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화
투데이쇼가 방영되고 ‘일개미’는 또 한 번 화제로 날아올랐다.
미국에서 일개미가 10월에 개봉돼 아직 화제가 식지 않았다는 사실 덕분에 재점화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감독과 배우를 잘 알았다.
물론 감독의 재치있는 입담이 더 새롭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한 주목도를 끌어버린 건 김석현 배우의 예상대로 통역사였다.
오로지 보조적인 역할을 하려는 그의 프로페셔널함.
단호박 같은 말인데 가끔 팬더 같은 멍한 표정도 보여주니 그 갭을 좋아했다.
얼굴도 준수하고 통역도 잘해서 더 화제가 된 부분도 있었다.
이런 요소들이 포텐셜이 있었는데 정확히 주목도가 높아진 것은 투데이쇼가 방송하고 난 다음 날이었다.
너튜브에서 투데이쇼를 잘라서 영상이 올라왔다.
통역사 시혁 리를 초점으로 한 영상.
하루 만에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 동영상에 올랐다.
문제는 이런 영상이 퍼지면서 2차, 3차로 따라서 올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는 거다.
조회수가 보장되니 안 올릴 이유가 없다.
한국 너튜버 역시 발 빠르게 캐치해서 영상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칸영화제에서부터 통역사를 지켜보던 기자가 기사를 풀었고 그걸 정리한 영상도 올라왔다.
[요즘 화제인 통역사 시혁 리. 그는 누구인가?]
너튜버가 인사를 했다.
오늘 소개할 영상은 시혁 리 통역사라고.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시혁 통역사는 영화를 찍을 때부터 감독님과 만났다고 하는데요. 여기 투데이쇼에 나온 시하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개미 영화에도 나오는데요. 엄청 귀엽죠? 시하가 이시혁 통역사의 동생입니다.”
시하가 주목되면서 이시혁 통역사가 한 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통역뿐만 아니라 번역가로서 참가한 것.
그리고 그 번역에 관한 외국인들의 반응들.
통역에 관한 반응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화제가 되고 있는지였다.
“이시혁 통역사는 통번역대학원을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일을 이렇게 엄청 잘하고 있더라고요. 그 점이 궁금해서 제가 전문통역사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유명한 통역 대학원을 다녔고 이런 경력이 있다는 프로필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통역사분이 듣기에는 이시혁 통역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요?”
“솔직히 엄청나죠. 순간순간 말을 바꿔서 좋은 표현을 써야 하는데 순발력도 대단하고 숙어라던가 원어민이 쓸 것 같은 표현을 굉장히 잘 쓰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번역한 것을 저도 봤는데 굉장히 훌륭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언어적인 능력은 어디에 내놔도 나무랄 데 없는 분인 것 같아요.”
“와! 그래요? 근데 통역을 잘하면 번역도 잘하지 않아요?”
“어. 사실 이런 부분은 구어체랑 문어체가 다르잖아요.”
“그렇죠.”
“그러니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은 능력이 비슷하면서도 별개일 수 있는데 이분은 둘 다 잘하니 정말 대단한 겁니다.”
“와. 그렇군요.”
너튜버가 몰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문통역사가 살며시 웃는다.
“그럼 통역사님.”
“네.”
“통역과 번역을 잘하면서 잘생긴 사람은 얼마나 있습니까?”
“쓰읍. 저 정도 외모의 통역사는 흔치 않죠. 키도 크고 핏도 좋고. 어리고. 하아.”
댓글들이 웃음을 보냈다.
-전문통역사 현타ㅋㅋㅋㅋ
-난 저 나이 때 뭐 했나???
-아니 잘생긴 거만 따지면 상위 퍼센트 되잖... 하아... 인생...
-왜 다 가졌누...
-시하도 가졌네... 부럽...
-시하 엄청 귀엽던데 ㅎㅎㅎ
-투데이쇼 봤는데 동문서답 개웃겨ㅋㅋㅋ
-아님! 정확하게 대답한 거임!ㅋㅋㅋ
너튜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방송이 끝나지 않았다.
엄청난 게 하나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기사로 났지만 사람들이 그런 장문의 기사는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
영상만 한 게 없기도 했고.
“여러분. 아주 뒤집히는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통역사님도 보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이미 지금도 놀랐는데 여기서 더요?”
“네.”
너튜버가 자료를 벅벅 긁고 아는 사람을 통해 제보도 받은 걸 꺼내 들었다.
그건 이시혁의 경력이었다.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하지만 확실히 유명인사들과 일한 경력.
1. 번역가 이시혁이 한 KI출판 번역 서적들.
2. 하비니스 섬유 기업 통역(인도와 체결에 한 건).
3. 독일 자동차 회사 멜츠와 통역.
4. 미국 서브스크립션 쇼핑몰 스티브 백과 파랑몰 의류 납품 체결.
5. 가람 반도체 통역.
6. 베트남 살롱 제품 유통 체결.
7. 에스텀 게임즈에서 경트리오 회사의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
8. 한공 우주 산업 체결류를 VUMAX와 체결 및 통역.
9. 경트리오 회사 게임을 해외 서적 출간.
10. ‘일개미’의 번역가이자 통역사.
통역사가 하나하나 새로운 정보를 들으며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댓글창 상태도 너튜버 말처럼 뒤집혔다.
“어때요? 대단하죠?”
“아니. 이건 무슨. 통역사 역할만 한 게 아닌데? 이게 다 한 사람이 한 거예요? 아니. 할 줄 아는 언어가 몇 개야?”
“보통 통역사는 이렇게 언어를 많이 할 줄 아나요?”
“보통은 아니죠. 근데 사실 한 4개 이상은 할 줄 아는 통역사도 많아요. 선택과 집중하는 게 좋긴 하지만.”
“우와. 그렇군요.”
“근데 이건 와. 엄청 경력 있는 통역사가 아니면 좀 쉽지 않은 언어 개수이기는 하네요. 그냥 일상용어가 아니라 전문적인 기술들이 들어가 있으니까.”
“오호. 경력 있는?”
“네. 한 20년 이상 공부한 통역사 정도? 그것도 엄청 열심히.”
“그렇군요.”
“이 나이에 진짜 말도 안 되는 능력이네요. 솔직히 천재가 있다면 이분인 것 같아요. 여러분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저런 통역사는 아예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통역사를 기준으로 잡으면 안 돼요.”
“!!!”
너튜버가 한 건 잡았다는 듯이 웃음을 보였다.
“여러분 들으셨죠? 다시없을 ‘천재 통역사’가 한국을 알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화제가 될 게 분명하네요. 딱 보세요. 제가 정리한 거 그대로 다르게 섞어서 다들 영상 올리기 시작할 테니까. 크으. 국위선양. 고동수 감독님도 이시혁 통역사님도 자랑스럽습니다.”
마지막에 국뽕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켜 주고 영상을 마친 너튜버였다.
그리고 이 영상이 100만을 찍으면서 재생산되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
감독님과 미국 일정을 한동안 돌았다.
미국에서는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는데 거기에 출연해서 통역했다.
그 와중에 감독님과 스케줄을 가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세트로 붙어 다니니까 모를 수가 없었고 투데이쇼 때문에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인기가 생겼다.
썩 달갑지는 않았다. 연예인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인데 이런 인지도를 가진다는 게.
뭐 어차피 이것도 시들시들해지면 못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근데 문제는 한국이다.
너튜브를 슬쩍 봤는데 역시 생산과 소비가 되는 모습이었다.
아. 망했다. 한국 들어가기 싫다. 내 경력도 어느새 까발려져 있어서 또 화제가 되었다.
기사로도 떴다.
시하랑 세트로 말이다.
시하 역시 귀엽다고 화제가 참 많이 되었는데 형이 바로 통역사인 나니까 더더욱 화제가 된 것 같다.
차라리 통역을 못했으면 시하를 통한 인맥으로 꽂았네 뭐네 할 텐데 너무 잘해버리니 더더욱 화제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인별에 올린 것들은 회사 사람이나 문의 DM을 받을 용도로 올렸는데 그게 화제의 장작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솔직히 DM이 엄청 쌓여 있는데 열어보기 무섭다.
일하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DM을 보냈다는 건 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니까.
아이돌도 아니고 너튜버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별 셀럽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아서 DM을 많이 보내는지.
이상한 거 있을까 봐 더더욱 못 열겠다.
“이야. 오늘도 수고했어. 진짜 고생이 많았다.”
고동수 감독이 나와 어깨동무를 하며 걸었다.
“고생은요. 감독님이랑 배우님들이 더 많이 하셨죠.”
“에이. 인터뷰 단체로 잡히면 계속 배우들 통역해 줘야 하는 게 넌데. 생각해봐. 나는 입이 쉴 시간이 있잖아. 근데 너는?”
“하하하.”
이제는 배우들도 대충 어떤 말을 할지 예상이 간다.
너무 많은 인터뷰와 라디오에 나갔다.
그래서인지 대충 무슨 생각하는지가 다 보였다.
예측이 안 되는 점이 있다면 농담을 할 때였다.
함께 웃으면서도 이걸 어떻게 전할지를 동시에 고민하게 된다.
웃기는데 많이 웃을 수 없는 게 안 좋은 것 같다.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기쁨보다는 괜히 어깨에 기대감을 충족시켜줘야 하는 부담감이 생기는 것 같다.
막 엄청나게 부담되는 건 아닌데 작은 돌멩이 하나 올려져 있어서 신경 쓰이는 정도?
“좋겠다. 너 유명해져서.”
“감독님이 더 유명하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근데 어떡하냐. 이제 아카데미상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기자들이 너한테도 달려들 텐데.”
“아카데미상을 이미 마음속으로 받으셨네.”
“하하하. 사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받으면 좋지. 안 받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네요. 저는 시간이 있다면 다시 돌아가서 통역사 안 한다고 하고 싶은데.”
“아! 왜! 앞으로 받을 상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요.”
누가 이렇게 상을 많이 만들었는지 때려주고 싶다.
적당히 만들어라. 제발.
“오늘 수고했어. 내일 또 보자.”
“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숙소로 들어갔다.
시하가 벌떡 일어나서 도도도 달려온다.
“형아!”
“응! 시하야!”
내 품에 포옥 안긴다.
라디오 할 때 데려가고 싶지만 계속 이런 스케줄에는 데려갈 수 없었다.
몇 번 데려가긴 했지만 말이다.
영화 홍보하는 일인데 시하가 계속 이 일을 돕는다면 흥미도 떨어지고 정말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매체에 너무 노출되는 것도 꺼려진다.
내 어깨에 작은 돌덩이가 앉은 것처럼 시하의 어깨에도 작은 돌덩이가 앉을 수 있으니까.
우리 어른에게는 작지만 아이의 세상에서는 그게 굉장히 큰 바위같이 느껴질 수도 있는 법이다.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니까.
그런 점이 걱정되는 것이다.
물론 어린아이를 키우는 연예인 아빠가 나오는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연예인도 아니고, 연예인 가족도 아니고, 일반인이다.
이 경계선에 있는 것이 좋다.
넘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지도 모른다.
“오늘 삼촌이랑 잘 있었어?”
“응! 삼춘이랑 잘 놀아써.”
“뭐 하고 놀았는데?”
“숨바꼭질!”
“푸흡.”
상상된다.
삼촌이 또 숨바꼭질이냐! 하는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암! 숨바꼭질은 매일 해도 재밌지.
“형아. 내일은 모해?”
“내일은 인터뷰가 또 잡혀있어. 어디 잡지사라고 했는데.”
“구럼 시하도 갈래.”
“그래. 시하도 가자.”
“근데 여기 얼마나 이써?”
“으음. 얼마 안 있을걸? 이제 진짜 조금 남았거든.”
오스카 시상식만 가면 이제 끝이다.
다시 한국으로 가야지.
그다음 또 상 받으러 갈 때만 깔짝깔짝 따라가지 싶다.
“시하 이제 영어 잘해.”
“응? 정말?”
“응. 시하 오늘 처음 본 아찌랑 이야기해써.”
“우와. 대단해!”
“시하가 헤이! 눈누난나! 해써!”
“응. 아저씨가 알아들었어?”
“시하가 춤추니까 아찌도 알아드러써. 춤쳐써.”
“그거참. 고생이 많았겠네.”
아저씨가 말이다.
그걸 또 받아준 아저씨에게 감사하자.
“군데 삼춘이 눈누난나 받아졌다고 시하한테 자꾸 쏠까라고 물어바.”
“엥? 삼초온!!”
삼촌이 내 눈치를 보다가 냅다 튀었다.
나는 달려가 등짝을 때렸다.
쓸데없이 왜 자꾸 쏘려고 하는 거야. 어? 뭐가 수상해? 어?! 뭐가 그렇게 수상하냐고!
“어이구 진짜.”
“아 왜! 혹시 특수공작원일 수도 있는 거지.”
“그건 삼촌이고요.”
“나 아니야.”
“진짜 시하한테 이상한 거 주입하지 마요. 의심도 병이에요. 의심병. 의심병.”
“어허, 직업병이라고 해줄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삼촌이 등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근데 진짜 수상 놈이 있어서 그래.”
“네?”
삼촌의 얼굴은 진지했다.
폰을 꺼내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에는 내가 본 적 있는 사람이 찍혀 있었다.
삼촌이 말했다.
“난 말이야. 세 번 만나는 건 운명이 아니라 계획이라고 보는 사람이야.”
“시하랑 마주친 거예요?”
“아니. 주변만 맴돌더라.”
“으음.”
나는 다시 폰을 보았다.
거기에는 프랑스 미술관에서 만난 수염 난 아저씨가 찍혀 있었다.
그것도 이곳 미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