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5월 초.
프랑스 여행을 가기로 했다.
비행기 비용과 숙소 비용은 제작사가 부담한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충분히 즐기기 위한 휴식 겸 앞으로 칸 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한 여행이다.
스케줄이 있는 배우는 칸 영화제가 하기 전에 온다는 모양이다.
“시하야. 오랜만에 비행기 탄다. 그치?”
“시하 비행기 타는 거 조아. 재미써.”
“창문 자리던데 시하 또 하늘 볼 거야?”
“시하 하늘 볼래!”
전에 푸른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을 본 게 참 좋았나 보다.
나도 그런 게 참 좋다. 매일 볼 수 없는 풍경이지 않은가.
한 번 봤다고 지루해지는 풍경이 아니었다.
“삼춘. 그거 아라?”
“응?”
삼촌이 귀를 파며 하품을 한다.
비행기 안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줄지어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뭘?”
“비행기에 신발 벗고 타.”
“아, 정말?”
“신발 신고 타면 안 댄대.”
전에 백동환이 거짓말했던 그 내용이었다.
근데 시하야. 삼촌은 비행기 많이 타봐서 그런 거 안 속아.
삼촌이 다 알겠다면서 피식 웃는다.
“어? 정말? 그럼 시하가 먼저 탈 때 신발 벗고 타겠네?”
“아? 아냐. 삼춘 먼저 타.”
“아니야. 이런 건 시하가 먼저 타야지. 삼촌이 먼저 타면 되겠어?”
서로 먼저 안 타려고 눈치싸움을 시작한다.
아주 양보하는 모습이 보기 좋을지 모르겠지만 먼저 들어가는 쪽에서 신발을 벗어야 할 것이다.
가면서도 이런 식의 치열한 접점을 볼 수 있다니, 엄청나다.
“삼춘이 먼저 타. 갠차나.”
“아니야. 시하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면 삼촌이 따라 할게.”
“안 대.”
“왜? 사실은 신발 벗고 안 타는 거라서?”
“!!!”
“큭큭. 삼촌이 외국인인데 비행기 한 번도 안 타봤을까 봐?”
“삼춘 다 알고 이써써?”
“그럼 다 알지.”
“!!!”
시하는 삼촌이 안 속았다는 걸 알았는지 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어떻게든 삼촌을 한 번 속이고 싶나 보다.
“삼춘. 비행기 날 때 입 벌리면 안 댄대.”
“왜?”
“입에 날파리 드러가.”
“그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름대로 확률이 있군.
선택지를 잘 골랐다. 시하의 공격이 성공적으로 먹혔다. 공격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종결되지 않았다.
“그럼 그거 알아?”
“모가?”
“비행기에서 방귀를 뿡뿡 뀌어도 옆에 복도에 있는 좌석은 냄새를 못 맡는데.”
“아?”
마침 비행기 표를 확인하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간다.
“거짓말!”
“진짠데? 저기 복도로 걸어갈 수 있는 길 보이지?”
“웅.”
“공기가 이렇게 순환해서. 아니지. 둥글게 움직여서 이쪽으로 다 빠져나가거든.”
“정말?!”
“그럼. 진짜지. 그래서 옆자리는 방귀 냄새 맡을 수도 있는데 다른 자리는 시하가 방귀를 뽕뽕 뀌어도 못 맡아.”
“!!!”
비행기에서 방귀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어서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독한 방귀면 그 반경에 있는 사람들이 냄새를 한 번씩 다 맡지 않을까 싶은데.
“나중에 방귀 실컷 뀌어봐. 그러면 삼촌 말이 거짓말인지 알 수 있어.”
“!!!”
시하는 저 말이 진짠가?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아. 진짜야?”
“시하는 방귀 뽕뽕 뀌어도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없어.”
“정말?!”
“응. 왜냐면 시하는 방귀 냄새 안 나거든. 그래서 옆자리 사람들도 못 맡아.”
“정말?!”
삼촌이 옆에서 그럴 리가 있냐. 너 방귀 냄새 다 난다. 뭐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
근데 방귀 얘기를 계속해야 하나?
우리 시하는 방귀 냄새도 안 난다고!
아이돌의 금기어처럼 화장실도 안 간다!
아무튼, 그래!
“구럼 삼촌. 시하가 나중에 삼춘한테 방구 날리께. 냄새나는지 확인해바. 알아찌?”
“내가 왜?”
“삼춘이 거짓말했는지 아라야지.”
“헐?”
아, 이거 삼촌이 괜히 시하를 놀리려다가 스스로 목 조르는 형국이 되었는데?
졸지에 시하의 방귀 냄새를 맡게 되었다.
삼촌이 콜록콜록, 하고 기침을 한다.
“아. 삼촌 감기인가 봐. 코가 막혔네. 냄새가 안 나.”
“삼춘. 그럼 시하가 가까이서 엉덩이 내미께.”
“얼굴에?”
“마자.”
“지독한 녀석.”
방귀가 지독하다는 건지 아니면 끈질김이 지독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여간 이번에는 시하가 이겼다.
그러기에 누가 방귀로 놀리랍니까.
***
프랑스에 도착하자 호텔로 향했다. 짐을 풀고 고감독에게 갔더니 자유롭게 놀아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들 어디 구경 가거나 그러지 않냐고 물었는데 오늘은 일단 쉬엄쉬엄 호텔에서 쉴 거라고 한다.
주변이나 조금 돌아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삼촌. 우리는 어떻게 할래요?”
“좀 쉬다가 저녁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지금 몇 시예요?”
“프랑스 시각으로 오후 5시.”
“한국은 12시고. 밤이네.”
“사실 잠잘 시간이지.”
나는 시하를 보았다.
비행기에 오래 있었던 것도 있고 잠을 자서 그런지 눈이 말똥말똥했다.
나 역시도 그렇다.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일단 오늘은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다.
“맛있는 게 뭐가 있으려나.”
“햄버거 먹을래?”
“예? 햄버거요?”
시하가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햄버거를 먹고 싶은 모양이다.
“햄버거?”
“응. 프랑스 햄버거겠지. 뭐 다를까 싶지만.”
“프랑스 햄버거?!”
“응.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그냥 맛있는 햄버거 느낌이겠지.
옆에 있는 삼촌이 프랑스라면 당연히 [스테이크 앤 셰이크]라는 햄버거집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대충 정리하고 근처에 햄버거집을 찾았다.
생각해 보니 여기 메이커는 미국에서 유명하지 않나?
“여기 프랑스 햄버거집은 아니지 않나요?”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프랑스 햄버거집 가자고 했어?”
“???”
확실히 프랑스라면 당연히 여기 와야 한다고 했을 뿐 프랑스 햄버거집이라는 소리는 없었다.
아니, 근데 뭔가 좀 그런데.
약간 그거 있잖아.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행 왔는데 뭐 먹을까 보다가 롯*리아가 있는 거야. 지금 그냥 무난하게 거기 가는 느낌?
특히 삼촌은 미국인인데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삼촌은 여기 괜찮아요? 프랑스까지 왔는데?”
“여기 맛집이래. 프랑스 사람들도 자주 온대.”
“아니. 그거야. 햄버거집인데 자주 안 오면 장사 접어야죠.”
“여기 괜찮아.”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긴다.
“형아. 프랑스 햄버거!”
“으응.”
나는 차마 시하에게 ‘여기 사실 미국에서 유명한 햄버거 체인점이야. 아마 프랑스랑은 상관없을 거야.’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 뭐라고 할까. 해외에서 맥*날드 먹으러 가는 상황이라고 하면 이해할까?
뭔가 복잡한 마음으로 햄버거를 주문하려고 줄을 섰다.
확실히 맛집인가 보다. 줄까지 서야 하고.
“형아. 여기 띡띡이 업써?”
“응. 없네.”
아마 시하는 키오스크를 말하는 모양이다.
대신 진동벨은 있구나.
다들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아가는 게 보였다.
어느새 우리 차례다.
대충 내가 정하면 되겠지.
「이거 하나 세트로 주시고. 셰이크도 주세요. 혹시 추천하는 메뉴 있을까요?」
「와. 발음이 너무 좋으세요.」
「제가 통역사라.」
「아하. 추천하는 메뉴는 이거요. 이거 두 개가 요새 이게 제일 잘 나가요.」
「그럼 그거 하나씩 주세요.」
「셰이크는 뭐로 해 드릴까요?」
「일단 밀크셰이크에 딸기 하나랑 바닐라 하나로 주세요.」
사실 햄버거보다는 그냥 셰이크가 기대됐다.
진동이 울리고 햄버거를 받아갔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음식에 장난은 치지 않았겠지?
그냥 삼촌 따라오느라 인종차별 식당인지 확인을 안 했다.
다음에는 꼭 해야지.
“일단 형아가 먼저 먹어볼게.”
맛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음식을 매우 짜게 하거나 그런 것도 없었고.
어쩌면 같이 주문한 삼촌이 외국인이고 시하가 어린아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가게는 그런 차별이 없거나.
점원분이 친절하게 주문을 받았으니 그럴 일은 없으려나. 그리고 체인점이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겠네.
“맛있다. 시하야. 이거 먹자.”
“시하 머글래~!”
시하가 맛있게 한 입 크게 먹었다.
감자튀김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건 딸기 셰이크래.”
“시하 딸기 머글래!”
아주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뭐 햄버거 먹는 프랑스 일상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시하가 발을 동동 구르며 또 한 입 먹는다.
오물오물.
“마시써. 형아도 머거.”
“응. 먹어야지.”
“삼춘. 군데 삼춘은 왜 벌써 그만큼 머거써?”
어느새 삼촌이 손에 든 햄버거가 반이나 사라졌다.
좀 천천히 좀 드세요.
어찌 된 게 한국 사람보다 더 빠른지 모르겠다.
“맛은 느끼고 먹는 거예요? 그냥 삼키는 거 아니고요?”
“아. 맛있네. 너무 맛있어서 벌써 이것밖에 안 남았네.”
삼촌이 셰이크도 쪽쪽 빤다.
아니. 무슨 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셰이크가 반이나 날아가 버렸는데?
“삼촌. 혹시 먹방 너튜버로 전직할 생각은 없어요?”
“난 안 돼. 얼굴 팔리면 안 되는 직업이야.”
“그건 그렇죠.”
그냥 농담한 건데 진지한 대답이 돌아와서 할 말을 잃었다.
삼촌의 반응에 시하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떠카지?”
“응? 왜? 시하야.”
“형아. 삼춘 얼굴 팔리는 거야. 얼굴 뚝 떼서 파라? 싸게 해주께? 팔면 안 대는데.”
“아니. 판다는 게 그런 게 아닌데.”
잘못 알아들은 것도 알아들은 건데 싸게 해준다는 게 웃기다.
아니, 팔면 안 된다면서 싸게 해주께는 왜 들어간 거냐고.
“얼굴 팔린다는 말은 많은 다른 사람들이 내 얼굴을 안다, 라는 뜻이야. 어? 아이돌 같은 사람이지. 아이돌은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잘 알잖아?”
“마자.”
“응. 그런 걸 보고 얼굴 팔린다고 하는 거야. 실제로 얼굴 떼서 팔면 큰일 나지.”
“다행이다. 삼촌 얼굴 업쓰면 달걀귀신 댈 뻔해써.”
달걀귀신이 얼굴이 많이 팔려서 된 거라고 생각했니?
그냥 직독직해하면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발전했다.
얼굴이 달걀로 되어 있어서 달걀귀신이 얼굴 삶으면 어떡하냐는 말은 안 하니까.
삼촌이 어이없는 얼굴로 시하를 보았다.
심지어 손에는 이제 햄버거가 없다.
“얼굴 팔린다는 것도 모르고. 시하 다 모르네.”
“아냐. 시하 다 아라. 삼춘 햄버거 다 머거써.”
“그건 너 말고도 다른 사람도 알겠다.”
“군데 삼춘은 배 안 불러. 시하 다 아라.”
“오올. 그건 다른 사람이 모를 만하네.”
“삼춘 다이어트해야 해서 또 시켜 머그면 안 대.”
“삼촌 살 없어. 여기 복근이 똭 있다고.”
“삼춘. 다이어트는 맨날 하는 거야.”
“어? 틀린 말은 아닌데. 네가 어떻게 아라?”
“하나가 구래써.”
하나한테 다이어트의 지식을 배웠구나.
아마 출처는 하나 어머니겠고.
어쩐지 전에도 다이어트 이야기를 했는데 누구한테 들었나 했더니 하나였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내가 가르쳐주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온다.
그게 조금 신기하다.
아마 나 혼자만 돌보고 했으면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알 수 없었겠지.
“뭔 어린아이가 다이어트 이야기를 하고 있어.”
“하나는 아이돌 댈 꺼래써. 구래서 다이어트야.”
“어릴 때는 다이어트 신경 쓰지 말고 잘 먹는 게 최고야. 자. 너 좋아하는 감자튀김 많이 먹어.”
삼촌이 감자튀김을 집어서 시하의 입에 넣어준다.
시하도 그냥 받아먹는다.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형아. 형아도!”
“야! 인간적으로 내가 먹여줬으면 감자튀김 하나는 나한테 먼저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냐. 형아부터 머거야 해.”
“진짜 너는 한결같이 차별하네.”
“아냐. 삼춘은 형아 다움이야. 시하가 진동벨 주까? 기다려야 해.”
“어이가 없네.”
여전히 시하가 날 먼저 챙기는 건 변함없었지만.
“삼촌. 삼촌은 제가 줄게요.”
나는 감자튀김 집어서 삼촌에게 들이밀었다.
삼촌이 슬쩍 입을 벌리는데 휙 당겨서 못 먹게 했다.
그리고 시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이거, 이거. 시하가 왜 차별하냐고 했더니 다 형에게 배웠구만!”
아닌데요. 제가 시하에게 배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