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달력이 팔렸다.
사람들이 입력한 주소로 잘 전달이 되었고, 펀딩으로 얻은 순수익은 시하페페와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다.
기부증서 역시 받아서 영상을 올리며 인증을 받았다.
시하는 이제 아기들이 따뜻하게 있을 수 있는 게 기쁜가 보다.
기부증서를 보며 보일러를 외친다.
보일러를 들여놓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거대한 금액이 정말 여건만 갖춘다면 살 수 있는 생명을 구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번 일은 잘 마무리되었고 이걸 신경 쓰다 보니까 어느새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울면 안 대! 울면 안 대! 산타할부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언물을 안 주신대여!”
시하가 신나게 캐럴을 부른다.
삼촌은 그걸 지겹다고 두 손으로 귀를 막는다.
벌써 저 노래만 10번째라서 그렇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내일 올 선물을 기대하고 있었다.
조금 곤란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달력 일과 내 일을 신경 쓰느라 시하가 뭘 갖고 싶어 하는지 못 물어보았다.
그리고 12월 5일인 시하 생일 때 가지고 싶은 선물을 줘서 갖고 싶은 게 그렇게 딱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리 노래 부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있나 보다.
“시하야.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 뭐 받고 싶은지 편지로 적었어?”
“선생님이랑 또 산타할부지한테 보내써.”
“어? 그래?”
황급히 폰으로 선생님의 문자를 보았다.
확실히 시하가 가지고 싶은 생일 선물을 한 번 언급하셨구나.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 그냥 대충 쓱 읽고 넘겼나 보다.
선생님이 시하의 말을 듣고 대신 써준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삼촌이 나쁜 짓 많이 하고 어른이지만 산타 할부지 삼촌 선물도 주세요. 형아 선물은 삼촌 선물보다 좋은 거 주세요.]
자기 선물은 쏙 빼놓고 말했다.
역시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갖고 싶은 게 없었구만.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삼촌과 내 선물 챙겨달라는 말이 너무나 예뻤다.
작년에도 그랬다.
시하는 내 생일 선물을 챙겨달라고 빌었다.
올해는 좀 다르다. 삼촌이 있으니까 삼촌의 선물까지 챙겨달라고 한다.
명확한 선물을 말하는 게 아니라서 뭘 사줘야 할지 곤란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게 먼저였다.
12월이면 한창 추울 때인데 이상하게 이번 12월은 시하의 기특한 행동 덕분인지 속부터 따뜻해지고 있다.
“울면 안 대! 울면 안 대!”
“고놈의 울면 안 돼. 아직도 불러?”
“삼춘. 시하는 이 노래 조아.”
“너 많이 울어서 선물 안 줄 것 같은데?”
“시하 안 우러써.”
“하품할 때 눈물 나와. 안 나와?”
“나와.”
“그럼 많이 울었네. 하루에 한 번은 하품하니까.”
“아냐! 그거 눈물 아냐.”
“눈물 아니면 콧물이야?”
“땀이야. 땀.”
나는 시하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아 왜 눈에 땀이…. 아무튼, 시하는 운 거 아니다!
삼촌은 그 말에 요놈 보게? 제법인데? 이런 표정을 지으셨다.
“저 좀 나갔다 올게요.”
“형아. 시하는?”
“응? 시하는 삼촌이랑 놀고 있을래? 금방 갔다 올게.”
“왜?”
왜긴 왜야. 크리스마스 선물 사러 가는 거지.
근데 시하를 데리고 산타가 줄 선물을 가지고 올 수 없잖아?
“그냥 금방 저녁에 요리할 거나 이것저것 금방 사러 갔다가 올게.”
“시하도 가치!”
“형이 잠시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래.”
“우웅.”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삼촌이 시하를 들어 올리며 잡는다.
“왜? 삼촌이랑 같이 있기는 싫어?”
“시하는 형아랑 있는 게 더 조아.”
“호불호가 확고한 녀석.”
“구럼 형아. 빨리 갔다 와야 해.”
“응. 빨리 갔다가 올게. 어. 한 3시간? 그 정도 걸릴 거야.”
“아라써.”
나는 겨우 밖으로 나왔다.
선물은 사서 차 트렁크에 놔두면 될 것 같다.
시하가 자고 있을 때 몰래 들고 와서 집에 놓으면 되겠고.
“아!”
나는 폰을 들어 삼촌에게 집에서 놀 수 있는 걸 입력했다.
전에 작은 트리를 산 것도 있어서 그걸로 꾸미고 놀면 재밌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파티 느낌이 나게 말이다.
‘그럼 가 볼까?’
차를 끌고 마트로 향했다.
시하 선물은 생일 때 봐둔 게 있었다.
장난감 2개 중에 고민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나중에 사도 될 것 같아서 하나를 먼저 생일 선물로 샀었다.
합체 로봇. 한 번에 팔지 않고 따로 사게 만든 그 로봇.
두 로봇이 합체하면 로봇이 더 커지게 되어 있다.
누가 이렇게 아이디어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선물 고민이 줄어든 만큼 좋았다.
나중에 이걸 보면 합체할 수 있겠다고 기뻐하겠지.
문제는 삼촌 선물이었다.
‘뭘 사드려야 좋을까?’
삼촌이 필요한 걸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언제나 가끔 왔다가는 철새 같은 사람이시라 선물을 해준 게 별로 없었다.
근데 지금은 진짜 여기서 살 생각이신지 침대도 사시고 옷가지도 다 사시고 그랬다.
물론 돈 많은 사람이라면 자기 방에 침대를 사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집을 샀지 않은가. 집과 침대.
돈 많다고 살 수 있나?
아, 물론 살 수 있지. 별장으로 쓰거나 투자 목적으로 쓰거나.
근데 삼촌은 그런 느낌으로 산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오랫동안 못 보고 가끔만 보는 사람이지만 함께 한 시간의 밀도는 남들보다 높아서 대충 안다.
진심인 것과 장난스레 농담하는 것.
내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삼촌은 아마 우리를 많이 걱정하고 있다.
‘흠.’
눈앞에 옷가지들이 보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스타일보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말이다.
고민하면서 걷고 있는데 문뜩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잠옷.
‘이거다.’
직원이 내가 잠옷에 관심 있는 걸 눈치챘는지 다가온다.
혹시 아이랑 어른이랑 다 같이 입을 수 있는 잠옷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삼촌 선물에다가 세 벌 다 포장할 거긴 한데 아마 얼굴에 황당함이 감돌지 않을까.
나도 이렇게 잠옷을 맞추는 건 조금 부끄럽긴 한데 괜히 해보고 싶었다.
그냥 가족 간의 유대가 눈앞에 형태가 있는 거로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삼촌에게도. 또 나에게도 말이다.
***
한편 삼촌과 시하는 집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있었다.
작아서 그런지 금방 꾸미고 끝이 났다.
시혁이는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이 트리 꾸미는 건 10분 정도라서 삼촌은 참으로 고민스러웠다.
“삼춘. 다 해써!”
“그러네.”
“불 켜. 불!”
달칵.
트리를 감싼 꼬마전구들에서 예쁘게 불이 나온다.
시하가 만족한 듯이 팔짝팔짝 뛰었다.
“예뻐. 예뻐.”
“시하 키만 한 꼬맹이 트리네.”
“마자!”
“근데 시하야. 형아 트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근처에 트리랑 크리스마스 파티로 꾸밀 걸 팔긴 하던데.”
“!!!”
“갈래?”
“갈래! 갈래!”
“만들어서 시혁이 깜짝 놀라게 하자.”
“형아가 이거 보고 와! 크리스마스다! 시하가 해써? 대다내! 하고 말하게 하꺼야.”
“그 대사에서 삼촌이 빠졌는데?”
“갠차나.”
삼촌은 뭐가 괜찮은지 몰랐다.
내가 안 괜찮은데 대체 네가 왜 괜찮아하는 거냐? 이거 웃긴 놈일세.
“그럼 나가자. 옷 따뜻하게 입고.”
삼촌은 시하의 옷을 여미고 외투를 입혔다.
밖으로 나가서 근처 가게에 들렸다.
크리스마스라서 그런지 꾸미는 용품들도 많이 팔았고 트리도 작은 순서부터 큰 순서까지 팔았다.
“삼춘. 이거랑 이거.”
“트리 두 개나 사?”
“형아 트리랑 삼춘 트리.”
“…….”
삼촌은 시하의 말에 눈을 껌뻑 떴다.
설마 자신의 것까지 챙겨줄지 몰랐으니까.
시혁이랑은 굉장히 친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굳이 뭘 하지 않아도 서로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아도 침묵이 불편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관계.
하지만 시하는 아니었다.
자신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이자 가족도 아닌 사이다.
그래서 괜히 더 놀린 감이 있었다.
자기는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니 언제나 시혁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놀리는 삼촌으로.
의외로 시하가 너무 귀여워서 더 놀리는 것도 있다.
계속 잉잉, 하는 소리도 듣고 싶다.
“삼춘?”
“응? 아! 사자. 다 사자. 알지? 삼촌이 누군지 알지?”
“돈 마넌 백수.”
“돈 많은 백수겠지. 만 원이 전 재산인 백수면 주위 사람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아요.”
“아코! 실수. 실수.”
그러니 괜히 이런 일로 어쩌면 더 시하에게 다가갔지 않나 싶다.
불편해하지 않고 받아들인 건가.
삼촌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도 많이 꾸미면 재밌겠지? 저기 하트 풍선도 사서 붙이고 하자.”
“!!!”
“집도 크리스마스로 꾸미는 거지.”
“!!!”
시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집이 전부 크리스마스라고?! 그런 엄청난 게 있다고?!
그런 표정이었다.
“음. 어디 보자. 아! 여기 큰 상자 있네. 여기에 차곡차곡 담아보자고.”
가게에서 파는 커다란 상자.
안 쓰는 물건들은 차곡차곡 넣어야 할 것 같은 상자였다.
그걸 들고 시하랑 삼촌은 열심히 크리스마스에 꾸밀 수 있는 걸 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작업에 착수했다.
“삼춘. 트리.”
“응. 트리부터 꾸미고 집 꾸미자.”
“아라써!”
시하는 아주 신이 났다.
형아가 보면 좋아하겠지!!
머릿속에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산타의 선물은 차 트렁크 안에 놔두고 식재료만 들고 집으로 왔다.
띡. 띡. 띡. 띡. 띠로링.
잠금이 풀리고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오자 바뀌어버린 집 안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아! 메리크리스마스야! 바바!”
시하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배를 쭈욱 내밀었다.
아주 당당한 자세다.
삼촌도 옆에서 괜히 시하를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집안이 크리스마스 느낌 나게 물씬 바뀌었다.
어디서 공수해 왔는지 빨간 하트 풍선이 벽과 천장에 찰싹 붙었고, 나풀거리는 장식들도 잔뜩 있었다.
트리는 왜 세 개인지 모르겠다.
아주 빛이 눈 부시다.
“아하하하.”
“형아. 조아해!”
그런 거 아니다.
물론 이렇게 꾸미고 노는 건 참 좋다.
하지만 나도 어느새 주부가 다 되었나 보다. 이거 나중에 어떻게 치우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좋은데 썩 좋지만도 않은 그런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나도 이제 애가 아니라는 거지.
근데 저기 어른인데 애 같은 삼촌분이 있네?
시하가 이걸 다 사 왔을 리는 없으니 범인은 여기 있다.
저 높은 곳에 붙인 걸 보니 삼촌이 더 열심히 꾸몄을지도 모르겠다.
“삼촌이 다 치우실 거죠?”
“무슨 소리야. 치울 때는 다 같이 치우는 거지. 가족끼리 빼는 거 없어.”
“그럼 분업하죠. 전 요리랑 설거지. 삼촌은 뒷정리.”
“어엇. 그렇게 나온다고?”
시하가 삼촌의 다리를 탁탁 쳤다.
“삼춘 열심히 해!”
“야! 너도 신나게 꾸몄으면서 너도 치워야지. 왜 네 일이 아니라는 듯이 구는 거냐!”
오늘 삼촌이 많이 당하네.
아니면 당해 주는 건가?
어찌 되었든 치우는 건 천천히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형아. 이제 불 끄고 파티하자.”
불을 껐다.
크리스마스트리가 환하게 주변을 밝혔다.
노래는 시하의 입에서 나왔다.
“울면 안 대! 울면 안 대!”
삼촌은 또 그 노래라는 듯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저 큭큭 웃었다.
***
크리스마스날.
나는 시하가 호들갑 떠는소리에 잠을 깼다.
“형아. 형아.”
“응?”
“산타 할부지가 선물 주고 가써.”
“오! 그래?”
“형아. 빨리! 빨리!”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시하는 삼촌 방에도 가더니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며 깨웠다.
삼촌은 나오면서 더 자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아, 지금 몇 시지? 어두운 걸 보니 새벽인가? 6시네? 일찍 일어나긴 했네. 시하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잠을 많이 자면서 이상하게 휴일에 눈이 번쩍번쩍 일찍 떠지는 날이.
“삼춘. 삼춘 선물도 이써.”
“그게 삼촌 선물인지 어떻게 알아?”
“바바. 이거 레드자나.”
시하가 빨간색으로 포장된 선물을 가리킨다.
“그게 왜?”
“이거 시하 꺼야. 산타 할부지 다 아라. 시하 레드 조아해.”
“???”
뭐, 포장지에 붙여진 엽서에 시하에게라고 쓰여있기는 했다.
“구리고 시하 써져 이써.”
우리 시하는 자기 이름만큼은 확실히 읽을 줄 안다. 암!
“그럼 삼촌 선물인 건 어떻게 아는데? 형아 선물일 수도 있잖아?”
“검은색이야. 검은색. 앙마야. 앙마.”
음. 겨우 그걸로 삼촌 선물이라고 생각한 거야?
물론 저건 삼촌 선물이 맞긴 하다.
내 선물은 내가 따로 대충 마련했는데 흰색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자. 자. 그럼 뜯어볼까?”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