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빙판이 보인다.
구멍이 자그맣게 뚫려 있는데 각자 하나씩 낚싯대를 쥐고 있다.
시하는 구멍이 신기한지 낚싯대는 쓰지 않고 구멍 안만 바라보고 있다.
멍하니 바라보는 게 좋은가 보다.
삼촌이 그런 시하에게 말했다.
“시하야. 뭐 해? 삼촌이 잡을까?”
“아냐! 시하가 해!”
시하가 낚시를 시작했다.
잠시 뒤 이리저리 낚싯대를 흔들어보는데 소식이 없다.
정말 빙어가 있나 의심이 들 지경이다.
“형아. 빙어 이써?”
“응. 있을 건데 이상하게 잡히지는 않네? 왜 그럴까?”
“빙어가 코오 자고 이써. 구래서 여기 안 와.”
“그럴지도 모르겠네?!”
지금은 낯이긴 한데 빙어들이 잘 수도 있는 거지. 사람처럼 밤에만 꼭 자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잠자느라 맛있는 미끼도 못 보고 안 올라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와! 잡았다!”
저기 떨어진 곳에서 승준이 소리쳤다.
시하의 동공이 떨린다.
빙어는 잠을 자지 않았고 승준이에게 잡혔다.
“형아. 우리도 폭탄 너으까?”
“시하야. 그거 나쁜 짓이잖아.”
삼촌 때문에 시하가 나쁜 짓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안 잡힌다고 해도 그러면 안 돼.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삼촌이 씨익 웃는다.
“진짜 폭탄 넣을까? 삼촌이 항상 품에 폭탄을 들고 있거든.”
“정말?!”
“응. 당연하지. 보여줘?”
“보여져.”
삼촌이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시하도 나도 머리에 물음표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삼춘. 폰이자나.”
“응. 이 폰으로 폭탄을 만들 수 있지. 열을 엄청 가하거나 조금 찌그러뜨리면 배터리가 펑! 하고 터져.”
“거짓말!”
아니, 어떻게 보면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배터리의 외형적 구조를 잘못 설계해서 충전할 때 터졌다는 기사를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실제로 될지 안 될지는 실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기는 한데.
“진짠데? 여기 전기 나오잖아. 전기.”
“아?”
“전기로 폰이 되는 거 알지? 찌리릿. 찌리릿.”
“폰이 만화처럼 백만 볼트 써?”
“백만 볼트만큼 상처는 줄 수 있지.”
“!!!”
시하는 처음 알았다는 듯이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마 폰이 힘을 주면 백만 볼트를 찌익 쏘는 걸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럼 삼촌이 빨리 이걸로 폭탄 만들어서 여기 넣어?”
시하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정말 폭탄이 된다면 너무 위험하다는 걸 알아서 그러는 걸까?
“시하는 빙어 만나고 시푼데 나뿐 짓이라 하면 안 대.”
“그럼 삼촌이 대신해 줄까?”
“아냐. 삼춘이 나뿐 짓 모타게 하꺼야.”
“왜?”
“삼춘 나뿐 짓 하면 경찰이 자바가. 구러면 시하가 경찰서 가야 하자나. 시하 바뿐데.”
“시하 바쁜데 귀찮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말 아니야?”
삼촌이 어이없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뭔가 감동적인 말을 기대했나 본데 그러려면 놀리는 걸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뭐 하느라 바쁜데?”
“시하는 형아랑 놀아서 바뿌지.”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시하가 삼촌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어떻게서든 한 번은 찌른다.
삼촌도 사실 시하를 좋아하는지라 한 번 푹하고 찔려버린다.
저리 말하면서도 의자에 앉아서 둘이 붙어 있는 걸 보니 웃기다.
물론 시하랑 나도 붙어 있지만.
“시하야!”
승준이 종이컵을 들고 온다.
안에는 물과 빙어가 들어있었다.
나는 사실 엄청 큰 빙어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작은 빙어가 있었다.
이게 다 큰 건가?
하긴 뭔가 이런 장난감 같은 낚싯대로 아주 큰 물고기 같은 건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때? 엄청나지?”
“승준아. 이거 대다내. 빙어 커.”
“응. 엄청 커.”
시하 눈에는 저것도 큰가 보다.
자세히 보니까 우리 집에서 키우는 물고기보다 큰 것 같았다.
아마도 시하의 물고기 기준은 집에 있는 물고기들이 아닐까 싶다.
“막 헤엄치고 있어.”
“슉슉 헤엄쳐. 슉슉.”
내가 보기에는 종이컵이 작아서 막 그렇게 슉슉 헤엄치지 않는 것 같은데.
“아빠한테도 자랑했는데 아빠도 열심히 해서 잡을 거랬어. 막 위아래로 흔들면 잡힌다고 따라 했는데 잡았어.”
“위아래로 흔들어?”
“응.”
교수님은 우리와 떨어진 곳에 입질을 슬슬 시작하고 계신다. 하나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옆에서 백동환이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는 거로 보인다.
저거 사실 빙어들이 백동환의 기운을 느끼고 가까이 안 오는 거 아니야?
어른 둘이서 따로 구멍 잡고 빙어를 잡으려고 애쓰고 있으니 뭔가 이상하게 짠해 보였다.
빙어낚시에 진심인 두 사람이여.
“형아. 위아래로 흔들어야 해.”
“응. 그러게.”
시하가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엉덩이가 위아래 위위아래로 흔들린다.
낚싯대를 흔들어야지 시하 몸을 위아래로 흔들면 어떡하니?
뭐, 귀엽긴 하지만.
“시하야. 낚싯대만 위아래로 흔들면 돼. 몸 전체를 흔드는 게 아니라.”
“아코!”
그런 거였냐면서 이마를 탁 치는 시하였다.
그리고 삼촌이 이걸 놓치지 않았다.
“푸흡. 시하. 바보래요. 바보래요.”
“아? 시하 바보 아냐.”
“바보래요. 바보래요.”
“형아 시하 바보 아니지.”
“응. 바보 아니지. 삼촌. 그만 놀려요.”
“마자. 삼춘. 시하 바보 아냐. 시하 형아 달마써 똑똑해. 왜냐면 시하눈 형아 동생이니까.”
아주 완벽한 논리구만.
삼촌이 웃으면서 바보 시하와 평강 시혁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모르는 시하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시하 바보 아니라고 해찌!”
“응. 그래. 알았어. 시하 바보 아니다.”
“마자!”
그렇게 입씨름을 하고 있을 때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시하는 뭔가 손에 당기는 힘이 드니까 눈을 껌뻑였다.
삼촌이 스윽 시하의 손을 잡아서 말한다.
“시하야. 잡혔다. 그대로 끌어올려!”
“아라써!”
휙! 위로 올려진 빙어가 잡혔다.
근데 완전 새끼였다.
승준이 보여준 빙어보다 훨씬 작아 보였는데 참 아쉬웠다.
“형아. 엄청 작아!”
“응. 아기 빙어야. 이거는 좀 보다가 놓아주자.”
“왜?”
“아기 빙어는 좀 더 커서 자식들도 낳고 하려고. 그러면 나중에 올 때 빙어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어서 그래.”
“아기 빙어도 형아 빙어 이써서 노아져야겠다.”
형아 빙어가 있다니.
나는 괜히 코끝이 시큰거렸다.
원래라면 아빠, 엄마 빙어가 있다고 해도 될 말이었을 것이다.
근데 시하는 형아 빙어라고 말한다.
그 요소요소가 내게는 조금 가슴 아프다.
“형아. 삼춘 빙어 잡자. 삼춘 빙어는 안 노아져.”
“야. 시하야. 난 왜!”
“아? 시하는 삼촌 빙어 말했눈데? 삼춘 말한 게 아냐.”
“끄응. 아! 삼촌 빙어인 건 어떻게 아는데? 형아 빙어일 수도 있잖아.”
“형아 빙어는 살랑살랑 헤엄치고 삼춘 빙어는 촐싹촐싹 헤엄쳐. 시하 다 아라.”
“내가 그렇게 촐싹댔나?”
나는 시하의 표현에 웃음이 터졌다.
하여간 웃긴단 말이야.
이런 빙어낚시 하나로 참 재밌는 추억을 만드는 것 같다.
“형아. 시하가 승준이한테 자랑하고 노아져도 대?”
“응. 자랑하고 와.”
시하가 종이컵을 소중히 안아서 승준에게 다가갔다.
“승준아. 시하 자바써.”
“정말? 어디 보자. 와! 진짜 귀엽다!”
“하나도 볼래. 끙차. 와!”
조그마한 종이컵 사이로 아이들 셋이 머리를 맞대고 보고 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흐른 것 같다.
여기는 한 시간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저 멀리서 안내원이 시계를 톡톡 치면서 시간이 다 되어 감을 알렸다.
아무래도 슬슬 정리해야겠다.
“시하야. 이제 가야 한대. 다른 사람도 빙어낚시 해야 해서.”
“아라써.”
시하는 알았다고 하는데 저 멀리서 백동환과 교수님은 안 된다고 소리쳤다.
아무래도 한 마리도 못 잡은 듯싶다.
입질해야 한다고 자신 있게 가르친 교수님인데 어찌 된 게 자신만 잡지 못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
신나게 놀면 배가 고파지는 법이다.
우리는 근처의 매점에서 식사를 때우기로 했다.
먹거리가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 꼬마김밥과 컵라면, 어묵탕을 사 들고 자리에 앉았다.
“와. 맛있겠다. 시하야 먹자.”
꼬챙이 하나를 들고 어묵을 앙, 하고 시하가 먹었다.
꼬마김밥도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겨울날에 먹는 따뜻한 음식이 너무 꿀맛이다.
“형아. 이거 마시써.”
“응.”
“삼춘. 이거 머거바. 마시써.”
“삼촌은 이미 먹었지.”
“!!!”
어느새 삼촌 앞에 꼬챙이가 하나 있었다.
어묵을 하나 들더니 한 입, 두 입 하고 바로 사라진다.
꼭 저렇게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입을 가진 사람이 있더라.
씹는 건지 삼키는 건지 모를 속도로 어묵이 사라진다.
“삼춘 대다내.”
“우웅웅우우웅.”
“삼춘! 머그면서 말하면 안 대.”
“우우웅우우웅”
“맛있는 거 시하도 아라.”
어떻게 대화가 통하는 거지?
전에 한 번 봤던 장면이라도 신기한 건 신기한 거다.
“시하야. 삼촌이 컵라면 맛있게 먹는 방법 알려줄게. 먼저 김밥을 라면 안에 적시고 그다음 면이랑 같이 호로록 먹는 거야.”
“!!!”
김밥 풍덩. 면발 호로록.
삼촌의 입이 블랙홀인 듯 양 쭉쭉 들어갔다.
입에서 단무지가 씹히는 소리도 들렸다.
확실히 엄청 맛있게 먹었다.
“형아. 시하도.”
“너무 뜨거우니까 덜어서 저렇게 먹자.”
라면을 덜고 김밥을 퐁당 넣었다 빼서 시하가 잘 먹을 수 있게 해줬다.
꼬마김밥이라고 하지만 길게 되어 있어서 시하의 입에 다 안 들어갈 것이다.
“베어먹자.”
앙! 오물오물.
맛있는지 너무 잘 먹었다.
“마시써.”
“그렇지?”
승준과 하나도 다 잘 먹어서 보기가 좋았다.
신나게 놀아서 배가 고팠는지 입에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이거 먹고 이제 갈까?”
“웅. 가자.”
아무래도 아이들은 충분히 논 것 같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로 운전하고 가는데 뒤에서 삼촌이랑 시하가 똑같이 잠들어 있다.
한 손이 배에 가 있는 것도 똑같았다.
어떻게 하면 자면서도 둘이 이렇게 친할까 싶다.
싸우면 친한 거라고 하던데 딱 이 두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형님.”
“응?”
백동환이 조수석에서 껌을 씹고 있다.
“당일치기라서 많이 피곤하지 않습니까? 껌 드세요.”
“아니야. 괜찮아. 너무 그러면 휴게소나 졸음쉼터 보이면 잠깐 쉴게.”
“네. 그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제가 운전해도 되고요.”
“아, 그러면 되겠다. 넌 안 자?”
“조수석에서 자면 운전석도 잠 오잖아요.”
“그건 그렇지. 아무튼, 오늘 고맙다.”
“아닙니다. 근데 호텔 잡아서 자고 올라가도 될 텐데 왜 당일치기입니까.”
“그냥. 자고 가는 것보다 그냥 이렇게 빨리 집에 올라가서 내일 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왜 아쉬워?”
“아니요. 전혀요.”
“아닌데. 캠핑을 못 해서 아쉬워하는 것 같은데?”
“겨울에 캠핑가면 입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지.”
저번에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여기까지 같이 논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조수석에서 졸지 않게 해주니 그것도 고마웠다.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 말해도 됩니까?”
“아니. 하지 마. 말하지 마.”
“캠…….”
“말하지 말라고!”
차라리 돈으로 살 수 있는 선물을 말해!
고놈의 캠핑은 무슨.
“그건 교수님에게 제안해봐.”
“안 됩니다. 교수님은 아이들과 아내분이 있지 않습니까. 자유롭지가 않습니다.”
“나는 뭐 자유롭냐.”
“그래도 삼촌분이 계셔서 조금 여유가 생긴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캠…….”
“말하지 마! 안 들어줄 거니까 목구멍에 넣어둬.”
“넵!”
백동환이 폰을 들었다.
“노래라도 틀까요?”
“시하가 깨지 않겠어?”
“조용한 노래라도. 아, 그럼 잠 오겠구나. 그럼 펀딩이나 봐야겠네요. 얼마나 나왔나.”
“한 3천 명 모였지 않을까?”
백동환이 폰에 몇 번 클릭하더니.
“어? 형님…. 와!”
백동환의 숫자를 듣고 나도 없던 잠이 달아나버렸다.
생각보다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