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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2화 (427/500)

외전 2화 짝사랑의 끝 (2)

서수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는 쌩쌩한 모양이다. 목소리가 한결 좋아진 것을 보니 안심이 된다.

아플 때 목소리랑 전혀 딴판이다.

힘없는 목소리보다는 언제나 기운찬 목소리가 더 좋다.

“다 나아서 다행이네.”

「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죽은 다 먹었지?”

「그건 이미 작살냈죠. 사준 지가 언젠데.」

“난 또 아껴 먹느라 남긴 줄 알았지.”

「거기까지 아껴먹으면 버려야 해요.」

“버리기 아까워서 다 먹었구나?”

「쓰읍. 뭔가 맞는 말인 거 같은데 이상하게 들리네요.」

나는 수현이의 말에 키득키득 웃었다.

그냥 괜히 웃음이 났다.

장난스러운 말이 너무 좋았다.

“다음에는 아깝지 않게 자주 먹여야겠는걸.”

「정말요? 저 한우 사주세요!」

“아무래도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저 사실 돼지를 더 좋아해요!」

“난 수입산이 좋던데.”

「이 오빠가 진짜!」

“푸흡. 먹고 싶은 거 사줄게. 언제 괜찮아?”

「어?」

스피커 너머로 서수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설마 내가 이런 제안을 할 줄 몰랐다는 듯.

분명 아플 때 챙겨주고 헤어질 때 말했는데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 걸까?

“왜? 시간 없어?”

「아뇨! 완전 있어요! 넘쳐요! 저 모든 날 다 되고 24시 운영 중이에요.」

“너 하는 일도 있는데 모든 날 다 된다는 건 좀.”

「저 고등학교 때 야자도 가끔 쨌고요. 대학 와서도 강의도 가끔 쨌어요.」

“자랑이다.”

「물론 후폭풍은 제가 다 감당했어요. 오빠. 제가 다 감당할 수 있어요.」

“너무 무거워…….”

겨우 밥 먹는데 그런 각오까지 필요한 건가?

“그럼 금요일 점심 어때?”

「아침부터 안 돼요?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고.」

“푸핫. 세끼 다 얻어먹으려고?”

「세끼 다 찐 감자만 먹어도 좋아요.」

“그건 서로 힘들어서 안 되겠고 점심에 보자. 저녁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부탁드립니다.」

“아하하.”

나는 서수현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알겠다고 전화를 끊은 후에 네임펜을 가지고 냉장고로 향했다.

붙여진 달력을 보며 금요일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밑에 ‘데이뚜’라고 적었다.

뭐, 데이트 맞겠지? 그래도 다들 볼 수 있는데 ‘점심 약속’이라고 적을 걸 그랬나?

근데 삼촌은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다. 그야 수현이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죽까지 사다 준 걸 알고 있으니까.

가만 보면 은근 밀어준 것 같기도 하다.

***

금요일 아침.

시하는 아침을 먹고 열심히 가방을 싸고 있다.

옷장도 열어서 제일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다.

이제는 형아가 없어도 척척 옷을 잘 입는다. 그리고 형아가 골라주는 옷을 입지는 않고 스스로 고른다.

그래도 옷 고르는 기준은 형아였다.

형아가 어떻게 패션을 매치하는지 자세히 봐왔으니까.

또 알리사가 예전부터 옷도 보내주고 상의와 바지로 매치해 주었기 때문에 시하의 패션센스가 나쁘지 않다.

강인 어린이집에서 옷을 제일 잘 입는 아이가 있다면 재휘겠지만 시하 역시 미적 감각이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다.

시혁은 시하가 자신을 따라하는 것도 알고 있기에 평소에도 옷에 신경을 좀 쓰는 편이다.

물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옷을 잘 사 입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서는 잘 차려입는다.

이렇게 입어야 한다고 시하에게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색의 매치라든지 무던한 옷을 입어도 가방으로 포인트를 준다든지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시하는 펭귄 가방을 포기하지 못했다.

“이거. 이거.”

흰색 바탕의 파란 메리체크 셔츠, 밝은 크롭 청바지.

셔츠를 입고 단추를 꼬물꼬물 잠근다.

바지를 입고 안에 셔츠를 넣는다.

팔을 좌우로 위로 들어서 셔츠를 좀 뺀다.

앞과 옆구리에 셔츠를 좀 더 빼서 일자를 만든다.

뒤에 있는 셔츠는 완전히 뺀다.

형아가 하는 걸 유심히 지켜보고 따라 하는 것이다.

시하 방에 거울도 있어서 확인할 수 있다.

셔츠는 살짝 오버핏이어서 뒤에 꼬랑지가 예쁘게 아래로 내려와 있다.

전에 형아가 해준다고 했는데 시하는 형아 동생이라 혼자 해보겠다고 연습한 성과였다.

“시하 형아 가타!”

물론 언제나 기준은 형아다.

옷도 입었으니 이제 머리를 만질 차례다. 드라이기를 꺼낸다.

물론 이미 머리를 감았으나 그런 건 시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형아를 따라 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시하야. 준비 다 했어?”

“아니! 아직!”

코드도 꼽지 않은 채 위이잉 하는 소리를 입으로 내며 머리를 만졌다.

볼륨을 주기 위에 손으로 열심히 쥐를 파먹고 있었지만 엉망이 될 뿐이었다.

“우웅. 왁스해야지!”

시하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물론 말만 왁스라고 말하고 실제로는 물을 앞머리에 묻혀서 깻잎머리를 만들었다.

“딱 붙어써! 스프레이로 고정해야 해!”

실제 스프레이는 저 위에 놓여 있었기에 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

시하가 도도도 방으로 달려가 천연 탈취제를 하늘 위로 뿌렸다.

치익! 치익!

안개가 떨어지는 곳에 머리를 갖다 대며 슝 하고 그 자리를 지나갔다.

“다 해따!”

옷은 완벽했지만 머리는 엉망이 되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시하는 형아를 향해 달려갔다.

“형아. 시하 다 꾸며써!”

“우와! 대단하네!”

“정말?!”

“응. 근데 형아가 손 좀 봐도 될까?”

“왜?”

“형아가 좀 더 하면 더 멋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하가 처음에 열심히 꾸몄으니까 나중에 형아 하는 거 또 보고 배우자. 알았지?”

“아라써!”

형아가 칭찬해 주었다.

시하는 그게 기뻤다.

삼촌이 그런 시하를 보더니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머리가 그게 뭐냐. 옷은 잘 입었는데 머리가 영 엉망이네.”

“아냐. 형아가 잘해따고 해써.”

삼촌은 따로 반박하지 않고 음소거 웃음을 뱉었다.

입을 크게 벌리며 시하를 손가락질 한다.

무릎을 꿇고 그렇게 포즈를 취하다가 결국 바닥에 쓰러져 배를 부여잡고 펄떡인다.

“삼춘!”

시하가 삼촌을 불렀지만 여전히 음소거 웃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하다못해 웃음소리를 없애며 놀리는 중이다.

정말 때려주고 싶은 행동이라서 시하가 삼촌 배 위로 몸을 깔았다.

“시하 머시써!”

“어억~ 어억~”

“잉잉!”

결국, 시하의 잉잉을 듣고서야 개운하다는 듯이 일어나는 삼촌이었다.

시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시하를 화장실로 데리고 왔다.

드라이기도 함께였다.

아침에 시하의 머리를 만지면서 볼륨을 줬기에 다시 제자리로 찾아가는 건 쉬웠다.

“왁스 바르고 싶어?”

“응!”

“오래 안 갈 텐데.”

“갠차나. 스프레이 하면 대!”

“푸흡. 그래. 잘 아네.”

하는 수 없이 시혁이 왁스를 꺼내는 척하면서.

“눈 감아. 시하야.”

“응!”

에센스를 꺼내서 손을 착착 만지며 머리에 발라주었다.

구레나룻도 열심히.

“형아. 스프레이는?”

“뿌릴 거야. 눈 감아.”

“응!”

시혁은 분무기를 가져와 하늘에 샤라라 뿌렸다.

시하도 물이 닿는 느낌이 왔을 것이다.

뭐 스프레이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느낌만 알면 되는 거니까.

어차피 어린이집 가서 낮잠도 자고 이리저리 뛰어놀기도 할 건데 머리에 왁스랑 스프레이 뿌리는 건 좀 그렇다.

아직 어리기도 하고.

“형아. 다 해써?”

“응. 다 했다. 어때?”

“머시써!”

사실 아침에 머리 말려줄 때와 스타일이 변한 건 없다.

시하가 머리를 망쳤을 때보다는 달라지긴 했지만.

“자. 이제 나가자.”

“응!”

시하가 화장실로 나와서 가방을 멨다.

신발도 잘 신고 일어섰다.

“근데 오늘 아주 멋지게 차려 입었네?”

“응! 형아랑 시하 데이뚜야!”

“으응?”

“시하가 달려 바써. 시하가 다 일거써.”

“아, 그건…….”

시혁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데이뚜는 시하랑 하는 게 아닌데?

어쩐지 오늘 열심히 옷도 잘 차려입고 머리도 만지고 하더라.

어린이집 갈 생각이 아니라 데이뚜를 할 생각이었나 보다.

“어. 그게. 지금은 안 가.”

“왜?”

“어린이집 가야지.”

“!!!”

“밤에 데이트할까?”

“응! 시하는 형아랑 밤새 노라.”

“응. 그래그래.”

“말 바꾸기 없음!”

“응. 응.”

시혁은 차마 오늘 시하랑 데이트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저 순진무구한 눈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찌 되었든 오늘 시하가 어린이집 가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만약 휴일에 데이트를 잡았으면 참으로 난처했을 것이다.

그래도 시하가 착각한 건 정말 귀여웠다.

“시하 오늘 안 잘 거야! 밤새 형아랑 노꺼야.”

“응.”

“시하 아라.”

“뭘?”

“오늘 불금이래.”

“이야. 또 누가 그런 단어를 가르쳐준 거래?”

“삼춘이!”

“사아~암~초오온!!!”

삼촌은 이미 방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쳤다.

어쩐지 쓸데없는 단어를 가르치고 있어!

시하가 말했다.

“불금에는 더 신나게 놀아야 한대!”

평소에도 놀지만 불금에는 더 신나게 놀아야 한다는 개념인가 보다.

어른들과 다르다.

시혁은 이상한 단어를 주입한 삼촌의 등짝 한 대를 속으로 예약했다.

불금 대신 불타는 등이 될 것이다.

“나중에 봐요. 삼촌!”

“어? 뭐라고? 나 오늘 집에 안 갈래~”

저 노래가 피신용 노래였던가?

시혁은 그런 의문을 가지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잘 갔다 와!”

삼촌이 배웅하는 목소리에.

“네. 다녀오겠습니다.”

“삼춘! 다녀오겠숩니다!”

평소와 같은 말을 건넸다.

아주 소중한 말을.

***

시하를 데려다주고 잠깐 일을 했다.

나갈 시간이 되자 잠시 준비를 한 다음에 집을 나섰다.

삼촌이 씨익 웃는 모습을 보니 왠지 때려주고 싶어서 등짝을 후려쳤다.

생각해 보니 등짝 한 대가 적립되어 있었지.

약속 장소에 나가자 서수현이 거울을 보며 괜히 머리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울을 넣는 모습을 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오래 기다렸어? 아직 약속 시간 10분 전인데.”

“별로 오래 안 기다렸는데요. 방금 왔어요.”

“응. 알고 있어.”

“???”

“난 저기 2층 카페에서 계속 보고 있었어.”

“진짜요?”

“아니. 뻥이야.”

“이 오빠가 진짜! 맨날 놀리고 있어.”

“보고 있었으면 얼른 달려왔겠지.”

“왜요?”

“빨리 놀리려고?”

서수현이 눈을 흘겨봤다.

또 저렇게 놀린다는 듯 말이다.

나는 웃음을 보이며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배고파?”

“막 그렇게 고프지는 않아요.”

“그럼 스테이크 썰러 가야겠네. 차로 가자. 근처에 주차해 놨어.”

“???”

“왜?”

“설마 적게 들어간다고 양 적은데 가는 건 아니죠?”

“아닌데. 예쁘게 차려입어서 삼겹살 구우러 가지 못할 것 같아서.”

서수현이 살며시 얼굴을 붉히며 백 잡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제 뭐 입을지 한두 시간쯤 고민했어요.”

“넌 그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냐?”

“티 많이 났어요?”

“티 많이 난 게 아니라 대놓고 말하지 않았어?”

“그건 모른 척해 주시고요.”

“푸핫.”

“요새 내가 뭔 말만 하면 그렇게 웃더라.”

“그러게. 그냥 너무 웃기다.”

함께 밥을 먹었다.

사실 스테이크는 진짜 못하지 않는 이상 다 맛있다. 제값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감자퓌레가 맛있는 집을 골랐다.

어쩌면 스테이크보다 감자퓌레가 더 맛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포인트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한 뒤에 드라이브나 하자고 했다.

구두를 신은 서수현에게 뷰 좋은 곳에 산책하자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잠깐 차를 세워서 조금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너무 앉아만 있으면 허리 아프니까 말이다.

“우와. 너무 좋다.”

“뷰 맛집이래.”

“정말 오늘 맛집만 가네요?”

“괜찮지?”

“네. 엄청.”

잠시 걷고 앉았다가 다시 차에 탔다.

저녁은 못 먹게 되었다. 오늘 시하와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서수현이 옆에서 깔깔 웃는다.

나도 시하 이야기를 하면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데이트 착각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오늘 저녁 먹고 계속 놀아주기로 했다고.

“아. 시하 너무 귀여워요. 그럼 저도 가도 돼요?”

“어?”

“저녁 같이 먹고 시하랑 놀다가 집 가면 되죠.”

“그래도 돼?”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아! 옷은 좀 갈아입어야겠다. 집으로 출발!”

“근데 나랑 놀기로 해서 다음에 와.”

“치잇.”

“치잇은 무슨 치잇이야.”

“아깝다.”

“아깝기는.”

나는 서수현의 집으로 출발했다.

어찌 되었건 시간은 훌쩍 지난 것 같았다.

아쉽지 않으면 거짓말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아깝긴 하네.”

“그쵸?”

서수현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빨간불이 들어오며 차가 멈췄다.

“더 아깝기 전에 말하는 건데.”

“저 그럼 가요?”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귈래? 라고 말하려는 순간.

“저도 좋아요. 우리 사겨요!”

“푸핫!”

“왜, 왜 웃어요?”

“좋아서. 우리 사귀자.”

“말 바꾸기 없음!”

“푸핫!”

오늘 시하에게 들었던 말이랑 똑같아서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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