노 연습을 숙제로 매일 하니까 애초에 습관이 딱 잡혀 있었다.
“오빠. 숙제 안 해?”
“나중에~”
하나가 집에 오자마자 숙제를 하는 타입이라면 승준은 미뤄두는 스타일이었다.
승준 엄마는 함께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아이들이 뜻대로 안 되는 법이다.
일을 두 번 하게 하는 건 힘들지만 성향이 점점 달라지는 쌍둥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승준아. 숙제는 미리미리 빨리해야 나중에 안 귀찮지.”
“엄마. 나는 휴식이 필요해. 사커할 때도 다 끝나고 쉬어야 하잖아.”
승준이 바닥에 철퍼덕 누워 있다.
하나는 그런 승준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러다 나중에 허겁지겁하겠지. 오빠. 나는 안 보여줄 거야.”
“왜! 같이 보자.”
“혼자 열심히 해야지.”
“나는 사커 잘해서 공부 안 해도 되는데.”
승준 엄마가 그 말에 대답했다.
“사커 잘하니까 오히려 공부해야지.”
“왜?”
“나중에 수학 잘하면 다 계산대로 슛이 딱 들어가.”
“에이.”
“진짜라니까?”
“그럼 엄마는 공 차면 다 계산대로 들어가?”
설마 이런 반격은 예상 못 했는지 승준 엄마의 말문이 막혔다.
“흠흠. 영어 숙제도 해야지. 나중에 다른 나라 가서 사커할 수도 있는데 그때 선수들이랑 잘 이야기해야지.”
“어? 그건 맞아!”
그래도 영어 숙제는 할 모양이다.
“근데 엄마.”
“응?”
“나 노래 다 외웠어. 이거 전에 외운 거야.”
“아. 정말?”
“응. 하나도 다 외웠을걸?”
하나는 원래 노래를 좋아해서 웬만하면 가사를 다 외우려고 한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부르면 안 외우려고 해도 자동으로 외워지게 되어 있다.
“어쨌든 수학도 잘해야지.”
“왜?”
“나중에 외국 가서 돈 계산도 못 해봐. 그러면 힘들잖아. 연봉을 받기도 힘들고.”
“아, 맞네.”
승준이 그렇구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와 같은 수학 숙제를 폈다.
“토끼 3마리랑 쥐 4마리. 사커하자고 왔네.”
“???”
“근데 숫자가 안 맞으니까 쥐 한 마리는 심판 하면 되겠다.”
“???”
“그러면 6마리가 사커하네.”
승준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수학 문제가 아니잖니?
누가 봐도 3 더하기 4는 7을 나타내고 있었다. 왜 답이 6이 되어버리는가.
“경기장에 있는 동물은 총 7마리. 끝!”
방향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7마리가 되었다.
하나가 오빠를 하는 걸 유심히 봤는지 자기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토끼 3마리는 한국이고 4마리는 중국이라서 아이돌을 만들고.”
갑분 아이돌이었다.
“남자 아이돌이니까 나중에 토끼 3마리는 군대 같이 가고. 남은 중국 쥐 4마리는 아이돌 활동 계속하고.”
불쌍한 토끼는 동반 입대를 했다.
“나중에 돌아와서 7마리가 되었네.”
어떻게 하다 보니까 결과는 7이 나왔다.
수학 숙제를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승준 엄마는 혼란이 왔다.
이게 답이 되는 걸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 숙제를 보고 선생님이 어떤 평가를 할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