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초창기에는 분명 펀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시하페페를 좋아하는 구독자들이 취지가 좋아서 하나둘씩 구입하기 시작했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아니었다.
제대로 시작된 것은 하나의 영상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에 스트리밍을 켠 서수현이다.
사람들이 빠르게 인사의 댓글을 단다. 실시간 반응을 보며 서수현이 실실 웃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삘이 와서 작곡을 해봤어요. 겨우 완성된 노래인데 평가 좀 부탁드려요. 아 맞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냐면…. 그건 노래 끝나고 이야기해 드릴게요.”
“노래 제목은 ‘하루만’입니다.”
서수현이 어쿠스틱 기타를 쥔다.
디링. 디리링.
살며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처음 빛을 봤을 때. 그대 품에~ 안길 수 없었죠.
울면서 찡그릴 때. 그대 얼굴~ 볼 수가 없었죠.
여기는 너무 추워요. 눈이 떠지지 않아. 끝나버릴 것 같은 기~다~림~만.
그대의 기도 소리. 내 귓가에 들리죠.
신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서!]
‘이 순간에서’를 말하는 부분에 음이 높이 올라간다. 마치 중요한 때를 나타내듯이. 울음을 토해내듯이.
슬퍼하는 감정이 카메라에 담긴다.
통기타의 울림소리는 파란 색채를 띤 채 낮게 또 낮게 음울한 음정을 토해낸다.
서수현이 눈을 감는다. 감정을 잡는다.
목소리로 토해내는 가사에 간절함이 담긴다.
제발. 제발.
[제 목숨 가져가도 좋으니. 온기를 전해 주세요. 제발~ 데려가지 마요.
오랜 기다림에 이 만남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작은 나의 희망을.
오래 보고 싶은 날이에요.
조금만 힘을 내어요. 하루만 또 하루마안~]
디리링.
기타가 마무리되었다.
서수현은 잠시 눈을 감은 체 감정의 여운을 정리하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감정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것도 잠시 댓글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와! 슈ㅎㄷㄷ
-오늘은 괴작이 아니라 대작을 내놓네
-언니…. 왜 이리 슬퍼요ㅠㅠ
-이거 어디서 영감을 받은 거임?
서수현이 눈을 떴다.
입을 떼려다가 다시 다문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 곡은 제가 좋아하는 채널을 보고 떠올린 곡이에요. 전에 한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데 시하페페 채널이라고.”
-아! 거기 뭔지 암!
-임티작가채널ㅋㅋㅋㅋ
-아 생각난다ㅋㅋㅋ 프라모델 응모하려고 댓글도 달았는데….
“네. 맞아요. 이번에 거기서 달력 굿즈를 팔거든요. 근데 그걸 전액 기부한대요. 환경이 열악한 신생아들을 위해. 그걸 보고 떠올린 노래예요.”
-와씨ㄷㄷㄷ 갑자기 나 소름 돋음...
-잠깐만 가사 좀 띄워 주실래요????
“아, 네. 가사가 어디 보자.”
서수현이 가사를 띄웠다.
댓글들이 그제야 왜 영감을 받았는지 알아차렸다.
신생아의 관점에서 가사가 처음부터 전개되었던 것이었다.
처음 빛을 봤을 때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뜻했다.
귓가에 기도 소리가 들린다는 뒤부터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토해지고 있었다.
“24시간도 채 안 되어서 떠나가는 아이들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달력도 사고 이 곡에 나오는 음원 수익과 지금 후원해 주는 금액, 이걸 너튜브에 올리는 편집본에 나오는 수익 모두를 기부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도 혹시나 정말 혹시나 괜찮으시다면 시하페페 달력 꼭 사주세요.”
“이건 뭐 제가 광고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좋은 달력 하나 산다고 생각하고 그 김에 기부도 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수현이 손에 작은 털모자를 끼운다.
꼼지락 움직이면서.
“그럼 오늘 스트리밍은 여기까지 할게요. 지금 바로 편집해서 너튜브 영상도 올릴 테니까 많이 시청해 주세요.”
-잠시만요 ㅠㅠ
-그냥 스트리밍하면서 편집해요ㅠㅠ
-우리도 찍은 거 한 번 더 듣고 싶어요ㅠㅠ
“그럴까요?”
시청자들이 노래를 한 번 더 들었다.
그때 후원이 터지면서 누군가 나타났다.
[슈님. 영상 잘 봤습니다. 혹시 저도 이 곡 커버해도 될까요? 괜찮으시면 MR 곡을 받고 싶은데.]
-???
-와! 씨…. 미쳤다….
-로운님이다….
커버곡 채널 중에 상당히 큰 너튜버 로운이 등장했다.
***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해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있다면.
이번에 열악한 환경의 신생아들을 위한 ‘하루만’ 커버곡 챌린지가 생겼다.
커버곡 너튜브 사이에서 로운이 먼저 스타트를 끊자 노래가 좋은지 다들 MR를 받아서 커버곡을 시작했다.
물론 기부한다는 취지도 좋았다.
그리고 가사에 담긴 아이의 시각과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심금을 울린다.
이보다 더한 챌린지가 어딨겠는가.
실시간 순위가 갑자기 치고 오더니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너도나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영상에 나오는 수익은 전액 기부한다는 전제다.
덩달아 시하페페 작가의 달력을 사겠다는 사람들도 점점 불어나 버렸다.
서수현이 의도적으로 광고했지만 이 정도로 화제가 될 줄 몰랐다.
이게 다 노래가 좋아서였고 로운이라는 인기 너튜버가 제목으로 ‘하루만 커버곡 챌린지’라는 영상을 올려서였다.
사람들은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고.
또 달력을 사야겠다는 사람들도 조금씩 있었다.
이래저래 달력을 구입하겠다는 사람만 30만 명이 넘어섰다.
“3천 명도 아니고 30만 명?”
“지금도 계속 늘고 있는데요?”
나는 백동환에게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백동환이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뭔 이상한 챌린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니. 이게 뭔. 어찌 된 건데?
“아. 이거 타고 들어가서 알아보니까 수현이 누나가 먼저 곡을 만들어서 시하페페 작가 달력 사라고 광고했다고 하던데요?”
“아…….”
서수현이 자기 채널에 광고한다고 했었지.
좋은 곡도 떠올라서 그거 부르면서 한다고 했는데 일이 왜 이렇게 커졌는지 모르겠다.
백동환이 또 서수현의 영상을 보고 있나 보다.
“이거 영상 보니까 너튜버 로운님이 커버곡으로 스타트 끊었네요.”
“그거네!”
아무리 서수현이 광고했다고 해도 30만 명이 다 달력을 사려고 달려들 리는 없잖아.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그렇지.
그리고 그냥 달력 안 사고 후원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오히려 돈으로 기부하는 것 자체도 꺼리는 사람도 많다.
“쓰읍. 아니 근데 이거 달력 만드는 회사에서 물량 감당이 되려나?”
“글쎄요?”
1만 개, 2만 개도 아니고 30만 개 이상이다.
지금도 올라가고 있다.
공장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거 하나둘 더 같이 공수해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나는 시하랑 같이 그냥 소소하게 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냥 적은 돈이라도 기부했다는 게 중요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다들 마음은 알겠는데 그만 클릭해 줘요! 따로 기부하란 말이야!
속으로 그런 생각이었다.
뭐, 업체에서 택배로 보내고 알아서 다 할 것 같은데. 아무튼, 이건 비용 다 떼고 남은 순수익으로 기부하는 거라 모인 금액보다 적어질 수밖에 없다.
뭐, 그건 다들 알고 사는 거겠지만.
“이야. 시하페페 작가 인지도 엄청 높아지겠네.”
“조용히 해. 머리 아프니까.”
일단 업체에 전화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업체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졸음쉼터가 있어서 차를 옆으로 댔다.
“형님.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전화 받으시죠.”
“어. 땡큐.”
전화를 받으면서 백동환과 자리를 바꿨다.
“네. 사장님.”
「네. 안녕하세요. 제가 방금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지 봤는데…….」
다행히 사장님이 그 정도는 업체에서 감당 가능한 모양이었다.
사실 내가 이런 부수발행은 처음이어서 놀란 것뿐이지 일 년에 찍어내는 달력이 수억 부라고 한다.
내가 뭘 알고 있었어야지. 아무튼, 내 고민은 의미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좀 아쉽네요. 오늘까지 마감이니까. 좀 더 물량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이 부분은 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2주간 진행해서 그렇지. 만약 한 달간 모집했다고 하면 엄청나게 불어나지 않았을까?
아무튼, 오늘까지 약 31만 개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다.
‘저 챌린지 계속되면…….’
챌린지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저걸 보고 알아서 기부하시면 된다.
하지만 내가 달력 만드는 처지고 이익을 얻을 입장인데 사람이 저렇게 많으니 금액이 너무 커서 부담스럽다.
물론 전액 기부할 생각이지만 그래도 솔직히 너무 부담스럽다.
대충 계산해 보면 1만 2천 원짜리에 30만을 곱하면 36억 원이다.
세상에 이렇게 큰돈을 손에 쥐는데 가슴이 안 떨리고 배기겠는가.
물론 여기서 제작비용이 빠지겠지만 그래도 억 단위 돈이다.
“정신 나갈 것 같아.”
내가 아무리 최대한 잡아도 천만 원 정도 기부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무슨 억 단위 돈이 들어오냐고.
이래서 아이돌들이 돈 잘 버는구나. 굿즈 한 번 사면 막 그냥 막! 돈이 막!
시하야. 아이돌 하지 않을래? 아니지. 정신 차리자.
순간 돈에 혹해 버렸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안 괜찮아.”
그렇게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백동환은 중간에 자기 집에 스스로 데려다가 나에게 운전석을 넘기고 떠났다.
“시하야. 일어나.”
“우웅?”
삼촌도 다 왔냐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시하에게 달력 살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말해 주었다.
“마나!”
“반응이 그게 끝이야?”
“엄청 마나!”
“어. 그래.”
하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모를 만하지.
금액을 들어도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있지. 암!
“뭔 아기 채널이 그렇게 인기가 많아?”
삼촌은 금액에 경악하고 있었다.
어? 그거 시하가 인기가 많은 게 아니라 뭔가 화제가 되어서 그래요.
아마 기간이 좀만 더 길었으면 이것보다 훨씬 많이 주문 들어왔을걸요?
그렇게 말하자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이 채널 구독자들은 시하가 어린 거 알아?”
“모르죠. 밝힌 적이 없는데.”
“그래?”
“네.”
삼촌이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너도 삼촌처럼 비밀이 많은 남자구나?”
“아? 시하는 비밀이 삼춘보다 마나.”
“많기는.”
“진짜야.”
“그게 뭔데?”
“시하는 형아를 우주만쿰 조아하는데 사실 우주보다 더 큰 게 비밀이야.”
“그게 뭔 개떡 같은 비밀이냐?”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암! 시하는 형아를 우주보다 더 크게 좋아하지. 근데 시하야. 너의 비밀을 형아가 들어버렸어. 이제 비밀이 아니야.
삼촌이 또 묻는다.
“그럼 나는 얼마나 좋아하는데.”
“…비밀이야.”
“뜸이 좀 길다?”
“삼춘. 이제 집 가자. 시하 차에서 내려.”
“말 돌리지 말고!”
“삼춘. 시하가 비밀이 만타고 해짜나. 이거 말하면 비밀 아냐.”
“아까는 비밀 잘도 말하더만!”
“갠차나.”
“갑자기 괜찮다는 말이 왜 나오냐?”
시하가 삼촌을 피해 쪼르르 내 다리로 숨는다.
삼촌이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하는 표정이시다.
오늘 놀 때 그렇게 놀리시더니 마지막에 시하에게 한 방 먹으셨네요.
마지막에 이기면 다 이긴 거지.
오늘도 시하 승!
“근데 시하야. 형아가 궁금한데 삼촌은 얼마만큼 좋아해?”
내가 앉아서 귀를 가까이 대자 시하가 귓속말을 해준다.
“형아보다 마니 작게.”
나보다 조금 적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많이 적게, 구나?
한 우주만큼은 되겠다. 그치?
“그렇구나.”
“뭔데. 시혁아. 나도 좀 알자.”
“지구만큼 좋아한대요.”
“아니 너는 우주보다 큰데 나는 우주에 비하면 지구만큼은 너무 조금 아니야?”
“그러게요.”
흠흠. 우주만큼은 비밀이니까 지켜줘야지.
“형아 어떠케 아라써?!”
근데 진짜 지구만큼이라고 생각했냐!
비밀이 탄로 났다.
“형아 대다내! 시하랑 가치 다 아라!”
어? 그거 우연히 맞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