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삼춘. 영화 바야 해. 영화.”
“또 그 얘기야?”
어제 삼촌이 시사회 갔다고 거짓말을 해서 시하는 영화를 꼭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어찌 되었든 안 본 건 맞으니까.
“난 혼자 영화 보러 안 가는 사람이야.”
“왜?”
“혼자면 재미없잖아. 다 같이 봐야 재밌지. 시하도 그렇지?”
“마자!”
아무래도 영화는 혼자 가지 않는 파였나 보다.
내 생각에는 그것보다 그냥 영화 보러 가는 것 자체가 귀찮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그냥 시사회 때 같이 갔으면 얼마나 좋아.
“삼춘. 삼춘. 구럼 시하가 가치갈 사람 차자주까?”
“아니. 시하 너랑 가면 되지.”
“시하는 바써.”
“또 보면 되지. 삼촌 혼자 영화 보러 가라고?”
“삼춘. 영화 꼭 바야 해. 시하 나와.”
“너 안 나오면 안 봐도 되고?”
“마자.”
“그래서 같이 가 줄 거지?”
“시하 바써.”
삼촌은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하는 표정으로 시하를 봤다.
내가 나오는 영화는 봐야 하지만 같이 가줄 수는 없어. 대신에 같이 봐줄 사람은 찾아는 줄게.
뭐 그렇게 말을 전달하고 있다.
저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웃기는데?
나도 지원사격 해주자.
“백동환도 안 봤다고 하니까 같이 예매해서 보러 가면 되겠네요.”
“뭐? 그 근육몬?”
“네. 아니, 근육몬이라니뇨!”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남자랑 가는 건 이상하지.”
“하나도 안 이상한데요?”
“걔랑 가는 건 좀 그래!”
모양새가 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른 애들이랑 다 같이 가는 건 어떨까? 경트리오라던가.
아직 개봉 전이라 안 본 사람 천지다.
예약도 최근에 있는 건 다 찼겠지? 그럼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다.
“그냥 같이 한 번 더 보자. 시하야.”
“시하는 구럼 형아랑 가치. 형아랑 가치면 또 볼래.”
“삼촌은 왜 빼? 삼촌은 안 되고. 형아는 되냐?”
“삼춘. 형아자나.”
“뭔 마법의 단어도 아니고.”
삼촌이 괜히 심통이 났는지 소파에서 돌아누웠다.
“영화 보러 안 가.”
“삼춘 삐져써?”
“어. 삐졌다. 안 가. 안 가.”
“삼춘 시하 나오는 거 바야지.”
“안 봐도 되는데?”
“왜? 시하 나오는 거 꼭 바야 해!”
“시하 얼굴 호빵 같이 나왔을 게 틀림없어.”
“아냐. 시하 호빵 아냐!”
삼촌이 다시 돌아누워서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검지를 좌우로 흔든다.
“그리고 삼촌은 여기 집에서 볼 거거든.”
“!!!”
“영화라는 건 말이야. 결국, 나중에 여기 티비로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씀.”
“정말?”
“당연하지. 근데 좀 오래 걸릴걸?”
“얼마나?”
“한 3개월? 아니, 4개월?”
“얼마나 자야 해?”
“100밤 넘게 자야지.”
“안 대! 너무 느려!”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삼촌은 시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계속 놀릴 생각인가 보다.
“삼촌은 이미 이 소파랑 한 몸이야. 티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볼게!”
“삼춘 시하 빨리 보고 싶짜나.”
“맨날 보는데 뭐.”
“여기 말고. 저기! 영화!”
“아, 그건 나중에 봐도 상관없어. 티비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잉잉!”
생각대로 안 되는지 시하가 삼촌의 허벅지를 토닥토닥 때렸다.
삼촌은 능청스럽게 어이구 시원하다며 다리도 두드리라고 한다.
뭐, 저렇게 될 줄 알았다.
내가 정리해야겠다. 나도 또 보고 싶은 마음은 없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다 같이 가요.”
“정말?!”
뒤에 말은 삼촌이 말한 거다.
대사가 시하인 줄.
“네. 뭐 별거 있겠어요. 다 같이 보면 되는 거지.”
“또 봐도 괜찮아?”
“삼촌이랑 또 보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해요.”
“크흐. 제길. 저렇게 말하면 가야 하잖아. 안 갈 생각이었는데.”
감동한 게 아니라 분한 거셨나?
“어쩔 수가 없네. 예매나 해야지.”
“빨리하세요.”
삼촌이 폰을 들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예매도 할 수 있는 삼촌이다. 앱을 미리 깔아뒀으니 한 번은 가볼 생각이었겠지.
뭐 시하랑 내가 어린이집과 일하러 갈 때?
그런 생각이 드니까 웃긴다.
“진짜 3명 예약한다?”
“네~”
시하가 삼촌에게 말한다.
“삼춘. 형아 말 잘 드러. 시하 말 안 드러.”
“밥도 안 주는 네 말을 왜 듣냐.”
“잉잉!”
그렇게 우리는 영화를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시하는 두 번째지만 나는…….
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세볼 수 있는 게 아니다.
***
‘일개미’ 개봉 첫날 51만 스코어를 달성하며 난리가 났다.
이튿날에 100만을 찍는 기염을 토하며 그야말로 성공의 가도를 달렸다.
잘될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잘될 줄은 몰랐다.
이 기세로 쭉 뻗으며 무섭게 관객 수가 불어나는 중이다.
눈 깜빡하면 몇십만이 불어나는 기현상.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숫자들이 눈에 보이니까 너도나도 예매를 하기 시작했다.
황금종려상의 힘이 느껴진다.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화제가 되며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아니, 첫날부터 이미 눈뭉치가 아닌 눈덩이라서 불어나는 속도가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 영화관에 사람이 넘치고 자리도 다 차지되었다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그러게.”
원래 영화관에 사람이 많은 건 알았는데 오늘은 유독 많아 보인다.
삼촌은 사람 많은 걸 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사람 많은 곳 좋아해요? 삼촌이라면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사람 많으면 좋지. 숨기 쉽고 총도 덜 맞고.”
“엑!”
사람 많은 데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상해. 정상적이지가 않아.
삼촌이 말하면 더욱 그럴싸해서 뭔가 무서웠다.
시하도 사람 많은 거 좋나 보다.
“시하도 사람 마나서 조아.”
“넌 왜 좋냐?”
“형아가 손 자바 져. 길 일우면 안 대.”
“어이가 없네.”
아니. 시하의 이유가 더 괜찮게 들리는데요?
암! 사람 많으면 길 잃을 수 있으니 손잡고 걸어야지.
“너 사람 별로 없어도 손잡잖아.”
“차는 위험해. 구래서 어쩔 수 업써.”
뭐 사람이 있건 없건 손잡기도 하지만.
그런데 영화관에 너무 빨리 오긴 했다. 시하가 삼촌을 끌고 빨리 가자고 해서 오긴 했다만.
영화 할 때까지 뭐 하고 있지?
“게임장 가자.”
“게임장이요?”
요즘 영화관이라고 해서 영화관만 달랑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점도 있고 게임장도 있다.
“가자!”
삼촌이 아주 흥미진진해하며 게임장으로 들어간다.
인형 뽑기부터 게임기, 코인 노래방까지 다양하게 들어서 있다.
게임장을 즐겨 가지는 않았지만 안 가본 건 아니라서 대충은 뭐가 있는지 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시하랑 옛날 게임장 체험도 한 것 같네.
이제는 새록새록 추억이 되었다.
“형아. 인형!”
“응. 인형 뽑기네.”
아주 작은 인형뽑기 기계가 주르륵 늘어서 있다.
삼촌이 지폐를 넣어서 동정을 한껏 가지고 온다.
저기요? 대체 얼마나 하시려고 그리 들고 오십니까.
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삼촌을 보았다.
“이때를 위해 동전 지갑도 샀지. 준비성 철저하지?”
“그걸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삼춘. 모야?”
“게임을 하려면 동전이 필요해. 원래 동전은 쌓아놓고 게임하는 거야. 어린애들은 못 하는 거지. 푸하하. 어때? 삼촌 멋있지?”
“!!!”
삼촌이 동전 지갑에 동전을 보여준다.
엄청 많아서 시하가 놀란다.
근데 멋있는 것보다 철없어 보이는 건 왤까?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다른가 보다.
“삼춘. 대다내! 엄청 마나!”
“멋있지?”
“머시써.”
처음으로 삼촌 멋있다고 한 게 동전 많이 들며 신나 하는 삼촌이라니.
뭔가 좀 그래!
“삼춘. 이거! 이거!”
“오. 그래. 어떤 거?”
“저기 펭긴. 펭긴 인형.”
작은 펭귄 인형.
삼촌은 동전을 넣고 크레인을 열심히 움직였다.
“삼춘. 거기야. 거기.”
“어허. 삼촌이 알아서 해. 삼촌이 이거 고수야. 사격도 잘하고 말이야.”
아주 정밀하고 세밀하게 달칵달칵 움직인다.
이게 뭐라고 심각해질 일인가 싶다.
시하도 내 품에 안겨서 열심히 크레인이 움직이는 걸 본다.
이쪽 역시 심각하다.
“여기다!”
삼촌이 버튼을 클릭했다.
크레인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스윽 올라온다.
“???”
“아?”
“응?”
우리는 머리에 물음표 하나씩 달고 있다.
그래. 원래 이 게임이 그렇지 뭐. 근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이게 뭐야! 잡히지도 않아? 어? 거의 뭐 배를 쓰다듬었다가 올라오는데? 어루만지는 거야. 뭐야?”
“왜 안 자바?”
개떡 같은 게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잡고 떨어지는 게 국룰 아니야? 어? 힘도 안 주는데?
삼촌의 표현이 정확한 거 같다.
애완동물 배 쓰다듬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올라오는 건 뭔데?
“보통 이런 건 열에 한 번은 덜컥 잡힌다고 해요.”
“이런 씨! 사기꾼들 아니야!”
전적으로 동감한다.
삼촌은 정말 열에 한 번은 걸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돈을 투입했다.
정말 한 번은 덜컥 걸리며 올라오는데 천장에 톡 하고 닿으니 떨어진다.
“사장 나오라 해! 사장!”
“진정하고 다른 거 해요.”
이 게임장은 인형 뽑기를 하면 안 되는 곳이다. 적어도 3번에 1번은 걸리게 해줘야지.
하염없이 펭귄 인형 배만 10번 어루만져주었다.
“펭긴. 못 나와. 불쌍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어른들의 사정으로 저 펭귄은 나오지 못한 채 박혀있을 것이다.
장담한다. 한 달 뒤에도 저 인형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쒜엣!”
삼촌은 씩씩거리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시하도 삼촌 뒤를 졸졸 따라갔다.
“삼춘. 총 게임 하자. 삼춘 총 잘해.”
“오!”
실제 총은 아니고 장난감 총인데 빨간색 과녁과 파란색 과녁을 노리고 맞추는 게임이었다.
아이들 키에 맞게 화면이 낮게 되어 있어서 시하도 편하게 쏠 수 있었다.
뭐 아래에서 쏴도 괜찮긴 하겠다만.
“한 판에 천원이네. 도둑놈들. 피씨방 가는 게 더 낫겠다.”
“하하하.”
원래 이런 데는 비싼 법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럼 삼촌이 총 솜씨를 보여주지.”
“시하도.”
2인이 할 수 있어서 재밌을 것 같다.
나는 둘이 하는 걸 지켜보자.
어라? 나 뭔가 지금 애 둘을 데리고 게임장 오는 부모 역을 하는 것 같아.
물론 삼촌은 애가 아니다만.
“간다.”
“응!”
알고 보니 점수 대결이었다.
시하는 빨간 과녁을 쏘고 삼촌은 파란 과녁을 쏜다.
서로 다른 과녁을 맞히면 점수가 깎인다.
뿅! 뿅!
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귀여운 소리가 난다. 탕탕 소리라도 넣으라고.
“시하야. 이건 공기총이지. 그러니까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옆으로 서서 쏴야 해.”
“!!!”
“올림픽 안 봐서 잘 모르겠네. 푸하하.”
“아냐. 시하 아라.”
안다면서 삼촌의 폼을 힐끗힐끗 본다.
한 손은 주머니에 한 손은 총에.
“머시써!”
아무래도 삼촌이 쏘는 폼이 멋지긴 하지.
실제로 저렇게 쏘기도 하고.
뿅! 뿅! 뿅! 뿅!
저기 총소리 좀 어떻게 해줬으면 참 멋있었을 텐데 뭔가 진지한 포즈에 소리가 저러니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점수만 봤을 때는 굉장히 고득점이다.
시하도 열심히 삼촌을 따라 한다.
빨간 과녁을 잘 쏘기도 하지만 파란 과녁을 맞히기도 한다.
뭐 둘이 즐거우면 됐지.
뿅뿅 소리만 아니었다면 둘 다 집중하는 모습은 거의 올림픽 사격장이다.
사격 남자 50미터 권총 결승!
한국 대 미국!
최연소 5살 사격 국가대표 이시하 선수가 총을 쏩니다. 점수는 230점! 아주 높은 점수입니다. 하지만 실수를 했는지 마이너스가 되네요. 아쉽습니다.
옆에는 최장수 미국 국가대표 레이먼드 톰슨 선수.
역시 연륜은 어디 가지 않는지 노련한 사격을 합니다. 점수는 400점이 되었네요. 어린 선수 상대로 봐주는 게 없습니다.
“삼춘. 잘해.”
“삼촌이 잘한다고 했지.”
네. 최연소와 최장수의 결승은 대한민국에 아주 불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합니다. 멋진 경기를 펼치고 있어요!
뿅! 뿅!
“삼촌. 좀 봐줘요.”
내가 귓속말을 하자 삼촌이 고개를 젓는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와. 진짜.”
결국, 승리는 삼촌이 거두었다.
[Blue win!]이라는 자막이 떡 하니 나온다.
게임에 진심인 삼촌이었다.
“시하야. 너도 연습하면 삼촌처럼 잘할 수 있어. 아직 어리니까 더 가능성이 있지.”
“정말?”
“응. 정말이지.”
네. 레이먼드 선수. 이시하 선수에게 아직 젊어서 더 엄청난 역량을 줄 것이라고 인터뷰합니다.
아주 훈훈한 기사군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봐주지 않지만 말입니다.
“다음은 뭐 할까?”
“다움은 시하 잘하는 거.”
“어? 너 여기서 잘하는 거 있어?”
그런 게 있었나?
나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