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화
선물을 뜯어본다.
시하가 장난감을 발견하고 통째로 들어서 폴짝폴짝 뛰었다.
삼촌은 그 모습을 보다가 선물을 뜯는데 시하가 자기 선물 내려놓고 도도도 달려왔다.
“삼춘. 선물 모야? 모야? 시하가 산타 할부지한테 삼춘 선물도 주세여. 하고 편지 써써.”
“일단 아직 뜯어보지도 않아서 선물은 모르겠고. 산타에게 편지 썼다고?”
“마자.”
“안 써도 되는데 뭘 또 이런 걸 썼대.”
삼촌이 괜히 쑥스러워한다.
저런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선물을 보고 기뻐해 줬으면 좋겠다.
“어? 잠옷?”
“잠옷?!”
시하는 눈을 반짝였다.
심지어 한 벌이 아니라 세 벌 세트.
하나는 아이용이고 하나는 삼촌의 몸에 맞는 치수, 나머지 하나는 내 것.
“산타할아버지가 잠옷 세트를 선물해 줬나 본데? 시하랑 시혁이 것도 있네.”
“세투! 세투야! 세투!”
졸지에 시하는 선물을 두 개 받게 되었다.
“삼춘. 빨리. 빨리. 입자.”
“지금?”
“지금. 지금. 빨리. 빨리. 형아도!”
시하의 이런 반응도 예상했다.
아 삼총사 세트는 못 참지.
형아랑 세트인 것도 못 참는데 그걸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는 잠옷을 갈아입었다.
세트라고 해도 무늬만 같고 받쳐주는 배경색은 다르다.
“삼춘. 어때? 머시찌?”
“어. 근데 왜 네가 선물 받은 것 같은 반응이야? 내 선물인데.”
“산타할부지가 시하 선물 또 져써.”
“아니. 삼촌 박스에 들어있으니까 시하 선물이 아니라 삼촌 거야. 나중에 벗어서 돌려줘야 해.”
“!!!”
“빌려주는 거니까 잘 갖고 있어.”
“이거 시하 꺼 아냐?”
“삼촌 선물 박스니까 삼촌 거지. 시하는 그것도 몰라?”
“아냐. 아라!”
삼촌은 또 시하를 놀린다.
아니. 이걸 뺏는다고? 진짜 생각도 못 한 발상이었다.
“삼촌. 잘 어울려서 다행이에요.”
“시혁이 너. 삼촌이랑 같은 잠옷 입고 싶었구나? 아직 애 같은 면이 있다니까.”
“삼촌은 그냥 애잖아요.”
“…….”
내게 한 방 먹었는지 반격을 안 하신다.
뭔가 더 말하면 손해라고 생각하셨겠지.
“하여간. 뭘 놀리기 무서워. 어릴 때 그 귀여운 맛이 사라졌어.”
“그래서 시하를 매일같이 놀리는 거잖아요.”
“그럼! 우리 시하가 얼마나 귀여운데.”
그때 시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시하 머시써! 형아가 머시쑤니까!”
“그래. 귀엽고 멋지다.”
“아?”
시하가 이건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두 개 합쳐 버리니까 부정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긍정하기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형아. 형아 선물은 모야?”
말 돌리기.
아주 현명한 결정이구만.
나는 선물 상자를 뜯었다. 사실 필요 없는 선물을 사는 건 조금 그래서.
“짜잔.”
크루아상 냉동 생지를 사 왔다.
오늘은 이걸로 크로플을 만들 생각이었다.
“시혁아. 이건 좀.”
아무리 그래도 선물로서 좀 아니지 않냐.
그런 표정으로 삼촌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게 뭐 어때서.
괜히 나를 위해 필요도 없는 걸 사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거 모야?”
“맛있는 거야. 이걸로 요리하면 더 맛있어.”
“정말?”
“응.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날에 다 같이 먹으라고 형아에게 이런 선물을 챙겨줬네?”
“!!!”
삼촌이 그걸 그렇게 포장하냐는 얼굴이었다.
왜 표정으로 다 보이지?
아무튼, 어떤 선물이든 포장하기 나름 아니겠나.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에 맛있는 요리를 먹으라고 주는 선물이었다.
“여기 설탕도 있네?”
“!!!”
“딸기도 있고. 아이스팩도 있고.”
“마시께따!”
뭔가 밀키트 상자처럼 느껴지기는 하는데 어찌 되었든 크리스마스를 즐기면 되는 거 아니겠나.
“그럼 아침 먹고 간식으로 먹을까?”
“조아!”
삼촌이 그냥 아침으로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건 아침이 될 수 없다.
아침은 밥심이지!
산타할아버지도 이건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럼 아침 간단히 준비할게요.”
우리는 아침을 먹고 잠시 후에 크로플을 먹기로 했다.
드디어 서수현이 선물해준 와플 기계를 써보나 싶었다.
전에 삼각김밥을 사 와서 딱 한 번 찍어보고 쓰지를 않았다.
와플을 먹어야 하는데 와플을 먹지 않는 아이러니함.
심지어 오늘도 와플이 아닌 크로플이다.
그래도 이건 빵이니까 와플로 쳐줘도 되지 않나?
“형아. 빵 구어?”
“응. 이제 여기 빵 놓고 찍어주면 완성돼.”
“시하도 볼래! 시하도!”
아무래도 어떻게 완성되는지 궁금한가 보다.
정말 별거 없지만 말이다.
시하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위로 올라온다.
서서 말똥말똥하게 본다.
나는 와플 기계를 반으로 접었다.
꾸욱.
이제 4분 정도 기다려주면 끝.
“형아 다 대써?”
“아니. 아직 3분은 더 있어야 해.”
“서이 분!”
“1분에 60초야. 그러니까 시하가 60을 세 번 세면 끝이야.”
“아라써. 시하가 세보께. 일. 이. 서이. 사.”
집안에 숫자 세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초 단위가 정확하지 않아서 아마 60초를 세 번 세기 전에 3분이 다 되어버릴 것 같았다.
시하에게는 오히려 더 빨리 되어서 좋을지도 모르겠다.
“3분 다 됐다.”
“아? 시하 아직 다 안 세써.”
“그럼 다 됐는지 확인해 볼까?”
와플 기계를 열었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빵이 보였다.
시하는 맛있겠다면서 눈을 반짝였다.
“이제 설탕도 뿌리고 딸기로 꾸며주면 끝.”
“끝!”
슈가 파우더 뿌리기.
거기에 냉동실에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올린다.
딸기도 잘라서 데코레이션을 하면 끝.
“어때? 예쁘지?”
“예뻐! 마시께따!”
“그치?”
“형아 거 하나 더 구워야 하니까 시하는 삼촌에게 먼저 드세요. 하고 가져다줘. 그리고 시하 거도 가져가서 먼저 먹고.”
“아라써!”
시하가 의자에서 내려와 삼촌에게 크로플을 대령했다.
소파에 누워 있는 삼촌이 ‘시혁이 최고네!’ 하면서 말을 건넨다.
시하는 자랑스럽게 ‘시하 형아야!’ 하면서 배를 쭈욱 내민다.
삼촌은 그냥 장난치고 싶어서 손가락으로 배꼽 부근 꾸욱 누른다.
“삼춘. 여기 버튼 이써서 큰일 나.”
“뭔 큰일이 나는데?”
“비밀이야. 시하 바뿌니까 가야 해.”
“어디 가?”
“시하 꺼 가지러!”
시하가 부엌에 와서 자기 크로플을 가지고 간다.
“삼춘. 안 머거?”
“나는 기다리고 있어.”
“형아 기다려?”
“아니. 너.”
“아?”
그러면서 삼촌이 딸기 하나를 집더니 쏙 입에 넣어버린다.
시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시하 딸기!”
“아하하하. 당했네.”
“시하도 삼춘 꺼 머그꺼야.”
“그럴 줄 알았다. 미리 다 먹어야지.”
딸기를 한 번에 쥐더니 입으로 털어 넣는다.
시하는 허망하게 딸기를 바라본다.
“잉잉!”
역시 또 놀리는 구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딸기를 더 잘라서 접시에 담아서 시하의 크로플 위에 올려줬다.
“이러면 됐지?”
“시하 딸기 다시 생겨써!”
시하는 자기 크로플을 들고 삼촌과 멀리 떨어졌다.
다시는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삼촌이 시하에게 손짓한다.
“시하야. 딸기 안 뺏어 먹을게. 이리 와서 먹어라.”
“거짓말!”
“진짠데? 아니면 삼촌 혼내.”
“진짜지?”
“응.”
시하가 다시 한번 믿고 식탁 위에 크로플을 놓았다.
삼촌은 이때다 싶어서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퍼서 뺏어 먹었다.
“잉잉!”
“하하하.”
“삼춘 거짓말!”
“삼촌이 딸기 안 뺏어 먹는다고 했지 아이스크림 안 뺏어 먹는다고는 안 했다.”
“!!!”
시하야. 또 속았니?
그래도 삼촌이 미안하다면서 자기 아이스크림을 푹 떠서 접시 위에 준다.
완전 병 주고 약 주고 다 하신다.
어느새 내 크로플도 다 되어서 식탁 위에 같이 앉았다.
“삼촌. 너무 놀려요.”
“시하 반응이 너무 재밌잖아.”
그건 나도 부정할 수 없어서 그냥 크로플을 입에 넣었다.
“시하야. 엄청 맛있어. 어서 먹자.”
시하가 크로플을 먹었다.
달콤한 건 기분을 좋아지게 하니 삼촌이 한 장난도 잊어버리고 미소를 짓는다.
“마시써!”
뭐 이런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도 나쁘지 않았다.
뭔가 어딜 가거나 그러지 않아도 집에서 가족끼리 맛있는 거 먹으며 선물도 보고 하하호호 웃는 거.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
서수현이 선물을 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막상 크리스마스 선물을 샀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건 너무 속 보이는 행동이 아닐까 싶어서 망설여지게 한다.
그렇게 고민 끝에 시혁이 사는 아파트 앞까지 왔는데 생각해 보니 연락도 하지 않고 찾아왔다. 바보라고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걸 전해줄지 말지 고민만 하다가 다른 건 생각지 못했다.
혹시나 없으면 어떡하지?
아니. 이거 받아줄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아니. 이상하잖아. 생일 선물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선물 챙겨주는 거.
막상 사고 나서 고민하면 뭐 하냐고.
그런 생각을 가지며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다시 선물을 줄까 말까 고민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그냥 추운데 카페 가서 고민해 보자고 결정을 내렸다.
‘나도 내가 답답해.’
하지만 시혁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 결국 누구든 자신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싶다.
거절당하는 결과가 무서워서. 계속 좋아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도 이런 상황과 이런 결정은 처음이니까.
이 복잡한 사정을 가진 남자를 만나본 적이 있어야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어? 알리사?”
“응?”
카페 들어가는데 알리사와 딱 마주쳤다.
서수현은 괜히 손에 쥔 쇼핑백을 뒤로 숨겼다.
“여기서 뭐 해?”
“커피 마시려고? 아! 시혁 씨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가져다줬어.”
“어? 크리스마스 선물?”
“응. 선물.”
서수현은 멍하니 알리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훅 들어갈 수 있을까?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알리사가 힐끗 쇼핑백을 보는데 서수현은 괜히 손이 꼼지락거렸다.
“아항.”
알리사가 뭔가를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가게에 커피를 주문한다.
서수현은 그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져서 입을 뻥긋 못 했다.
혹시 이게 시혁 오빠의 선물이라는 걸 알아차린 걸까?
그건 그렇고 역시 알리사는 시혁 오빠를 좋아하는구나.
사실은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그냥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괜히 어색해질까 봐 서로 언급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는 서로 친한 친구였고 그저 같은 사람을 좋아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어느새 멀어져 버린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리사는 자기 일을 확고히 찾았었고 그걸 스타트업으로 이뤄냈다.
그에 비해 자신은 뭘 할지 몰라서 학교 다니는 내내 방황했었고 이제야 뭔가를 찾아 나가고 있었다.
여자가 봐도 알리사는 멋있다고 생각한다.
“주문하시겠어요?”
카페 직원의 말에 서수현은 퍼뜩 정신을 차린다.
“카페라떼 하나요. 핫으로.”
“네. 알겠습니다.”
서로 커피를 기다리는데 어색한 침묵만 감돈다.
먼저 입을 연 건 알리사였다.
“수현아.”
“응?”
“우리 친구지?”
“응. 친구지.”
“근데 서로 불편할 수 있잖아. 지금처럼.”
“뭐. 솔직히 그래.”
예전에 바다에서 함께 놀 때와는 많이 달라져 버렸다.
누구 하나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관계가 변하기도 한다.
머리로는 아는데 감정이 그렇지 못하다.
누가 사람은 이성적이라고 했던가. 전혀 아닌 것 같다. 이토록 감정적인데.
“그래도 갑자기 괜찮아지지 않을까?”
“응?”
“나는 네가 좋은데 어떨 때는 싫기도 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계속 친구로 있고 싶은데 그건 너무 큰 욕심 같아서. 그래도 나중에 어떤 결과가 오든 간에 어떤 형태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응.”
“그래도 계속 친구로 있고 싶다고 생각해.”
“알아.”
서수현도 같은 마음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있었고, 함께 서로 배우고 놀았고, 우정을 나눴던 기억이 있었다.
감정 하나에 그런 시간이 원망 되기도 하고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은 너무 복잡해서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서로 마주 보는 걸 피했다.
서수현이 어렵사리 입을 연다.
“지금처럼 서로 바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아. 가끔 안부도 묻고. 인사도 하고. 그럴 시기잖아. 우리.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고. 다들 취업해서 서로 멀어질 시기. 그래도 너무 멀어지기는 싫어서 가끔 연락하고. 취업하면 서로 바빠서 몇 개월간 연락도 없고. 그냥. 그러자. 우리. 흘러가는 대로.”
“응. 그러자.”
웅웅.
커피가 나왔다고 진동벨이 울린다.
알리사가 먼저 일어서서 아메리카노를 받아간다.
서수현도 그다음에 받아갔다.
“나 먼저 갈게.”
“응.”
“힘내.”
“응.”
수현은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지금 손에 들린 쇼핑백에 있는 선물을 잘 전해주라는 걸까? 그걸 힘내라고 하는 걸까? 친구로서의 말이었을까?
커피를 마셨다.
카페라떼의 달콤함과 씁쓸함이 감돈다.
숨을 고르게 하고 폰을 들었다.
-서수현 : 오빠! 혹시 집이에요? 줄 거 있는데.
누군가의 만남이 어떨 때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 계기가 별로든 좋았든 말이다.
서수현은 오늘 알리사를 만나서 선물 줄 결심을 했다.
시혁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시혁 : ㅇㅇ 집인데.... 줄 꺼 있다고?
-서수현 : 지금 집 앞 카페인데 잠시만 나와줄 수 있어요?
-시혁 : ㅇㅇ 알겠음
서수현은 집 앞에서 시혁이 나오는 걸 기다렸다.
타이밍 딱 맞았는지 금방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추운데 위로 올라오지.”
“아니에요. 이건만 주고 가려고요.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
“뭘 또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챙겨줘?”
“고마운 게 많아서 챙겨주는 거예요. 오빠 아니었으면 제가 이렇게 돈 벌었겠어요?”
“네가 잘해서 그런 거지 내 덕은 아니지.”
“맨날 그렇게 말해.”
“아니. 그렇잖아. 아! 달력 홍보는 고마워. 사실 그렇게 많이 팔릴 줄은 생각도 못 했어. 고마운지 황당한지 모를 기분이긴 한데.”
“저, 저도 그게 그런 식으로 퍼질지 생각 못 했다고요!”
“나도 알지. 왜 그래? 잘못한 사람처럼.”
“아, 아무튼요.”
“풀어봐도 돼?”
“네.”
선물을 풀자 나오는 건 목도리였다.
시혁은 그걸 보며.
“따뜻하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갑자기?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그럼 저 갈게요.”
“저기 수현아.”
시혁이 서수현을 붙잡았다.
뭔가 머뭇거리더니.
“내 착각이면 모르겠는데. 있잖아. 이거 그런 의미야?”
서수현은 숨을 삼켰다.
여기에서 이제 뭐라고 하면 좋을까.
“…착각. 아니에요.”
“그래. 근데 난…….”
“알아요.”
“어?”
“안다고요. 뭔 말할지. 근데 말이에요.”
서수현이 호흡을 살짝 쉬며 말했다.
“나 아직 제대로 말 못 했는데 이건 아니잖아요.”
“으음.”
서수현은 눈을 질끈 감고 솔직함을 내뱉었다.
“오빠. 사랑 유효기간이 3년이래요. 그러니까 딱 3년만 더 좋아할게요. 그래도 영 아니면 거절해 줘요.”
“뭐?”
시혁이 황당하다는 듯이 서수현을 보았다.
“앗. 이거 고백 아니에요. 무효. 무효. 퉤퉤퉤.”
“푸흡.”
“나 크리스마스 선물 줬으니까 오빠도 선물로 줘요. 지금 대답하지 마요.”
“너무 지치면 놓아줘도 돼.”
“지금까지 안 지쳤어요. 오빠는 모르잖아.”
“그래. 알겠어. 선물 고마워. 잘 쓸게.”
“넵! 그럼 저 갈게요. 오빠도 추운데 빨리 들어가세요.”
“응. 알았어.”
서수현은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걸었다.
뭔가 시혁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뒤통수가 뜨거웠다.
어쩌면 몸 전체가 뜨거울지도 몰랐다.
손에 들린 커피는 식었는데 얼굴은 달아올라서 입김은 더더욱 짙어졌다.
그래도 오늘은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던 게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