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화
칸 영화제가 개막했다.
고동수 감독의 영화 ‘일개미’의 개봉일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붐볐고 기자들도 많이 와 있었다.
한국 기자도 와있었는데 주변에 인터뷰를 땄다.
이번 한국에서 참가하는 고동수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목표다.
다른 감독들의 이야기는 필요 없다.
어차피 한국 사람들은 고동수 감독의 행보에 관심을 가질 뿐 다른 감독의 행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관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다른 곳이 알아서 쓸 것이고 이쪽은 한국인에만 관심이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국뽕 컨텐츠다.
「언제부터 기다리셨나요?」
「아침 9시부터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칸 뤼미에르 극장에는 자주 오십니까?」
「네. 자주 와요.」
고동수 감독의 팬을 찾는 건 쉬웠다.
다들 종이나 박스를 잘라서 글자를 적었는데 ‘worker ant’라 써놓은 사람에게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면 되었다.
한 5~6명 정도 인터뷰를 따면 영상 앞부분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고동수 감독을 좋아하나요?」
「네. 좋아합니다. 팬이에요. ‘소녀의 심장’이라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그때부터 고동수 감독의 영화는 꼭 찾아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인터뷰.
「이번 감독님의 영화가 정말 기대됩니다. 일개미라니. 왠지 엄청 공감 갈 것 같아요!」
그렇게 기자가 카메라맨과 몇몇 인터뷰를 담았다.
만족스러운 장면이었다.
이 정도만 하고 앞으로 영화를 관람하면 되었다.
표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보는 건 언제나 장관이기는 했다.
기자가 카메라맨에게 말했다.
“이번에 고감독님 작품은 어떨 거 같아?”
“글쎄? 언제나처럼 잘하지 않으실까? 얼마나 높은 상을 받으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좋은 상을 수상했으면 좋겠네. 크으. 진짜 기대돼. 배우들도 좋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도 좋은 거 같고.”
“기대되지.”
“근데 번역이 잘돼서 상영되어야 할 텐데.”
“어련히 잘하시려고. 고감독이 영어도 곧잘 하잖아.”
“그건 그렇긴 해.”
그렇게 개봉이 되고 관람객들은 영화를 보았다.
끝나자마자 몇 분 만에 SNS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진짜 최고다! 인생작이야!
-너무 공감되는 이야기인데 코믹하게 풀어내는 게 너무 좋았다!
-생각을 참 많이 하게 하는 느낌이다!
-연출적 소품과 디테일이 많아서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극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관객의 반응과 별개로 수상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게 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감독과 배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작년에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감독과 그 작품에 출연한 배우 한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감독의 출연작들도 굉장한 호응을 얻어서 그냥 평단의 평가만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유명 감독인 아놀드도 이번 칸에 참석해서 황금종려상은 이 감독이 받지 않을까 하는 말도 많았다.
어찌 되었든 결국 심사위원이 각자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가 관건이었다.
“고 감독님이 어디에 묵는다고 했지?”
“글쎄?”
“어디 정보통 없어? 이거 딱 시상식 참석하라는 연락이 오면 바로 잡아채야 하는데.”
“으음. 확실히 수상은 할 것 같지? 어떤 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관객의 반응을 보니 어느 정도 수상을 할 것 같았다. 이 사실을 기자와 카메라맨 모두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연락 좀 해야겠다. 내가 듣기로는 미리 해외 포상으로 여행 왔다던데.”
“이야. 거기까지는 어떻게 들었대?”
“내가 그냥 기자 짬밥이 있는 건 아니거든?”
“어. 그래.”
“아니. 너도 좀 알고 있는 눈치인데?”
“나도 괜히 카메라 짭밥이 있는 건 아니야.”
***
시상식 날.
점심때 고동수 감독님에게 시상식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 말은 곧 수상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다들 환호를 질렀다.
고동수 감독이 속마음을 말했다.
“최대한 뒤에 불렀으면 좋겠다.”
김석현이 두 손을 꼬옥 잡고 하늘을 향해 빌었다.
“뒤에 부를수록 좋은 상이니 제발 앞에 불러주세요.”
“얌마!”
“하하하! 감독님. 농담이에요. 오! 그러면 우리 시혁이가 드디어 통역하는 거야? 대박!”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설마 수상까지 할 줄 몰랐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냥 내가 봤을 때도 굉장히 영화를 잘 만들어서 뭔 상이라도 주지 않을까 싶었다.
“음. 수상 소감이 길어요?”
그래서 그냥 궁금한 걸 물어봤다.
고동수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뭐 길어봤자 얼마나 되겠어. 상마다 수상 소감을 적을 건 아니니까 편한 마음으로 가면 돼. 어차피 최고상을 받는 거 아니면 그렇게 길게 말하지도 못해.”
“아하.”
“그냥 상 받으면 일반적인 인사하고 짧고 굵게 똭!”
“그렇구나.”
김석현 배우가 어깨동무했다.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여기 SNS 좀 봐봐. 번역 칭찬 엄청 한다.”
“얌마! 내가 상 받는 게 재미없는 이야기냐!”
“에이. 상이야 어차피 자주 받으셨잖아요.”
“야!”
나는 웃으며 김석현 배우가 보여준 SNS를 보았다.
캡처를 뜬 거였는데 자기 이름은 엄청 검색한 사진도 많았다.
저건 못 본 척 넘어가 줘야겠지.
내가 배우였어도 내 이름 검색해 봤을 것 같다.
-이번에 번역 매끄럽고 좋았어!
-그것뿐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신조어 같은 것도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
-내가 한국어 좀 아는데 갑자기 들리는 거랑 자막이랑 달라서 엄청 웃겼어. 갑자기 익숙한 하버드대랑 옥스퍼드대가 나와서 와 진짜 친근하게 번역했구나 싶었더라니까?!
-이런 세세한 배려가 너무 좋아!
괜히 칭찬을 받으니 부끄러웠다.
뭐, 욕한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캡처한 것에는 온통 칭찬만 있었다.
“좋네요.”
“그치? 이 맛에 SNS 한다니까.”
“근데 매운맛도 있잖아요. 쓴맛이랑.”
“그건 알아서 필터링해야지.”
뇌 속 필터링인가? 좋은 말만 듣는?
“아무튼, 결국 시상식 가기로 되었네! 이제 너도 준비해야겠다.”
“근데 시상식은 언제 하는데요?”
“6시쯤에는 들어가야 할걸?”
대충 좀 쉬다가 준비해서 가면 될 것 같았다.
드디어 시하에게 맞춤 정장을 입혀볼 때다.
물론 맞췄을 때 한번 입어봤지만 어디 나가질 않았으니까.
“그럼 준비 좀 할게요. 아, 감독님. 대충 소감 같은 거 저에게 미리 말해 주세요.”
“응? 아! 대충 이런 식으로 할 거야.”
그냥 평범하다면 평범한 소감이었다.
한국에서도 들을 수 있는 거.
다른 점이 있다면 외국 감독님들을 언급하며 존경을 표했다는 거?
이 정도면 그냥 시상식에 같이 올라가서 통역해 줘도 문제없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아, 대충 이런 거였구나. 평범하네요.”
“그렇다고 했잖아.”
“그럼 전 올라가서 준비하고 있을게요.”
“그래! 부르면 같이 와.”
“네!”
올라가서 프랑스 말하기 전 입 좀 풀어야겠다.
뭐 이런 일 같은 경우는 긴장이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외국인들 앞에 서는 거라서 혹시 실수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리고 통역사로 왔는데 괜히 발음이 구리다는 소리를 들으면 또 불쾌할 수 있다.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말이다.
“시하야.”
“형아?”
시하는 패드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좋아하는 그림을 놓지 않는 시하다.
여행 왔는데 막 여러 군데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느긋하고 한가하게 지내서 그럴지도 몰랐다.
그림이라는 건 시하에게 재밌는 놀이니까.
“어. 저녁 좀 미리 먹을 거고. 시상식을 해서 옷도 좀 입을 거야.”
“시상식 모야?”
“응? 아! 영화를 참 잘 만들었어요! 정말 잘했어요! 하고 상을 주는 거야.”
“도장도 찌거져?”
참 잘했어요 도장을 칸 영화제에서 감독님들의 손등에 찍어주면 그것도 꽤 파격적인 시상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유서 깊은 3대 영화제의 체면에 그런 것은 허락하지 않겠지.
“도장은 안 찍어주는데 사람들이 와 이 사람 짱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도장을 찍긴 하지.”
“어떠케?”
“이거 방송에 나가거든.”
“!!!”
“아무튼, 옷이 좀 불편할 수도 있는데 슈트를 입어야 할 것 같아. 나비넥타이도.”
사실 정장보다 나비넥타이를 더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다.
“형아랑 가치?!”
“응. 형아랑 같이. 똑같은 거.”
그래. 불편해도 형아랑 같은 거면 대만족이지?
내가 그걸 간과했네.
침대에 흐물흐물하게 누워있는 삼촌이 말했다.
“시하야. 삼촌도 같이인데?”
“삼춘은 갠차나.”
“뭐가 괜찮은데? 뭐가?!”
아무튼, 삼촌은 괜찮은 거 같다.
***
시상식에 참여했다.
레드카펫에 올라가자 플래시가 터진다.
삼촌은 아마 저 안에 있겠지?
경비원으로 잠입하고 있다.
아니, 잠입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나? 그냥 협조를 구해서 들어간 거라고 해야 하나?
어찌 되었든 들어가 있는 건 맞다.
근데 정장 입고 나비넥타이를 입은 시하가 너무 귀엽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건데 이렇게 내가 같이 들어가도 되나 싶다.
저 사람은 대체 뭐지? 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나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저기 2층에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지만 어쩌다 보니 1층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감독님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게 준비 중이다.
“시작한다.”
시상식이 시작되며 상을 받을 감독이 호명되었다.
호명되는 목록에는 고동수 감독의 이름은 없었다.
점점 뒤로 이름을 부르는 게 늦춰지면서 우리도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뭐지? 뭐지? 하면서 어느새 황금종려상만 앞둔 상황이었다.
아놀드 감독도 수상 후보 같은데?
설마 상이 없나?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 심사위원장이 앞으로 나와서 심사 총평을 잠시 말했다.
「매우 훌륭한 영화들이었습니다. 올해는 굉장한 풍년이었어요.」
살며시 고민하며.
「선택하기 굉장히 힘들었지만, 결과는 놀랍게도 만장일치로 한 작품이 선택됐습니다. 올해의 황금종려상은.」
심사위원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worker ant(일개미)!”
와아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 소리가 가득 찼다.
고동수 감독에게서 의외라는 얼굴과 놀라는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힘차게 일어서서 제일 크게 으아아악! 하며 소리를 쳤다.
나도 역시 기립박수를 치면서 일어났다.
시하도 뭔가 대단한 걸 하나 보다 싶어서 따라서 손뼉을 쳤다.
김석현 배우가 외쳤다.
“빨리 나가요!”
고동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갔다.
나 역시도 통역사로 그 뒤를 따라나섰다.
무대 한가운데서 감독님이 상을 받았고 마이크가 있는 쪽으로 갔다.
이제 수상 소감을 말해야 하지만 잠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설마 황금종려상을 받을 줄 몰랐기에 살짝 긴장했다.
이러면 수상 소감이 달라지지 않나?
“merci(감사합니다).”
짝짝짝.
고동수 감독이 확실히 많이 당황했는지 굉장히 길게 말하기 시작했다.
“뒤에 제 통역사가 있긴 한데 설마 황금종려상의 소감을 통역할 줄은 이 친구도 몰랐을 겁니다. 저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여기 오기 전에 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거든요. 아, 뭐 간단히 말할 거니까 너무 긴장은 하지 말고 즐기다 오자. 대충 수상 소감 레퍼토리는 이렇게 할 거다. 이리 말했는데 백지가 되어버렸네요.”
이렇게 길게 끊으시면 참 곤란한데 말이죠.
어쩔 수 없지.
나는 미리 마이크를 받아서 프랑스어로 말을 전달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고동수 감독의 유머러스한 말투와 억양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지금까지 많이 봐왔고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준비를 마쳤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소감이 백지가 됐다는 게 웃겼나 보다.
“프랑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존경하는 감독님들을 이야기하는 건 원래 정했던 수상 소감이라서 편하게 통역을 했다.
이때부터 고동수 감독도 정신을 차렸는지 꽤 안정적이게 문장을 끊으며 잘 말하기 시작했다.
뭐 가끔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긴 했지만.
「평범하고도 공감이 되면서 뭔가 좀 독특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걸 도와준 많은 분이 있습니다. 이한진 촬영감독, 홍서준, 최수영 등등의 아티스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마 여기 있는 통역사에게 맡겼으면 ‘한 명, 한 명 다 호명할 수 없지만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퉁 쳐 버렸겠지.
보통 다 그런다.
그리고 의미 전달도 쉽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다르다.
「물론 여기 통역하고 있는 이시혁 번역가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영화의 좋은 번역을 맡아주셨어요.」
갑자기 나를 지칭해서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저 말고 딴사람 호명 좀 해주세요.
근데 내가 통역뿐 아니라 영화의 번역까지 맡았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무엇이 그리 놀랐는지 잘 모르겠다.
딱 하나 반응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시하였다. 저 멀리서 시하가 허리에 손을 하고 배를 내미는 포즈를 하고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살짝 참아야 했다.
‘우리 형아 대다내!’ 하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프로듀서 대표, 배급사에 대한 감사.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가면서 친구들과 처음 카메라 잡은 일과 꿈을 키웠던 일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이런 상을 받아서 뜻깊고 정말 영광이라는 말로 수상 소감이 마무리됐다.
굉장히 길었지만 나는 유창한 프랑스어로 특유의 유머와 감정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 통역했다.
목소리 톤도 최대한 감독님에게 맞췄다.
마치 성우처럼.
“merci. merci beaucoup.(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독님이 마지막으로 프랑스어를 한 뒤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프랑스 통역이 완전히 끝이 났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최대한 눈에 안 띄었겠지? 감독님에게 포커스가 다 갔을 거야. 응. 카메라 화면도 감독님에게 다 비추고 있었고. 난 뒤에서 마이크만 잡고 있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대단한 착각이었는지 깨닫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