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종수의 술래로 깡통차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흩어져서 숨었다.
“내가 다 찾을 거야.”
종수는 콧김을 뿜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시하는 은우 빼고 모두를 찾았다. 그러면 자신은 더더욱 잘해야 한다.
특히 시하만은 꼭 잡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게 애들을 찾는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술래잡기할 때 숨을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안다.
“하나, 둘, 셋.”
종수는 아이들을 다 잡을 좋은 수가 있었다.
먼저 놀이터는 가까이 가지 않고 찾으면 되고 어린이집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무언가 올라갈 걸 찾아서 창문을 보면 된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몇몇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도 좋은 걸 준비했다.
주머니에 있는 비닐봉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 비닐을 발에 끼워서 다가가면 나중에 나갈 때 신발을 신으려고 하지 않아도 바로 뛰어갈 수 있다.
그 차이가 아이들이 탈락하는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다.
“열하나, 열둘. 흐흐흐.”
아까 신발을 신느라 시간을 끈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쉬웠다.
하지만 이건 이미 모두 극복했다.
예전에 비가 올 때 엄마랑 같이 어떤 건물에 들어갔는데 발에 끼우는 비닐을 주었다.
종수는 그걸 잘 기억하고 있어서 봉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러면 신발 신고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열다섯, 열여섯.”
종수는 모두를 잡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숫자를 셌다.
한편, 시하와 아이들은 모두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놀이터는 솔직히 너무 위험했다.
쉽게 들킬 수도 있고 미끄럼틀 위에 숨어버리면 달리는 시간도 늦어서 결국 탈락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두 번의 경기에서 차라리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났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 다 가치 숨으까?”
“???”
아이들이 숨으려고 할 때 시하의 말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눈을 껌뻑였다.
연주만이 시하의 말에 무언가 떠올라서 경악한 채 입을 벌렸다.
“시하야. 설마 그렇게 하게?”
“아?”
“와. 대박. 그러면 되겠다.”
아이들이 뭔지 몰라서 뭔데? 뭔데? 하고 있었다.
연주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했다.
“일단 종수가 오면 우리를 발견하겠지?”
끄덕.
“그때 승준이랑 윤동이 종수를 꽉 잡고 있어. 그리고 우리 모두 깡통으로 달리는 거야.”
“!!!”
“모두 다 깡통차기 성공하면 윤동이랑 승준이는 달리기가 빠르니까 빨리 깡통을 차는 거지.”
“!!!”
“아마 시하가 그래서 다 같이 숨자고 한 걸 거야.”
다들 시하를 돌아보았다.
시하는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냥 다 같이 숨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한 제안이었다.
연주가 생각한 작전은 1도 떠올린 적이 없었다.
“다 가치 숨자.”
뭔지 모르겠지만 시하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장소를 정했다.
일단은 다 같이 화장실로 숨기로 했다.
시간도 얼마 안 남아서 빨리 숨어야 했으니까.
우르르 몰려서 숨었다.
종수의 작전이 전부 박살 난 순간이었다.
“쉿.”
아이들이 숨죽이며 종수를 기다렸다.
한동안 종수가 어딜 확인하는지 어린이집에 들어오는 소리도 안 들렸다.
하지만 아이들이 굳이 화장실 문을 열어서 확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종수가 여길 열 테니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끼익.
화장실 문이 열린 순간 승준과 윤동의 눈과 종수의 눈이 딱 마주쳤다.
“우왓!”
종수가 빨리 달려나갔지만 재빠르게 승준과 윤동이 종수를 잡았다.
“야! 이거 뭐야! 반칙이야!”
두 팔을 잡힌 종수가 버둥거렸다.
다른 아이들은 재빨리 신발을 신고 뛰어갔다.
승준이 말했다.
“다들 빨리 가! 빨리!”
시하도 맨 뒤에서 따라가려다가 방향을 틀어 종수에게 다가왔다.
아까 나가면서 종수의 발에 봉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종수야. 신발 벗고 들어와야지.”
“야! 야! 잠깐만!”
봉지도 벗기고 신발도 벗겼다.
시하는 신발 두 켤레를 양손에 들고 신발장에 놓으려다가.
“봉지에 너어야게따.”
종수가 준비한 봉지에 넣어서 그대로 자기 신발을 신고 들고 나갔다.
종수가 뒤에서 외친다.
“그걸 왜 가져가! 야! 이시하! 이 나쁜 놈아!”
“종수야. 겜 끝나면 주께!”
“야! 가져오라고!”
“바이바이.”
시하가 손을 흔들며 깡통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승준이 옆에서 웃음을 흘렸다.
“야. 종수. 신발 없어서 못 나가겠네?”
“이씨!”
설마 자기가 준비한 봉투가 저런 식으로 활용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시하에게 완전 당했다.
“윤동아. 우리도 가자. 종수 신발 없어.”
“어.”
이제 종수를 놓고 그대로 신발 신고 달렸다.
종수는 허탈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 내 작전은 완벽했는데?”
하지만 놀이터에 가도 애들은 없었고, 상자를 끌고 와서 어린이집 창문을 들여다봐도 없었다.
설마 화장실에서 아이들이 한 번에 숨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리고 치사하게 두 사람이 자신의 팔을 잡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분, 분명. 완벽했는데?”
종수는 허망하게 남아있는 봉지 하나만 보았다.
“어째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다.
대체 그 짧은 순간에 누가 이런 못된 작전을 짠 거야!
“종수야.”
“어?”
“다 끝나써. 이거 신발.”
시하가 종수의 신발을 가지고 왔다.
“야! 야! 이시하!”
“종수야. 또 술래야. 종수 하나도 못 자바써.”
“크윽! 으윽! 아악!”
종수가 머리를 헝클였다.
시하는 그런 종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왜 그러지?
***
시하가 집에 와서 깡통차기 한 걸 자랑했다.
아무래도 정말정말 재밌었나 보다.
어른 되면 잘 안 하는 놀이인데 어릴 때 실컷 즐겼으면 좋겠다.
“삼춘. 시하가 깡통차기 해써. 시하가 술래해써서. 진짜 잘해써.”
“오호. 알았으니까 티비 앞에서 가리지 말고 비켜줄래?”
“아냐. 삼춘. 시하 말 들어바.”
“저기 시혁이한테 말해. 시혁이한테.”
“형아는 차에서 다 들어써. 군데 삼춘은 안 들었자나.”
“이거 꼭 들어야 하는 거냐?”
“응. 꼭이야.”
삼촌은 잠시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중에 들을게. 나중에.”
“아냐. 지굼.”
“왜?”
“나중에는 시하가 까머거.”
“어이가 없네.”
“삼춘. 바바. 시하가 망언경 가지고 애들 막 차자써. 그리고 여기가께 하고 여기 안 가써. 삼춘이 자주 해짜나. 그래서 저기 가써.”
“뭔 말이야?”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냐?
삼촌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나 보다.
뭐, 대충 무슨 말인지 감은 잡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 엄청 잘했네. 이제 다 들었지?”
“아냐. 종수도 남아써.”
“너가 술래한 활약상만 들으면 되잖아. 어디까지 말할 거야.”
“종수까지 말하께. 친구들이랑 가치 숨어써. 군데 종수가 와써. 승준이랑 윤동이 자바써. 군데 시하는 종수 신발 빼서 도망쳐써. 종수 구래서 바께 못 나와써.”
“그래. 상대의 무기를 뺏는 건 아주 좋은 전술이야.”
“무기 아닌데? 신발인데?”
“그래. 끝났지?”
삼촌이 벌러덩 소파에 누웠다.
시하가 삼촌을 흔들었다.
“삼춘. 왜 캔처럼 이써.”
“다 들었으니 좀 가만 놔둬주라. 아, 근데 캔처럼은 무슨 말이야?”
“삼춘. 오늘 발로 찬 캔이야. 찌그러져 이써.”
“이거 나 멕이는 거지?”
“아냐. 찌그러지면 머시써.”
“거짓말하고 있네! 나 쭈구리라고 놀리는 거지?!”
“아냐! 진따야!”
“찐따라고?!”
시하야. 발음 조심하자. 진짜라고 잘 발음해놓고 갑자기 발음이 왜 뭉개졌니?
삼촌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작전을 바꿨다.
“삼춘?”
“오늘 시하 말도 들어줬으니 너 삼촌 말도 들어라. 오늘 내가 뭘 봤냐면 말이야.”
“모 바써?”
아무래도 삼촌과 다르게 시하는 잘 들어주려나 보다.
역시 내 동생이다.
근데 조금 불안하긴 하다. 삼촌 표정이 딱 장난칠 때의 표정이었으니까.
“오늘은 드라마를 봤지. 펭귄이 나왔는데.”
“!!!”
“펭귄이 죽었어.”
“?!?!?!”
“근데 펭귄이 살았네?”
“정말?”
“그리고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끝.”
“왜? 왜? 펭긴이 왜?”
“펭귄이 찌그러진 캔처럼 차였거든. 못생겨서 그래.”
“아냐. 펭긴 기여어!”
시하의 말을 무시하고 삼촌은 다음 이야기를 한다.
“펭귄이 또 나왔는데 또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났어.”
보통 이야기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데 삼촌은 계속 시하를 놀리느라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맺음을 맺었다.
시하가 이제 듣기 싫어졌는지 몸을 돌려 딴 데 가려고 했다.
삼촌이 그런 시하의 어깨를 잡고 돌렸다.
“나져! 안 들을래.”
“삼촌이 이번에 예능을 봤는데 펭귄이 나왔네?”
“안 들어. 안 들어.”
“근데 예능에서 펭귄이 재미없다고 방송을 이제 못 나온대. 끝.”
“나져!”
“으흐흐. 또 뭐 봤는지 또 들어라.”
“잉잉!”
결국, 시하에게 펭귄이 불행하게 살고, 또 방송에서 하차하고, 아이돌 멤버도 못 되고, 회사에 짤리고.
뭐 그런 걸 한참을 말한 뒤에야 시하를 놓아줬다.
“삼춘. 앙마야. 앙마.”
“하하하! 이제 삼촌 말 내일도 들어라.”
“안 들어!”
“삼촌은 또 펭귄 보고 시하에게 말해 줘야지~”
“잉잉!”
시하가 삼촌의 다리를 주먹으로 토닥토닥 때렸다.
삼촌은 그걸 보며 어이구 시원하다~ 하고 또 놀린다.
정말 어떻게 다양하게 놀릴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사실 일할 때도 저렇게 놀리면서 사람 복장 터지게 한 건 아니지?
“삼춘. 시하 바빠. 갈 거야.”
“나도 바쁘다!”
“삼춘 맨날 놀면서.”
“노는 게 제일 바빠! 시하도 그렇잖아.”
“삼춘. 시하는 그림 그려서 너튜브 해야 해. 일하고 이써. 삼촌이랑 달라.”
“그거 형아가 다 편집해 주는 거잖아. 너는 그냥 재미로 그림만 그리고.”
“삼춘. 형아는 일하는 게 아니야.”
“뭔 소리야?”
시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배를 쭈욱 내밀었다.
아주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한다.
“시하랑 놀아주는 거야!”
“???”
“형아 이거 하는 거 조아해.”
“???”
“이제 시하 바빠. 바이바이.”
시하가 방에 쏙 들어가더니 패드로 그림을 그린다.
오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나 보다.
삼촌은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만 돌려 시하를 보았다.
***
시하는 오늘 있었던 캔들을 떠올렸다.
깡, 하고 소리가 나며 구겨지는 캔.
아이들이 찌그러져서 못생겨졌다고 하지만 시하는 그 캔들이 오히려 멋있다고 생각했다.
삼촌에게 한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구겨진 캔들이 보여주는 문양들.
접히는 부분이 대각선으로 새겨져 있는 모습이 또 멋지기도 했다.
빛이 내리쬐면 빛나는 부분.
움푹 들어간 표면 아래에 그림자가 지는 부분.
명암의 예쁨이 시하의 눈에 들어왔다.
“캔. 캔.”
그래서 시하는 오늘은 캔을 그리려고 했다.
물론 페페도 그리면서 말이다.
첫 번째 그림은 캔의 내용물을 마시는 페페.
두 번째 그림은 캔을 찌그러뜨리는 페페.
그리고 세 번째부터는 캔만 달랑 있다.
일정하게 움푹 들어간 캔 패턴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나열해서 그렸다.
명암을 색으로 표현하자 패턴이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캔이 일정한 형태로 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케. 이케.”
네 번째 그림은 페페가 네모난 통에 캔을 전시하는 모습이었다.
옆에는 쓰레기통도 그렸는데 거기에는 버리지 않는다는 걸 나타내었다.
“다 해따.”
시하는 오늘 그림이 만족스러웠다.
형아에게 가져가서 자랑하고 싶었다.
도도도 달려가 형아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와. 멋지네?”
“캔 머시써.”
“응. 그러네. 진짜 멋있네?”
“형아. 이거 제목 머야?”
“어? 제목?”
“응!”
시혁은 너튜브에 올릴 제목을 떠올리느라 애를 썼다.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you can be really cool.”
“???”
“너는 정말 멋있을 수 있어.”
“!!!”
시하가 말한 can의 말장난도 함께 들어간 제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