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기자단이 황금종려상을 받는 것을 보자마자 환호를 질렀다.
다른 외국 기자단들도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양 그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기자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계적인 영화제인 칸에서 최고의 상을 받다니. 아주아주 자랑스럽다.
고동수 감독이 앞으로 나갔다.
그 뒤를 한국의 젊은 청년이 따랐다.
‘응? 누구지?’
사실 시상식에 들어갈 때도 본 친구였다.
누군지 아무도 몰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각은 저편으로 밀고 노트북에 손을 올렸다.
고동수 감독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적기 위해서였다.
물론 영상을 받아올 거지만 그래도 미리미리 작성해서 올리는 게 좋다.
뉴스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기자를 빠르게 올려서 클릭 수를 확보하는 게 좋다. 현대에 와서 더더욱 그랬다.
단독, 속보. 이런 말 따위를 헤드라인에 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통역사?”
아까 본 그 친구.
고동수 감독의 말에 드디어 통역사인 걸 알았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어찌 되었든 통역하는 와중에 열심히 말을 받아적을 시간이 있겠구나 싶었으니까.
그렇게 받아적고 있는데 유창한 프랑스어가 들린다.
고 감독이 이걸 알고 저 통역사를 섭외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서 말을 들었다.
‘국뽕 제대로 하겠네.’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에 든 것도 난리인데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더 난리일 게 분명하다.
빌보드 1위 찍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니, 그보다 더하다.
‘근데 말이 기네?’
기억해서 받아적는 것도 힘들다.
그럼 통역사는 얼마나 힘들까. 수첩에 메모한다고 해도 모든 말을 받아적을 수 없을 것이다.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하는 자신도 굉장한 속도로 받아적는데 손으로 적는 거야 더 느리고 힘든 게 당연했다.
그렇다면 빈 부분은 암기해야 하는데 저 많은 말을 암기하는 게 가능한가.
“so crazy!”
외국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된 게 긴 문장을 한 단어도 빠짐없이 말한다.
다 적어서 슬쩍 화면을 보니 통역사는 비춰주지 않고 오로지 고동수 감독만 비친다.
어찌 되었건 포커스 받을 주인공이라 뒤에 마이크를 쥐고 있는 청년을 비추지 않는다.
역시 칸.
아무리 놀라워도 해야 할 건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수상 소감이 끝나고 들어가는 모습이 잡혔다.
드디어 다시 뒤따르는 통역사 청년이 보였다.
“응?”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친.”
아까 외국인 기자가 말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다.
그 기자가 긴 문장을 유창하게 프랑스어로 통역하는 것에 놀랐다면 자신은 청년의 손에 수첩과 볼펜 하나 없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주머니 어디에도 볼록한 부분이 없다.
‘그걸 다 외워서 말했다고? 아니, 혹시 안주머니에 넣어둔 건가?’
분명 통역이 끝나고 고동수 감독과 나갈 때 수첩의 흔적조차 없었던 것 같다.
궁금증이 생겨서 주변 프랑스 기자를 찾아서 영어로 물어보았다.
「혹시 저 통역사 프랑스 발음은 좀 괜찮았습니까?」
「괜찮았냐고요? 아니요!」
기자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그럼 그렇지. 우리만 그렇게 유창하게 들렸나 보다. 아무래도 현지 프랑스 사람들은 별로였나 보군.
프랑스 기자가 말을 이었다.
「괜찮았던 정도가 아니에요. 그는 굉장히 프랑스 사람처럼 잘했어요! 심지어 수첩도 안 보이던데 이건 다 즉석에서 외웠다는 말밖에 더 되겠어요? 미친 건 고동수 감독이 처음에 한 말 있잖아요.」
고동수 감독이 처음에 뭐라고 했더라?
「간단히 소감 준비한 게 백지가 되었다고.」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저 소감은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통역사도 즉석에서 말을 듣고 기억했다는 것.
토시 하나 안 빠지고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통역했다는 것.
「더 미친 건 저 친구가 영화 번역도 했다는 사실이죠.」
프랑스 기자는 고동수 감독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 통역사 역시도 보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감탄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기사를 받아쓴 한국 기자도 통역사의 대단함에 기가 찼다.
비록 포커스는 모두 고동수 감독에게 가 있었으나 그에 못지않게 통역사 역시도 대단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프랑스 현지인도 감탄한 통역 실력!
기사로 쓸 국뽕 소재가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이시혁? 좀 알아봐야겠는데?’
그래 봤자 알 수 있는 건 건너건너 듣는 것과 이미 인터넷 세상에서 공개된 별그램 계정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화제성을 차고도 넘쳤다.
***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프랑스도 좋았지만 역시 한국이 더 좋았다.
5월 내내 프랑스에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나라의 문화와 볼거리는 충분히 즐긴 것 같다.
여유로운 여행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물론 칸영화제가 개막한 후에도 정말 재밌었다.
감독님은 재밌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첫 개봉 때는 굳이 가지 않았는데 밤도 너무 늦었고 시하도 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나가기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도 시상식에 참여했으니 그걸로 됐다.
“한국에 오면 통역 안 해도 되는 거겠죠?”
“그럼. 설마 외국어로 질문이 들어오겠어.”
“그쵸?”
황금종려상을 받고 소감만 통역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 뒤로 인터뷰 몇 개를 더 받는 바람에 또 통역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배우들도 다 같이 있어서 전부 내가 통역했다.
실컷 놀고먹은 비용은 모두 이때를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크크큭. 완전 단호박이었지.”
“아, 또 왜 그러세요.”
“웃겨서 그런다.”
김석현 배우도 마찬가지로 고 감독님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요. 시혁이 완전 단호박. 기자가 시혁 씨에게 묻고 싶은 거 있다고 하는데 시혁이가.”
김석현 배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뀐다.
아무래도 그 당시 내 모습을 따라 하는 것 같다.
“No!”
“제가 또 언제 그런 표정으로 했어요.”
“아니. 그랬잖아. 그래서 아, 그래도 하나만 질문받으면 안 됩니까? 이리 물었는데도. 캬아.”
“크흠.”
“저는 오늘 통역사로 왔기 때문에 포커스가 제 쪽으로 가면 안 됩니다.”
“그걸 또 다 들으셨구나.”
“나 이래 봬도 영어 좀 해. 막 그렇게 너처럼 잘하는 건 아니라서 그렇지.”
“이제 그 이야기 그만. 얼마나 자주 하는 거예요.”
“아직 두 번밖에 안 했는데? 크으. 기자가 무시하고 통역 엄청 잘하시던데 그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냐니까.”
“아, 쫌!”
“통역사가 통역을 잘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하고 말하는데 크으! 맞는 말이지. 기자들 전부 웃음 터졌잖아.”
분명 그랬다.
그리고 또 질문이 들어와서 No로 응대했다.
정중하게 이제 배우님들과 감독님에게 물어볼 걸 질문하시라고. 우리 이렇게 인터뷰할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니 기자들이 입맛을 다시며 관심을 돌렸다.
물론 배우들과 감독님들은 내가 무슨 대답을 해 주길 기대하는 눈치이기도 했다.
근데 워낙 단호박이니까 더 재밌게 구경하셨던 것 같다.
아니. 나한테 관심 가지는 거 사양이라고.
안 그래도 설마 황금종려상을 받아서 화제성이 뛰어날 텐데 과도한 관심은 사양이다.
그리고 괜히 이쪽이 포커스 받는 것도 다른 사람이 불쾌할 수 있잖아.
워낙 배우들이 성격이 좋으셔서 그런 사람들은 없긴 하다만.
연예인도 아니고 인기 많다고 돈 많이 들어오는 직업도 아닌데 과한 관심은 곤란했다.
딱 이렇게 끊어주는 게 잘됐다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관심 덜 하겠죠? 다들 유명한 감독님하고 배우님들이니까 그쪽으로 포커스가 가겠죠?”
“꼭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은데?”
“네?”
“아마 이쪽 얘기를 컨텐츠 사용하고 나면 시혁이 너로 넘어갈걸?”
“에이. 설마.”
“아니. 진짜야. 차라리 인터뷰 때 질문 좀 받아주는 게 더 좋았을 수도 있어.”
“엥?”
“통역사가 통역 잘하는 건 당연한 일! 딱 이 대답이 얼마나 화제가 될지 모르겠어?”
“에이. 설마.”
“난 그 대답 듣자마자 아, 이거 기사감이다. 싶던데? 외국에서.”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
뭐 기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기사를 뽑아내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다. 제길. 진짜 그렇다면 프로페셔널하구만.
“심지어 딱 거기까지만 받아주고 안 받았으니 정보를 아예 모르잖아. 호기심이 폭발하는 거지.”
“아이돌 신비주의 컨셉도 아니고.”
“딱 그거야. 통역사 이시혁! 그는 누구인가!”
역시 배우. 기사를 많이 봐서 그런가? 어찌 된 게 클릭해볼 만할 것 같은 헤드라인을 쏙쏙 뽑고 있다.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점에서 좀 무섭다.
“설마 공항에서 제가 기자들에게 붙잡히지는 않겠죠?”
“아, 그건 걱정 마. 일단 감독님이 제일 먼저 붙잡히고, 그다음 배우들도 붙잡히고. 넌 스르륵 빠져나갈 테니까.”
“진짜죠?”
“진짜지. 그리고 얼굴도 별로 안 나왔어. 못 알아봐. 못 알아봐.”
다행히 칸영화제 영상에는 내 얼굴이 많이 잡히지 않았다.
감독님에게 오롯이 포커스를 주었다.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듯이 말이다.
***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감독님과 배우들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마이크 여러 개를 칭칭 감은 무기(?)를 들고 인터뷰를 하셨다.
나와 시하는 그사이에 잘 빠져나왔다.
모자와 후드티를 눌러 썼는데 스태프들도 다 같이 그러고 있어서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휴우.”
“형아. 재미써써.”
“그래? 프랑스 여행 재밌었어?”
“응! 형아랑 가치 이써서 더 재미써!”
“다행이네.”
그때 삼촌이 시하에게 물었다.
“삼촌이랑도 있어서 더 재밌었지?”
“응!”
“어?”
시하가 그렇게 순순히 대답할 줄 몰랐는지 삼촌이 당황했다.
아마 시하가 아니! 하면서 나랑 차별한 발언을 할 거라 생각했겠지.
우리 시하는 기분 좋으면 솔직하게 대답한다.
삼촌이랑 같이 여행하는 것도 정말 즐거웠나 보다.
“군데 형아. 시하는 영화 못 바써.”
“아. 그랬지.”
어쩔 수 없었다.
칸에서 참가한 모든 영화를 보여주고 고 감독님의 영화는 늦게 상영이 시작되었으니까.
그 일정을 알고 있어서 그냥 시하랑 놀았다.
사실 나는 영화를 봤으니까.
번역하려고 돌려 본 게 몇 번인데 또 보는 건 조금 지겹기도 하다.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이나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일로 몇 번이나 봤기 때문에 한 번 더 보는 건 조금 그랬다.
좋은 영화지만 또 보고는 싶지 않은 마음이다. 너무 많이 봐서. 일이었기 때문에.
“아마 한국에서도 시사회를 하니까 그때 보면 되겠다.”
“형아랑 가치?”
“응. 형아랑 같이.”
“친구들도 봐쑤면 조케따.”
“아, 친구들도.”
“응!”
하긴 친구들도 영화를 보면 좋긴 하지.
이제 한국의 개봉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니 관객 스코어도 엄청나겠지.
“형아. 시하는 승준이랑 전화할래.”
“아. 자랑하게?”
“응.”
오랜만에 승준이랑 통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나는 폰을 꺼내서 승준 어머니에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할 수 있다고 하셔서 화상통화로 다시 돌렸다.
「시하야! 안녕!」
「시하야! 안녕!」
쌍둥이들이 시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시하가 열심히 손을 흔든다.
“시하 프랑스 가써.”
「프랑스?」
“응! 애국인 엄청 마나!”
애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겠지.
아, 물론 프랑스 사람들이 애국자이기는 하겠다.
어느 나라든 국뽕이라는 건 통하는 모양이니까.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시하 그러면 프랑스에서 뭐 했어?」
“시하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불러써. 맛있는 거 머거써.”
「우와! 근데 여기서도 하는 거 아니야?」
“마자!”
아니, 뭐. 그렇게 말하면 여기서 하는 일이랑 똑같긴 한데…….
아무튼, 프랑스 갔다고!
프랑스만의 특별한 걸 말해야지 시하야.
그래야 아이들이 우와! 하지!
“어린이집에서 또 이야기해 주께! 바이바이.”
하지만 이시하는 볼일만 간단히 전하고 전화를 끊는다.
대체 왜 전화한 걸까?
아무튼, 시하가 즐거워했으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