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4화 초등학교 (3)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이 시작됐다.
국어 수업. 사실 처음은 문장이나 이런 것을 해야 하지만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다르다.
애초에 사립에 온 아이들은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아이들이다. 물론 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첫 수업은 이거였다.
“교과서를 펴고 목차를 봅니다.”
목차에는 문장 부호도 있고 기본적으로 단어의 쓰임도 많다.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한글에 익숙해질 수 있게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그에 맞는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다음은 이야기를 다 같이 읽어볼게요.”
토끼와 거북이.
토끼는 빨리 뛰어가다가 느린 거북이를 보았습니다.
거북이야. 그렇게 느려서 날 따라올 수 있겠니?
토끼가 깔깔 웃으며 저 멀리 앞으로 나아갔어요.
거북이는 말없이 그저 발을 부지런히 놀렸습니다.
“네. 잘 읽었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았다.
1학년 국어라는 건 결국 잘 읽을 줄 알고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 편차가 있으므로 가장 기본적인 걸 가르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미 알고 있는 학생은 지루해진다. 재미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혹은 쉬워서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걸 더 재밌게 만드는 게 선생님의 역량이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아나요?”
“네!”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
누가 이기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럼 이 이야기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보아요. 깊은 질문과 얕은 질문을 말이죠.”
“???”
아이들은 질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얕은 질문이, 깊은 질문이 뭔지도.
지금까지 표면적인 얕은 질문만 해왔다. 이게 뭐야? 저게 뭐야? 하지만 이제 1학년이 된 시점에서 좀 더 재밌는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이거라면 이미 앞서간 친구들도 재밌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예를 들어줄게요. 지금 교과서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질문을 던질게요. 토끼는 빠르나요? 이건 얕은 질문이에요. 그럼 깊은 질문은 뭘까요?”
“으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기 이 책 밖에 있는 질문을 하는 거랍니다. 토끼는 달리기 전에 아침밥을 먹었을까요?”
“!!!”
선생님이 예시를 들어주자 아이들이 쉬운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얕은 질문과 깊은 질문.
질문이라는 건 어떤 것인가.
그런 의문에 정의를 내리지 않고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엉뚱한 질문이 될 수도 있고 정말 사려 깊은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그럼 질문해볼 사람!”
아이들이 살며시 눈치를 본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것은 종수였다.
“어. 그래. 종수야. 질문해 보세요.”
“거북이는 컴퓨터 타자를 치는 것도 느릴까요?”
요즘 타자 연습하는 종수다운 질문이었다.
선생님은 그 대답을 아이들에게 넘겼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느릴 것 같아요!”
“너무 느려서 친구랑 이야기하는 데 답답할 것 같아요!”
“저는 의외로 엄청 빠를 것 같아요!”
“물대포 쏴서 컴퓨터 고장 날 것 같아요!”
아주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다.
처음에만 어렵지 물꼬를 트면 이렇게 쉽게 참여한다.
다음은 시하가 손을 들었다.
“네. 시하야. 질문하세요.”
“거북이는 형아가 있을까요?”
또 형아니?! 거북이에게 형아가 있는 게 중요하니?
“통역사 형아가 있을까요? 글도 잘 쓰고 해외도 가서 통역하고 엄청 능력자고!”
그런 엄청난 경력의 형아가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런 생각과 다르게 선생님은 좋은 질문이라고 대답해 줬다.
“좋, 좋은 질문이네요.”
시하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형아가 만능 치트키가 아니라고.
물론 이야기 밖의 질문을 한 건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만 형아에게서 벗어나는 질문을 던져도 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러분들. 거북이에게는 어떤 형아가 있을까요? 아니. 형아가 있을까요?”
대답을 넘겼다.
승준이 대답했다.
“거북이 형아는 거북왕이라서 나중에 토끼가 혼날 거야. 아하하!”
아주 어린이다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사커에 벗어난 대답이라서 속으로 살짝 놀랐다.
은우가 대답했다.
“거북왕인데 선글라스 끼고 있는 래퍼야. 엄청 거칠지.”
거기에 래퍼라는 속성이 추가됐다.
다음은 재휘.
“거북이 껍질에 멋지게 문양도 그려서 좋은 등껍질 옷을 입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기. 얘들아? 형아가 있을지 없을지 물어봤는데 왜 대답이 이렇게 되는 거니?
그저 거북이 형아에 대한 속성이 하나씩 추가되는데요?!
“흠흠. 여러분. 질문이 거북이의 형아가 있는지 묻는 거였어요.”
“아앗. 선생님 죄송해요.”
“으응? 아니야. 죄송할 건 아니고. 재휘도 열심히 생각 잘했어요!”
재휘가 시무룩해졌다.
옆에 앉아있던 연주가 재휘의 볼을 콕 찔렀다.
재휘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고개 든 게 더 멋있어.”
“으응? 으응. 고마워. 연주야.”
재휘가 부끄러운지 다시 숙이려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연주가 그 모습이 웃긴지 쿡쿡 웃는다.
선생님은 생각했다.
너희들 수업시간에 뭐 하니?
역시 1학년 수업이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
쉬는 시간.
아이들이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이야기한다.
벌써 그룹이 만들어져 있다.
강인 어린이집 남자아이 그룹.
하나와 연주를 필두로 한 여자아이 그룹.
그 외에 짝꿍이랑 이야기하는 그룹.
아직 적응 못 하고 꼼지락거리고 있는 그룹.
같은 반이지만 이렇게 나뉘게 된다.
서로 이름도 잘 못 외우고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 나 다른 반 갔다 올게!”
승준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점심시간에 사커할 사람 모아야지. 나 빨리 갔다 올게!”
행동력 하나는 기가 막힌다.
언제나 사커에 진심인 남자였다.
승준이 복도로 나가서 제일 가까운 2반으로 갔다.
이 반은 아직 그룹이라는 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규합할 아이가 아직 나서지 않기도 했고 서로 어색했으니까.
“저기! 점심시간에 우리 사커할 사람?!”
“???”
아이들이 의문의 눈초리를 하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뜬금없는 소리를 하니까.
“나 1반에 오승준인데. 우리 1반이랑 점심에 사커 붙을래? 할 사람 있어?”
아무런 대답도 없다.
원래 그렇다. 불특정 다수에게 물어보면 대답하는 경우가 쉽지 않으니까.
“으음. 아! 여기 임시 반장 누구야? 1번!”
“난데?”
“아, 그래. 혹시 할 마음 있어?”
“아. 나는 하고 싶어!”
“그래? 그럼 여기 반장에게 할 사람 모집해줘. 할 사람? 손!”
다들 그제야 한두 명씩 손을 들기 시작한다.
“할 사람은 반장이랑 같이 점심시간에 밥 먹고 사커하러 가자. 알았지? 선생님이 우리 1반, 2반이 제일 먼저 먹는데.”
끄덕끄덕.
순식간에 대답을 들은 승준은 잽싸게 1반으로 돌아왔다.
“2반이랑 사커 붙기로 했어. 우리는 다들 할 거지? 할 거지? 할 거지?”
승준이 반에 있는 남자애들에게 한 명씩 물어봤다.
하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있고 승준의 기합에 눌려서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있다.
어찌 되었든 다들 하기로 했다.
“하나야. 너도 할래?”
“아니!”
즐겁게 여자애들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승준이 눈치 없이 끼어든다.
하나가 기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커라면 지긋지긋한 하나였다.
역으로 승준은 아이돌이라면 지긋지긋했다.
하나가 하도 많이 봐서.
“시하야. 다들 할 거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승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앉았다.
“근데 다들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승준이 열심히 뽈뽈 돌아다니며 물어보는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시선을 받은 시하가 입을 열었다.
시하가 공의 패스를 떠넘기듯 스윽 종수를 바라본다.
“종수야. 무슨 이야기했지?”
“야! 이시하! 너 내 말 안 들었지!”
“아니야. 들었어. 응!”
“내가 무슨, 무슨 말 했는데?”
“종수가 타자 열심히 친 거 들었어.”
“야! 그거 자기소개 때 한 말이잖아!”
“무슨, 무슨 말 했냐며?”
“어? 그건 그렇지. 쉬는 시간에 무슨 말 한 거 물었지 오늘 무슨, 무슨 말 했는지 묻지 않았어!”
“그럼 그렇게 이야기해야지!”
“아니! 이야기 흐름상 쉬는 시간이잖아?”
“난 몰라.”
시하는 ‘아. 모름. 아무튼, 모름!’을 시전했다.
종수가 어이가 없는지 입을 벌렸다.
“크흠. 그래서 내가 쉬! 는! 시! 간!에 무슨 말을 했지?”
“몰라!”
“야!”
시하의 말에 다른 아이들이 빵 터졌다.
“풉풉.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물어봤네.”
“흐읍. 시하야. 그건 좀 심했어. 흐읍. 큽.”
“푸하하! 몰라! 아무것도 몰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푸하하!”
“크흠흠.”
승준, 재휘, 은우, 윤동.
서로 표현만 다를 뿐 각자에게 맞는 웃음을 보였다.
종수가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어휴. 내가 너한테 물어본 게 잘못이지.”
“종수야. 뭐 말했지?”
“그러니까 내가 뭐 말했냐면…….”
띵동댕동!
쉬는 시간이 끝나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하가 벌떡 일어났다.
“종수야. 다음에 이야기하자. 자리로 가야 해.”
“야!”
종수는 좀 억울한 마음이 생겼다.
뭔가 시하가 노린 건 아니었지만 괜히 당한 느낌이었다.
그저 쉬는 시간이 끝났을 뿐인데 말이다.
아니지. 기억 못 하는 시하의 잘못이 맞았다.
“시하야. 너 다음에 내 말 기억해라. 좀.”
“응. 알았어!”
언제나 해맑게 대답만 잘하는 시하였다.
***
점심시간.
1학년, 2학년, 3학년 순으로 배식을 받는다.
반은 1반, 2반, 3반 순.
사립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어 배식을 받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물론 6학년까지 배식을 받으려면 조금 긴 감이 있긴 하다.
“자. 여기서 줄 서서 먹는 거예요. 들어갑시다. 수저랑 식판을 챙기고요. 밥과 반찬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합니다. 그리고 먹고 싶지 않은 건 미리 안 받는다고 말하세요. 아니면 조금 달라고 말하세요. 알았죠?”
“네!”
“먹기 싫어도 야채랑 과일은 꼭 먹어야 해요. 알았죠?”
“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급식소로 향한다.
다행히 1반 아이들은 특정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없었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크면 급식표 보고 알아서 챙기겠지만 아직 1학년인 아이들은 그런 게 없었다.
1학년 선생님은 그런 것도 점검해야 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아직 7살 아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 힘든 게 있었다.
머리가 크면 큰 대로 힘들지만, 아직 어리면 어린 대로 힘들다.
“네에!”
그래도 대답은 잘한다.
“시하야. 밥 뭐 나오는지 알아?”
승준은 급식표를 확인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래서 물어본다. 학교 가면 한 명씩 꼭 있는 타입이다.
“불고기 나오던데. 불고기. 형아가 해준 거 맛있는데.”
“오! 불고기!”
시하는 맛있는 것만 기억하는 타입.
자잘한 거는 다 필요 없다. 오로지 맛있는 거 하나만 노린다.
“밥이랑 불고기, 요거트, 탕국, 김치, 샐러드, 시금치. 아마 이 정도일걸?”
종수가 거기에 덧붙여서 말한다.
모든 음식을 줄줄이 꽤 차고 있는 타입.
물어보면 다 나오는 사람이다.
“우와. 종수야. 대단해. 나는 봤는데 까먹었는데. 맛있는 거 나온다는 것만 기억해.”
재휘는 급식표를 봤어도 맛있는 거 나온다는 느낌만 남기는 타입이다.
패션의 느낌만 봐서 그럴까?
“우리 차례다.”
1반이라서 금방 급식을 배정받는다.
다들 열심히 받아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싹싹 긁어먹어서 남기는 음식도 없었다.
“이번 주 수요일에 돈가스 나오던데. 푸하하. 맛있겠다. 푸하하.”
은우는 이번 주 급식을 싹 훑어서 제일 기대되는 것만 기억하는 타입이었다.
“아. 그래? 난 안 봐서.”
윤동은 그냥 주는 대로 먹는 타입이다.
굳이 급식표를 찾아보지 않는다.
어차피 다른 아이들이 알고 있었으니까.
승준이 씨익 웃었다.
“아, 그럼 이제 사커할 차례인가?”
제일 기대되는 순서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