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3화 (383/500)

383화

7월의 그림은 수영하는 페페.

8월의 그림은 스탠드형 에어컨에 찰싹 달라붙은 페페.

9월은 우산을 들고 있는 페페.

10월은 거대한 단풍잎을 들고 은행잎과 함께 내려오는 페페.

11월은 광선 검을 양손에 들고 있는 페페.

광선 검은 삼촌이 아주 강력히 주장해서 넣을 수밖에 없었다.

삼촌 때 광선 검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마지막으로 12월은 역시 누구나 다 아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산타페페였다.

이렇게 모든 콘티를 다 짤 수 있었다.

“다 해따!”

“응. 다 했네. 천천히 그리자.”

“아라써.”

말은 알았다고 하면서 시하 방으로 쏙 들어간다.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삼촌은 그걸 신기하다는 듯이 보고 나는 폰으로 스톱워치를 켠다.

“시혁아. 그건 왜 켜는 거야?”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안 좋아요. 30분 되면 내려오게 하려고요.”

“집중력 다 깨지는 거 아니야?”

“좀 쉬다가 또 하면 되죠.”

의욕은 좋지만 철저한 관리를 해줘야 한다.

이미 생각해야 할 콘티 부분은 다 짜여 있었고 그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너무 오래 그려도 몸에 좋지 않다.

“하여간 신경 많이 쓴단 말이야.”

“제가 신경 써야죠. 뭐.”

우리는 열심히 그리는 시하를 보았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리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이번 일로 또 한 번 성장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

시하의 12개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이미 달력 견본도 따 본 시점에서 영상을 올리기로 했다.

시하페페 채널에 오랜만에 올라온 그림.

제목은 [12개월의 축복]이었다.

늘 그렇듯이 먼저 흰 도화지가 나온다.

[안녕하세요. 시하페페입니다. 오랜만이네요.]

[오늘 그림은 좀 많습니다. 무려 12개나 되네요ㅎㅎㅎ]

[제목을 보고 눈치채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맞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그림입니다.]

레드페페 얼굴이 새해처럼 떠오른다.

누가 보면 재밌다고 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1월이 지나고 2월, 3월이 올 때쯤.

[우리가 이런 계절을 볼 수 있는 건 축복입니다.]

[물론 4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나라도 있지요.]

[그렇다고 해도 12개월을 온전히 보내고 계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1년간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시사페페는 그걸 말하고 있었다.

[봄을 넘어 여름이 오고 가을을 넘어 겨울이 옵니다.]

12월. 산타페페의 그림.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달력을 전부 넘기지도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산타가 되어 정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1년을 넘길 수 있는 달력.]

[이 달력을 팔아서 얻은 이익은 전액 기부를 할 생각입니다.]

[얼마나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얼마 모이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서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완성된 탁상 달력.

한 장, 두 장 넘겨지는 모습이 나오며 영상이 마무리되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링크도 걸어서 마무리했다.

사람들이 다 보고 나서 댓글을 달았다.

-외쳐! 시하페페!!!

-12개월을 볼 수 있는 축복ㅎㄷㄷ

-우와. 달력 가지고 싶다!

-난 살 거임. 달력도 하나 가지고 기부도 하고ㅎㅎㅎ

-시하페페 작가 근데 굿즈 같은 거로 돈 벌 생각은 없는 듯ㅎㅎㅎ

-저번 페페 프라모델도 그렇고 그냥 퍼주는 듯? 사실 그것도 실제로 판다고 하면 50~60? 많게는 100 정도 하잖아.

-마즘 ㅋㅋㅋ 실제로 자기가 칠하기도 했으니까ㅋㅋㅋ

-심지어 한정 판매였음 ㅎㄷㄷ

여러 댓글이 달렸지만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먼저 시하페페가 굿즈 상품 같은 걸 잘 안 내놓는다는 게 첫 번째였고.

전액 기부라는 점이 두 번째.

그런 의미에서 다들 한번 사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달력이라서 그냥 책상 위에 놓아도 되고 다른 식탁에 놓아도 되는 거니까.

은근 필요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에도 해석가가 댓글을 달았다.

[역시 마음이 따뜻한 시하페페 작가다.

1년을 넘기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말 1년을 넘길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표현이 너무 좋았다.

달력을 선택한 이유가 해를 하나둘 넘어가기 바라는 마음이라니.

다른 사람들도 시하페페의 달력을 하나둘 넘기면서 자그마한 기원이라도 보내게 될 것 같다.

분명 이건 작가가 의도한 바가 틀림없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나온다.]

그런 거창한 뜻이 담겨있지는 않고 그저 우연히 달력을 보며 시하가 팔아야겠다고 떠오른 것뿐이었다.

말을 붙여서 적은 건 시혁이었고.

아무튼, 오늘도 열일을 한 해석가였다.

***

100명이든 1,000명이든 일단 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에 프라모델을 만들었을 때 몇 명이 신청했더라?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신청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대량 주문이면 원가가 더 싸지니까 많이 모였으면 했다.

그래야 많이 기부할 수 있으니까.

금액과 상관없다고 했지만 기왕이면 많으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뭔가 동네방네 소문이 난 것 같다.

시하페페를 아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오빠. 오빠!”

서수현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보인다.

“어? 너 왜 여기 있어? 바쁜 거 아니야?”

“저요? 안 바쁜데요? 한가한데요. 아주.”

“그러면 저기 한 바퀴 돌고 와.”

“왜 갑자기 산책시키려고 하세요!”

“아니. 한가하다길래.”

한가하면 역시 산책이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서수현이 시하페페 영상을 봤다고 난리였다.

“와 진짜 프로젝트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해석가가 시하페페 의도를 딱 말하는데. 크으. 오빠 생각이죠?”

“어?”

아니. 시하페페가 누군지 아는 사람에게는 저 해석이 내가 의도한 해석으로 보이는 건가?

어이쿠야. 그걸 믿어? 믿는다고?!

“뭐, 그렇게까지 깊숙이 생각한 건 아닌데 대충 의도는 맞아.”

“역시!”

뭔가 심히 거짓말하는 기분이 드는데.

“그리고 이거 기부하는 거 시하가 생각한 거야. 달력 팔아서 주고 싶다고.”

“정말요? 와! 시하 너무 마음이 예뻐요.”

“사실 처음에는 털모자 만들기를 하다가 시하가 못하니까 잘하는 거로 도와주고 싶었나 봐. 좋은 거 떠올렸다고 달력 파라! 달력! 하더라.”

서수현이 밝게 웃었다.

시하가 너무 귀엽다고 말한다.

뭐, 다 아는 사실이지만 또 들으니까 기분이 좋네.

“아, 맞다. 오빠.”

“응?”

“저 이거 4개나 샀어요.”

“4개까지 필요 없잖아?”

“그냥 엄마, 아빠 주려고요. 그리고 하나는 보관용이고 하나는 사용하는 거.”

“뭘 또 보관용까지.”

“에이. 오빠. 아마 이거 사는 사람 보관용 살 걸요? 진짜 사용하는 사람은 2개 살 거고.”

“그런가?”

특정 그림 작가들의 굿즈 같은 걸 사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오빠. 제가 홍보해도 돼요?”

“어? 어디에? 톡방에?”

“아니요. 거긴 벌써 했고요.”

“벌써 했냐?”

어찌 된 게 나보다 네가 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어? 그리고 행동력 뭐야? 너무 빠르잖아?

“어. 고맙다.”

“아니에요. 근데 제가 너튜브에 홍보해도 되죠?”

“그거야. 상관없지. 허락 안 받아도 되는 거 아니야?”

“그냥 물어봤어요. 혹시 별로라고 할지도 모르니까.”

“뭐, 나야 좋지.”

“오케이. 알았어요. 제가 이 영상 보고 확 떠오른 게 있거든요. 노래랑 같이 올리면서 홍보할게요.”

“어. 고맙다.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좋은 일은 나눠야죠. 근데 막 기대는 하지 마세요. 구독자들이 저 좋아해서 들어오는 거지 시하페페 채널 좋아서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사면 좋으니까.”

서수현이 할 말이 끝났는지 피식 웃으며 강의실 의자에 앉았다.

“안 가?”

“오빠는요? 원래 회사에 있을 시간 아니에요?”

“오늘 좀 학사에 물어볼 것도 있고 내야 할 것도 있고 그래서 그냥 왔지. 오늘 하루 휴가야.”

“아하.”

“안 가냐?”

“왜요?! 제가 방해돼요? 휴가라며!”

“라며?”

“…요.”

“휴가라도 일해야지. 번역할 것 많다.”

“그거 꾸준히 들어오나 봐요?”

“응. 들어오더라. 이게 하나하나 경력 쌓이니까 잘 들어와. 초반에 진입이 단가 후려치기가 많아 뚫기 힘들어서 그렇지 안정적이게 꾸준히 하면 일은 계속 들어오더라.”

“신기하네.”

“나도 그래.”

“이제 나도 가야겠다. 괜히 있으면 오빠 방해만 하고.”

“빨리 깨달아줘서 감사합니다.”

“이 오빠가 진짜!”

서수현이 부루퉁한 표정을 짓다가 문을 열고 나갔다.

삐졌나? 뭐, 이런 거로 안 삐지는 건 아니까.

드르륵.

다시 서수현이 보였다.

“어? 간 거 아니었어?”

“마시면서 일하세요.”

따뜻한 커피 하나를 두고 손을 흔든다.

언제 또 학교에 있는 카페 들려서 이거 가지고 왔어?

“오빠. 그럼 갈게요.”

“어. 잘 가. 커피 고마워.”

“빨리 영상 올려야지.”

서수현이 사라졌다.

따뜻한 커피만 남기고 말이다.

톡. 톡. 건드리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어? 동환아.”

「형님! 소식 들었습니다!」

“아. 소식 들었어?”

「네. 섭섭합니다. 정말. 먼저 저에게 이야기해주시지.」

섭섭좌 오셨나 보다.

뭘 또 이런 걸 이야기하나. 그냥 자그마한 프로젝트인데.

“들었으면 됐지. 혹시 출처가 서수현이니?”

「네.」

“아, 그래? 어마어마하구만.”

「그래서 저도 선배들에게 홍보하고 그랬습니다.」

“뭔데 대체. 너희가 무슨 홍보대사야?”

「시하페페 홍보대사 맞습니다. 근데 연락 많이 안 받으셨습니까? 아마 홍 과장님도 난리 쳤을 것 같은데?」

“아, 잠시만.”

폰으로 톡을 확인해 보니 많은 사람에게 왔다.

경트리오부터 홍 과장님까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아직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읽지는 않았는데 왜 정신이 없지? 신기한 기분이다.

“어마어마하게 왔네.”

「그렇죠?! 저도 영상 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근데. 그거 말하려고 이렇게 전화까지 한 거야?”

「오랜만에 목소리 듣고 좋죠.」

“저번 달에 집들이 오지 않았어?”

「왔죠. 그 정도면 오랜만이죠.」

“점점 홍 과장님 닮아가는 것 같은데.”

「와. 너무 심한 말입니다. 흑흑. 아! 혹시 겨울 캠핑에 관심 없…….」

“없어.”

무슨 캠핑을 사계절 내내 하냐.

어?! 물론 차를 구해서 캠핑 가는 거 좋지! 차도 샀으니까.

근데 캠핑 갈 친구들 없냐!

하긴 사계절 내내 저러고 있는 데 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럴 줄 알고 제가 재밌는 썰매장을 알아봤습니다.」

“갑자기?”

「빙어 낚시도 할 수 있어요. 시하도 좋아할걸요!」

“어, 그건 그렇지.”

확실히 작년 겨울에는 그냥 눈싸움하고 눈사람만 만들었지 썰매장 같은 곳은 가지 않았다.

여러모로 바쁘기도 했고.

그런데 이렇게 또 백동환이 추천하니까 혹했다.

“밖에서 자거나 캠핑하는 건 아니지?”

「겨울에 밖에서 자면 입 돌아갑니다.」

“그치?”

「너무하십니다. 형님. 믿음이 너무 부족하시네요. 저번 여름에 계곡은 좋았잖습니까.」

“그래. 좋았긴 했지.”

흠흠. 호텔에서 자서 그런지 괜찮긴 했다.

재밌는 것도 많았고.

“일단 시하에게 물어볼게. 아마 가게 되면 삼촌도 같이 가게 될 것 같은데.”

「같이 빙어 낚시하고 있으면 되겠네요!」

“너 사실 캠핑이 아니라 빙어 낚시하고 싶은 거지?”

「하하하!」

아무래도 심증으로 빙어 낚시가 확실해 보였다.

「그럼 일단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통화를 종료하고 밀린 톡을 보았다.

경트리오방.

-안경호 : 우와! 대박! 안 그래도 달력 하나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회삿돈으로 팡팡 사야겠네! 전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박경준 : 이왕이면 많이 사서 학과 애들도 나눠줄까???

-신경환 : ㅈㄹ하고 자빠졌네. 누구 맘대로 회삿돈을 그렇게 많이 쓰래??? 뒤질래???

홍진수 과장

-홍진수 : 시혁 씨! KI 출판사의 마스코트인 시하페페 작가님이 좋은 프로젝트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제대로 홍보하겠습니다!!

-홍진수 : 아앗...!! 대표님에게 들켜서 혼났습니다ㅠㅠ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걸까.

진실이 무서워서 물어보질 못하겠다.

-알리사 : 저도 응원할게요!!! 벌써 직원들이 다 샀어요! 다들 시하 좋아하니까요!

이 사람들 전부 직원들에게 사게 하려는 거 아니지?

모두 자금 횡령으로 걸리는 거 아니지?

어찌 되었든 작은 날갯짓을 했는데 태풍이 온 것처럼 난리를 피운다.

하여간 심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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