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7화 (397/500)

397화

[you can be really cool]의 제목으로 영상이 올라왔다.

페페가 캔을 찌그러뜨리는데 그 패턴이 아주 예쁘다.

거기에 관해서 자막이 올라온다.

영상 중간중간에 말이다.

[보통 캔이 찌그러지면 쓰레기라고 생각하거나 못생기고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저는 오히려 그게 멋있다고 보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외부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남들이 툭 던진 작은 조약돌이 우리(can)를 찌그러뜨립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마모되거나 못생겨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그림인 캔이 명암으로 칠해진다.

패턴이 더더욱 두드러지며 멋있게 변한다.

[우리는 그저 아주 멋지게 되고 있을 뿐입니다.]

[눈에는 참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굉장히 멋진 인생의 문양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조약돌을 맞았지만, 사실은 디딤돌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찌그러져도 당신은 정말 멋있습니다.]

[멋져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can은 can이라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죠.]

마지막 그림은 패턴이 나오는 캔을 장식장 안에 넣어져 있는 모습이다.

옆에는 쓰레기통이 있다.

[버릴 수 없다면 오히려 그게 멋지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멋지십니다.]

마지막 자막을 건네며 영상은 마무리되었다.

시청자들의 댓글은 아주 뜨거웠다.

-와! 미쳤다!

-이번 4컷 만화 너무 좋은데???

-나는 처음에 캔을 마실 때하고 캔을 찌그러뜨릴 때 웃었음. 뭔가 귀여워서.

-나도.... 근데 이런 뜻이 있을 줄이야....

-세 번째 그림부터 뒤통수 맞았다....

-패턴 예쁨 ㅎㄷㄷ

다들 첫 번째, 두 번째 그림에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세 번째에는 조금 놀랐다.

자막을 보면서 더 놀랐고.

대망은 네 번째 그림이었다.

-미친…. 쓰레기통하고 아크릴 장식장? 그거 나올 때 개소름 돋음….

-장식장이랑 쓰레기통 두 개만 추가되었는데 연출 미친 듯….

-명확한 의미 전달ㅎㄷㄷ

-근데 시하페페가 우리 보고 멋있대ㅠㅠ

-진짜 위로되는 그림임ㅠㅠ

-매일 애정이 담겨있음…. 어떻게 이런 생각과 의미를 담으며 그리는 거임?

-생각이 따뜻해서 그럼….

-비관적인 나 반성했다….

그리고 여기에 해석가가 등장했다.

[나도 마지막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한번 보았을 때 첫 장면에서 한 번 더 소름이 돋았다.

캔이 찌그러지려면 ‘비어’있어야 한다는 걸.

저 캔은 ‘우리’라고 지칭했으니 비웠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약해져 있다는 걸 상징한다.

자존감 혹은 자신감이 떨어졌다는 말.

그 상태에서 계속 맞으면 당연히 찌그러진다.

하지만 시하페페는 말했다.

‘디딤돌’로 받아들일 때라고.

그렇게 우리는 그 맞는 순간순간이 지나서 텅 비어있지만, 사실은 멋진 패턴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은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야.

우리는 자신은 정말 멋져!

자신감과 자존감이 어디서 생기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멋있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저게 명사인 깡통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이렇게 바뀐다.

너의 캔(당신)은 정말 멋있다.

물론 명사라고 가정했을 때 you can이라는 어법은 맞지 않지만 시하페페는 can을 가지고 말장난을 했으니 그리 틀린 표현이 아니다.

그는 멋있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실은 말이야.

너 정말 멋있어!

그렇다. 우리는 이미 멋진 사람이다.]

여전히 장문의 댓글을 남긴다.

그리고 소름 끼치는 엄청난 해석 능력이다.

사람들의 답글이 달린다.

-이거다!

-와 씨! 해석가 미쳤네ㅋㅋㅋㅋ

-와. 듣다 보니까 진짜 맞네???

-아니, 말장난인데 사실은 말장난 아니라 숨겨진 속뜻이 있었던 거임?

-우리는 이미 멋있다. 캬아! 지렸다 ㅎㄷㄷ

-어떻게 하면 그런 통찰력이 생기는 거임?

시혁은 나중에 해석가의 댓글을 보고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댓글 상단에 고정해 버렸다.

대충 보고 폰을 껐다.

그래서 몰랐다. 이게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해석가의 댓글은 좋아요와 답글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상단 고정의 힘이었고 올바른 해석으로 낙점되어버렸다.

나중에 시혁이 이걸 보고 기겁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냥 그걸 보며 즐기기로 정했다.

***

영상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오랜만에 영상을 올려서 그런지 다들 자주 올려달라고 한다.

사실 뭐 채널을 운영하기는 하지만 이걸 막 그렇게 본격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시하가 그림을 그리면 내가 편집해서 올리는 식이다.

그림을 자주 그리지만 항상 네 컷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고 편집도 그렇게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삼촌이 왔다고 해서 바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언제나 여러 일을 하느라 늘 바쁘다.

그나마 이번 3월은 무언가 착착 정리되는지 느긋하게 일이 풀리는 중이었다.

“시혁이가 오래 남아줘서 다행이야.”

박한수 사장이 흐뭇하게 나를 본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앞에는 번역 일감이 띄워져 있다.

이제는 익숙한 투잡이었다. 처음에는 일을 벌여놓고 어떻게 하냐 싶었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나 보다. 지금은 익숙하다.

그리고 사장님이 배려해 주는 것도 있다.

“아주 일복이 많아.”

“저 이제 그만둬도 돼요?”

“왜?! 왜! 안 돼! 물론 네가 딱 3개월만 하겠다고 했던 건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지금 와서 나가는 건 아깝지 않아? 좀만 더 버티면 1년이야. 퇴직금도 나올 수 있다고!”

“그건 그렇긴 한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 회사도 오래 다니고 있다.

사장님이 바짓가랑이를 잡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여유로울 때 번역일을 해도 되니 회사에 딱 붙어달라는 말에 괜히 정이 들어 뿌리치지 못했다.

하루빨리 외국어 되는 사람 구하라니까 아직도 여유를 부리고 있다.

사실 사장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언제 또 막 써먹을 수 있는 전문적인 애를 키우냐는 것이다.

여긴 대기업도 아니고 심지어 내가 규격들을 다 번역하고 역으로 영어로 번역한 것도 있다.

무궁호 회의 때도 사장님과 같이 가서 의사소통을 도왔다.

혹시 사장님이 없으면 내가 응대를 해주기도 했다.

여기 사장님 아시는 분도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이중삼중으로 둘이 빠져도 안심할 수 있다.

근데 내가 빠지면 그 대응을 못 한다.

“좀만 더! 제발 좀만 더!”

“알았다니까요. 사람 좀 구하세요.”

“내가 안 구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안 구해져서 그렇지. 요즘 애들이 대기업 가고 싶어 하지 이렇게 작은 데 오고 싶어 하나 뭐. 이런 곳이 있는 것도 모를 거야.”

“대충 학교 프로그램이랑 같이 넣으면 되잖아요. 요즘 뭐냐. 시에서 취업? 취업 인재 늘리기? 그거 하잖아요. 강인대에도 넣어봐요. 관심 있는 사람 분명 있을 거예요.”

사장님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방법이 있었냐는 듯한 얼굴이다.

뭐, 거기 빵빵한 기업들이 억지로 참여하긴 한다.

시장이 억지로 TO를 만들었다.

대학생들을 위한 취업 인원 늘리기 대책이라나 뭐라나.

중소기업에서는 인원을 늘리고 싶지 않은데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는 면도 있다.

인건비가 워낙 비싸야지.

그래도 여긴 소기업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한두 명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일단 안전하게 납품하는 거니까.

심지어 VUMAX 한국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있다. 이 작은 회사가.

뭐든 독점이면 돈이 되는 법.

물론 체결류가 VUMAX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네가 눈을 높여놔서 그래. 어? 영어도 하고! 독일어도 하고! 막 다 해! 눈이 너무 높아졌어.”

“눈을 좀 낮추세요. 영어만으로 충분하니까.”

뭐, 내 탓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사는 언제 난대요?”

“무궁호? 올해는 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도 어? 와? 여기 뭐 괜찮을지도? 하고 이력서 넣을지도 모르지.”

“괜찮은 사람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 괜찮은 사람은 여기보다 더 좋은 데 가겠지만.”

“지방 국립대도 괜찮던데.”

“으음. 근데 그런 곳은 으음. 각 시에서 있는 기업을 밀어주지 않을까?”

“그것도 그래요.”

세상 참 쉬운 일은 없는 것 같다.

하여간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여유로웠다. 아마 1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도 여유롭긴 할 거다.

“근데 어떻게 넌 나랑 말하는 중에 손가락이 쉬지 않냐? 신기하네.”

“익숙해서 그래요. 익숙해서.”

창작이 아닌 점도 한몫했다.

만약 글을 쓰는 것이었으면 말하면서 작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여간 있어 주기만 해도 든든해. 혹시 쓰리잡 뛰는 일이 생겨도 여기 딱 붙어있어 주라. 연차에 휴가에 다 갖다 써도 되니까. 하루만 출근해도 되니까.”

“엄청 필사적이시네요. 저 없어도 돌아가잖아요.”

“돌아가지. 돌아가지. 근데 야구에서 누가 부상을 당했어. 백업 멤버가 없네? 이거 어쩔 거야. 어떻게 돌아가.”

“네. 알고 있어요.”

“기사만 나봐라. 사람 터진다.”

“너무 희망 같지 마시고요.”

“넌 너무 현실적이야!”

“그건 사장님도 같은데요. 뭘.”

이렇게 날 붙잡는 것만 봐도 안다.

안 그러면 붙잡을 이유가 없지. 그리고 회사를 차리는 것에도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사람이다.

맨땅에 헤딩을 해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각을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설마 제가 쓰리잡 할 일이 있을까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네가 여기 오래 붙잡혀 있는 것처럼.”

“쩝. 그건 그래요.”

***

퇴근 후 차를 몰아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빵집이 괜히 눈에 밟혔는데 오늘 시하에게 뭔가 빵을 먹이고 싶었다.

나중에 시하를 데리고 빵집으로 가야겠다.

“시하야. 형아 왔어.”

“형아!”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오늘은 미리 나갈 준비를 다 해뒀는지 등에 가방이 있다.

아무래도 다시 방으로 쏙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 잘 놀았어?”

“잘 노라써.”

“오! 그래?”

“응. 승준이랑 하나랑 연주랑 놀고. 종수랑 재휘랑 윤동이랑 은우랑 노라써.”

“대단하네.”

노는 멤버는 전혀 바뀌지 않는구나.

“그럼 갈까?”

“응.”

나는 시하와 선생님께 인사하고 차를 탔다.

운전하면서 시하에게 빵집 갈래? 하고 물었다.

“조아. 시하 빵집 갈래.”

“응. 그럼 빵집 가서 먹고 싶은 거 고르자.”

프랜차이즈점도 좋지만 요즘은 몇 없는 동네빵집을 가게 된다.

이유는 별거 없다.

많이 사면 단팥빵 하나라도 얹어주니까.

프랜차이즈점은 포인트 적립을 해주긴 하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어? 또 오셨네요.”

아주머니가 시하랑 나를 반겨줬다.

우리 형제를 기억하시고 계신다. 뭐 한 번씩 들렀으면 얼굴에 익을 법도 했다.

그렇다고 또 왔다고 할 정도로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시하야. 뭐 먹을래?”

“시하는 으음. 이거! 동글동글빵!”

“롤케익?”

“마자! 롤케익!”

“이게 그렇게 좋아?”

“시하는 우유랑 이거랑 머그면 마시써. 군데 여기 동글동글해서 더 재미써. 기여어.”

뭐 저기 동글동글한 모양이 마음에 드는가 보다.

귀여운 거 하면 시하인데.

귀여운 것끼리 뭐 통하는 거라도 있는 건가?

그런 헛생각을 하며 롤케익 하나를 선택했다.

간식으로 참 좋다.

잘라서 우유랑 먹으면 끝내준다.

“형아. 삼춘 꺼 사야 해.”

“응. 삼촌 거 사야지.”

시하가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고 보니 삼촌이 오고 나서 시하랑 여기 처음 오는 것 같은데?

보통 내가 그냥 10개씩 사 들고 왔었다.

“우웅. 이거 대지 할래. 대지빵.”

돼지 모양 팥빵.

돼지 눈으로 빵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팥이 보였다.

근데 그중에서 아주 못됐게 생긴 눈을 가진 팥빵을 고른다.

“삼춘 달마써.”

“응. 그러게.”

앙마삼촌 닮았네. 눈이 아주 못됐어.

“그럼 형아가 먹을 빵도 골라줄래?”

“아라써.”

어? 저기 잠깐만? 시하야? 어디 가니?

왜 생일 케이크 있는 대로 가?

아무리 그래도 삼촌은 팥빵인데 나는 케이크면 너무 화려하지 않니?

벌써 삼촌이 어떻게 반응할지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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