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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16화 (441/500)

외전 16화 태권도 (1)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때 친구들이 하면 나도 하고 싶어 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같은 장소와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초등학교에 있는 친구들은 정말 자신과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꼬미인데 맨날 집에 오면 꼬리 흔들면서 반겨준다? 엄청 귀여워.”

“우와. 좋겠다.”

강아지 자랑을 한 번 하면 동물을 키우지 않는 아이들은 그날 엄마에게 가서 우리도 강아지 키우자고 하는 것이다.

괜히 친구들이 키우니까 키우자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저 난감해할 뿐이다.

책임감 없이 동물을 쉽게 키울 수도 없고 그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까.

현실적인 생각부터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너 학교 끝나면 뭐 해?”

“아, 나? 나는 태권도 가는데. 강인초 옆에 있는 태권도 다녀.”

아이들이 모이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이다.

시하가 그 아이에게 물었다.

“태권도?”

“응. 이렇게 발차기도 하고 주먹도 쓰는 거야.”

아이가 유연한 몸으로 하늘 위로 발을 쭉 뻗었다.

시하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나 벌써 빨간 띠야.”

“레드?”

“어? 뭐 영어로 레드 맞지.”

시하가 호기심이 커졌다.

옆에 있는 승준이 그걸 알아차렸는지 이렇게 말했다.

“시하야. 사커 볼도 레드가 있어.”

“???”

“태권도보다는 사커지.”

승준의 말에 아이가 말했다.

“우리 수업하기 전에 태권도장에서 공도 가끔 차!”

“!!!”

승준도 그 말에 관심이 확 쏠렸다.

사커도 하면서 태권도도 한다고?

두 마리의 토끼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시하야. 우리도 다닐까?”

“나는 형아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에이. 우리 다닌다고 하면 시혁이 형아가 당연히 허락하지.”

“그런가?”

“응. 시하가 다니고 싶다고 말하면 바로 보내줄걸?”

“맞아! 형아는 시하 말 다 들어줘. 근데 위험한 건 안 돼.”

“그건 우리 엄마도 똑같아. 나도 가스레인지 켜고 싶은데 안 된다고 해.”

“라면은 10살 때부터 끓일 수 있어.”

“???”

시하가 이상한 말을 하는 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승준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하나야.”

“왜?”

“너도 태권도 간다고 말하자.”

“응.”

“오? 웬일이야?”

“나 나중에 아이돌 될 거니까 미리미리 몸을 보호할 줄 알아야지. 이거 배우면 오빠도 발차기로 한 방이야.”

“에이. 내가 사커를 얼마나 잘하는데. 내가 더 발차기 잘하지.”

아직 태권도를 배우지도 않았으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인다.

“종수 넌?”

“어? 나? 할까?”

“아니다. 하지 마라.”

“왜!”

승준이 그렇게 말하자 오히려 다니기로 결심한 종수였다.

물론 아직 부모님들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나는 시하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시하가 학원을 가고 싶다고 말한 건 처음 아닌가?

미술이야 내가 시하 아빠랑 친해지라고 보낸 거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친해지라고 보냈는데 어째 미술에 대한 지식만 점점 더 쌓이고 있었다.

나도 같이 다니고 있는데 한 번씩 자리를 피해 주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친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보면 또 그렇지 않다.

하는 말이 죄다 미술에 관련된 이야기다.

할 말이 그것밖에 없다는 듯 말이다.

그래서 내가 조종하는 것처럼 톡을 보낸다. 이런저런 화제를 꺼내 보라고.

아직 둘 사이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응. 애들이 다 태권도 다닐 거래.”

“정말?”

“응. 승준이랑 하나도 그랬고. 종수도 그랬고.”

“근데 시하야. 너 괜찮겠어? 너 미술도 배우러 다니잖아.”

“미술은 한 번씩 배우니까 괜찮아.”

“그건 그렇지.”

매일 가는 것도 아니니까.

“근데 학원 많이 다니면 힘들 텐데.”

“해보고 힘들면 그만하면 되지.”

“오!”

현명하다. 해보고 힘들면 안 하면 되지.

우리 시하는 아주 똑똑하다.

“아니면 가끔 쉬면 돼.”

“그러네. 우리 시하 똑똑한데?”

“응! 형아 닮아서 그래.”

“하하하.”

힘들면 쉬면 된다.

정말 간단한 이야기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다 하고 싶을 때 시간을 잘 조절하면 되는 법이다.

아니면 스케줄을 조절해서 횟수를 줄이던지.

우리 시하는 벌써 그런 것을 알고 있나 보다.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른이 되어서 우리는 할 수 없다를 먼저 정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버리니까 미리 결론을 내린다.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형아보다 더 똑똑한데?”

“정말?!”

“응.”

“근데 아직도 형아가 더 똑똑한 거 같아.”

“형아는 시하보다 밥을 많이 먹어서 그래.”

시하가 자기 배를 잡고 흔들었다.

“내 배가 빨리 커서 밥 많이 들어가면 좋겠다.”

밥 먹은 시간이 길다는 표현이지 한 끼를 많이 먹는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시하보다 많이 먹긴 하지만.

“배만 크면 큰일 나는데?”

“부장님 배야?”

“푸흡.”

부장님 배라는 말은 또 어디서 들었을까?

요즘 부장님들은 관리도 열심히 한다고!

뭐 개인차가 있겠지만 말이다. 이미지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그럼 태권도 보내줄게. 어디 태권도라고?”

“강인초 옆에 태권도. 다 거기 간데.”

“아하.”

학교랑 가까워서 아이들이 방과 후에 다니기 좋아 보였다.

폰으로 검색하니까 2곳이 나왔다.

“2개인데?”

“으잉?”

“이름이 뭔지 몰라?”

“들었는데 까먹었어.”

“그럼 어머니들께 물어볼게. 어차피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면 되는 거지?”

“응!”

그럴 줄 알았다.

어느 태권도장이든지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면 대만족이다.

“형아도 같이 다녀?”

“아니!”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다.

만약 시하가 다니게 되면 초등학생이 많은 시간대일 것이다. 거기에 나도 다니면 굉장히 피곤한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왜?”

“어? 형아는 그 시간에 일해야지.”

“아. 맞다. 형아, 일해야지.”

시하가 살짝 실망한 얼굴이었다.

어쩔 수 없다! 일 핑계로 도망가는 수밖에.

프리랜서라 조절하면 조절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아! 형아!”

“으응?”

“그럼 내가 배워서 형아한테 가르쳐 줄게!”

아주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어, 그래. 그때는 잘 부탁해.”

“응! 내가 잘 배워서 꼭! 가르쳐 줄게!”

의욕이 아주 앞서고 있다.

가르치는 의욕이 조금만 줄었으면 좋겠다.

“푸흡.”

삼촌의 비웃음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시하가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삼촌. 왜 웃어?”

“시하야. 넌 잘 모르겠지만 시혁이는 나한테 엄청난 무술을 전수받았거든.”

“엄청난 무술?”

“푸흡. 태권도? 그거 싸우는데 도움도 안 돼.”

“그러면?”

“자. 이거 잡아봐.”

삼촌이 시하에게 리모컨을 넘겼다.

시하는 받아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줘서 받긴 했는데 이걸로 뭐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런 게 얼굴에 쓰여 있었다.

“한국에는 총을 쓸 수 없지. 하지만 칼은 쓸 수 있어. 그게 칼이야. 그리고 마구마구 찔러! 그러면 웬만한 사람도 못 막… 엌! 아파!”

나는 삼촌의 등을 때렸다.

“이 화상 씨. 뭘 가르치고 있는 겁니까?”

“예로부터 선빵 필수 엌! 아프다! 아파!”

“으이구. 진짜. 무기를 들게 하면 어떡해요.”

“아니. 무기 든 사람 못 이긴다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싸움 잘하는 사람도 총알 한 방이면 저세상행이긴 하다.

그리고 칼을 들고 찌르면 잘 못 막는다.

훈련된 사람조차 위험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멋있게 막고 꺾어서 칼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래도 뭐 애를 살인자로 만들 일 있어요?!”

“크흠.”

시하가 말했다.

“삼촌. 바바. 이렇게 탁 잡고 꺾어서 칼을 떨어뜨리면 돼.”

“시하가 드라마를 많이 봤네. 실제로는 저거 못 해. 물론 삼촌은 할 수 있지만.”

“정말?”

“응. 정말이지. 크라브마가라고 있어. 나중에 삼촌이 가르쳐 줄게.”

“그럼 나는 삼촌에게 태권도 가르쳐 줄게!”

“아니. 그건 필요 없는데.”

“아니야. 삼촌은 필요해.”

“왜?”

“내가 가르쳐 줄 거니까.”

“???”

뭔가 시하의 말이 이렇게 들린다.

아. 너 필요한 건 모르겠고 내가 가르쳐 줄 필요가 있으니까 그냥 배워.

삼촌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쩔 수 없다. 이건 결정사항이다.

나는 조용히 대화에 빠져서 어머니들에게 톡을 보냈다.

-시혁 : 아이들이 태권도 다니고 싶다고 하는데 어디 보내실 생각이에요? 학교 근처에는 2곳 있던데요.

-승준 엄마 : 강인 태권도장이 좋지 않겠어요?

-연주 엄마 : 거기 아이들 안 데리고 가도 관장님이 알아서 집에 데려다준대요~

-종수 엄마 : 애들 기특해 죽겠네~

다른 어머니들도 속속들이 톡에 참여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방과 후에 태권도장에서 갔다가 집에 오니까 좋으신가 보다.

하긴 한두 시간 더 학교에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어머니들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육아는 힘드니까. 음음. 이해는 된다. 아이들이 좋지만 너무 막 집에 빨리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거.

그리고 태권도장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보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아이들과 어머니의 이해는 일치했다.

***

강인 태권도장.

아이들이 태권도 등록을 했다.

다들 도복을 입고 흰 띠도 착용했다.

펄럭이는 도복이 익숙하지 않은지 아이들이 신기해했다.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이거 봐봐. 여기 띠 매는 거 뭔가 멋있어.”

“응. 멋있다.”

태권도복도 멋있었지만 매고 있는 띠의 모양이 좀 더 멋있었다.

“뭔가 변신하고 강해지는 느낌이야.”

“나는 빨리 빨간 띠 갖고 싶은데.”

시하 눈에는 다른 띠보다는 빨강 띠가 멋있어 보였다.

“나는 검은 띠! 근데 흰색이랑 검은색이랑 반반 섞인 띠는 없나?”

승준은 축구공을 연상시키는 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띠는 없다.

“오빠. 나는 노란 띠 갖고 싶은데.”

하나는 흰 띠의 다음 단계인 노란띠를 가지고 싶었다.

“노란색은 왜?”

“레몬 같잖아. 요즘 아이돌은 과즙미 팡팡 해야 한다고.”

“맨날 아이돌이래.”

“오빠는 맨날 축구잖아.”

“축구가 아니라 사커거든.”

“똑같은 거잖아.”

둘이 티격태격할 때 종수가 시하에게 갔다.

“야. 이시하. 그거 알아?”

“몰라.”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몰라.”

“크흠. 빨간 띠 되려면 여기 오래 다녀야 해. 태권도도 시험이 있어서 합격하면 새로운 띠를 줘.”

“빨간 띠 되려면 얼마나 있어야 해?”

“한 시험 여섯 번?”

“왜 세 번 아니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종수도 모르는 게 있네.”

“아니거든! 알거든! 그. 뭐냐. 그래! 시험 많이 치면 좋으니까 그런 거야.”

“종수 모르네~”

“이익!”

재휘는 연주랑 같이 있었다.

“나는 파란 띠가 좋은 거 같은데. 연주는 무슨 띠 좋아해?”

“나는 재휘랑 같은 띠면 좋을 것 같아.”

“어엇!”

재휘의 얼굴이 빨개졌다.

연주가 그런 재휘를 보며 쿡쿡 웃는다.

“윤동아~”

은우가 윤동을 불렀다.

윤동이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은우의 머리에 흰 띠가 둘려져 있었으니까.

누가 보면 시위하는 거로 알 것 같았다.

“푸하하. 어때? 힙하지?”

“별로.”

“앗! 별로야? 흠. 그럼 이건?”

은우가 머리에 띠를 풀더니 손에 칭칭 휘감았다. 마치 붕대처럼 말이다.

“이 정도면?”

“좀 괜찮은데?”

“오!”

둘이 그러고 있는데 뒤에서 관장님이 나타났다.

“흠흠. 띠는 허리에 두르자.”

아이들을 쭉 둘러보고 이렇게 말했다.

“우선 제대로 배우기 전에 스트레칭부터 하자. 운동에서 제일 중요한 건 몸을 안 다치는 거야. 알았지?”

“네!”

이 말에 특히 승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부상 입으면 경기를 더 못 나가니까. 응. 응.”

시하는 다른 의미로 공감했다.

“내가 아프면 형아도 아프니까. 응. 응.”

관장님은 생각했다.

올해는 특히 개성 강한 애들이 들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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