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아, 나 귀엽지 외전-18화 (443/500)

외전 18화 태권도 (3)

그렇게 삼촌의 열쇠 기스 사건이 우당탕 지나가고 주말이 왔다.

오늘은 서수현과 데이트가 있는 날이었는데 시하와 함께하기로 했다.

사실 주말에는 시하를 놔두고 어디 가기가 좀 그렇다.

안 그래도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졌고 가뜩이나 부모님도 계시지 않는데 나만 어디 놀러 가는 게 마음속 한구석이 불편했다.

삼촌에게 맡기면 된다지만 그게 좀처럼 잘 안 된다.

몇 번은 그래도 서수현에게 미안해서 시하를 놔두고 데이트하기도 했다.

사귄 기간은 꽤 되는데 이상하게도 데이트하고 그런 기간은 좀처럼 길지 않았다.

시간을 쪼개서 써서 그런 것도 있고 서수현이 여러 가지 일로 바빠지면서 별로 만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그럼 갈까?”

“응!”

그런데도 서수현은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시하랑 같이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런 부분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기분이다.

“혀니 누나!”

“시하야. 안녕~”

요새 시하는 개굴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혀니 누나라고 부른다.

심정에 변화인지 아니면 나랑 사귀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개굴 누나도 이제 친근감이 있어서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다.

“왜 벌써 나와 있어. 오래 기다린 거 아니야?”

“에이.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20분 일찍 도착했겠네.”

내 말에 서수현이 눈을 휘둥그레 뜬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무당이야. 뭐야?”

아무래도 정답이었나 보다.

시하는 서수현의 소매를 당겼다.

“혀니 누나. 형아야!”

당당한 표정으로 정답을 외친다.

서수현이 오히려 그 모습에 당황한다.

“어? 어. 그렇지.”

“형아는 다 알아. 대단하지?”

“응. 다 알지. 대단하지. 예전부터 다 알지.”

“아, 맞아! 혀니 누나. 나 태권도 배웠어.”

“정말? 우와. 시하도 대단하네.”

“오늘 내가 나쁜 놈 나오면 지켜줄게.”

이시하. 흰 띠. 태권도 다닌 지 3일.

정말로 지켜줄 수 있을지 걱정이 든다.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니. 아직 배운 거라고는 정권밖에 없지 않나?

아니다. 위아래로 주먹 뻗는 것도 배웠구나?

참고로 어제 위, 정면, 아래로 주먹을 뻗으며 태권도를 함께 외쳤다.

“나중에 내가 가르쳐 줄게. 혀니 누나도 배워.”

나는 고개를 열심히 저었다.

하지만 서수현은 내 통한의 신호를 보지 못했는지.

“어, 어. 고마워. 열심히 배울게.”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쯧쯧. 이럴 때는 시하가 지켜줄 테니까 난 안 배워도 될 것 같다고 말해야 하는데.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봐봐. 이렇게 해서 때! 껀! 도! 하는 거야.”

“오오. 잘한다.”

“누나도 해봐!”

“어?”

지금 사람들이 시하를 귀엽다고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는 이곳.

그 한가운데서 때! 껀! 도! 하는 건 많은 문제가 있다.

안 그래도 부끄러운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한다?

이건 못 버틴다.

밥 먹으러 들어가자고 말려야겠다.

“저. 수현…….”

“태, 태. 권. 도. 으읏.”

서수현이 새빨개진 얼굴로 정권을 찌른다.

뭔가 좀 귀엽다.

“아니야. 더 힘있게 해야지. 허리도 펴고.”

“으읏. 태. 권. 도.”

이제 3일 차면서 꽤 엄격하게 지도하는 시하였다.

그것도 야외에서 말이다.

같이 있는 나도 부끄러웠으므로 이제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으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시선도 그만둬 줬으면 좋겠다!

“시하야. 이제 밥 먹을 시간이니까 나중에 하자. 오늘 잘 놀아야지.”

“아, 맞다! 나 배고파!”

“응. 다음에 하자. 다음에.”

“응! 혀니 누나. 다음에 더 엄청난 거 가르쳐 줄게. 알았지?”

서수현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그런 서수현의 손을 잡고 가게로 이끌었다.

“귀여웠어.”

“으읏. 잊어줘요. 제발.”

“평생 못 잊을 것 같아.”

“진짜 못됐어.”

“나는 말리려고 했는데 먼저 하더라.”

“더 빨리 좀 말리지 그랬어요.”

나는 피식 웃으며 폰에 있는 사진을 눈앞에 흔들었다.

“나중에 톡으로 보내줄게.”

“?!?!”

고개 숙이던 서수현의 목이 번쩍 들린다.

“그걸 찍었어요?”

“두 번째만?”

“뭐, 뭐예요. 어서 지워요.”

“왜에. 아깝게.”

“빨리!”

이렇게 투덕대고 있는데 시하가 말했다.

“형아. 밥 먹을 때는 조용히 해야지.”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 그리고 아직 메뉴도 안 골랐다.

“시하야. 메뉴는 다 골랐어?”

“으음. 나는 스테이크! 형아는?”

“나는 파스타?”

“그럼 나도 파스타!”

“아니다. 스테이크 먹어야지.”

“나도 스테이크!”

이럴 거면 메뉴 고르는 의미가 있나?

뭐 언제나 이랬다.

우리는 직원에게 메뉴를 시켰다.

“형아. 누나. 이거 먹고 태권도 배우러 가?”

“아니.”

너 이제 3일 됐는데 벌써 태권도 홍보대사라도 된 거 아니냐?

어쩌면 아직 3일이라서 흥분상태인지도 모르겠다.

뭐든 처음 배우면 신기하고 재밌으니까 말이다.

***

밥을 다 먹고 백화점에서 옷 구경을 하기로 했다.

배도 꺼질 겸 말이다.

명품 같은 건 딱히 관심에 둔 적 없다. 어릴 때야 메이커 몇 개 정도 있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학생 때는 패딩이나 신발에 관심을 많이 가지니까.

나는 우리 집 돈을 생각해서 일절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월급이 좀 많이 들어올 때면 가끔 나를 위해 메이커 신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산다.

“명품 같은 거 있어?”

“있죠.”

수현이의 말에 나중에 큰맘 먹고 명품백 하나 사줘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오늘 돌아보면서 조사 좀 할까 싶다.

“큰맘 먹고 기타를 샀는데 역시 비싼 값을 하더라고요.”

“명품이 기타야?”

“그럼 무슨 명품이요?”

기타는 생각 못 했는데?

내 멍한 표정을 보자 서수현이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아. 아. 오빠. 혹시 빽 같은 거 말하는 거예요?”

“어. 뭐. 있나 싶어서.”

“100만 원 넘어가고 그런 건 없는데. 기타는 있어요.”

고놈의 기타.

하긴 너튜버를 하고 있으니 기타 정도는 비싼 걸 쓰는 것 같다.

번 돈도 있으니까.

“참고로 묻는 건데. 기타가 얼마야?”

“300대 후반쯤?”

“헉.”

역시 명품 기타는 가격부터 다르구나.

하긴 엄청 유명한 바이올린 같은 경우는 억 단위기도 하니까.

“너무 비싸서 고이 모셔뒀어요. 몇 번 못 친 거 같아요.”

“왜 산 거야?”

“으으. 완성 곡일 때만 쓴다고 할까?”

과연. 아끼면서 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둘러보고 있는데.

“형아. 경호원이야.”

“응?”

명품매장 앞에 보안요원이 서 있었다.

시하가 도도도 달려가서 보안요원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저씨.”

“응? 왜 그러니?”

“아저씨. 태권도 할 줄 알아요?”

“어? 응. 태권도 하지.”

“저도 태권도 할 줄 알아요!”

흰 띠가 태권도 할 줄 안다고 말해도 되는 거니?

“와. 대단하구나.”

“그럼 아저씨. 도둑이 오면 태권도로 잡아요?”

보안요원이 살며시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도둑이 오면 태권도로 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하가 너무 반짝이는 눈으로 물어봐서일까?

“응. 태권도로 잡지.”

“발차기로요?”

“응. 발차기로 한 방에 기절시키지.”

“우와! 그럼 저도 태권도 열심히 하면 범인 잡을 수 있겠네요?”

“응. 열심히 하면 경호원도 될 수 있어.”

“!!!”

뭐 태권도만 할 줄 알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시하의 머리를 헝클었다.

“하하하. 일하시는데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애가 참 귀엽네요. 역시 부부가 한 미모 하니까 그대로 물려받은 거 같습니다.”

“하하.”

동생인데요. 크흠.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오해를 한다.

언제나 변명은 하지 않는다. 이래저래 말해야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그럼 수고하세요.”

인사를 하고 매장 앞을 벗어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서수현이 빨개진 얼굴로 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오빠. 우리 부부로 보이나 봐요.”

“으응? 아. 뭐. 오해할 수도 있지.”

“엄청 잘 어울린다고 했죠.”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요?

“여전히 신혼부부 같다는 말도.”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했습니다만?

“사실 첫째 이름을 정하긴 했거든요. 시현이.”

시혁의 시와 수현의 현을 합친 건가?

이게 아니지. 저기요? 너무 멀리 가셨는데요? 빨리 현실로 돌아오세요.

부부라는 말에 대체 상상이 어디까지 뻗어가는 거야?

“둘째는 수혁이.”

둘째도 있어?!

“애들 앞에서 기타 치면서.”

“수현아. 현실로 돌아와.”

“크흠.”

“근데 이름은 괜찮은 거 같아.”

“그쵸?!”

그 말에 시하가 대답했다.

“형아. 시하 투는?”

시하2. 이건 좀 이름으로 아니지 않니?

한글과 영어가 섞인 혼잡한 이름이기도 했다.

“어. 그건 아닌 거 같아.”

“그럼 형아 투!”

“아니야. 그거 아니야.”

어떻게 사람 이름이 형아 투가 될 수 있겠나.

“근데 형아. 시하가 태권도로 지켜줄게.”

“어. 그건 고맙네.”

내 아이를 지켜주는 시하 경호원인가 보다.

“그러니까 그거 줘. 그거.”

“그거?”

“이어폰. 이어폰.”

“이거?”

나는 무선이어폰을 꺼내서 시하에게 줬다.

두 개를 줬는데 하나는 돌려준다.

그리고 한쪽 귀에 꽂는다.

“응. 응. 알았어. 형아. 여기 아래부터는 안전하대.”

아무래도 아까 경호원이 끼고 있는 이어폰을 보고 따라 하는 것 같다.

아주 본격적이네.

“시하가 참 재밌네요.”

서수현의 말에 나도 그냥 웃었다.

뭐 자기가 재밌어하면 됐지.

***

태권도 4일 차.

아이들이 태권도장에 도착했다.

먼저 하는 일이라고는 도복을 갈아입는다.

옷도 반듯하게 개어서 서랍장에 넣는다.

그런 다음 수업까지 20~30분이 남아있기에 공을 가지고 온다.

탱탱공. 딱딱하지 않아 맞아도 아프지 않고 가벼워서 멀리 날아가는 공이다.

어디를 맞아도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 공.

그래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차고 놀 수 있었다.

“시하야. 빨리하자. 빨리. 골키퍼가 필요해.”

“응!”

오늘 골키퍼는 이시하다.

한쪽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형아에게 부탁해서 한 개만 받아왔다.

시혁이 잃어버릴 각오까지 하면서 건넨 이어폰이다.

승준이 물었다.

“그거 뭐야?”

“오늘은 골대를 지키는 태권 경호원이야.”

“오오! 대박!”

“여기로 잘 알려줘야 해.”

“와! 좋다!”

실제 축구 경기에는 사용하면 안 되지만 어찌 되었든 여기는 자유로운 체육관이었다.

아이들이 열심히 공을 뻥뻥 찼다.

시하가 손을 들어 막았지만 가벼운 공이라 너무 빨라서 놓쳤다.

승준은 거기에 대해서 못했다거나 더 잘하라고 하지 않았다.

“시하야. 내가 더 넣을게!”

다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잃었다면 더 점수를 내면 된다.

“응! 다음에는 잘 막을게.”

“골대가 없어서 좀 힘들 거 같은데. 파이팅!”

벽이 골대인데 몸이 작은 시하가 막기에는 힘든 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서로 점수가 계속 쌓여간다.

그때 관장님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자. 수업 곧 시작한다. 다들 준비하고!”

그 말에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공을 집어넣었다.

다들 서로 띄워서 줄을 섰다.

기존 아이들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 새로운 아이들이 따라서 자리를 잡는다.

군중심리가 그렇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아도 당연히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말해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관장님이 아이들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다들 준비 끝났나!”

“네!”

“응? 시하는 귀에 뭐니?”

“저 경호원이라서 귀에 이거 있어야 해요.”

“아. 아. 경호원 귀에 있는 그거 말하는 거지?”

“네!”

“그렇구나.”

“관장님. 경호원한테 물어봤는데 태권도 잘하면 경호원 될 수 있대요.”

“응. 응. 그렇지. 그런데 다들 아니? 경호원이 되려면 태권도 말고 하나 더 잘해야 해. 태권도도 마찬가지고.”

“???”

아이들이 그게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예절이 되어 있어야 한다.”

“???”

“태권도를 보면 겨루기할 때 서로 인사를 하지?”

“네!”

“경호원도 마찬가지란다. 예의 있게 지켜야지. 안 그럼 오히려 고용한 사람이 욕을 먹거든. 그리고 태권도를 하니 당연히 예절이 있어야지. 알겠니?”

“네!”

“흠흠. 예절은 중요하단다. 다른 사람한테 중요한 게 아니라 나한테 말이야. 다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담을 들어봤지?”

“아니요!”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는 아이들도 있었다.

시하는 아는 아이 중 하나였다.

“그래. 그래. 예절이 있어야 멋진 거란다. 가족을 사랑하고 공경해야 하지.”

관장님이 시하를 보았다.

“알겠니 시하야? 가족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사랑하고 곤경해야 해요!”

“곤경에 처하면 큰일이지. 공! 경! 이란다. 발음 조심하자.”

“공경해요!”

“그래.”

시하의 발음 때문에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관장님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