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한국은 지금 고동수 감독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아서 난리다.
나는 생각보다 화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뉴스에서는 말이다.
너튜브에서는 알음알음 내 얘기가 퍼져나갔다.
다행인 점은 내가 연예인과 달리 신상이 퍼져있지 않아서 결론이 대부분 ‘정말 통역 잘한다’로 끝난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적당히 화제가 되고 잊힐 것 같다. 아마도.
“형아.”
“응?”
“선물 가져가야 해.”
“응. 그렇지.”
오늘 다시 어린이집으로 가는 날이다.
시하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들뜬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돌아올 때 친구들에게 선물 뭐 하지 고민하던 시하였다.
마그넷도 좋고 엽서도 좋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차라리 먹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 과자를 잔뜩 샀다.
LU 과자라는 프랑스 전통 비스킷이었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잘 팔리는 과자라고 한다.
먹어보니 그냥 아는 맛인 것 같았다.
뭐 과자가 그렇지.
“여기 종이가방.”
부피가 있는 만큼 종이가방에 넣었다.
시하를 포함에 어린이집 인원은 10명. 딱 10개의 과자만 사 왔다.
나는 굳이 다른 사람의 기념품을 사 오지 않았다.
들고 갈 짐이 많은 건 또 사양이라.
산 게 있다면 미술관 갔을 때 엽서를 좀 샀다는 거.
부피도 적고 들고 오기도 편해 보여서 골랐다.
엽서의 그림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럼 갈까?”
“응! 삼춘. 시하 어린이집 가따 오께!”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께 습니다!”
삼촌이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 앞으로 배웅해주었다.
귀찮고 누워 있고 싶은 백수 삼촌의 행동이지만 나갈 때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라는 듯 현관 앞에 서 계신다.
“그래. 다녀와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와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앞으로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촌은 우리의 앞에서 이렇게 다녀오라고 말한다.
마치 그냥 인사가 아니라 서로 꼭 무사히 오라는 하나의 약속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기약한 날을 위해 매일매일 약속을 하자고 이런 인사를 하는 문화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네! 다녀올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시하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갔다.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금방 도착했다.
오늘도 힘차게 시작이다.
“시하야. 그럼 형아가 나중에 데리러 올게. 알았지?”
“응!”
“그럼 갈게.”
“형아!”
“응?”
“가따 와!”
“응!”
오랜만에 나도 출근이었다.
***
시하는 쇼핑백을 질질 끌고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샘. 이거 선물이여!”
“와! 선생님 선물도 있는 거야?”
“응! 이거 프랑스 과자라고 해써여. 삼춘이 말했눈데 머그면 프랑스 보인다고 해써여.”
“정말? 그 정도면 거의 요리 만화에서만 나오는 맛 표현 아니니?”
“아? 요리 만화?”
“응. 아무것도 아니야. 고마워. 잘 먹을게.”
시하는 다음으로 원장선생님에게 과자 선물을 주었다.
원장님이 미소를 띠며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장샘. 이거 마시써여.”
“응. 시하도 먹었니?”
“아니여.”
“???”
먹어보지도 않고 맛있다고 말하는 시하였다.
시하는 과자 말고 프랑스에서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어서 굳이 이걸 먹어보지는 않았다.
물론 시혁은 맛을 봤지만 말이다.
“구래도 시하 꺼도 이써여.”
어차피 아이들이 다 같이 맛볼 거기 때문에 시하 과자도 준비했다.
이런 건 친구들과 다 같이 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원장님이 시혁을 좋게 보았다.
전에도 과자를 들고 올 때 생각했지만 그 선물 속에 시하가 먹을 것도 꼭 챙긴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이런 시혁의 배려가 참 좋게만 느껴졌다.
“승준아! 하나야!”
시하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러 간다.
쌍둥이는 시하의 부름에 귀를 쫑긋 세우며 머리를 들었다.
“시하야!”
“시하야!”
어제도 통화한 셋이서 어깨를 얼싸안았다.
하나가 연주를 보고 손짓을 했다.
참여하라는 뜻이다.
연주는 뭔가 저 속에 끼어드는 게 조금 유치하기고, 한편으론 그래도 함께하고 싶다는 갈등이 있었다.
그래도 하나가 불러주니 못 이기는 척 함께 얼싸안았다.
서로 원형으로 말이다.
승준이 말했다.
“자, 다들 엎드리고!”
승준이 힘으로 시하와 하나의 등을 꾸욱 눌렀다.
그렇게 원형으로 자연스럽게 엎드리게 되었다.
“하나, 둘, 셋 하면 파이팅 하는 거야. 알았지?”
“아?”
“오빠. 이거 왜 하는 거야?”
“그러게. 이거 왜 하는 거지?”
하지만 승준은 이런 파이팅을 하고 싶었다.
최근에 축구하면서 아버지와 대학원생들이 축구 경기를 하기 전에 파이팅 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몰라. 빨리 해. 하나, 둘, 셋! 파이팅!”
“파이팅!”
왜 하는지 모르지만 다들 열심히 파이팅을 외친다.
시하는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져서 눈을 깜빡이다가 원래의 목적이 생각났는지 쇼핑백에서 과자를 꺼냈다.
“승준! 이거! 하나랑 연주야. 이거! 선물이야! 프랑스 과자야.”
“우와! 프랑스 과자!”
“우와! 맛있겠다.”
“고마워.”
다들 좋아했다.
시하는 이제 종수에게 갔다.
“어? 이시하. 너 프랑스 갔다고 했지? 나도 나중에 프랑스 갈 거다!”
“아? 종수야. 프랑스 가면 모네랑 마네랑 그림 바야 해.”
“응? 그림?”
“응. 시하 다 바써.”
“너, 너. 프랑스 갔다고 자랑하는 거야?”
“아니. 프랑스 과자 주려고 하는데?”
“어? 어. 고맙다. 근데 나도 프랑스 갈 거다!”
“응! 꼭 가야 해! 서이 번 가야 해!”
“왜 3번이나?”
종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시하가 3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그냥 말했겠구나 싶었다.
“나도 나중에 다른 나라 가서 과자 선물 사줄게. 엄청난 거 봐서 다 이야기해 줄게.”
“아냐. 갠차나.”
“왜!”
“시하 바빠.”
“야!”
시하는 재휘에게 과자를 건넸다.
“고, 고마워. 시하야. 잘 먹을게.”
“응.”
다음은 은우와 윤동.
“푸하하. 프랑스 과자다! 푸하하.”
“고마워.”
두 사람은 여전했다.
아무튼, 이걸로 선물 증정식이 끝났다.
다들 과자를 뜯어서 하나씩 입에 넣어 맛을 봤다.
맛있는지 어린이집이 조용해졌다.
종수가 뭔가 궁금한 게 생겼는지 시하에게 물었다.
“근데 프랑스에서 뭐 했어?”
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은 의문이었다. 앉아서 이야기하면 될 걸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니?
“시하는 그림 바써. 그리고 마싯는 거 머거써. 그림도 그려써.”
“뭐야. 맨날 여기서 하는 거 아니야?”
종수는 어제 전화 통화한 승준과 같은 말을 했다.
“아냐. 달라. 엄청 예쁜 그림도 보고, 비도 마자써. 비 시언해.”
“어? 그렇구나.”
“구리고 칸도 가써. 칸. 감덩님이 상도 바다써.”
“상?”
“황굼졸려상.”
졸지에 황금종려상이 황금이 졸려 하는 상이 되어버렸다.
종수는 상 이름이 뭔가 황당했다.
“황금졸려상이 뭐야?”
“형아가 1등 상이래. 1등.”
“졸려 하는 게? 감독님이 졸려 하셨나?”
“감덩님 하품하는 거 다 바써. 감덩님 잠 와써.”
뭐 시상을 제일 뒤에 받으니 하품 정도야 할 수 있는 거였다.
선생님이 아이들 말을 정정해 주었다.
“시하야. 황금졸려상이 아니라 황금종려상이야.”
“아코!”
시하가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알고 보니 황금종려상이었던 것이다.
형아랑 같이 시상식을 보면서 살짝 졸려 했던 것도 있었다.
영어로도 말하고 프랑스어로도 말하는 걸 들으니 뭐라고 말하는지 못 알아들어서 그저 백색소음처럼 잠이 오게 만들었다.
그래도 형아가 살며시 해석을 해주어서 몇몇 얘기는 알게 됐다.
“시하 프랑스어 아라. 메르시! 메르시!”
승준이 궁금해서 물었다.
“오! 무슨 뜻이야?”
“고마어여.”
“와, 대박! 시하 프랑스어도 한다!”
“군데 시하 이거바께 몰라. 아! 봉쥬르! 이거 아라. 안녕하세여.”
“오! 그거 나도 들어봤어. 봉쥬르!”
애들이 다 같이 봉쥬르와 메르시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고 나서 다들 자기들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고 신났다.
누가 보면 유창하게 대화를 할 줄 아는 줄 알겠다.
“근데 감독님은 상 왜 받은 거야?”
“영화 잘 만들어서!”
“오! 연주야. 너도 그 영화 나왔지 않아?”
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연주는 고동수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걸 알고 있었다.
아빠가 그걸 보자마자 연주에게 말해 줬으니까.
연주도 눈을 동그랗게 떴었다.
비록 부모님이 바빠서 보호자로 프랑스에 같이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쁜 건 기쁜 거였다.
출연한 영화가 잘 만들어져서 상을 받았으니 정말 좋았다.
“나. 시사회 초대받았는데.”
“???”
아이들이 시사회가 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하는 형아가 시사회라는 단어를 쓴 걸 기억해냈다.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그때 영화 보러 간다고 말해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시시해?”
“시시해가 아니라 시사회. 어? 한국에서 영화 처음 볼 사람! 하고 보는 거야.”
“왜?”
“몰라? 이벤트 같은 건가?”
물론 연주도 자세한 건 잘 몰랐다.
선생님이 그 부분을 말해 주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영화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기 전에 재밌는지 보는 거예요. 조금만 모아서 재밌나요? 하고 한번 확인해요.”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니 잘 만든 영화라는 건 분명하다.
물론 그렇다고 할지라도 흥행이 다를 수는 있지만 웬만하면 흥행할 것이다.
무려 황금종려상이지 않은가.
연주가 다시 말했다.
“아! 아무튼, 친구들이랑 다 가도 되냐고 물었어. 근데 다 와도 된대!”
“!!!”
“시하도 친구들이랑 가치 보고 시퍼써!”
아쉽게도 이번에는 연주가 먼저 선수를 쳤다.
선생님이 눈을 껌뻑거렸다.
“그래서 시사회가 언제인데?”
“다다음 날이요”
“뭐?!”
“오후에 한다고 했는데여.”
선생님은 이마를 탁 쳤다.
모레라면 부모님께 얼른 연락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호자로 참여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부모님들이 급하게 시간을 낼 수 없으니 말이다.
“아빠가 선생님한테 말한다 했는데여?”
“어? 아버지가 깜빡하셨나 보네. 아, 잠깐! 시하야. 형아도 오니?”
“아? 형아도 가여.”
“아하. 그렇구나. 거기는 인원을 따로 말하나?”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 선생님이었다.
애들이 초대된 시사회면 기자나 배급사를 위한 언론 배급 시사회가 아니라 관객 시사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티켓도 인원수에 맞춰서 준비해 줘야 하니 미리미리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선생님이 잠시만 통화 좀 할게. 알았지?”
“네!”
선생님이 원장선생님과 눈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끄덕.
갑자기 전화 돌릴 상황이 되어버렸다.
***
시하랑 집으로 오는데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 왜 다 같이 시사회를 간다는 이야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가는 거야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는 했다.
다만 내가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미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또 의도를 이해했으며, 거기에 관한 느낌을 번역에 담았다.
물론 시사회 때는 번역한 게 나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한국이니 당연했다.
오히려 좋은 것 같다. 나에게 포커스가 가는 것이 덜 할 테니까.
그렇잖은가.
해외에 개봉하기 전까지는 누가 번역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거다.
뭔가 어차피 화제가 될 걸 기한 연장되고 있긴 한데.
외국에는 은근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프랑스어 잘한다고 말이다. 거기에 통역사가 통역을 잘하는 건 당연하다는 내 말도 함께.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외국 기자라서 뭐라 항의도 못 하겠다.
그냥 보지 말자. 어차피 한국 사람들은 이런 기사 안 읽겠지.
나도 몰랐으면 했는데 김석현 배우가 기어이 찾아서 내게 링크를 걸어줬다.
영어 할 줄 안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싶다.
“형아. 형아. 시사회 기대대.”
“응. 기대되네.”
시하는 드디어 영화를 보게 되겠지.
사실 시사회 아니더라도 감독님에게 부탁하면 공짜로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영화관에서 보는 게 낫지. 암!
그런 맛이 있으니까.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써여!”
삼촌이 우리를 반겼다.
“어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