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4화 (384/500)

384화

펀딩이 모일 수 있는 날짜는 충분히 설정해 두었다.

한 달은 너무 긴 것 같고 한 2주 정도.

이런 것이 처음이라 날짜를 얼마나 설정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달력 만들어주는 회사에서도 최대한 돕겠다고 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가격은 1만 2천 원.

너무 비싼 건 아닌가 싶었지만 전액 기부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해서 고개만 끄덕였다.

뭐, 살 사람은 사겠지.

그건 그렇고 오늘 시하에게 물어볼 말이 있다.

“시하야.”

“아?”

“혹시 썰매 타고 싶어?”

“썰매가 모야?”

“미끄럼틀 같은 건데? 눈으로 된 미끄럼틀. 어. 보통 튜브나 그런 거 타고 내려가는데. 얼음 위에서 나무에 앉아서 열심히 끄는 것도 썰매라고 불러.”

“!!!”

미끄럼틀이라고 하니까 이해가 쏙쏙 되나 보다.

시하가 뭔가 말하기 전에 삼촌이 폰으로 썰매를 보여주었다.

“이런 거지.”

“와! 재미께따!”

시하라면 저리 반응할 줄 알았다.

삼촌이 씨익 웃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다.

“시하야. 그거 알아?”

“모가?”

“삼촌이 썰매보다 스키를 엄청 잘 타거든? 아! 보드도 재밌게 타지.”

“그게 모야?”

“바로 이거야.”

영상에서 멋지게 보드를 타며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한 바퀴 휘리릭 돌면서 착지한다.

“머시써!”

“그치? 삼촌이 이거 엄청 잘 타거든.”

“삼춘. 이것도 썰매야?”

“아니. 이건 보드.”

“!!!”

“그냥 삼촌이 이 정도 탄다고 자랑하려고 말한 거야.”

“시하도 탈 수 이써?”

“시하는 꼬맹이라서 아직 안 되지롱. 썰매나 타라.”

“잉잉!”

시하가 그런 삼촌의 다리를 탁탁 때린다.

괜히 시하가 할 수 없는 걸 들이밀어서 놀리다니. 내공이 어마어마하네.

“시하야. 썰매도 충분히 재밌어. 빙어낚시도 재밌고. 어떻게 할래? 갈래?”

“시하 갈래! 갈래!”

“동환이도 간대.”

“백동 형아?!”

“응.”

“조아. 군데 형아. 승준이랑 하나도 가치 가자.”

“그럴까?”

안 그래도 한번 물어보려고 했다.

애들이랑 다 같이 가면 재밌으니까. 이런 곳은 혼자 가는 것보다 애들이 함께 꺄르륵거리면서 썰매를 타는 게 재밌다.

추억도 공유되고.

“근데 날짜가 맞을지 모르겠네.”

“갠차나.”

“아니. 너는 당연히 괜찮지.”

시하야. 너만 괜찮으면 당연히 모든 사람이 다 괜찮은 거 아니야. 그 부분은 착각하지 말아 줄래?

“그럼 전화한다?”

“형아. 빨리.”

“알았어. 어. 받았다. 여보세요. 승준 어머니. 저희가 썰매장 갈 건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 시하가 승준이랑 하나랑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요.”

승준 어머니는 좋다고 한다.

잠시 스피커폰으로 애들에게도 물어보겠다고 한다. 또 교수님도 아셔야 하니까.

「시하야! 안녕!」

“안녕!”

「시하야 안녕!」

“하나야. 안녕!”

「시하야. 왜 전화했어?」

“승준이랑 하나랑 썰매장 가고 시퍼. 구래서 가치 썰매 타고 시퍼.”

「진짜?! 우와! 재밌겠다. 나도 시하랑 가고 싶다!」

「하나도! 하나도! 시하랑 시혀기 오빠랑 갈래.」

“군데 백동 형아도 온대. 대단하지?”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걸까?

저기 목적어나 주어가 빠진 게 아닐까?

앞뒤 다 잘라먹고 대단하다고 하면 승준이랑 하나가 어떻게 알아듣니?

「헐! 진짜 대단하네! 썰매 다 부수겠다!」

「백동 오빠가 슈퍼맨 하고 그 위에 타면 대단하게써.」

“마자. 백동 형아가 다 이겨.”

대충 뭔가 이야기가 통하는데? 뭔지 알아들은 거야?!

그리고 백동환은 대체 왜 눈썰매장이랑 싸우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이기기까지 하는가 보다.

동환아. 너 애들에게 이미지가 인간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어…….

“구리고 빙수 낙시도 한데.”

시하야. 빙수 낚시가 아니라 빙어낚시야.

아까 이야기해 줬는데 대충 들은 게 틀림없다.

「빙수 낚시?! 막 낚싯대에 빙수가 걸려서 어이쿠 팥이 나와?」

「하나는 빙수 낚시 궁금해! 빙수 맛있는데.」

“시하도 빙수 마시써.”

그러니까 얘들아. 빙수를 낚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기대하지 마. 그런 낚시 없어!

“시하야. 빙수 낚시가 아니라 빙어낚시야.”

“아코!”

「아, 뭐야. 빙수 낚시가 아니야? 근데 빙어가 뭐지?」

「하나는 빙어낚시 말고 빙수 낚시하고 시푼데.」

아무래도 아이들은 빙수 낚시가 아니어서 실망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하가 말실수했을 때 바로 정정할 걸 그랬다.

“형아. 빙어가 모야? 빙빙이가 어! 그래! 하는 거야?”

“빙빙이는 누구니? 아, 빙수가 빙빙이였나? 흠흠. 빙어는 말이야. 얼음 아래에 사는 물고기를 말하는 거야.”

“!!!”

“엄청나지?”

“얼음 아래에 물고기 살면 자바서 냉장고에 너어도 헤엄쳐?”

“아니.”

어떻게 하면 그런 발상이 되는 거냐?

얼음에 헤엄치는 게 아니야. 얼음 아래에 있는 물에 헤엄치는 거지.

그렇게 설명하자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가 보면 바로 알아.”

그때 스피커폰으로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빙어낚시……?」

어쩌면 빙어낚시를 하고 싶은 건 백동환뿐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저 발언 하나로 교수님도 오케이 떨어지겠구나 싶었다.

***

우리는 썰매장에 도착했다.

중간에 내 차로 백동환을 픽업해서 갔다.

개장 시간은 9시.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바빴다.

왜 9시에 도착해야 하냐고?

당연히 사람이 적으니까 그렇지. 사람이 많으면 무슨 재미겠냐.

개인적으로 놀이동산을 가면 놀이기구를 기다릴 때도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싫은 법이다.

그래서 승준 엄마와 개장하자마자 들어가자고 했다.

다들 그렇게 움직이지 않겠냐고?

천만의 말씀.

아이들의 잠투정을 무시하지 마시라.

세상에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한산하네.”

“형님. 그래도 우리처럼 생각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

주차장에 내려서 매표소로 향했다.

입장과 썰매 이용 비용이 합해서 인당 2만 원.

어차피 비쌀 줄 알았다.

하지만 즐기는 것에 비하면 그렇게 비싼 가격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늘 2만 원어치 이상으로 즐겨야겠다!

“자. 들어가자.”

우리는 추운 겨울에 대비해 따뜻하게 입었는데 손에 장갑도 꼈다.

시하는 작년에 산 군밤 모자를 쓰며 귀도 따뜻하게 했다.

이걸로 방한은 완벽하다.

“형아. 저기!”

“응. 성이네.”

썰매장으로 향하는 길 입구.

얼음으로 조각한 성의 입구가 보였다.

입구인 터널은 얼음이 아니라 벽으로 되어 있어서 얼음이 녹아도 문제없어 보였다.

승준과 하나도 눈을 반짝였다.

“우와! 저기 성에 올라가고 싶다!”

“공주님 성이야! 렛잇고! 레잇고!”

입구만 봤는데도 2만 원 값을 하는 것 같다.

이런 게 있으니 비싼 거구나.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야외 조형물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눈으로 만든 조형물들도 많았다.

폭포수를 얼린 듯한 빙벽.

눈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의 큰 얼굴들.

진짜 얼음으로 만든 이글루.

“이굴루야. 이굴루.”

“시하야. 안으로 들어가자.”

“하나가 먼저 들어갈래!”

다들 쪼르르 이글루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시하랑 쌍둥이의 사진 찍어주느라고 정신없었다.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 해!

“형아. 왜 안 따뚜테?”

“밖이 여기보다 아주 훨씬 더 추우면 여기가 따뜻할 거야.”

원래 온도라는 게 상대적인 것이니.

실제로 이글루가 있어서 좀 더 낫다고 생각될 뿐이지 추운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승준이 말했다.

“근데 이 얼음으로 빙수 만들 수 있어?”

“오빠는 맨날 이상한 소리 해!”

“이걸로 빙수 만들면 다 같이 먹어도 다 못 먹어.”

시하가 그 말을 받았다.

“승준아. 여기 벽돌 하나 빼서 만들면 돼. 그러면 밖에도 이렇게 볼 수 이써.”

시하가 눈을 가늘게 뜬다.

저 얼음 벽돌 꽤 큰 거 같은데 왜 눈은 가늘게 뜨는 거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이런 곳이 참으로 신나나 보다.

썰매장을 가는데 여러 가지 볼 수 있는 게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시하야. 썰매장이네.”

“!!!”

썰매장이 높이별로 단계가 있었는데 제일 높은 곳은 시하와 애들의 키가 되지 않아서 갈 수가 없었다.

“저기 제일 노푼 곳은 형아랑 백동 형아가 갈 수 이써. 군데 백동 형아.”

“응?”

“백동 형아는 여기보다 더 노푼 곳 가야 해.”

“대체 난 얼마나 높은 곳에 가야 하냐.”

“우웅. 저기보다 더 서이 배 큰데!”

“그 정도면 놀이기구보다 더 무서울 것 같은데.”

“백동 형아가 이겨.”

“???”

승준과 하나도 백동환이 이긴다고 말한다.

동환아. 너는 인간이 아니라 눈산과 싸우는 사람이란다.

아이들이 그렇대.

“형님. 여기 튜브를 끌고 위로 올라가면 됩니다.”

“그렇네.”

아이들과 함께 튜브를 끌고 위로 올라갔다.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 산 타는 기분이 느껴지는데 나만의 착각인가.

“형님. 여기 몇 번 타면 운동 되고 좋은 것 같습니다.”

“너만 좋아. 너만.”

“아닙니다. 애들도 좋아하지 않습니까.”

애들이야 미끄럼틀도 몇 번이나 타러 올라가니까 말이지.

“다와따!”

아이들이 산 정상에 올라온 듯 기뻐한다.

시하는 여기가 진짜 산인 듯이 ‘야호!’ 하고 외친다.

승준과 하나도 같이 ‘야호!’ 하고 따라 한다.

저기. 얘들아? 여기 산 탄 거 아니거든?

아니지. 어떻게 보면 산 탄 게 맞나? 언덕 수준인 것 같기도 한데.

“준비 다 됐으면 여기 앉으세요.”

안내 요원이 말했다.

“시하야. 같이 탈까?”

“형아랑 가치?!”

“응. 혹시 무서우면 형아랑 같이 타자.”

“시하 안 무서운데. 군데 형아랑 가치 탈래.”

나는 시하를 안아서 튜브에 앉았다.

승준이는 씩씩하게 자기 혼자 타겠다고 한다.

하나는 조금 무서운지.

“엄마 같이 타자.”

“그래.”

교수님이 아빠는? 하고 물어봤지만 고개를 젓는다.

시무룩해지는 교수님이었다.

“그럼 출발합니다.”

안내 요원이 튜브를 뒤에서 밀어주셨다.

슈우우웅.

“형아! 빨라! 재미써!”

“응.”

엄청 빠르게 아래로 내려오며 끝이 났다.

“???”

“너무 빨리 끝났지?”

“벌써 끝나써.”

“원래 썰매가 그래.”

“또 타. 또!”

“이번에 혼자 타 볼래?”

“혼자 타 볼래!”

승준과 하나도 한 번 타고 흥분했는지 시하 손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나도 열심히 튜브를 끌고 다시 오른다.

뒤에서 백동환과 교수님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빙어낚시는 이다음에 갈 거지? 하면서 흥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촌은.

“으하하하. 삼촌이 먼저 올라갈 거다.”

“앗. 삼춘!”

“으악! 시하 삼촌 엄청 빨라.”

“시하 삼촌 벌써 위에 있어.”

사람이 없으니 괜히 빨리 위로 올라가는 삼촌이었다.

그러면서 덩달아 아이들도 뛰게 되었고.

“시하야. 삼촌이랑 누가 먼저 내려가는지 해볼래?”

“시하는 형아랑 가치 내려갈 거야. 형아 옆에 오면 가꺼야.”

“후후후.”

또 삼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줄줄이 앉아서 두 번째 썰매가 출발했다.

슈우웅.

나는 시하의 튜브를 같이 잡고 내려가서 그런지 굉장히 빨리 내려갔다.

“시하가 삼춘 이겨따!”

“으하하. 간다!”

“앗!”

삼촌이 시하의 튜브랑 부딪쳤다.

퉁.

이미 아래로 다 내려가서 속도는 약했지만 말이다.

“이게 바로 삼촌의 공격이다. 어때? 대단하지?”

“삼춘 어캐 해써?”

“삼촌은 내려가면서 방향 조정을 할 수 있지!”

“정말?!”

“그럼! 당연하지.”

“삼춘 대단해!”

시하야. 저거 거짓말이야. 그런 방향 조정은 불가능해.

하지만 또 삼촌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는 시하였다.

“형아. 또 타자. 또!”

그렇게 몇 번을 타고 나서야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형아. 저건 모야?”

“아. 얼음 봅슬레이장?”

“얼음이 곱슬곱슬해? 얼음이 똥글똥글대?”

시하야. 곱슬이 아니라 봅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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