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2화 초등학교 (1)
강인 초등학교의 입학은 하나의 행사다.
아이들보다 부모님이 바쁘다는 말이다.
입학 설명회에서 설명을 들었지만 역시 직접 가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일 것이다.
이번에 반 배정도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사실 어제 반 배정 결과를 메일로 받긴 했다.
다만 시하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학교 게시판에 커다랗게 종이로 적혀 있다고 하니까. 기왕이면 직접 확인하고 들어가는 것도 시하에게 좋을 것 같았다.
미리 알려주는 것보다 이러는 게 시하에게는 더 두근대고 재밌지 않은가.
“형아. 빨리 가자. 학교 갈 시간이야.”
“응. 그래.”
입학식이 여유롭게 10시에 했으면 좋겠지만 아침 등교 시간 8시 50분까지로 맞추었다.
이렇게 정한 이유는 미리 부모님이 경험해 보라는 뜻이었다.
입학식은 늦어도 되지만 실제 학교에 가게 되면 늦으면 안 되니까.
“근데 시하야.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니야?”
“형아. 늦게 가는 것보다 낫지~”
“그건 그렇긴 한데.”
지금 시간이 7시 10분인데요?
아침이 아니라 새벽부터 일어나서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씻고 가방도 챙기고 했다.
나야 원래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준비하니까 상관없다만.
“지금 가면 준비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차로 가면 금방 도착할 테니 경비아저씨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아니야. 다들 있을 거야.”
너무 확신에 찬 시하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이리 일찍 가서 뭐 하라고?
“몇 반인지 봐야지.”
“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에는 안 붙여져 있을 건데? 일단 체육관에 들어가야 하니까.”
차근차근 설명을 듣고 안내를 받는다고 들었다.
교장 선생님도 나타나고.
“하아암~ 이 아침부터 대체 무슨 난리야.”
“삼촌. 나 오늘 초등학교 가.”
“그게 뭐가 대수라고.”
삼촌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배를 북북 긁었다.
“삼촌은 안 가?”
“내가 왜?”
“나 오늘 입학식인데? 나 오늘 초등학생인데?”
“초등학생이 뭐? 초등학생이 뭐길래?”
“삼촌 이제 나한테 조심해야 해.”
“???”
“나 초등학생이야.”
“???”
초등학생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 이상한 소리도 한다.
어찌 되었든 오늘은 시하랑 걸어서 초등학교를 가보기로 한다.
항상 차로 데려다주기는 할 건데 그래도 혹시나 걸어갈 일이 있을지 모르니 지리를 익히면 좋겠다.
아직 어린 1학년이다. 혹여나 있을 일을 방지하기 위해 열심히 데려다줘야지.
“이제 간다!”
“그러게.”
오래도 걸렸다. 이게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렇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빨리 먹는 게 아니라 피곤하다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
학교에 도착했는데 익숙한 사람이 보인다.
승준이랑 하나다.
“승준아~! 하나야~!”
“시하야!”
“시하야 안녕!”
서로 반가운지 손을 흔든다.
이렇게 된 거 같이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자리에 앉는데 서로 열심히 떠든다.
“우리 같은 반 됐으면 좋겠다.”
“응. 그러면 같이 사커도 하고 그럴 수 있는데.”
“오빠는 맨날 머릿속에 사커밖에 없어!”
승준이 엄청 흥분하며 말했다.
“너 운동장 못 봤어?! 사커 골대도 있다고!”
“어휴.”
“엄청 커.”
“그거 대학교에도 있던 거랑 똑같잖아.”
“아니야. 달라. 여기가 좀 더 반짝반짝해.”
“그건 그래.”
아무래도 승준은 사커 골대와 잔디 구장이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아. 빨리 뛰고 싶다.”
누가 보면 축구 선수인 줄 알겠다.
하나가 손가락으로 여기를 가리켰다.
“나는 여기 체육관이 마음에 드는데.”
“체육관에서 사커 하고 싶어?”
“아니! 체육관에서 사커를 왜 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기서 사커를 왜 떠올리는 거야?
“하나야. 여기서 무대 하기 좋네.”
“오빠! 봐봐. 시하가 딱 말하잖아.”
하나가 시하의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승준이 틀린 게 아쉬워 혀를 찬다.
“하나는 노래 좋아하니까 무대도 좋아해서 딱 알았지!”
“역시 시하야. 오빠는 맨날 나랑 같이 있는데 그것도 몰라?”
“승준이는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걸 거야.”
“정말?”
둘이 승준을 보는데.
“아하하. 당연히 다 알고 그랬지.”
승준이 땀을 삐질삐질 흘릴 것 같은 표정이다.
딱 봐도 몰랐던 게 분명했다.
이쯤 되면 시하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시하는 뭐 마음에 드는 거 있어?”
“나는 다 좋아. 하나도 있고 승준이도 있고. 형아도 있고. 체육관도 있고. 운동장도 있고. 건물도 예뻐.”
“한 가지만 고르자면?”
“형아랑 같이 있는 거?”
“아니. 그거 말고. 학교 말이야. 학교.”
너는 어릴 때부터 너무 형아를 좋아해!
어쩌면 시하도 남의 말을 할 처지가 못 되는 거 아닐까?
승준이 사커에서 못 벗어나는 것처럼 시하도 형아에서 생각이 못 벗어난다.
“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떠들다 보니까 어느새 입학식이 시작됐다.
유인물을 나눠주고 앞으로 차례대로 갈 것을 말해준다.
반 배정을 못 보신 분은 앞에 붙여져 있으니 보고 가면 된다고 말한다.
입학식이 간단히 진행된다.
어느새 교장 선생님 말씀까지 훌쩍 다가온다.
아무래도 교내 구경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서 빠르게 진행하는 것 같았다.
“우와! 우와!”
“저게 뭐야?”
“멋있다!”
교장 선생님 등장으로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손잡이 없는 전동휠을 자유자재로 타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단상에 선다.
“아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입니다. 지금 이렇게 타고 온 게 뭔지 알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모르는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그쵸?”
“네에!”
“이렇게 신기하고 새로운 게 세상에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신기하고 새로운 걸 만들거나 사용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새 나라의 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 여러분이 새로운 세대로서 새 나라를 만드는 겁니다.”
“???”
“말이 너무 어려웠죠? 빨리 손쉽게 배우고 새로운 놀이를 하는 어린이 여러분이 엄마, 아빠를 많이 이해해 주세요. 여러분은 똑똑하니까요.”
나는 오히려 어린이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에게 말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녀들은 한 시대의 더 새로운 사람이라고.
어리다고 해서 그 뜻을 무시하지 말라고. 오히려 어린이가 더 현명하고 똑똑할 때가 있다고.
마치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다른 부모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었다.
처음의 파격적인 등장도. 그와 다르게 정갈하게 정장을 입은 모습도.
새 시대의 포용도.
마치 강인 초등학교는 이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설명회 때 들었던 것과 다른 압축적인 표현인 것 같다.
저 사람이 이 초등학교의 교장인가.
“형아.”
시하가 내 소매를 잡아당긴다.
“응? 왜?”
“나 똑똑하대.”
“응.”
“형아 닮아서 그래.”
“푸흡.”
“형아는 더 똑똑해!”
여기서 그걸 주장한다고?!
아. 나도 똑똑한데 형아는 더 똑똑하다고.
우리 모두 똑똑하다는 말이었다.
그런 시하의 표현이 너무 재밌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는 앞으로 형아보다 더 똑똑해질 거야.”
아마도 앞으로 더 똑똑해져서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되겠지. 그렇게 나는 세대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새 시대의 바람을 따라가지 못해서 말이다.
“아니야.”
하지만 지금 시하는 언제까지고 엄청난 형아로 있길 바랄 것이다.
그 바람을 나는 들어주고 싶다.
“앗. 교장 선생님 말씀이 끝난다.”
교장 선생님이 말한다.
“사랑하는 어린이~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감사~ 감사~ 합니다~ 합니다~ 합니다~”
마이크가 정상적인데 일부러 하울링을 만드신다.
재밌으신 분이셨다.
“이제 반이 어딘지 볼까?”
“응!”
승준, 하나랑 같이 벽에 붙어 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사실 사립초등학교라 반이 5개밖에 되지 않았다.
한 반당 24명. 총원 120명.
이름도 금방 확인할 수 있고 체육관에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 물론 부모님을 포함하면 2~3배는 되긴 했지만.
보통 학부모 한 사람 오게 되어 있으니 240명이 여기에 있는 셈이다.
“형아. 형아. 승준이랑 하나랑 같은 반이야!”
“오! 그렇네!”
1학년 1반 오승준, 오하나. 이시하.
‘ㅇ’이라서 그런지 아주 나란히 있구나.
“아싸. 시하랑 같은 반이다!”
“하나도!”
옆에서 하나 어머니가 원래 같은 반으로 배정되어 있었다고 말해 주셨다.
쌍둥이라서 그런지 같은 반으로 배정할지 먼저 물어본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쌍둥이는 그런 연락도 받는구나 싶었다.
하긴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애들이 떨어지면 많이 불안해할 수 있으니까. 남매끼리 있으면 좋지.
의외로 초등학교에서 이런저런 신경을 많이 써주는 것 같다.
“헐! 나 이시하랑 같은 반이야!”
“종, 종수야. 나도. 나도. 같은 반인데?”
“음. 같은 반이네.”
“푸하하! 다 똑같네! 뭔데 이거. 푸하하!”
종수 패밀리도 1반으로 배정되었나 보다.
근데 연주는 어딨지?
“하나야. 또 같이 놀자.”
“응!”
하나한테 하는 말을 보니 연주 역시 1반으로 배정되어 있나 보다.
음. 이럴 수가 있나? 아니, 반도 적긴 하지만 어린이집 애들이 한 반에 다 몰린다고? 신기하네.
혹시 일부러 몰아넣은 거 아니야?
“형아. 형아.”
“응?”
“나는 3반이 좋은데.”
“아…….”
아직도 숫자 3을 좋아하는 시하였다.
아, 3은 못 참지!
***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이 인사를 나눴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이 여기저기 둘러본다.
음악실, 미술실, 과학실, 양호실, 급식실, 교무실, 교장실 등등.
한 번 둘러보고 다시 1반으로 돌아오고.
또 다른 곳으로 갔다가 다시 1반으로 돌아온다.
뭔가 리셋을 하는 느낌이다.
일부러 아이들이 길에 익숙해지게끔 가는 것 같다.
다른 어머니들의 생각도 똑같은 것 같다.
아, 근데 여기 나만 남자니까 좀 그렇네.
뭔가 좀 불편하다.
하지만 시하는 상관없다는 듯이 나랑 같이 있어서 기분 좋은 것 같았다.
뭐, 시하만 괜찮으면 됐지.
적어도 아버님은 한 분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뭐 일 가시고 그러면 못 오실 수도 있지.
시하 친아버지도 오늘 시간에 맞춰서 축하만 하러 온다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이렇게 둘러보기는 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사정상 아버지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이다.
홍길동도 아닌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는 상황이라니.
물론 시하가 아직 친아버지인 걸 모른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말 돌아가는 것도 좀 그래서 나도 이해했다.
사립이고 학생들도 적으니 어머니들의 입소문이 더 빨리 퍼지겠지.
그런 부분에서는 조심해야 하지 싶다.
그래도 1학년은 강인 어린이집 어머니들이 있어서 훨씬 다행인 것 같다.
교류하는 데 있어서 좀 편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니까 나야말로 시하가 어린이집 애들이랑 한 반이 된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한 명도 없었으면 친구 사귀는 것처럼 어머니들이랑 친해져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시하야. 너 3반이 안 되길 천만다행이야!’
나는 옆과 뒤에 있는 어머니들을 보았다.
그리고 승준 어머니께 말했다.
“저도 아는 사람 있어서 다행인 거 같아요.”
“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호호호.”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아는 사람 있으면 이래저래 말하기 편하니까.”
뭐, 부모님으로서도 아이들로서도 좋은 것 같긴 했다.
처음 초등학교 가는 거니까.
물론 놀다 보면 새로운 친구들도 사귈 것이다.
키즈 카페에서 모르는 아이들이 알아서 친해지는 걸 보면 걱정이 덜하기도 했고.
“그럼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선물 받아가세요.”
초등학교 입학식은 선물로 마무리됐다.
아이들이 참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형아. 나 초등학생이야.”
“응. 그래. 그거 오늘 아침에도 들었어.”
“응!”
“근데 초등학생이면 이제 혼자 초등학교로 갈 수 있겠다. 그치?”
“아니야. 아직 8살이라서 안 돼. 10살 돼야 해.”
혼자 초등학교 갈 수 있는 나이는 10살.
그거 대체 누구한테 배운 거니?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시하는 나이로 뭔가 단계를 정해둔 것 같았다.
더 웃긴 건 그게 유동성이 커서 자유자재로 바뀐다는 것이다.
“10살 되면 혼자 초등학교 가는 거다?”
“응!”
대답은 늘 잘하는 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