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화 짝사랑의 끝
가족사진을 찍고 며칠 되지 않은 일이다.
도환이 형은 신혼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대체 왜 내게 보내 주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자랑하고 싶은 것인가?
그럴 거면 개인 톡이 아니라 인별에 올리면 될 텐데 말이다.
그렇게 말하니 이미 인별에 올렸단다.
그런데 왜 내게 보내냐고 물으니 어차피 인별 잘 안 들어가니까 굳이 꼭 보낸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이상하잖아.
-시혁 : 좋은 곳에서 즐겁게 노는 건 알았으니까 그만 보내. 파일 삭제하기 귀찮아
-문도 : 야! 그걸 삭제한다고? 너무하네!
-시혁 : 인별 자주 들어가서 답글 달면 되잖아
-문도 : 야, 너도 빨리 연애해라. 너무 좋다
-시혁 : 형은 결혼이잖아?
-문도 : 결혼도 좋아ㅎㅎ
-시혁 : 신혼 초반에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던데?
-문도 : 으이구. 네가 뭘 알겠냐. 막! 어! 마음 쓰이는 사람 만나면 어?! 퐁당 빠지는 거야.
-시혁 : 네. 콩깍지 잘 들었구요
-문도 : ㅉㅉ 아직 뭘 알아야 쓰지
-시혁 : 응. 아니야~
-문도 : 내일 돌아가거든. 그때 잠시 밥이나 먹을까?
-시혁 : 아니~ 쉬어~
-문도 : 야! 나 만나기 싫지? 솔직히 말해!
-시혁 : 응!
-시혁 : (해맑게 웃는 이모티콘)
-문도 : ;;;
-시혁 : 농담ㅋㅋㅋ
신혼여행 막바지이기는 한데 이렇게 나한테 톡을 열심히 해도 되나?
신부님에게 집중해야지.
뭐 잠시 쉬는 동안 잠깐 하는 거겠지만.
그런데 둘이 참 좋아 보인다. 어떻게 보면 나랑 시하가 이어준 인연이니까 왠지 또 묘하다.
인연이라는 건 알 수 없어서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물론 잡을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문도환이 보내준 파일들을 통째로 삭제했다.
이런 건 생각날 때 삭제해 줘야 용량을 아낄 수 있다.
웅-웅-
폰에 전화가 왔다.
[서수현]
“여보세요?”
“…오빠.”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굉장히 힘없는 목소리였다.
설마 어디 다친 걸까? 사고라도 당했나? 아니지. 사고를 당했으면 본인이 전화할 리가 없다.
“나 많이 아픈데요. 혹시 약 좀 사다 줄 수 있어요? 집에 약이 하나도 없어서.”
“어, 그래. 감기야?”
“몸살인 거 같아요.”
“많이 심각해?”
“약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나는 통화를 종료하고 지갑과 키를 챙겨서 나갔다.
아무래도 그냥 약 먹고 나을 몸살은 아닌 것 같은데.
목소리만 듣고 판단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침인데 밥은 먹었나?
그런 생각이 들자 문을 나서다 말고 부엌으로 가서 바나나를 들었다.
입맛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대로 믹서기에 갈아서 텀블러에 넣었다.
빈속에 약을 먹을 수 없을 테니까.
“삼촌.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어. 그래. 수현이한테 빨리 나으라고 전하고.”
아무래도 삼촌이 통화를 들었나 보다.
서둘러 집을 나서서 차에 탔다.
서수현의 집은 전에 차로 데려다준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자취하고 있는 애가 상비약은 미리미리 채워둘 것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런 생각을 하며 도착해서 문을 두드렸다.
“오빠 왔어요?”
머리도 엉망이고 힘도 없어 보인다.
“야. 많이 안 좋아 보이잖아.”
“약 먹으면 괜찮은데. 아, 근데 머리라도 감을걸.”
“이렇게 아픈데 뭔 머리를 감아.”
이마에 손을 대니 불덩이다.
얼굴이 빨갛네. 열이 많은데?
“안 되겠다. 병원에 가자.”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병원 가서 어? 수액 좀 맞고. 그래야 몸이 훨씬 괜찮아질 거야. 아프더라도 좀 상태 괜찮게 아파야지.”
“뭐래요.”
“빨리 나와.”
“머리 엉망인데. 아씨.”
“만나자마자 머리만 신경 쓰고. 어서 와.”
서수현이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래도 입은 옷이 추리닝이라 밖에 나와도 괜찮겠지? 아마? 나한테 이런 모습 보여주는 거 좀 쪽팔린가? 고개를 못 드네.
“밥 안 먹었지? 자. 이거 마셔.”
“뭐예요?”
“바나나 간 거. 빈속이잖아.”
“아.”
내가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서수현이 움찔했다.
“제가 벨트 맬 수 있는데요?”
“푸흡.”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벨트 매주려고 한 게 아니라 뒷좌석에 놓은 모자를 집으려고 했을 뿐이다.
나는 모자를 손으로 집고 서수현의 머리에 푹 씌워 주었다.
“이러면 덜 쪽팔리지.”
“아니요. 빨리 출발해 줘요. 지금 쪽팔리니까.”
아무래도 착각한 걸 쪽팔려 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벨트를 매야 출발하지. 아프니까 손이 많이 가네.”
서수현에게 벨트를 매줬다.
얼굴이 빨간 건 감기 때문인 걸까?
요즘 뭘 그렇게 무리해서 몸살이 걸렸나 모르겠다.
웃을 때도 힘없이 웃는 모습을 보니 괜히 짠했다.
“간다.”
“네.”
병원에 가서 진통제도 맞고 수액도 맞았다.
다 맞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면 될 것 같다.
수현이가 모자 쓴 채 누워서 자고 있는데 땀이 나는 것 같아서 벗겼다.
생각해 보니 감기인데 머리에 열이 있으니까 벗겨야 할 것 같았다.
“모자.”
“아. 미안. 깼어? 아무도 너 안 봐. 벗어둬. 열이 빠져야지.”
“네.”
그러면서 스르르 눈을 감는데 다시 잔다.
나는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면서 정리를 해줬다.
몸살이라고 하니 걱정이 된다.
쉬면 나을 것을 아는데도 걱정이 되고 마음이 쓰인다.
순간 오늘 도환이 형이랑 톡을 한 게 생각났다.
-문도 : 으이구. 네가 뭘 알겠냐. 막! 어! 마음 쓰이는 사람 만나면 어?! 퐁당 빠지는 거야.
피식 웃음이 났다.
혹시 이게 퐁당 빠지는 걸까?
수현이를 보면 괜히 웃음이 나거나 반말할 때 귀엽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다 왜 반말해? 하면 슬며시 꼬리를 내리는 점도 귀여웠다.
어? 뭐지? 나 혹시 수현이 좋아하나?
이렇게 아픈 모습을 보고 마음이 쓰이는 것을 보니 좋아하나 보다.
사실 수현이는 너무 오래 보기도 했고 친구처럼 잘 지내기도 해서 잘 몰랐다.
그냥 선후배로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익숙해져서 이게 좋아하는 감정인지도 몰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다시 한번 수현이를 보았다.
많이 아파 보이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계속 아프면 내 마음이 너무 안 좋을 것 같아.
이런 감정이 생각보다 큰 걸 보니 정말로 나는…….
***
서수현은 눈을 떴다.
시혁이 있는 걸 보고 괜히 부끄러워졌다.
아, 머리 안 감았는데.
왜 이렇게 머리 안 감은 게 계속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다. 땀도 많이 흘렸다. 몸에 땀 냄새날까 싶어서 걱정도 됐다.
아까는 힘없어서 걱정이 머리까지 계속 올라오지 않았지만 수액을 맞고 나니 몸이 좀 버틸 만해서 이런 생각에 휩싸였다.
힐끗.
시혁은 폰으로 톡을 하는지 한참을 두드리고 있다.
이렇게 선뜻 와줘서 고맙기도 하고 차 탈 때 괜히 설레발 쳐서 쪽팔리기도 했다.
아니, 벨트 매주는 줄 알았단 말이야!
막! 어! 기대해도 되잖아! 시혁이 오빠는 좀 잘 챙겨주는 스타일이니까. 어?!
누구에게 변명하는지 모르겠다.
혼자 있다면 이불을 뻥뻥 차며 몸부림칠 텐데 여기 병원이기도 하고 시혁이 옆에 있기도 해서 상상으로 허공에 주먹질을 몇 번 했다.
“어? 깼어?”
“네.”
“좀 괜찮아?”
“아까보다는 괜찮은데 아직 힘들어요.”
“그럴 거야. 이거 수액 맞았다고 단번에 낫는 건 아니니까. 거의 다 맞았고 시간도 다 되어가네. 간호사님에게 말해서 집에 가자.”
“네.”
간호사가 와서 수액을 확인하더니 바늘을 빼준다.
시혁이 이미 약을 타와서 바로 차로 가면 됐다.
푸욱.
시혁이 모자를 씌워 준다.
“머리 신경 쓰이잖아.”
오빠한테 이상하게 보일까 봐 신경 쓰는 건데요. 바보.
그래도 괜히 이렇게 챙겨주니까 기분이 좋다.
“여기 신발도 있어.”
“네.”
“앉아 있어.”
“안 그래도 되는데…….”
시혁이 신발을 신겨주었다.
그게 괜히 설레기도 하면서 혹시 신발에 발 냄새나는 거 아니야?! 하면서 걱정도 됐다.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겠다.
“부축해 줄까?”
“아니요!”
“왜?”
“그, 그. 땀 냄새날까 봐. 나 냄새나요?”
“푸흡. 왜? 머리도 안 감아서?”
“네.”
머리 안 감은 이야기는 대체 왜 해서!
아, 쪽팔려.
“괜찮아. 좋은 냄새밖에 안 나.”
“거짓말하지 마요. 나는 뭐 사람 아닌가.”
“아닌가 봐.”
“헐?”
능청스러운 시혁의 말에 괜히 두근거렸다.
살며시 두 손을 잡아주는데.
“발에 힘 들어가?”
“네.”
“다행이네. 막 깨어나서 못 일어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그러면서 한 손만 놓고 차로 끌고 갔다.
손잡고 있다.
뭐지? 이거 뭐지? 이렇게 챙겨준다고? 이 손 왜 안 놓는 거지? 뭐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몸이 힘들어서 그런지 그냥 이것도 배려라고 결론을 내렸다.
“가자.”
“네.”
차에 탔다.
아침에처럼 벨트도 매주었다. 괜히 착각한 게 떠오른다. 이거 놀리는 건가? 표정을 보니 시혁은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것 같다.
아무래도 아침 일을 기억해서 해주는 게 틀림없다. 아, 쪽팔려.
오늘 왜 이렇게 쪽팔린 거야. 빨리 집에 가서 누워서 다시 잠들고 싶다.
그래. 잊고 자는 거야.
“어? 근데 여기 집 아닌데요.”
“아. 집에서 뭐 요리하고 그럴 힘 없잖아. 죽 사둬야지.”
“아…….”
“약도 먹어야 하고. 그냥 있는 반찬 이것저것 꺼내는 것보다 나중에 식어도 전자레인지 돌리는 게 편할 거야.”
“고마워요.”
“맛별로 살까?”
“비싸잖아요. 그리고 다 못 먹어요.”
“그렇지? 배는 안 고파?”
“고파요.”
“그럴 줄 알았어. 아까 내가 준 것밖에 안 먹었으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시혁이 나가며 죽을 사 왔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가서 죽 먹고 약 먹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좀 자.”
“네. 고마워요.”
“응. 그럼 나는 갈게.”
“갈 거예요?”
“어. 왜? 나, 가지 마?”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럼 좀 있을게. 어차피 바로 누울 수도 없을 거 아니야.”
“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서수현은 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뭐 어쩌라고! 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횡설수설하게 된다. 이게 다 아픈 것 때문이야.
“요새 많이 힘들어?”
“그건 아니에요. 그냥 좀 바쁘고 그래서. 이래저래 준비할 것도 많고 너튜브도 찍어야 하고 그래서.”
“다 하려다가 몸살 났네.”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몸에 면역력이 떨어져서 아픈 거지. 뭐. 좀 쉬엄쉬엄해서 해.”
“카페 차려서 대박 날 거예요.”
“그래. 대박도 내고.”
그렇게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벌써 약 기운이 도는지 좀 더 괜찮아진 느낌이다.
아니, 수액의 힘인가.
그냥 약국에서 약을 먹었으면 좀 더 힘들게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시혁이 오빠가 이렇게 챙겨주니까 아픈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웃는 거 보니까 다 나았네.”
“아, 아파.”
“큰일이네. 대학병원으로 갈까?”
“뭔 대학병원이에요.”
“수술해야 할지도.”
“과장된 엄살 안 부릴게요.”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30분은 훌쩍 지나있다.
“오빠. 이제 가요. 저 잘래요.”
“그래. 쉬어. 내일이면 쌩쌩해질 거야.”
“네. 고마워요.”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는 거야. 그만 말해.”
“네.”
“아. 맞다.”
“???”
시혁이 일어나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오늘처럼.”
끄덕끄덕.
시혁이 뭔가를 망설이더니 한마디를 더했다.
“무슨 일 없어도 연락하고.”
“!!!”
“다 나으면 같이 놀러 가자.”
“?!?!?!”
“나, 갈게.”
갑작스러운 말에 서수현은 멍하니 시혁이 방을 나서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차마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잘 생각이었는데.
남긴 말이 머리를 헤집어서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