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0화 (390/500)

390화

새해가 밝았다.

시하는 이제 5살이 되었다.

작년처럼 새해를 보러 갈까 싶었는데 삼촌이 질색하면서 절대 안 간다고 한다.

사람 많고, 춥고, 대체 떠오르는 해는 변함없는데 왜 새해만 되면 바다나 산으로 향하냐고.

나도 어느 정도 동감하는 면도 있고 아닌 면도 있다.

뭐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까.

우리 백수 삼촌은 집에 있는 게 안락하겠지.

나도 이번에는 복잡하게 사람 많은 곳은 피하려고 한다.

크리스마스도 집에서 즐겼으니 새해도 집에서 즐기면 되는 거 아니겠나.

“형아. 시하 다섯 살이야!”

“응. 시하 다섯 살이네.”

“시하 이제 다 커써!”

너 전에도 4살 됐을 때 그 말 하지 않았니?

크긴 뭐가 다 컸어?

“구래서 이제 시하 요리할 수 이써.”

“안 돼.”

“불도 막 켤 수 있어.”

“안 돼. 좀 더 커야 해.”

“우웅.”

시하가 실망했다는 얼굴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 불 사용은 안 된다. 손이 데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

“시하 언제 더 커? 언제 불 쓸 수 이써?”

“시하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한 4학년 때쯤?”

“4학년?”

“11살?”

그쯤이면 대충 꽤 크지 않을까? 라면 정도는 끓여 먹어도 될 것 같기도?

나는 워낙 어릴 때부터 아빠랑 둘이 살아서 그런지 요리하려고 했고 그래서 빨리 손댄 감이 없잖아 있긴 한데. 시하는 나하고 삼촌이 있으니까.

“빼빼로 살이야?”

11살. 11월 11일 빼빼로데이. 그래서 빼빼로 살.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젓가락 살일걸?”

“!!!”

“또 무슨 살일까?”

“쌍검 살?”

“푸흡. 멋진데?”

“시하 11살 대면 쌍검 휘둘러.”

11살은 어마어마한 나이구만. 쌍검도 휘두르고. 아주 위험한 나이인 것 같다.

“불은 못 쓰지만 대신에 오늘은 같이 떡국을 만들까?”

“정말?!”

시하가 좋아하는 떡국 이야기에 눈을 반짝인다.

다행히 이걸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나 보다.

“먼저 잘린 떡을 꺼냅니다. 그리고 시하가 해줄 건 여기 떡을 물에 씻어주는 거.”

“시하 할 수 이써! 시하 손도 잘 씨서서 떡도 잘 씨서.”

“그렇다고 비누 거품 내서 씻으면 안 된다?”

“왜?”

이거 요리하면 큰일 날 친구일세.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돼! 깨끗해지는 건 솔직히 모르겠지만.

“비누가 혹시 여기 남아있게 되면 요리할 때 비누가 들어가잖아? 그걸 먹으면 아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아야 해!”

“응. 그래서 요리할 때는 전부 그냥 물로만 마구마구 씻어주면 돼.”

“아라써!”

혹시나 물어보길 잘했다.

잘못하다가 퐁퐁이라도 썼으면 떡을 다 버려야 했을 테니까.

“자. 여기 바가지에 물 담았으니까 씻어봐.”

“시하 잘해.”

뭐 맨날 잘한데.

해보지도 않고 대체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다.

시하가 열심히 떡을 쭈물쭈물한다. 두 손으로 열심히 씻는다.

대충 저렇게 하면 되겠지.

나는 가스레인지에 가서 냄비에 국거리용 소고기를 넣었다.

치이익.

열심히 볶아준다.

그리고 미리 우린 육수를 꺼내서 투하.

이왕 하는 거 3일 정도 먹을 수 있게 열심히 만들어야겠다.

매번 먹을 양만 요리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많이 하는 게 편하다.

대충 있는 거 가지고 먹으면 되니까.

“시하야. 이제 떡 넣을까?”

“시하 너을래!”

“응. 그러자.”

나는 떡을 물로 한 번 다시 씻어내고 시하의 손맛이 들어간 떡을 시하 손에 쥐여주었다.

“자! 넣어! 조심해서 넣어야 해.”

“아라써.”

시하가 냄비에 떡을 넣었다.

나는 집에 있는 냉동 만두도 넣은 뒤에 뚜껑을 덮었다.

“자. 그럼 우리 지단을 만들어볼까?”

“지단? 지단 모야?”

“달걀에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구워서 네모로 만드는 걸 지단이라고 해.”

“달걀에 노룬자랑 흰자 따로 구어?”

“응. 따로 굽지. 시하가 따로 분리해 볼래?”

“해볼래!”

“톡 깨서 여기 체에 노른자 쏙 놓으면 돼. 아주 간단하지?”

“시하 잘해.”

시하가 달걀을 콕콕 두드리더니 열심히 깬다.

정말 노른자만 남고 흰자는 아래로 떨어져서 신기해했다.

“이러면 노른자는 여기 그릇에 쏙.”

“노룬자만 이써!”

“신기하지?”

“신기해!”

사실 신기할 건 없긴 하지만.

아무튼, 흰자에 떨어진 달걀 껍질을 젓가락으로 걷어내는 일을 해야겠다.

이래서 잘하라고 한 건데!

분리하면 다 되는 게 아니라고!

“자. 이제 휘저어주는 거야.”

흰자도 휘젓고 노른자도 휘젓고.

그리고 구워서 지단을 만들었다.

도마 위에 올려서 시하의 손에 플라스틱 칼을 쥐여주었다.

저거면 손에 안 베이고 잘하겠지.

“이제 일자로 쭈욱 썰면 끝!”

“길게?”

“응. 면처럼 이렇게.”

시하가 열심히 칼질을 했다.

불은 못 쓰지만 그래도 이렇게 칼질을 하면 요리했다는 느낌이 뿜뿜 나니까.

아마 떡 씻는 것보다 이 지단 만드는 게 더 요리한 느낌이 났을 것이다.

아침부터 떡국 만들기를 시하랑 하니까 진짜 새해 맞이하는 것 같다.

“형아. 다 해써.”

“응. 이제 떡국 다 끓으면 위에 올려서 먹으면 돼. 맛있겠지?”

“언제 다 끄러?”

“으음. 얼마 안 있으면 될 거야. 아 맞다. 파도 넣어야 하는데.”

“파 송송!”

“응. 파는 송송 넣어야지.”

우리 시하는 진짜 뭔가를 좀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무리하고 이제 밥을 먹으면 될 것 같다.

“시하야. 삼촌 좀 깨우고 올래? 형아가 밥상 차릴게.”

“아라써.”

시하가 삼촌 방으로 도도도 달려간다.

열심히 깨우는지 목소리가 들린다.

“삼춘. 삼춘. 일나. 일나.”

“으음. 좀만 더 자고.”

“안 대! 시하가 떡국 해써. 삼춘 머거야 해.”

“으음. 삼춘 어제 너무 늦게 자서 좀만 더 자고 나중에 먹을게.”

“안 대! 먹고 자!”

“너 진짜.”

뭐 그런 소리가 들린다.

근데 어제 삼촌이 늦게 잤던가? 아닌 거 같은데.

뭐, 중간에 일어나서 딴짓했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암.”

“삼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착한 어린이래써!”

“삼촌은 어린이가 아니라서 늦게 자도 되는데?”

“삼춘은 어룬이니까 더 일찍 일어나야지.”

“괜찮아. 삼촌 나쁜 사람이라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날 거다!”

“!!!”

삼촌을 말로 이기려면 한참 멀었다.

그래도 시하는 쫑알쫑알 말하면서 삼촌을 깨운다.

삼촌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며 방을 나온다.

배를 벅벅 긁으며 말이다.

“삼촌. 빨리 밥 먹어요. 오늘 새해라서 떡국 했어요.”

“새해 떡국 좋지! 내가 시혁이가 한 줄 알고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어. 사실 일어나 있었다니까.”

시하가 옆에서 거짓말! 하고 소리쳤다.

삼촌이 진짜라면서 큭큭 웃었다. 아마 실제로 일어나서 폰을 보고 있었다는 것에 한 표 건다.

내가 삼촌 깨우러 가라는 소리를 듣고 잠든 척했겠지.

“잘 먹겠습니다.”

우리는 떡국을 먹었다.

시하가 너무 맛있는지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형아. 다 마시써! 떡하고 만두하고 지단하고 다 마시써.”

“그치?”

“이제 떡국 먹거서 시하 5살이야. 진짜 5살.”

그 말에 삼촌이 또 초를 친다.

“시하야. 생일 지나야 진짜 5살인데.”

“아? 시하 생일 지나써.”

“아니. 올해 생일. 너 올해 생일 축하 또 해야 진짜 5살 돼.”

“!!!”

그건 그렇긴 하다.

어쩔 수 없다. 12월생이라 진짜 5살은 멀었지.

나는 웃으며 떡국을 먹었다.

새마음으로 새로 태어나는 새해다.

***

1월은 내 생일도 있다.

시하에게 천사페페의 그립톡을 받았고 삼촌 역시 악마페페를 받았다.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쓸까 싶었지만 그래도 기왕 준 건데 써야지 싶었다.

사실 아까운 건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부탁해 하나 더 완성해서 그걸 붙이고 다녔다.

시하도 내가 천사페페를 붙이고 다니는 게 마음에 드는지 매번 힐끗힐끗 본다.

그리고 양산품으로 만든 페페 그립톡을 다들 나눠줬는데 굉장히 좋아하면 시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 시기가 바로 1월의 끝자락이었다.

그렇게 2월이 되는 어느 날.

시하가 놀란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어항으로 갔다.

“형아. 일피 안 움지겨.”

“어? 그러네.”

사실 나는 이 광경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언제나 일피, 이피, 삼피들은 매번 바뀌었고 어느새 죽어버린 물고기들도 있어서 시하 몰래 건져서 좋은 곳에 보냈다.

최대한 안 보이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날이 왔다.

죽음이라는 걸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개념을 많이 접하면 부모님이 생각날 수밖에 없으니까.

두드러진 그림자처럼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 아빠를 계속해서 떠올릴 거니까.

그래서 최대한 그런 개념과 동떨어지게 하고 싶었다.

3살 때는 몰랐겠지.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어느새 시하도 5살이다.

많은 영상 매체를 접했고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움직이지 않고, 살아있지 않고, 그저 하늘나라로 가는 것.

“일피가 죽었나 보다.”

이 눈앞에 물고기가 잠자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을 직시하는 순간순간이 올 테니까.

누군가를 떠나보낼 테니까.

벌써 알게 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 시하도 조금씩 알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흐앙.”

시하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일피가 죽었다. 그 모습에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형아.”

“응. 괜찮아. 괜찮아.”

시하를 안아서 토닥여주었다.

“일피는 하늘나라로 갔어. 하늘나라에서 잘살고 있어.”

“정말?”

“응. 그러니까 우리 일피가 하늘나라에서 잘살 수 있도록 묻어주자.”

“흐아앙.”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도 눈에 떨어지는 눈물은 참을 수 없다.

나는 시하를 안아서 토닥였다.

전에는 잘 울지도 않는 아이였는데 이제는 떠나보내는 슬픔을 알게 되어서 눈물을 흘린다.

이걸 성장이라고 봐야 할까? 이런 성장은 참으로 달갑지 않다.

“왜 울어? 무슨 일인데?”

삼촌이 깜짝 놀라서 방에서 나왔다.

나는 어항을 가리키며.

“여기 물고기 죽어서 시하가 슬픈가 봐요.”

“아…….”

열심히 밥을 주고 물도 갈아주고 애정 있게 키운 동물을 떠나보내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삼촌은 별말 없이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이럴 때까지 안 놀리는 걸 보면 시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겠지.

“시하야.”

“삼춘. 일피가 하늘나라 가써. 훌쩍.”

“많이 울어라.”

“훌쩍.”

“소중했으니까 눈물이 나는 거야. 하늘나라에서 일피가 그걸 보고 시하가 나를 정말정말 좋아했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훌쩍. 응.”

“그럼 일피가 나중에 다시 한번 시하 곁에서 태어나야지. 시하랑 또 놀아야지. 할 거야.”

“훌쩍. 다시 태어나?”

“응. 그럼! 다시 태어나지. 시하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알았는데? 당연하지.”

“훌쩍. 또 시하랑 노라?”

“그래. 시하랑 또 놀려고 다시 태어날 거야.”

“훌쩍.”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에서 울었다.

나는 열심히 시하를 토닥였다.

삼촌이 저런 말을 해줄 줄 몰랐다.

분명 시하 만나러 다시 태어날 거야, 라는 말이 너무나 슬펐다.

사실은 다시 태어나도 같은 일피일지 모르는 건데 말이다.

시하가 늘 말했던 대로 삼촌은 거짓말쟁이니까 이런 거짓말도 할 수 있는 거다.

삼촌의 거짓말은 늘 시하를 놀렸지만 오늘은 시하에게 큰 위로가 된다.

“고마워요.”

“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네?”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안 그러면 내가 못 견뎌.”

나는 삼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다시 만나고 싶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떠난 보낸 것을 다시 만날 수 없다.

설사 다시 태어나 만난다고 해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운명적으로 끌릴지도 모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 한다.

“형아. 훌쩍.”

“응.”

“일피 무더져.”

“응. 그러자. 우리 묻어주자.”

나는 망으로 물고기를 건졌다.

그리고 다 같이 아파트 아래로 내려가서 흙을 조금 파서 일피를 묻어주었다.

“훌쩍. 시하한테 또 와. 알아찌?”

나도 시하의 말에 속으로 빈다.

이 헤어짐이 끝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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