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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화 (403/500)

403화

프랑스에서의 휴식은 참으로 달콤했다.

공원에 돗자리를 들고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해서 피크닉을 갔는데 이렇게 한가하고 힐링이 될 줄 몰랐다.

구름이 둥둥 떠다니며 탁 트인 전경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프랑스에서 사온 애플파이를 시하가 맛있게 먹었다.

“형아! 이거 마시써. 어서 머거바!”

“응. 아아~”

“아아~”

한입 크게 먹으려고 입을 벌리는데 시하의 손이 휙 틀어지더니 그대로 삼촌의 입에 들어갔다.

한입 크게 베어먹는 모습을 충격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삼춘!”

“음! 맛있네!”

“형아 머거야 하는데!”

“맛있으니까 더 먹고 싶네.”

시하 손에 있는 애플파이를 휙 뺏어서 한입 크게 베어 문다.

시하가 삼촌의 다리를 토닥토닥 때린다.

“이거 형아 꺼야!”

“삼촌 안 챙겨주고 형아만 챙겨줘서 삐졌다! 왜!”

“삼춘 삐져써?”

“아니. 푸흐흐. 시하가 가진 애플파이를 뺏어 먹고 싶었어.”

“잉잉!”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한때다.

이제는 일상이 된 이 풍경이 없으면 섭섭할 지경이다.

피크닉 바구니에 있는 애플파이 한 조각을 꺼냈다.

“시하야. 여기 더 있어.”

“우웅.”

“이거 먹으면 되지.”

나는 시하 손에 쥐여주고 그대로 베어 물었다.

이제는 애플파이가 똑바른 방향에 도착했다.

시하는 자기 손에 있는 파이와 나를 보더니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다.

어찌 되었든 내게 먹여주는 데 성공했으니 기분이 나아졌나 보다.

그 모습을 본 삼촌은 뭔가 또 없나? 하면서 기웃거리는 모습이다.

틈만 나면 놀려먹으려 하다니.

“삼촌. 이제 뭐 없어요.”

“그러네.”

“근데 이렇게 오니까 미술관의 그림 풍경 같지 않아요?”

“아. 그것도 그런 것 같다. 한가하게 즐기고 있는 귀족들의 나들이.”

“뭐 그렇죠.”

“난 적나라하게 짐승 같은 귀족들의 모습을 그려 비판한 그림이 생각나는걸.”

“여기서 그걸 떠올린다고요? 모네 같은 풍경 그림이 아니라?”

“그 당시 그렇게 그렸으면 귀족들에게 미움을 받았을 텐데 대단하지.”

“하여간.”

그때 시하도 뭔가 생각났는지 대화에 참여했다.

“형아. 시하 기차 생각나. 기차. 빛이 반짝반짝해.”

“응. 그런 그림도 있었지.”

“시하가 다 마쳐. 시하 다 아라.”

“응. 진짜 다 알았지.”

설마 작가들 그림을 다 맞출 수 있을지 몰랐다.

물론 몇 점 같이 묶여 있었지만 금방 다른 사람 그림도 있어서 맞추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빠르게 붓을 터치한 그림, 넓게 파스텔톤으로 터치한 그림.

그런 특징들을 말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눈으로 그걸 구분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림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미술관에 가서 이런 걸 간단히 즐기는 정도만 느꼈다.

그 이상의 무언가 확 대단하다거나 감성을 건드린다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좋은 영화를 보면 감동은 하지만 명화를 봤을 때 감동하지는 않았다.

그걸 볼 때 어쩌면 나는 완전히 그림이라는 걸 즐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음.’

솔직히 어릴 때 미술관 같은 곳을 가봤어야지. 사실 박물관이나 미술관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뮤지컬, 그리고 여러 공연을 가는 걸 사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어릴 때 그랬다.

용돈 모아둔 거로 문제집 하나 사려고 하면 왜 이렇게 비싼지 이해를 못 했다.

국영수 세 개만 사도 3만 원이 넘고 과학 사회 같은 걸 사려면 5만 원이 훌쩍 넘는다.

어리광부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괜히 문제집 사야 한다고 돈 달라고 말을 꺼내는 것도 참으로 어려웠다.

몇몇 친구들은 문제집 사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띵가띵가 놀러 다니는 걸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뭔가 부럽기도 했다.

“어릴 때 아빠가 억지로 참 많이 끌고 갔는데.”

내 말을 들은 삼촌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게 일조한 삼촌이었다.

“핑계들이 하나같이 억지였는데 막상 가니 시혁이 너 좋아했잖아.”

“아, 아니거든요.”

“아직도 그게 부끄러워?”

“괜한 고집을 부렸다고는 생각해요. 거기에 대해서 고맙기도 하고.”

“그치? 나 참. 장혁인 하다못해 레퍼토리가 잘 바뀌지도 않았어. 별 핑계를 하도 써먹어서.”

“그랬죠.”

“이런 데 소풍 오는 것도 그래. 나가서 힐링하러 가자고 하면 시혁이 너는 나가서 먹으면 돈 드니까 도시락 싸가야 한다고.”

“크흠.”

“왜 미리 말 안 하고 당일에 가자고 하냐고 장혁을 혼냈지.”

“혼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김밥 싸가면 얼마나 좋냐고. 그리고 밥 남으면 나중에 집에서 또 먹거리로 써먹을 수 있다고. 그런 짠돌이가 없어요.”

“아. 해 먹는 게 더 싸잖아요.”

“노동력을 제외하면 싼 거지.”

그 말은 참 부정할 수가 없네.

그래서 아버지가 댄 핑계가 뭐였더라?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널 들쳐메고 밖으로 나갔지.”

“아. 맞다. 그때 아버지가 제 신발 들고 쫄래쫄래 쫓아왔죠.”

평소 아버지는 내 편인데 이럴 때만 삼촌과 한통속이 되어서 나를 밖으로 끌고 나왔다.

“형아. 삼촌한테 들려써?!”

“응. 어릴 때.”

“정말?”

“응. 근데 시하는 모르는 이야기라 재미없지?”

“아냐. 재미써!”

“그래?”

“형아 이야기 다 재미써. 형아가 밥 먹는 이야기도 재미써.”

밥 먹는 이야기는 안 했는데?

뭐 내가 밥알을 하나하나 먹었다는 이야기를 해도 재밌게 들린다는 거지?

어마어마한 형아 보정이 들어가 있구나.

진짜 재밌나 볼까?

“형아가 그래서 밖에서 비싼 밥을 먹었는데 아껴먹어야지 싶어서 한 알씩 열심히 먹었어. 그러면 오래 먹을 수 있잖아. 그치?”

“마자!”

“그런데 너무 아까운 거야. 그래서 나중에 먹으려고 밥알을 입가에 좀 묻혀뒀어.”

“대다내! 형아 천재야!”

“이런 이야기도 재밌어?”

“재미써. 형아가 제일 재미써!”

그때 삼촌이 말했다.

“삼촌도 시혁이랑 같이 비싼 밥을 먹었는데 아껴먹으려고 반찬을 조금씩 잘라서 천천히 먹었어.”

“응.”

“그런데 너무 빨리 사라지니 아까운 거야. 그래서 나중에 먹으려고 입가에 양념 좀 묻혔어.”

“응.”

“어때? 삼촌 이야기도 재밌지?”

“아냐. 재미업써.”

“야! 시혁이랑 삼촌이랑 했던 이야기가 뭐가 달라? 비슷한 이야기잖아!”

시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렇게 말했다.

“삼춘. 샘이 말해써.”

“뭘?”

“누가 말하는지 중요하대.”

“사람들은 그걸 차별이라고 불러.”

“아냐. 승준이 말하면 재밌눈데 종수가 말하면 재미업써.”

갑자기 종수 소환.

종수야. 넌 여기서도 고통받는구나.

하긴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웃기기도 하고 안 웃기기도 한다.

특유의 유머는 그 사람만이 고유하게 녹여낼 수 있다.

근데 나 엄청 막 재밌게 이야기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막 비교될 정도로?

“어이가 없네.”

“삼춘. 딴 거 해바.”

“사실 밥 세 공기 먹었다. 됐냐!”

“재미써!”

“???”

“재미써!”

“대체 왜?”

“서이 먹었자나.”

“???”

세 공기 먹어서 재밌는 건가.

3이라는 숫자는 대체…….

“양념도 나중에 먹으려고 세 번 얼굴에 묻혔어.”

“삼춘. 재미업써.”

“이건 왜!”

나도 삼촌 따라 말했다.

“양념 서이 번 묻혀서 형아가 닦아줬지.”

“정말?! 형아 대다내! 재미써!”

“???”

삼촌이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하는 눈으로 시하를 보았다.

음. 이번에는 시하가 이겼구나. 애플파이의 원한이 이렇게 돌아온다.

“안 되겠다!”

“???”

삼촌이 피크닉 가방을 들고 저 멀리 뛰어간다.

“이거 나 혼자 저기서 다 먹고 올 거다!”

“안 대!”

“으하하하.”

“잉잉!”

너무 멀리 간 삼촌을 따라가지 못하고 시하는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 빨리 들고 와요. 안 그러면 호텔 방에 안 들여보내 줄 거예요!”

“야! 치사하게!”

그렇게 말하며 삼촌이 피크닉 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온다.

그 모습을 보며 허리에 손을 하고 시하가 배를 쭈욱 내민다.

“우리 형아야!”

“뭔데 자랑스러워하냐?”

삼촌이 어이없다는 표정.

평화로운 피크닉의 한때였다.

***

오늘은 어디 나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밖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어디 가고 싶지 않은데 시하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형아. 비 와.”

“응.”

“나가자!”

전에도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나간 적이 있었지.

그때 서수현의 개구리 우산을 본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개굴 누나라고 불렸었나?

“우산 없는데.”

“갠차나! 물 조아!”

사실 비가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물이 좋은 거지?

아이들은 왜 그렇게 물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삼촌은 나가기도 싫은지 침대에 누워있다.

“삼춘. 일나. 일나. 나가자.”

“아. 비 오는데 어딜 나가. 괜히 나갔다가 감기 걸린다?”

“아냐. 갠차나. 비 조금 와.”

삼촌이 고개를 슬쩍 들어서 밖을 바라보았다.

“에이. 많이 오네.”

“아닌데?”

“저 정도면 많이 오지.”

“구럼 한 방울이면?”

“많이 오네!”

“삼춘! 일나! 일나!”

한 방울 떨어지는데 많이 오는 건 조금 그렇지.

아무래도 시하는 삼촌이 핑계 대는 걸 알았나 보다.

“아. 비 올 때 총기 들고 가면 나중에 손질하기 좀 그런데.”

총기는 꼭 가지고 가려고 했군요.

삼촌. 누가 보면 저희 완전 유명인이라 노리는 사람이 있는 줄 알겠어요.

진짜 유명인은 잘만 돌아다니고 있는데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

아니지. 나가기 싫어서 말하는 핑계죠?

“나 비 싫은데. 넌 왜 비 좋아하냐.”

“시하는 비 조아. 소리가 재미써.”

“어?”

“구리고 예뻐.”

“예쁘냐?”

“예뻐.”

“어휴.”

삼촌이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자고 한다.

“우산 없는데요.”

“프랑스라면 우산을 쓰지 않지! 우비는 입는다.”

나가 보니 사람들이 그냥 비를 맞고 간다.

아니. 이 정도 비면 그냥 맞는 거였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신기하다.

우비를 입은 사람도 있긴 했다. 적어 보이지만.

“형아. 비.”

“응. 그러네.”

가끔 여행 오면 사람들이 안 해본 걸 한다고 하잖아. 뭐, 여기 다들 맞고 다니니까 그렇게 막 이상해 보이지 않다.

그리고 가져온 슬리퍼를 신었다.

슬리퍼는 젖어도 된다. 옷은 좀 젖겠지만.

“갈까?”

“응!”

부슬부슬.

비를 맞는데 꽤 괜찮다. 내 머리는 과연 괜찮을까 생각하지 말자.

시하도 즐거운지 찰박찰박 물소리를 내며 걷는다.

“다들 후드는 입네요.”

비가 잠깐 올 걸 아는지 후드 입은 사람들도 꽤 있다.

바로 쓰면서 아무렇지 않게 걷는다.

유럽권은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고 듣긴 했는데 이렇게 직접 와서 보는 건 처음이다.

아버지는 이런 풍경을 꽤 봐왔을까?

“근데 삼촌은 왜 우산을 쓰고 계실까?”

“총기 사수. 총기.”

“고놈의 총기.”

오히려 우산 쓰고 있는 삼촌이 이 풍경에 이질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아주 새까만 검은색 우산이다.

어디 조직에서 나오셨습니까?

“형아. 이거 바바!”

“응. 뭐?”

시하가 물에 젖은 손을 내민다.

뭘 보라는 걸까?

“비가 시하 손에 탬버린 쳐.”

“푸흡. 그러네.”

토독토독 탬버린을 치네.

삼촌이 앞에서 우산을 들고 말했다.

“삼촌 우산은 드럼 치고 있는데.”

“드럼 모야?”

“밴드 못 봤어? 여기 북이랑 두두두 치고 챙! 하고 또 치고.”

“시하 바써!”

시하가 드럼을 떠올렸나 보다.

드럼을 반복적으로 말하며 열심히 외운다.

“저기 다른 사람도 우산 쓰네. 드럼이 많다.”

사람들 많은 공간에 오자 우산 쓰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안 쓴 사람도 많았지만.

우산이 많이 보이니 시하가 동요를 부른다.

“이슬비 내리는~ 이런 아지메~”

시하야. ‘이른 아침에’겠지…….

“우산 서이 나라님~ 걸어갑니다~”

우산 셋이 나란히.

“파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이번에는 정확했다.

“춉! 짜잔! 학교 길에~ 우산 서이 가~”

‘좁다란’인데 갑자기 춉을 짜잔 하고 먹이는 시하였다.

“이마를 아코! 하고 걸어갑니다!”

이마를 아코 하는 건 너밖에 없어…….

삼촌이 시하의 노래를 듣다가 말했다.

“뭔 노래가 저래?”

삼촌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노래를 곱씹어보는 것 같다.

삼촌. 저거 진짜 가사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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