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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13화 (438/500)

외전 13화 초등학교 (2)

정문으로 나오는 길에 배상현 씨가 앞에 꽃을 들고 서 있었다.

언제부터 여기 계셨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끝날 때를 맞춰서 온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언제 끝날지 알고 맞춰온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설마 여기서 계속 기다린 건 아니겠지?

오늘은 날이 좀 춥다. 손을 비비는 걸 보니 오래 기다린 것 같다.

차라리 카페에 들어가 있다가 나에게 톡을 보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어? 미술 선생님이다!”

시하도 배상현 씨를 발견했나 보다.

“선생님!”

시하가 손을 흔든다.

배상현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살며시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들어준다.

뭔가 미련 곰탱이 같은 사람이다.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는 게 뭔가. 괜히 춥고 말이다. 그래도 싫지는 않다.

“그. 입학 축하해. 시하야.”

“고맙습니다! 선생님 설마 저 기다렸어요? 이거 꽃 주려고?”

“어. 응. 근데 기다리지는 않았어. 금방 왔거든.”

“오!”

시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물론 나는 상태를 보고 아닌 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꽃 예뻐요.”

“그치?”

“이거 꽃잎 따다가 찍어서 색깔 만들 수 있어요?”

“어? 글, 글쎄. 아마도?”

그런 용도의 꽃다발이었던가?

아무래도 미술 시간에 뭔가 색을 만들거나 다양한 도구를 써서 생각의 방향성이 저리돼 버렸다.

뭐든 쓰이면 좋은 거지.

“그럼 나는 갈게.”

나는 배상현이 가려고 하는 걸 막았다.

“어? 같이 점심이라도 안 드시고요?”

“아니. 뭐. 이런 건 가족끼리 먹는 거잖아.”

“그래도 이렇게 와주셨는데 같이 먹어요. 시하도 괜찮지?”

시하가 꽃잎을 하나 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숟가락 하나 올리면 되는 건데. 뭐.”

그거 내가 자주 하는 말인데…….

가끔 보다 보면 내가 하는 말이 그대로 복사될 때가 있다.

같이 살면 영향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들을 때마다 흠칫거린다.

저럴 때마다 평소에 입조심을 해야 한다고 새삼 느낀다.

뭐 그렇게 실례되는 말을 한 건 아니지만.

“그, 그럼 실례 좀 할까?”

“네. 같이 점심 먹어요.”

배상현 씨와 집으로 향했다.

이럴 때 외식을 한다면 좋겠지만 삼촌이 한사코 안 된다고 했다. 추운데 어딜 나가냐면서 말이다.

뭐 이 정도면 괜찮구만.

“집에 오는 건 처음이죠?”

“그렇지.”

시하가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선생님. 우리 집에 형아랑 삼촌 있어요!”

“???”

시하가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자랑하고 있는데 배상현은 이걸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다.

“어. 그래. 엄청나구나?”

“미술쌤도 엄청난 거 알고 있네요!”

“어? 어, 그래.”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문을 열었다.

팡! 팡!

갑자기 눈앞에 폭죽이 터진다.

의외의 사람이 집 안에 있었다. 그것도 기타를 들고 말이다.

“콩그레이츄~ 레이션~ 콩그레츄~ 레이션~ 당신의 입학을 축하합니다! 뿌뿌! 뿌뿌!”

서수현의 서프라이즈였다.

그리고 배상현 씨와 눈을 마주쳤다.

“꺄악!”

서수현이 치던 기타를 멈추고 부리나케 달려가 부엌으로 숨어버렸다.

현관 앞에서 굳어진 우리.

오로지 시하만이 ‘우와!’ 하면서 좋아했다.

‘그 초면인 사람 앞에서 하는 건 부끄럽겠지. 응!’

나도 솔직히 서수현이 올 줄 몰라서 굉장히 당황한 상태였다.

“일단 들어오시죠.”

“어? 어, 그래.”

배상현이 멍한 표정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저기요? 평소에는 이렇지 않습니다. 오늘만 특별한 거라고요!

그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뭐라고 말하길 포기했다.

***

“푸하하!”

삼촌이 배꼽 잡고 웃고 있다.

들어보니까 서수현이 온 건 다 삼촌의 계획하에 있었다.

시하의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점심 준비를 했다.

요리 솜씨를 발휘하고 축하 노래도 준비했는데 배상현 씨는 계획의 변수였던 거지.

물론 서수현의 계획에는 변수였다. 삼촌은 배상현 씨가 올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짓궂은 장난을 치기 위해서.

이제 하다못해 서수현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삼촌이었다.

“삼촌! 뭐가 그렇게 웃겨? 나도 같이 웃자.”

“시하야. 넌 아무것도 모른다. 푸하하.”

“삼촌이야말로 아무것도 모르잖아.”

“삼촌은 다 알거든?”

“그럼 삼촌. 이거 꽃잎 떼서 무슨 색깔 나오는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다 안다며? 모르네!”

슬슬 또 시작되고 있다.

“이게? 그럼 내가 문제 낼게.”

“나는 다 몰라. 아는 것만 알아.”

“어릴 때는 분명 다 안다고 했는데…….”

“어휴. 삼촌. 무슨 10년 전 이야기를 하고 있어.”

“??? 너 8살이거든?”

10년 전이면 시하가 태어나지도 않았다.

삼촌이 황당하다는 듯 시하를 보았다.

흠. 요새 시하가 말로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말 좀 할 줄 안다는 거지.

“시혁아. 너 말하는 거랑 똑같잖아.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소리예요?”

“저 10년 전 이야기. 네가 말한 거잖아.”

“아니. 저한테는 10년 전 이야기해서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시하야. 응용 잘하네.”

“그걸 칭찬한다고? 하나도 응용 안 됐는데?”

“뭐든 말이 통하면 됐죠. 그 정도로 옛날이야기다! 뭐 그런 은유죠.”

“???”

원래 만인이라고 한자를 쓰면 만의 사람이라고 해석 안 하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라고 하지.

암튼 시하도 그런 거다.

“내 편 하나 없네.”

“삼촌이 저희 편이면 됐죠.”

“내 편은?”

“아, 그건 우선순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쯧쯧. 시하가 누구 닮았나 했더니만 시혁이랑 똑같네.”

시하도 우선순위를 정한다. 1순위 형아. 2순위 삼촌. 이렇게 말이다.

시하가 말했다.

“맞아! 나 형아 닮았어!”

“뭔데. 왜 자랑스러운 표정인데?”

“1위 형아. 2위 페페. 3위 삼촌.”

“내가 페페보다 못하다고?”

설마 페페보다 못할 줄이야. 아, 페페는 어쩔 수 없지.

원래 사람이 그렇다.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애정이 큰 법이다. 그리고 시하에게 많은 돈을 안겨주었지.

“이제 그만하고 밥 먹죠.”

여기서 한 번 끊어줘야 한다.

놔두면 투덕거림이 끝나지 않을 테니.

“수현아. 이거 네가 한 거야?”

“아, 네. 제가 시하 먹으라고 열심히 했어요. 어때요? 놀랐죠?”

“엄청 맛있네.”

“아직 안 먹었잖아요?”

“원래 요리라는 게 눈으로 먹고 코로도 먹고 마지막에 입으로 먹는 거잖아. 벌써 맛있다.”

“아. 뭐예요.”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걸 본 삼촌이 말했다.

“야! 그만하고 밥 먹자.”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서수현을 보고 살짝 웃었다.

“고마워. 나중에 설거지는 내가 할게.”

“앗. 오빠. 설거지도 제가 할게요.”

“에이. 손에 물 그만 묻히고 쉬어야지.”

“헤헤. 그럼 그럴게요.”

삼촌이 또 한 번 말했다.

“설… 거지 같네?”

어찌 되었든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시하의 입학은 참으로 떠들썩한 하루였다.

***

1학년 1반 담임.

오늘은 첫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과 입학식 때 봤지만 아직은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아이들은 한 사람만 기억하면 되지만 자신은 반에 있는 24명의 아이를 다 기억해야 한다.

심지어 입학식 때는 어머니들도 와 계셔서 한 분, 한 분 얼굴을 보느라 머릿속에 다 들어가지도 못했다.

다만 특이하게 대학생으로 보이는 형이 온 것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사실 누군지 알고 있다. 통역사 이시혁.

영화 일개미를 열심히 본 사람으로서 이시혁을 모를 수 없다. 그 정도로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예능이나 여타 프로그램을 안 나가서 그런지 아는 사람이 막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나 감독의 팬이라면 알 수밖에 없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심지어 일개미에 나온 시하도 있었다. 영화에서는 좀 더 어렸지만 말이다.

“후우.”

담임은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1학년은 사립이든 공립이든 힘들다. 더더욱 이번에는 그 강인 어린이집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있는 1반.

예전부터 강인 어린이집에 있는 애들은 남다르다는 말이 내려져 오고 있었다.

이번에 그 남다른 애들이 8명이나 있다.

분명 찢어질 줄 알았는데 프로그램이 잘못됐는지 한 반에 몰렸다.

그만큼 어떤 아이들이 있을지 긴장이 된다.

“후우.”

한 번 더 심호흡하고 미소를 장착한다.

언제나 아침은 밝은 얼굴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좋은 기운을 받는다.

미소는 분위기를 좌우한다.

드르륵.

“안녕하세요. 여러분.”

시끌시끌.

어느새 아이들이 친해졌는지 다들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자. 담임선생님이 왔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들 벌써 친해졌나 보네요. 그래도 전부 다는 모르죠? 그럼 자기소개를 한번 해볼게요. 서로 얼굴이랑 이름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물론 여기서 바로 못 외울 수도 있어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같이 놀다 보면 다 외우게 되어 있으니까요. 적어도 주변에 있는 친구들 이름은 알고 갑시다.”

너무 무리한 일은 시키지 않는다.

그래도 주변에 이런 애들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럼 선생님부터 소개할게요.”

먼저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예시가 필요하다.

이런 곳에서 한 번도 자기소개라는 걸 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저의 이름은 김희선이고요. 1반 담임선생님을 맡게 되었어요. 취미는 영화 감상이고 좋아하는 음식은 파스타랍니다. 앞으로 우리 1년간 재밌게 학교생활을 보내요!”

간단한 소개.

1번부터 소개가 시작됐다.

번호는 키 순서도 아니고 한글 순서도 아니었다.

생일 순서로 배치돼 있었다.

한글 순서가 이름을 찾기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선생님의 입장이다.

강인초에서는 아이들이 중심이다. 한글이 아니라 생일 순서로 한 건 이유가 있다.

이렇게 생일 순서로 해 놓으면 누가 다음에 생일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으니까.

며칠인지는 기억 못 해도 다음에는 이 친구의 선물을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앗. 강인 어린이집.’

종수 차례가 왔다.

“저는 공부를 좋아합니다. 벌써 컴퓨터 타자 연습도 엄청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나중에 전교 1등을 하고 싶습니다.”

굉장히 당당한 포부였다.

종수는 이번에 초등학교에서 자신이 열심히 한 성과를 받고 싶었다.

다음은 재휘.

“저, 저는 패션에 관심이 있어요. 취미도 패션을 보는 거고요. 꿈은 패션 디자이너예요.”

재휘는 친구들 앞에 서는 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그래도 할 말은 했다.

앞에 종수가 열심히 자신을 어필했으니 그에 대한 용기가 생긴 것이다.

“잘, 잘 부탁드려요.”

다음은 은우.

“푸하하! 나는 랩을 좋아하고 랩 하는 게 취미야. 나중에 내가 여기 다 씹어 먹을 거야!”

담임은 생각했다.

여기가 랩 배틀 하는 공간도 아닌데 씹어 먹기는 왜 다 씹어 먹는다는 거지?

역시 강인 어린이집 아이들. 발표하는 것도 남달랐다.

다른 아이들은 쭈뼛쭈뼛 대충 이름을 말하고 좋아하는 거 말하고 인사하는데 강인 어린이집 애들은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확실히 개성이 있었다.

“푸하하. 다들 리스펙하지?”

다음은 윤동.

“이름은 윤동이고. 춤 좋아하고 잘 추고. 끝.”

오히려 윤동은 짧게 끝났다.

하지만 뭔가 그래서인지 강렬했다.

어린애답지 않게 시니컬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은 연주.

“안녕.”

웅성웅성.

몇몇 아이들이 연주를 알아봤다.

그도 그럴 게 연주가 출연한 드라마가 꽤 있었다. 아역으로 말이다.

알아보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난 멋진 배우가 되는 게 꿈이야. 여러 작품도 많이 해보고 싶어.”

꿈을 말할 때 반짝이는 눈을 보니 역시 아이인가 싶었다.

다음은 승준.

“나는 사커가 제일 좋아! 여기 사커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 없어? 오! 시하야. 그래. 너라면 들 줄 알았어. 다른 사람 없어? 사커 좋아하는 사람!”

다들 머뭇거리더니 한두 명씩 들기 시작했다.

남자애들 대부분이 들었다.

“오! 대박! 많네? 다들 그럼 사커할 줄 알지? 나중에 밖에 나가서 한판 콜? 어! 콜!”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애들을 콜 시킨다.

“근데 사람이 모자라네. 괜찮아. 옆 반에 같이 사커로 붙자고 하면 돼. 내가 나중에 가서 물어볼게.”

그렇게까지 해서 사커를 한다고? 그것도 입학식 끝나고 난 첫날에? 그런 행동력이라고? 왜 이렇게 진심이야?

“나중에 다섯 반 다 사커로 붙으면 재밌겠다. 걱정 마. 나 엄청 잘하거든. 여기 옆에 시하도 잘해.”

담임은 헛웃음을 흘렸다.

저기 승준아? 사커 이야기 그만하고 자기소개 좀 해줄래?

“아. 맞다. 자기소개 해야지. 나는 사커를 잘해.”

아니. 이제 사커에서 좀 벗어나 줘!

그렇게 사커 이야기를 다 했는지 자리에 앉는 승준이었다.

다음은 하나.

“내 꿈은 아이돌이 되는 거야. 노래랑 피아노 좋아해. 막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부르고 싶어. 근데 아직 피아노를 잘 못 쳐서 노래는 못 부르지만 열심히 할 거야.”

담임은 아까 승준이를 봐서 그럴까?

하나가 참 참하게 보였다.

“그럼 내가 노래 들려줄까?”

갑자기? 하나도 정상이 아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노래 선곡이 너무 옛날 아니니?

아까 아이돌 되고 싶다고 안 했어?

“여기까지만 부를게. 헤헤.”

짝짝짝.

마치 예능에 나온 아이돌처럼 짧게 부르는 하나였다.

알아서 편집하는 솜씨가 대단했다.

마지막으로 이시하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우리 형아 엄청 대단하다? 진짜 멋있어! 부럽지?”

저기요? 자기소개가 왜 형아 소개가 된 건가요?

담임은 강인 어린이집 아이들의 개성에 눈이 흔들렸다.

1년 동안 잘해 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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