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7화 (407/500)

407화

시사회에 어린이집 아이들이 초대되었다.

보호자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나 그리고 스미스 교수님으로 총 4명이 구성되었다.

“형아. 카메라 마나.”

“응. 그러네.”

기자들도 있는지 시사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아마 평론가도 있고 그렇겠지?

기자들은 따로 시사회를 했는데 여기 왔다는 건 아마 관객들 반응을 기사로 쓰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관객시사회는 소소한 이벤트도 하니까 거기에 관한 기사를 또 쓰겠지.

같은 영화에 대해서라도 자꾸자꾸 새로운 무언가를 취재하고 쓰는 모습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있다.

하긴 한창 관심 있는 영화니까.

아무튼, 자리에 앉으려고 하니까 스태프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어?”

스태프가 아니라 김석현 배우였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다가와서 몰랐다.

“옷을 그렇게 입어도 돼요? 추리닝으로?”

“갈아입어야지.”

“모자도 그렇게 써도 돼요? 머리 망가지는 거 아닌가?”

“잠깐 쓴 건대. 뭘.”

아무래도 우리에게 다가오기 위해 이런 장난을 한 것 같았다.

하여간 재밌는 사람이라니까.

김석현이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영화 끝나고 무대인사 하거든. 혹시 연주랑 시하도 올라올래?”

“아, 잠시만요. 일단 물어보고요.”

스미스 교수님에게 혹시 연주 무대인사 올라올 건지 물어봐달랬다.

연주는 무조건 올라갈 거라고 한다.

나는 시하를 보았다.

사실 시하는 진짜 영화에서 잠깐 나오는 역할인데 올라가야 하나 싶었다.

아니, 그렇잖아. 거의 카메오 수준으로 등장하는걸.

뭔가 배우들이 인사하는 무대에 아역 배우라고 나오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근데 사실 시하가 중요한 역할이기는 해!

또 생각해 보면 시상식에도 같으니 시사회 정도야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면 여기 한국이라는 게 좀 다르긴 하지만.

“시하야. 영화 끝나고 무대에서 인사한다고 하던데 올라갈래?”

“형아는?”

“형아는 안 가지.”

“그럼 시하도 안 갈래.”

옆에서 김석현 배우가 말한다.

“시혁 씨도 올라가면 될 것 같은데요? 관계자잖아요. 번역도 했으니까.”

“오늘 번역이 올라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요.”

“배우들 올라가는 자리에 제가 올라가는 건 조금.”

“부모랑 같이 올라가는 건데요. 뭘.”

시하는 ‘형아랑 가치면 올라갈래!’라며 말한다.

사실 우리는 올라가기 참 그렇지 않니?

“감독님은요?”

“감독님은 당연히 올라가지. 오늘 이야기해 보니까 시혁이랑 시하는 그냥 맘 편히 올라와도 된다고 하던데? 이게 영화 시작 전에 인사였으면 둘 다 모를 텐데 오늘은 영화 끝나고 하는 거니까.”

“아…. 일단 알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김석현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갑작스럽게 훅 다가오는 사람.

뭔가 연기대상 이런 걸 보면 배우들은 하나같이 도도하고 그러던데 이 배우는 그런 게 없다.

뭔가 친근하다.

“그럼 영화 끝나고 보자.”

“네. 그래요.”

김석현 배우가 떠났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먼저 안내가 나오며 영화가 시작됐다.

좌에서 우로 움직이는 카메라 무빙.

티비 리모컨 두 개가 나란히 놓이며 배우가 나온다.

출근하는 길.

차들이 옆으로 쑥쑥 지나가고 지하철도 쭈욱 지나간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바쁜 출근길 풍경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회사가 나온다.

번역 초반에 봤던 기억이 생생해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PF팀이 결성되지.’

그리고 나타나는 악역 2팀 부장.

잠깐 위로 올라오라는 말에 김석현 배우는 따라간다.

담배를 꺼내자 자연스럽게 사원인 김석현 배우가 라이터를 꺼낸다.

치익.

한 모금 깁게 빨며 내뱉으며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 회장님도 유심히 보신다더라. 잘해.”

“네. 잘하겠습니다.”

“원래 조직이란 게 말이야. 함께 가야 하거든.”

“네?”

“그래서 차장, 대리 이런 애들이랑 싹수 있는 애들 도와줘야 해. 밀어주고 끌어주고. 알지?”

“네. 압니다.”

“그러니까 뭔가 진행되면 나한테 보고해.”

“보고요?”

2팀 부장이 김석현을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김석현은 회사에 와서 동기들과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성과에 미친 2팀 부장. 그래도 인맥이 어디에 닿았는지 승진도 잘한다.

거기에 빼먹은 성과도 있다더라.

뭐, 이런 소문들.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보고는 신속, 정확하게 할 줄 압니다.”

“그래. 근데 원래 담배 안 피워?”

“아니요. 피우죠.”

“왜 안 피우고 그리 서 있나 했네. 피워.”

“네.”

담배를 꼬나 쥐고 라이터에 스스로 불을 붙인다.

깊게 한 모금을 빨며 내뱉는 숨에 한숨과 한탄이 섞인다.

2팀 부장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본다.

담배를 끄고 어깨를 두드리며 등을 돌린다.

김석현 배우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그때 2팀장이 돌아본다.

얼굴을 원래 대로 돌린다.

“아, 맞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고. 그 정도 눈치는 있지?”

“제가 연애 감각은 없어도 이런 눈치는 기가 막힙니다.”

“기가 맥힙니까? 내는 기가 찹니더.”

“푸하하!”

“좀 웃겼나?”

“완전요!”

김석현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부장은 뿌듯한 표정으로 다시 등을 돌린다.

그 순간 김석현이 기가 맥힙니까? 내는 기가 찹니더. 하는 입 모양으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푸하하하.”

심각한 분위기일 수도 있지만 간간이 이런 실없는 웃음 포인트를 줘서 관객을 웃긴다.

장면이 바뀐다.

이번에는 3팀장이 나온다.

아까와는 비슷한 제안이지만 그 양상이 다르다. 어느 라인에 탈 건지 고민해 보라는 말을 돌려서 한다.

이야기하다가 전화가 울린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폰은 아니었다.

사원 김석현의 폰도 아니었고.

“아, 미안해요. 잠시만 전화 좀 받을게요.”

3팀장이 또 다른 폰을 꺼낸다.

두 개의 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하나는 회사용. 하나는 가정용.

“응. 우리 딸. 아빠한테는 왜 전화했어요?”

「아빠 보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아빠 언제 와?」

연주의 목소리였다.

“일 끝나면 가지.”

「오늘 일찍 오면 딸기 케이크 사 오면 안 돼?」

“딸기 케이크는 왜?”

「나 오늘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너무 힘들어. 오늘은 칭찬해 주고 싶은 날이야.」

“딸기 케이크로 칭찬하게?”

「응!」

“알겠어. 아빠가 딸기 케이크 사 갈게.”

「평행이 캐릭터 있는 거로.」

“사실 케이크보다는 평행이 캐릭터 갖고 싶은 거 아니야?”

「아, 아닌데.」

“알았어.”

3팀장이 통화를 종료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라고 묻자 ‘다 이야기한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가지.”

이렇게 말하며 장면이 바뀐다.

케이크 사러 가는 장면에서 캐릭터가 꽂힌 케이크를 사는 장면이 나온다.

“이 평행사변형 얼굴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니까.”

3팀장은 평행사변형 캐릭터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렇게 집에 가면서 문을 열자 딸이 반기며 안겨 온다.

“아빠!”

“우리 딸!”

연주가 폭 안기더니 킁킁 냄새를 맡는다.

“아빠! 담배 냄새!”

“응? 냄새나? 아빠 아주 옛날에 폈는데?”

“연주는 아빠가 담배인지 담배가 아빠인지 모르겠어.”

“우와. 우리 연주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아빠가 반성해야겠는걸? 일단 케이크 들고 가 있어. 아빠가 빨리 씻고 올게.”

“알았어. 빨리 와야 해.”

“응.”

아내가 ‘여보 왔어요?’ 하며 정장을 벗겨준다.

서로 대화를 잠깐 하다가 급한 전화가 울린다.

가정용 폰이 아니라 회사용 폰.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재빨리 받는다.

아까와는 다른 양상이다.

급하게 일 전화를 받고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한다.

거실에 있는 연주는 평행이 캐릭터를 이미 케이크에서 뽑아 들고 있다.

“우리도 전화할까? 평행아?”

아빠의 모습을 보고 연주도 재밌게 통화한다.

어른과 아이의 간극을 나타내며 장면이 바뀐다.

‘이렇게 막상 쭉 다시 보니까 또 재밌긴 하네.’

대사 번역하고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고 하면서 뭔가 제대로 풀타임으로 감상을 한 적 없다.

장면 돌려보거나 이래저래 봤다.

알고 있었던 의미들. 노렸던 연출들.

풀타임으로 보니 이렇게 아름답게 엮여 가는구나 싶었다.

영화는 보이는 게 많을수록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다고 하던데 확실히 사실인 듯싶다.

‘끝나가네.’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작중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내고 2팀 부장은 3팀 부장에게 밀려서 승진에 실패한다.

김석현 사원도 프로젝트를 하는 와중에 승진하고 끝나고 나서 또 다른 승진이 예정되어 있다.

라인도 잘 탔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다시 2팀 부장과 담배를 피우는 게 나왔다.

“한 대 피울까?”

“좋죠.”

2팀 부장이 라이터로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김석현에게 라이터를 들이밀며 불을 붙여 준다.

같은 배경에 다른 행동.

“나 회사 그만두고 부산에 가기로 했다. 거기서 새 직장 구하려고.”

“예?”

“다 이야기 끝냈어. 얼마 안 있으면 정리하고 떠날 거다.”

“대체 왜요?”

“3팀장이랑 나랑 입사 동기인 건 아냐?”

“어? 음.”

“넌 모르겠는데 우린 자주 싸웠어. 근데 지금은 못 버티겠더라. 내 위에 그놈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러시군요.”

“이게 무슨 꼴인가 싶기도 하고.”

2팀장이 김석현을 보았다.

“내가 악착같이 올라오려고 한 모습 잘 봤지? 성공하면 다 잘 풀릴 것 같아서 그랬어. 그래서 이렇게 부장까지 달았지. 근데 지금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성공만 좇다가 오히려 놓치는 게 많아.”

“네…….”

“넌 놓치지 말라고. 가족 있으면 소중히 대해줘라. 난 늦었지만, 이제부터 그러려고.”

“알겠습니다.”

“혹시 나한테 맘 상한 거 있으면 용서해 주고. 나, 간다.”

2팀장이 떠나간다.

김석현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의 등에 익살스러운 표정도 짓지도 않고 그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만 본다.

그리고 생각으로 넘어간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 한 이야기도 진실일 수 있겠지만 아마 결정적인 방아쇠는 가족이었겠죠.]

장면이 바뀌고 몇 주 전이 나온다.

2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폰을 본다.

입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폰 속에는 CCTV 장면이 찍혀 있다.

시하가 나온다.

“아빠~ 아빠~ 언제 와? 시하는 여기서 할무니랑 잘 놀고 이써. 할부지는 시하가 노라주고 이써.”

진심으로 간절히 손을 모으며 말한다.

“아빠. 보고 시퍼~ 보고 시퍼~”

2팀장이 소리 없는 울음을 보인다.

부산에 사는 자신의 아들. 시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맡겼다.

어머니께 전화한다.

「어~ 아들. 이 시간에 우짠 일이고?」

“CCTV 영상 보니까 생각나서. 엄마. 나 말이야. 부산으로 내려갈까?”

「어?」

“그렇잖아. 사실 막 서울에 엄마, 아빠 다 살게 하고 싶은데 여기 집값이랑 물가 너무 비싸더라. 애랑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좀 그렇고.”

「와? 회사 일이 너무 힘드나?」

“아니. 떨어져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내가 너무 성공만 바라본 게 아닌가 싶어서. 남 부럽지 않게 서울에서 떵떵거리며 살면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 않은 거 같아.”

「우리야 네가 여기 있으면 좋지. 시하한테도 좋고.」

“나 일단 지금 바로 내려갈 건데 알고 있으세요.”

「힘들구로 지금 내려온다꼬?」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통화하는 모습을 김석현이 바라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래서 그렇게 악착같이 하셨구나.]

카메라 무빙은 좌에서 우로 움직인다.

장면이 바뀐다.

부산으로 내려와서 시하를 껴안는 2팀 부장.

시하가 말한다. ‘아빠. 담배 냄새 안 나!’라고.

2팀 부장이 말한다. ‘이제 안 펴.’라고.

장면이 바뀐다.

집에서 늘 잘하는 3팀 부장 역이 연주를 안는다.

김석현 배우는 연인과 포옹을 한다.

[부장님은 잘 지내고 계실까요?]

[잘 지내신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제가 잘 지내시는 것처럼.]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온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반응은 뜨거웠다.

그리고 불이 켜졌다.

탁!

조감독이 올라와서 진행한다.

“여러분 영화 잘 보셨어요?”

이제 무대인사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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