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2화 (412/500)

412화

시하는 당당하다.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는다. 근데 왜 나는 소개하는 거냐?

뭐 시사회 때도 나를 소개하기는 해서 익숙하다.

시하라고 밝히니 앞에 있는 사람들이 와 진짜다! 하면서 난리다.

“혹시 사진 한번 같이 찍어도 돼요?”

“응!”

나는 허락 안 했는데 시하는 개의치 않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뭐 시하가 괜찮다면야 나도 괜찮지만.

어차피 이렇게 알아보는 것도 다 한때이다.

작품 활동을 계속해야 사람들이 알아보는 법인데 이번 한 번 화제가 되었다고 해서 언제까지 기억하라는 법은 없다.

또 시하가 성장할 테니까 더더욱 알아보는 일이 적겠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우리가 늦게 나와서 그런지 사진 찍을 사람이 몇 없다는 거다.

“형아랑 가치!”

“어? 어, 그래.”

찰칵!

어째서인지 시하랑 나도 같이 찍었다.

나는 영화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출연도 안 했는데 이렇게 사진 찍고 그래도 되나 싶었다.

뭐 그냥 이 지나갈 한때를 즐겨두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면서.

“감사합니다. 시하야. 안녕~”

“바이바이.”

알뜰하게 손까지 흔들고 우리는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수현아. 집으로 가면 데려다줄까?”

“네? 아! 감사합니다!”

“그럼 같이 주차장에 가자.”

“아싸. 교통비 굳었다.”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수현이 주먹을 꼭 쥐다가 푼다.

“그런데 나중에 시하 엄청 유명해지는 거 아니에요?”

“글쎄?”

“완전 씬스틸러. 인상에 강하게 남던데요.”

“그건 그렇지.”

“기세를 보니까 천만 될 거 같던데요?”

“으음.”

말이 천만이지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에 대한 영향력은 정말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겪어보지 않아서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래도 막 바로 알아보지는 못할 거야. 팬도 아니고.”

“그건 그래요.”

팬이라면 얼굴을 어떻게 가려도 다 알아본다.

하지만 시하는 그저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짧게 나온 거기 때문에 손쉽게 알아볼 리가 없다.

물론 우리 시하가 5살이 되었기도 하고!

컸어! 아무튼, 엄청 컸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주장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형아!”

“응?”

“또 바도 재미써!”

“그래? 근데 뭘 알고 보는 거야?”

“응! 엘렐레 해써.”

“김석현 배우가 그렇게 이상한 표정을 짓긴 했지.”

“마자!”

서수현이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 엘렐레로 어떻게 알아맞힌 거예요?”

“응? 그냥?”

이 정도는 통역사에게 기본이라고. 엣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시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배를 내민다.

“우리 형아야!”

서수현이 그 모습을 보고 풋 하고 웃었다.

“이제 차에 타자. 시하야.”

어느새 우리는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

‘일개미’가 500만을 찍는 데 정확히 8일 걸렸다.

그 와중에 프랑스 역시 개봉이 시작되었다.

칸 영화제에서 개봉하기는 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이미 번역도 완벽히 된 상태에서 개봉되는 거였다.

그렇게 차례로 홍콩, 대만에 개봉되면서 6월이 지났다.

900만 관객을 찍고 이제 천만을 앞두고 있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나라도 있었다.

더운 여름이 지나간다. 7월에 ‘일개미’는 천만을 거뜬히 찍었고 누적 관객 수가 차근차근 쌓으면서 고감독님 작품들의 신기록을 다 갈아엎었다.

그리고 가을이 오는 10월. 드디어 미국에 ‘일개미’가 개봉되었다.

외국에서 여러 가지 인터뷰도 많이 들어와서 시혁이 고감독님 옆에 딱 붙어서 일을 해야 했다.

11월이 되자 청룡영화제가 열렸다.

‘일개미’ 배우들도 참석했지만 애석하게도 2명밖에 상을 못 받았다. 의문이 가득한 영화제를 뒤로하고 시혁은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곧 시하의 생일이었으니까.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삼촌이 시혁을 반긴다.

시하는 형아가 왔다는 소리에 도도도 달려가 품에 안긴다.

“형아!”

“응. 시하야.”

“형아! 형아!”

“응. 응.”

“왜 이러케 바빠?”

“형아가 요즘 좀 바쁘네. 근데 최근에는 일찍 일찍 들어왔지 않아?”

“마자!”

거, 잠깐 10월에 바빴다. 미국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 말이다.

잠깐잠깐 들러서 인터뷰를 했는데 이게 시하를 데리고 가기 참 쉽지 않았다.

어차피 금방 또 한국에 들어오기도 하니까.

삼촌이 없었다면 해결 못 할 일정이긴 했다. 막 그렇게 많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12월에 다시 미국에 갈 일정이 있어서 함께 해야 한다고 고감독님이 말했는데 그때는 진짜 시하를 데려가서 함께 움직여야 했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는 건 시하도 힘들고 나도 힘드니까.

아무래도 2월 아카데미상을 위해 고감독님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해외 일정이 많아질수록 나 역시도 통역사로 고용되어서 바쁘게 돌아간다.

하지만 그건 그렇고 12월 초에 있을 시하 생일은 챙겨줘야지.

“이제 곧 시하 생일이네?”

“마자!”

“혹시 갖고 싶은 거 있어?”

“우웅.”

시하는 열심히 고민했다.

아무래도 갖고 싶은 게 없는 모양이었다.

전에도 이런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시하가 좋아하는 거면 뭐든 해 주고 싶은데 말이다.

“형아. 시하는 말이야.”

“응. 응.”

“형아랑 가치!”

“크흑!”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여전히 시하는 형아랑 가치 있고 싶구나!

이제 추워지는 겨울날에 따뜻하게 형아랑 같이 있자.

그건 그렇고 어떤 선물이 좋을까?

“정말 갖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건?”

“우웅. 시하 하고 시푼 거 이써!”

“오! 그래?”

“시하 영어로 잘 말할래!”

“으응? 영어?”

“응! 시하 영어 연습 마니 해써. 삼춘이랑 영어로 대화해.”

“정말?”

대체 언제부터 삼촌이랑 영어로 대화하는 연습을 했단 말이지?

엄청 궁금하다. 얼마나 실력이 늘었을지 말이다.

몇몇 개는 내가 열심히 단어를 가르쳐주기는 했지.

어쩔 수 없이 나도 통역사라 아침에 영어를 듣는다. 다른 언어도 들으며 따라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하지만 시하가 있을 때는 대부분 영어였다.

너무 많은 언어를 사용하면 시하에게 안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아마 시하는 그런 배려는 잘 모르겠지.

몰라도 상관없다. 알아주기 바라서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시하가 영어에 친숙해지고 또 제2의 언어로서 배우기 원했던 건 있다.

언어 하나 더 할 줄 알면 굉장히 좋으니까.

“엉클!”

“오오오!”

삼춘이 아니라 엉클이구만. 근데 시하야. 그냥 이름 불러야 하지 않을까?

톰슨이라고.

삼촌이 시하의 말에 심드렁하게 반응한다.

아무래도 꽤 반복된 상황인 거 같다.

“Why?”

“Let’s play game! okay?”

“No.”

“Stop! watching TV!”

“이제 아는 거 다 말했다.”

“아냐! 시하 피자도 알고 햄버거도 아라.”

아무래도 이런 회화를 진행했던 것 같다.

와! 우리 시하 대단해! 천재야! 벌써 영어를 쓰다니 언어 천재야!

처음에 말도 잘 못 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는데 어느새 영어도 쓴다.

“사.랑.해.여. 연.예.가.정.개! 시하 다 아라. 삼춘이 다 말해써.”

시하야. 그건 영어가 아니라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어 아니야?

“큭큭.”

아무래도 삼촌이 장난치느라고 저걸 가르쳤나 보다. 아무튼, 쓸데없는 것도 가르치고 다녔나 본데?

“삼촌. 시하에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세요.”

“왜? 재밌는데. 이게 이상한 거야? 엄청 중요한 거거든?”

“어딜 봐서요. 어딜 봐서.”

“이런 걸 알아야 나중에 우리랑 시하가 세대 차이가 안 나지. 라떼는 말이야. 이런 거 있었어! 하고 말하면 나중에 시하가 으윽. 하는 표정으로 보면 어떡해.”

“우리 시하 안 그러거든요.”

“그거야 모르지.”

모르지만 우리 시하는 안 그런다!

이야기 잘 들어주는 착한 시하라고.

“그건 그렇고 진짜 시하 영어 엄청 늘었네요.”

“늘긴 뭐가 늘어. 저것밖에 모르는데.”

“어쩌면 중학교 수준. 아니. 고등학교 수준까지 되겠는데?”

“저기요? 제 말 듣고 있습니까?”

“한 1년만 더 하면 대학 수준까지 오르겠어.”

“그 정도 아니야! 돌아와! 거긴 제3의 지구야!”

“역시 형아를 닮고 싶어서 이렇게 노력하다니. 시하야! 시하는 천재야!”

“노력한 건 맞는데 천재는 아니야.”

시하는 ‘정말?!’ 하면서 좋아했다.

나는 삼촌에게 고개를 저었다.

“삼촌. 가까이 있어서 원래 얼마나 컸는지 잘 모르는 거예요. 봐요. 시하가 벌써 이만큼 컸어요. 좀만 있으면 농구 선수만큼 클 거 같아요.”

“얼마 안 컸어. 어린이집 애 중에 제일 작아.”

“와. 생일 오니까 이렇게 달라지네.”

“내 말 좀 들어라! 네 말만 하지 말고!”

“그래서 선물은 뭐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건 왜? 이미 답정너인 거 같은데. 선물도 아예 답이 정해져 있겠지. 왜 나한테 물어보는데?”

삼촌이 소파에 뒤돌아 누웠다.

뭘 또 저런 걸 가지고 삐지고 그러시는지.

그건 그렇고 답정너라는 단어도 알다니. 삼촌이 진짜 한국 사람 다 되었구나.

“음. 아! 그래!”

“뭐야? 좋은 생각 났어?”

“네.”

시하가 궁금해했다.

“모야?”

“비밀이야. 생일 때 기대해줘.”

“형아. 시하가 아무한테 말 안 하께. 몰래 알려져.”

“제일 알려지면 안 되는 사람이 넌데?”

“아?”

아무리 저렇게 귀엽게 두 손을 귀에 갖다 대도 비밀은 비밀이다. 절대 말할 수 없다.

삼촌이 말했다.

“secret.”

“시하 아라. 시크릿 주주.”

뒤에 주주는 빼자 시하야. 그건 인형이야.

***

시하 생일이 지나면 또 새해가 오는데 그때는 6살이다. 이제는 저 펭귄 가방을 버릴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저 가방을 버리기는 쉽지 않겠지.

썼던 것을 모아두는 타입인 이시하다.

그렇기에 이번 가방 제작은 페페로 만든다.

지금까지 그냥 펭귄 가방이었다면 더 좋은 페페 가방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시하가 그린 페페가 있기 때문에 주문제작을 넣기만 하면 된다.

요즘 이런 것들을 만들어주는 업체가 있어서 편리하다.

“전 이제 오기만 하면 되는데 삼촌은 무슨 선물 준비했어요?”

“나?”

“네. 설마 준비 안 했어요?”

“나야 뭐 간단 거 준비했지. 시하가 좋아할 선물이랑 흐흐흐.”

“뭔가 수상한데?”

“나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뭘요?”

“아무튼, 꼭 해보고 싶었지. 시혁이는 너무 커서 못 했지만 시하라면 가능해.”

“그러니까 뭘요?”

저렇게 말하니까 또 불안하다.

대체 뭘 꾸미시려고. 이거 얼버무리지 못하게 추궁해야겠다.

“빨리 말해요. 어서.”

“흠. 아, 이거 아직 말하면 안 되는데. 아마 늦지 않게 도착할 거 같기는 한데. 해외배송이라서 미리 시켜뒀거든.”

“대체 뭘요?”

“마법. 과학 마법.”

“응?”

“플라즈마 구슬 있잖아. 그 왜. 점 봐주신다고 하면서 막 전기 찌리릿 보이는 거.”

“아, 그거. 근데 그거 해외에서만 구매해야 해요?”

그거 그냥 국내에서도 구매할 수 있지 않나? 굳이 해외배송하는 이유가 없는데?

삼촌이 눈을 슬쩍 피한다.

뭐지? 뭔가 걸리는데? 잠깐의 고민이 들다가 뭔가 탁 하고 떠오른다.

“그거 얼마나 커요?”

“으응? 그게 말이야. 하하.”

“왜 말을 못 하죠?”

“농구공보다 더 크지? 아마? 내가 최고로 큰 거로 달라고 했…….”

농구공 크기가 이만하니까 이것보다 더 크다면…….

아니. 이게 왜 필요하지?

신기하게 할 거면 작아도 되잖아?

내가 삼촌을 보자 슬며시 시선을 피한다.

“하하. 하하.”

“이 화상아! 어디에다 둘 건데!”

“시혁아. 진정해. 가끔 남자들이 그렇잖아. 크면 클수록 좀 설레잖아.”

“아니, 뭔. 강연하러 들고 갈 것도 아닌데 그 커다란 걸 왜 시켰어요!”

“밤에 보면 예뻐!”

“잘도 예쁘겠다!”

“이게 남자애들의 로망이야!”

삼촌의 로망이 아니고요? 어이쿠. 선물을 가장한 쓰레기가 하나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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