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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화 (413/500)

413화

삼촌의 선물도 도착했는데 현재 베란다에 커다란 상자로 존재하고 있다.

나름 종이 상자로 위장한 거라고 하는데 저렇게 커다란 게 떡하니 있으니 시하의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했다.

열어보려고 하자 삼촌이 종이 박스 엄청 쌓여있다면서 거짓말을 했다.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결국 생일 전에 선물을 뜯어보게 되었다.

“삼춘. 이거 모야?”

“어이쿠.”

삼촌이 머리에 손을 얹는다.

나는 저렇게 될 줄 알았다. 차라리 배송 날짜를 시하 생일날에 정해뒀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삼촌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나 보다.

“후후후. 이건 시하 생일 선물이야.”

“!!!”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아냐. 시하 모른 척해 주께.”

이미 둥글고 커다란 구슬을 다 봐놓고 박스를 다시 덮는 시하다.

“늦었어! 이미 다 알았잖아!”

“아냐. 시하 몰라. 동그란 거 있는 거 몰라.”

“누가 봐도 동그란 거 봤네!”

“시하 선물인 거 몰라. 시하는 몰라.”

“누가 봐도 다 아네!”

아무리 모른 척해도 ‘시하는 다 아라’가 되어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리 선물 주는 거야.”

“구럼 오늘 생일 아니니까 생일에 선물 또 져.”

“어이가 없네?”

오늘 받은 건 그냥 선물이고 생일에 받은 건 생일 선물이다.

뭐 그런 논리인 거 같다. 역시 시하는 천재다. 심지어 12월은 크리스마스도 있어서 선물을 한 번 더 받지.

선물 세 번 받는 이시하! 엄청난 계획이었다.

“이거 어케 해?”

“그 이전에 이거 생일 선물이라고 하자.”

“안 대. 이거 선물이야. 생일 선물은 생일에 바다.”

“나쁜 아이.”

“시하 차칸데? 삼춘이 나중에 안 들켜야지. 시하가 가르쳐주고 이써. 잘해찌?”

“그래. 고맙다!”

암! 생일 선물은 생일에 줘야지. 들킨 삼촌이 잘못했다!

삼촌이 중얼거리면서 플라즈마 구슬을 꺼냈다. 생각보다 많이 크네. 실컷 구경하고 창고행으로 갈 미래가 눈앞에서 그려진다.

“이제 전기 코드를 연결해야 해. 그리고 켜면 되지. 봐봐. 마술이다!”

“!!!”

구슬 안에서 전기가 파직파직 나오고 있다.

시하는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도 영상에서만 봤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관심이 가기는 했다.

삼촌이 구슬에 손을 대었다.

손에 있는 전해질 때문인지 플라즈마가 모양을 바꾼다.

“우와!”

“흐흐흐. 이제 여기서 점을 치는 거지. 자. 시하야. 뭘 알고 싶니. 연애운? 금전운? 사랑운? 아니면 미래?”

“연애운이랑 금전운이 모야?”

“연애운은 여자랑 남자랑 사귀는 사이인데 얼마나 잘 맞는지 보는 거야.”

“그럼 시하랑 형아.”

“방금 여자랑 남자라고 말했는데…….”

“안 대?”

“아니. 뭐 안 되는 건 아니지. 가족운을 보면 되지.”

“!!!”

삼촌이 구슬에 두 손을 가져다 대며 눈을 감았다.

“으음. 보인다. 보여.”

“삼촌의 미래가?”

“야! 너 일부러 그랬지?!”

“아?”

나는 풉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삼촌이 본 건 깜깜했을 텐데 거기서 시하가 삼촌의 미래가 보이냐고 말하면 멕이는 걸로 보인다.

그, 일부러 시하가 노린 건 아니에요.

애초에 삼촌이 뭔가 보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구래서 형아랑 시하는?”

“있어 봐. 보고 있어. 으음. 형아랑 시하는 아주 잘 맞네. 서로 아주 친해. 떨어질 수 없는 끈끈한 붉은 실로 이어져 있어.”

“우와! 진짜다!”

아니. 그걸 믿는 거야? 어? 아주 타로점이나 그런 거 보면 철석같이 믿겠는데?

저 정도 말이면 나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플라즈마 구슬에는 점치는 그런 기능이 없다.

과학적인 도구니까 말이지.

“으음. 그럼 삼촌이랑 가족운을 볼까?”

“아니.”

“아니야. 보자!”

“아니.”

“아니야. 봐줄게. 자! 어어! 보인다! 보여!”

“우웅.”

아니라고 해놓고 궁금하기는 한가 보다.

구슬 앞으로 조금 다가간다.

“모가 보여?”

“어이쿠. 엄청 굵은 붉은 실이 이어져 있네. 아주 둘이 찰떡이야. 찰떡. 형아보다 더 찰떡이네.”

“거짓말!”

“왜! 아까 형아랑 한 건 진짜고 왜 나는 거짓말인데!”

“시하는 형아 동생이니까. 삼춘보다 형아랑 찹쌀떡이야.”

“찰떡이라고 했는데 찹쌀떡은 뭐냐.”

“형아가 시하 볼 찹쌀떡이라 했눈데.”

내가 그렇게 말하긴 했었지.

아직도 시하의 볼은 찹쌀떡처럼 말랑말랑하다.

어찌 되었든 가족운은 잘 나온 것 같다.

원래 저런 건 좋은 말만 해주는 게 좋지.

생각해 봐라. 연인끼리 타로점을 봤는데 나쁜 말만 한다? 욕먹기 딱 좋지.

이런 말 들으려고 돈 낸 건 아니니까.

“좋아. 형아보다는 좀 가늘어. 붉은 실이.”

“근데 왜 레드 실이야.”

“붉은 실이라고 했는데 레드 실이라고 고쳐 말하는 건 뭐냐.”

“레드가 머시쑤니까.”

확실히 발음상 레드가 더 멋진 것 같기도 하고.

“어이가 없네. 붉은 실이라는 건 말이지. 인연인데. 어? 인연이 뭐냐면. 어?”

삼촌이 심각하게 고민한다.

하긴 설명하기 쉽지 않지. 한자를 배우면 그나마 나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남녀의 사랑을 말하는 거야.”

“형아랑 시하는 남자랑 남자인데?”

“어?”

“삼춘 거짓말해써?!”

“아니야. 사랑을 나타내는 거니까 꼭 남녀일 필요는 없지. 암!”

뭐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 같다.

“자, 자. 그럼 다른 운을 봐줄게.”

“갠차나. 시하 다 아라.”

“미래도 알아?”

“미래?”

“그래. 삼촌이 미래를 볼게.”

“시하 미래 아라. 미래 가바써. 형아도 이써써.”

“나는?”

“삼춘 업써써.”

“왜!”

아, 저 이야기 알 것 같다. 전에 한 번 미래로 가는 놀이를 했었지.

그때 삼촌이 없었으니 없던 거지만.

“왜지?”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하 집이 아니라서 그래!”

“그럼 이사했으니까 미래는 또 달라졌겠네!”

“!!!”

“이제 여기가 시하집이니까.”

“마자!”

“그럼 미래도 보자.”

삼촌이 또 눈을 감는다.

이번에는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음. 시하는 집에서 소파에 누워있네. 컸어!”

“!!!”

“배도 긁으면서 티비 보고 있네.”

“그거 삼춘이자나!”

“하하하! 남자는 다 크면 이렇게 돼!”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런 포즈를 취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겠지만 삼촌처럼은 아닐 것 같다.

“오오! 또 보인다! 이제 페페 안 그리는데?”

“거짓말!”

“응. 거짓말이었어.”

“잉잉!”

역시 놀리려고 미래를 본다고 했군.

시하는 삼촌의 팔뚝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그러다가 플라즈마 구슬이 신기했는지 손을 대본다.

“!!!”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신기한 것 같다.

뭐 신기함도 한두 번이지.

그래도 저리 좋아하는 걸 보니 하나 살 만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저거 이제 어디에 둘 거예요?”

“베란다?”

“창고에 넣을까?”

“안 돼! 그러지 마! 시혁이 너 잔인해!”

아니. 둘 데가 없잖아요. 둘 데가! 쓸데없이 커서 말이야.

“시하 장난감 방에 두면 대.”

“그건 좀.”

외관상 별로일 것 같은데 말이야.

***

시하의 생일날.

전날에 미역국을 끓여두고 아침에 함께 먹었다.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생일 케이크를 샀다.

초는 몇 개 챙겨드릴까요?

그런 질문에 5개라고 말하는데 뭔가 묘했다.

3개와 4개를 말했을 땐 이런 느낌이 안 들었는데 5개라고 말하니까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느새 벌써 5살이 되었나.

내년에는 6살이 되겠지.

‘어린이집에 감사하지.’

강인 어린이집은 7세까지 운영한다.

물론 유치원을 다녀도 되긴 하지만 말이다.

굳이 다른 곳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소수 정예인 점도 좋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커리큘럼을 잘 짜서 진행하니까.

‘물론 나는 이제 강인대 학생이 아니긴 한데.’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었다.

원래 학생이라도 강인 어린이집에 아이를 들이는 일은 없었다.

그냥 편의를 봐준 것뿐이다.

그나마 학생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시하가 다닐 수 있는 표면적인 이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하고 나서는?

일단 상반기까지는 다닐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하반기였다.

‘원장님이 잘 말해 주셨지.’

강인 재단 쪽으로 한마디 하셨다고 했다.

2년이나 다녔는데 친구들과 떨어지게 할 겁니까? 강인대 교육의 신념은 어떻습니까?

물론 재단 입장은 좀 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논란은 싹 없어졌다.

이유는 딱 하나.

‘영화가 신의 한 수였지.’

일단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에 시하가 참가했다는 점.

생각보다 화제가 되었다는 점.

거기에 통번역사로 강인대 학생이 참여했다는 점.

이 세 개가 맞물려서 잡음은 사라졌다.

강인 재단에서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

원장님 말로는 원래 그대로 다니게 할 생각이었다고는 하셨다.

하지만 선례라는 것도 있고 잡음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이번 화제로 그런 건 싹 없어졌다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홍보 한 번만 해도 되냐고 묻기까지 했다.

물론 시하가 나를.

‘대체 왜…….’

강인대 통번역대학원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으음.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알았다고는 하긴 했다.

사실 강인 재단이 어린이집에 하는 투자만 해도 좋은 혜택이다.

다른 어린이집 어머니들이 부러워할 정도니 말 다 했지.

손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말이다.

강인대 교직원만 들어올 수 있으니.

이게 문제다. 내가 특별 선례를 만들었으니까.

혹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으로 들어오면 아이를 여기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가진 부모님들도 있을 수 있다고 말이 나왔으니까.

선례가 이렇게 무섭다.

‘성과를 내서 다행이네.’

앞으로 이 선례로 잡음이 쏙 들어갈 것이다.

학교 다니면서 황금종려상 같은 업적에 숟가락이라도 얹을 수 있는 사람.

이게 돈으로 되는 상은 아니지 않나.

미국으로 인터뷰나 방송에 출연할 때 나도 같이 통역사로 출연하게 될 텐데 이 정도 업적은 쉽지 않다.

차라리 대학교, 대학원을 안 다니고 저런 업적을 세우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수지타산에 안 맞다는 거지.

“케이크는 챙겼고.”

뭐 그런 이유로 어린이집 문제는 해결됐다.

어찌 되었든 오늘 생일이나 잘 보내자.

이게 끝나면 아마 미국으로 또 갈 일이 생기겠지.

“삼촌 나 왔어요. 억! 이게 뭐예요?”

“왜? 생일 파티는 이 정도 해줘야지.”

집안이 아주 휘황찬란하다. 크리스마스날 엄청 꾸몄던 게 생각난다.

일단 HAPPY BIRTHDAY라고 알파벳 하나하나의 풍선이 소파 위의 벽에 붙여져 있다.

천장에도 뭔 꾸미는걸.

“어린이집도 이렇게 안 할 거 같은데.”

“아니야. 어린이집은 해.”

“아니. 여기가 어린이집도 아니고.”

“5살에 한 번뿐인 생일이니 신나는 파티를 즐겨야지.”

“삼촌이 치울 거죠?”

“다 같이 즐겼으니 치우는 것도 다 같이.”

“삼촌만 즐기잖아요. 삼촌만.”

신나게 생일 파티를 할 건 생각해뒀는데 여기까지 생각해둔 건 아니야!

“아. 맞다. 선물이 택배로 도착했더라.”

“아, 가방…….”

주문했던 가방이 왔나 보다.

상자를 뜯어보니 비닐에 둘러싸여 있었다.

간단히 선물 상자를 사 왔는데 거기에 쏙 들어갔다.

이것으로 선물 준비가 끝났다.

삼촌이 나를 불렀다.

“시혁아. 짜잔!”

“그건 또 왜 꺼냈어요.”

삼촌이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냈다.

불빛이 번쩍번쩍한다.

“올해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못 보낼 것 같아서. 미리미리 꺼내둔 거지.”

“그것도 세 개나?”

“당연하지.”

삼촌이 엄지를 치켜든다.

저거 작년 크리스마스 때 형아, 삼촌, 시하 트리로 명명된 거였다.

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이제 시하 데리러 갈게요. 여기서 아무것도 더 추가하지 마요.”

“플라즈마 구슬도 켜고 거실 불도 다 끄고 있을게!”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한 풍경에 어질어질하다.

뭐 시하가 좋아한다면 됐다만.

“아, 알겠어요.”

“그리고 나도 선물 준비했어.”

“네? 플라즈마 구슬 아니고요?”

“하하하. 그건 페이크였지. 진짜는 이거라고!”

뭔가 기다란 상자가 있는데 저게 뭔지 모르겠다.

왜 또 상자가 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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