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1화 (411/500)

411화

시하가 잘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그림이려나? 그림 게임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의문이 들었다. 시하가 내 손을 잡고 끌고 간 곳은 볼링 게임기였다.

실제 볼링공을 굴리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공을 굴려서 화면에 나오는 볼링핀을 쓰러뜨리는 거다.

“시하 볼링 잘해. 어린이집에서 해써.”

아마 그 장난감 볼링을 말하는 거겠지.

하긴 장난감 볼링이랑 여기 게임장 볼링이랑 비슷하긴 하다.

쓰러뜨려야 할 핀이 디지털로 되어 있다는 것만 다를 뿐.

삼촌이 씨익 웃었다.

“삼촌은 볼링도 잘하는데?”

“정말?”

“그럼. 세미프로지. 세미프로.”

“쉐리뿌로?”

“누굴 때린다는 거야?! 흠흠. 세미. 프로!”

“쒜리뿌러?”

“발음이 왜 더 강해져?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냐.”

어찌 되었든 볼링을 치기로 했다.

짤그랑짤그랑 돈을 넣자 볼링 레일 아래에서 공이 나왔다.

시하는 공을 잡았다.

“시하 파이팅.”

“하팅!”

시하가 공을 데굴데굴 굴린다.

화면에 있는 핀이 쓰러진다. 스트라이크!

“오! 시하야. 엄청 잘했어! 다 쓰러뜨렸어!”

“형아가 하팅 해져서 그래!”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삼촌은 옆에서 공을 잡고 집중하고 있다.

이거 그냥 게임인데 자세와 표정만은 거의 프로다.

근데 이 공을 굳이 볼링 자세로 던질 필요가 있나?

“후흡!”

시하의 공과 다르게 빠르게 슝 하고 날아간다.

이게 진짜 핀이었다면 힘으로 핀이 마구 날아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그냥 게임이다.

아쉽게도 하나가 남아버렸다.

“아니, 왜!”

뭐 기계의 판단이 그렇다는데 뭐라고 하는 것도 웃기다.

그래도 마무리로 한 개 마저 정리했다.

“시하야. 잘해.”

“응!”

시하가 공을 조심히 데굴데굴 굴린다.

한가운데로 들어가는데 정말 잘 굴리는 것 같다.

이번에도 스트라이크다. 저 정도면 볼링 잘하는 거로 인정해 줘야겠다.

물론 공의 속도가 굉장히 느리긴 하지만 말이다.

“진짜 볼링장 가면 저거는 분명 옆으로 빠질 속도인데.”

“왜요. 느리게 스트라이크 될 수도 있지.”

“여기 길이가 짧아서 그래. 진짜 볼링공도 아니고.”

결국, 삼촌이 패배하는 거로 끝났다.

이번에는 시하가 이겼다.

정말 핸디캡 없는 승부였다.

“시하야. 잘했어!”

“형아. 이겨써! 삼춘 시하에게 져써. 쒜리뿌러 라면서!”

“세미프로야, 시하야.”

삼촌이 딴 거 하자고 말한다. 이번에는 자기가 고를 거라면서 말이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여기 하키 하자. 하키.”

호떡 만들 것 같은 라켓이 있다. 도장 같이 생기기도 했다.

“참 잘해써여 도장!”

“응. 그거 닮았네.”

이걸 쥐고 납작한 호떡 같은 볼을 튕겨내서 상대방의 골대에 넣으면 된다.

내가 호떡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진짜 호떡이 연상되네. 주변에 호떡 파나? 갑자기 먹고 싶어진다.

“이거는 시하 팔이 짧지 않습니까?”

“시혁이랑 편 먹어도 돼. 하하하!”

“뭐, 그래요.”

애들도 잘할 수 있게 발판도 잘 마련해준 것 같다.

“시하야. 여기 올라가자.”

“응! 형아랑 가치야.”

“그래.”

일단 처음은 시하가 한번 해보게 했다.

“자, 때려. 시하야.”

“에잇!”

툭! 공이 스르륵 천천히 미끄러져서 삼촌에게 다가오다가 뚝 멈췄다.

“어이쿠! 진짜.”

삼촌이 팔을 길게 뻗어서 쳐낸다.

시하가 다시 ‘에잇!’ 하면서 받아친다.

그렇게 천천히 랠리가 된다.

삼촌이 이제 좀 받아줬으니 됐겠지 싶어서 한 번은 세게 퉁 하고 친다.

시하가 반응을 못 했지만 가운데에 라켓을 놓으면서 자동으로 받아쳤다.

“삼춘! 빨라!”

“하하하.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흐흡!”

탕! 땡그랑.

삼촌이 점수 1점을 얻었다.

시하도 밑에서 볼을 꺼내서 다시 경기장에 올려놓는다.

이번에 세게 할 거라는 포부를 가지고 힘껏 공을 친다.

“엥!”

에잇이 하나로 합쳐져서 엥이 되어버렸다.

힘껏 날아갔지만 점수를 따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삼촌이 곧바로 되받아쳤다.

나는 그럴 줄 알고 시하의 손에 내 손을 포개서 곧바로 반응했다.

짧게 치기.

탕!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삼촌이 뒤늦게 반응하다가 놓치고 말았다.

땡그랑.

이로써 1 대 1.

“형아 대다내!”

“어. 고마워. 시하도 잘하던걸?”

“정말?”

“응. 삼촌 공격 잘 막고 있었잖아. 그것만으로 대단하지.”

“!!!”

“이제 형아랑 같이 공격하자.”

“응!”

삼촌이 앞에서 투덜거렸다.

자기를 무슨 나쁜 놈이나 악마로 보냐고.

“악마 맞잖아요?”

“삼춘 앙마 맞눈데?”

“이것들이?”

삼촌이 다시 공격했다.

시하는 엥! 하는 이상한 기합을 외치며 나와 함께 맞받아친다.

그렇게 우리는 게임장에서 즐겁게 놀았다.

물론 하키 게임의 승리자는 시하와 나였다. 아무래도 삼촌이 좀 봐준 것 같다.

***

이제 시간이 되어서 대충 팝콘과 음료를 사서 들어가야 했다.

뭐 정각에 바로 시작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여유롭게 사고 들어가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팝콘을 사려고 시하랑 기다리는데 등 뒤에서 콕콕 두드리는 손가락 느낌이 났다.

뭐지 싶어서 뒤를 돌아보는데 서수현이 있다.

“오빠 안녕?”

“어? 너도 오늘 보러 오는 거야?”

“개봉했는데 당연히 보러와야죠. 시하가 나오는 건데.”

“근데 우리랑 같은 시간대일 줄 몰랐네? 몇 관이야?”

“4관이요.”

“오! 같네?”

“그러네요. 진짜 우연이네요. 신기하다.”

“그러게.”

어떻게 된 게 이런 우연이 있나 모르겠다.

시하가 뒤를 돌아보면서 개굴 누나! 하고 외친다. 아무래도 시하도 반가운가 보다.

“개굴 누나. 시하 보러 와써?”

“응. 시하 보러 왔어. 시하 언제 나와?”

“구거 비밀이야.”

“뒤에 나오는 거 아니지?”

“!!!”

비밀이라면서 얼굴에 답을 써놓는 시하였다.

우리 시하는 거짓말 못 한다고! 얼굴에 다 드러난다.

옆으로 눈을 피하면서.

“시하 몰라. 아무거또 몰라. 삼춘. 모르지?”

“응? 뒤에 나오잖아.”

“삼춘! 시하가 비밀이라고 해짜나.”

“어? 삼촌은 못 들었는데?”

저 표정을 보니 100퍼센트 들었군.

이 타이밍에도 시하를 놀릴 생각을 하다니. 아무래도 청개구리 포지션으로 매일 놀린다.

“삼춘. 바보!”

“삼촌이 바보면 시하는 더 바보지.”

“왜?”

“삼촌이 시하보다 똑똑하거든.”

“아냐. 형아가 더 똑똑해!”

“어? 뭔 말이냐.”

시하어 해석. 형아가 삼촌보다 똑똑하다. 형아 닮은 시하는 똑똑하다. 고로 삼촌보다 시하가 똑똑하다.

뭐 그런 이야기다.

“이제 시하가 비밀이라면 말하면 안 대.”

“응. 동네방네 소문낼게. 가까운 빵집에게 소문내고 저기 팝콘 파는 알바생에게도 소문내고.”

“안 대!”

“소문내야지~”

“잉잉!”

영화보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게 더 재밌다.

서수현이 말했다.

“오빠.”

“응?”

“엄청 아빠 미소 짓고 있어요.”

“아, 그래? 몰랐네.”

나는 얼굴을 만졌다.

아무래도 입꼬리가 많이 올라가 있었나 보다.

자연스러운 거지. 뭐.

“너. 자리 어디야?”

“저요? 여기요.”

“어? 우리 옆자리네?”

“진짜요? 와. 대박.”

서수현이 입을 가렸다.

나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보통 이런 우연히 있나?

삼촌이 앞에서 ‘오올~’ 하면서 뭔가 때리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다.

왜 갑자기 주먹이 꽉 쥐어지지?

“삼촌. 이상하게 연결하지 마요.”

“내가 뭘?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뭔가 표정이 좀 때리고 싶었어요.”

“그거 속으로 말해야 하는데 입 밖으로 나도 모르게 나온 거지? 그렇지?”

“아니요. 진심으로 나온 건데요?”

“진심이 보통 입 밖으로 나오나?”

“네. 삼촌에 한해서는요.”

“그럼 나도 한 번.”

“또 뭘 하시려고.”

두 손가락으로 우리 둘을 가리킨다.

“잘. 됐. 으. 면. 좋. 겠. 다.”

“집에 비밀번호를 바꿔야 하나?”

“잘 안 됐으면 좋겠다?”

“저기요? 삼촌분?”

서수현이 웃으면서 눈썹을 꿈틀거린다.

삼촌이 슬쩍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시하에게 역시 팝콘은 캐러멜 팝콘이지! 하면서 능청스럽게 말을 돌린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불편했다면 미안해.”

“하나도 안 불편했는데요.”

“그럼 안 미안.”

“이 오빠가 진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주문할 차례가 왔다. 줄이 꽤 길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온 것 같다.

“뭐 먹을래?”

“네?”

“사줄게.”

“괜찮은데요.”

“사양하지 말고.”

“그럼. 복숭아 아이스티로. 팝콘은 괜찮아요.”

“알았어.”

주문하고 컵을 받았다.

빨대를 뜯어서 꽂아주었다.

그리고 같이 영화관에 들어가서 앉았다.

서수현, 나, 이시하, 삼촌. 이렇게 나란히 말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가방에서 휴대용 물티슈를 꺼냈다.

“수현아.”

“네?”

“혹시 필요하면 써. 아이스티 손에 묻으면 끈적하잖아. 묻을지도 모르니까.”

“아, 고맙습니다.”

“혹시 쓰면 말해. 여기 쓰레기 봉지도 들고 다니거든. 손에 쥐고 있으면 불편하잖아.”

“이거 왜 들고 다녀요?”

“그냥. 시하 교육에 좋을까 싶어서.”

“아하. 근데 영화 보는데 말 걸기 미안해서.”

“나 많이 봐서 괜찮아.”

“하긴 그렇겠다.”

“눈 감고도 다 외울 정도는 돼. 안 봐도 상관없지.”

“그럼 영화 말고 제 얼굴 보고 있으면 되겠네요.”

“응?”

서수현이 물티슈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흔든다.

“못 들은 거로 해줘요.”

“으응.”

나도 저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뭔가 간질간질하고 괜히 옆을 쳐다봐야 할 것 같고 그렇다.

서로의 침묵이 이어질 찰나.

“형아.”

“응? 왜?”

“시하 보고 이쑤면 대게따!”

“어?”

아무래도 시하가 다 들었나 보다.

어떤 감정이 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옆에서 서수현이 ‘나 어떻게 시하도 다 들었어…….’라며 아직도 물티슈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거 그렇게 쓰라고 준 거 아닌데.

뭐든 잘 쓰이면 되겠지.

“그래. 시하 보면 되겠다.”

“응. 시하도 형아 보까? 시하 영화 바써.”

“응. 그래.”

시하 옆에서 삼촌이 중얼거렸다.

“영화 보러 온 사람은 나뿐이야?”

다른 관객들도 영화 보러 왔어요.

***

영화의 마지막에 시하가 나올 때 서수현이 눈물을 닦는다.

아무래도 몰입해서 본 모양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관에 불이 켜진다.

“시하야. 잘 봤어. 멋있더라.”

“개굴 누나도 머시써.”

“으응? 그래. 고마워.”

서수현이 나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숙인다.

아무래도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나도 뭔가 분위기가 그래서 못 쳐다볼 거 같다.

“그럼 나갈까?”

“아, 네.”

옆에서 시하는 삼촌에게 자기 봤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다.

“삼춘. 시하 바써.”

“그래. 봤다니까. 아주 CCTV에 잘 찍혔더만.”

“시하가 머라고 해써?”

“이게 뭔 확인 작업이야? 보고 싶다고 했다. 됐지?”

“구리고?”

“뭘 또 말했나?”

“제대로 안 바써. 삼춘 다시 바.”

“아니. 저 대사 전부 어떻게 다 기억해?”

“시하 말 얼마 안 해써.”

“으음. 할머니 보고 싶어?”

“아냐!”

저건 놀리는 게 아니라 진짜 기억 안 나는 것 같다.

그 뭐냐. 대사 정확하게 다 기억하기 힘들긴 하지. 아마 아빠 보고 싶다는 대사만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가려고 하는데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 혹시?”

“설마 쟤가 걔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물어볼까?”

“아까 영화에서 나온 아이 맞는 것 같은데?”

“얼굴 완전 똑같은데?”

이런. 아니, 솔직히 이런 것까지 생각 못 했다. 저거 찍을 때가 언제인데. 우리 시하 좀 자랐다고. 컸단 말이다.

이 정도 컸으면 못 알아보지 않나? 시하가 이제 5살인데.

“오빠. 어떡해요?”

“몰라. 빨리 나가야 하나? 근데 시하 엄청 컸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무슨 소리예요. 그대론데.”

“컸는데?”

“조금 컸네요.”

“많이 컸어. 두 뺨 정도 더 컸다니까? 폭풍 성장했어.”

“오빠.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예전부터 그랬는데 눈 크게 뜨지도 않았는데 자꾸 시하 눈 크게 떴다고…. 과장이 심해요.”

아니야! 다른 사람 눈에는 성장이 느려서 작아 보일지 모르겠는데 내 눈에는 폭풍 성장 맞다고!

아무튼, 난 거짓말하지 않았다!

상대성 이론 몰라? 뭐든지 상대적인 거라고.

“저기…. 혹시 ‘일개미’에 나온 시하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영화에 시하 이름 그대로 썼지. 참.

방심했다.

이렇게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누가 알았겠냐고.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 받을지.

어떻게 하지? 아니라고 해야 하나?

“마자! 시하예여! 여기는 형아예여!”

시하는 아주 해맑게 자기와 나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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