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0화 (380/500)

380화

1월 25일.

아침 일찍 일어난 시하는 분주하다. 오늘 형아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시하는 형아가 생일날에 미역국 해준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하가 형아에게 미역국 해주고 싶었다.

이미 삼촌하고 작당 모의를 했기에 충분히 미역국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평일이고 어린이집 가는 날.

평소보다 일찍 잠든 시하는 형아보다 훨씬 빨리 일어날 수 있었다.

“형아. 코오 자야 해.”

형아에게 주문을 건 뒤에 슬쩍 방을 나섰다.

삼촌 방으로 바로 간 다음에 침대 위로 올라갔다.

“삼춘. 일나. 일나.”

흔들흔들.

입맛을 다시며 삼촌이 슬며시 눈을 떴다.

동그란 시하의 얼굴이 보이자 슬며시 손가락으로 볼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말랑말랑한 감촉을 느끼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인다.

“아? 삼춘! 일나! 일나!”

찰싹찰싹.

삼촌의 뺨을 두드린다.

삼촌의 얼굴은 찡그리는 표정으로 바뀐다.

스르륵.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나서 시하의 머리를 헝큰다.

“하암. 이 시간에 깨우다니.”

“삼춘. 오늘 형아 생일이야.”

“어? 어. 그랬지.”

“미역국 해야 해.”

“어? 그래. 시하야. 준비해놔. 삼촌 나갈게.”

“아라써.”

시하가 도도도 달려서 부엌으로 갔다.

밑에 있는 찬장에 어제 산 즉석 미역국을 꺼낸다.

삼촌이 편의점에서 이거면 시하도 미역국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껌뻑 넘어갔다.

열심히 비닐을 뜯었다. 뚜껑을 열었다. 컵국 블록을 뜯어서 넣는다.

“삼춘.”

“알았어.”

삼촌이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멍하니 기다린다.

시하는 의자에 앉아서 발을 흔들며 김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물 부으면 미역국 완성이야.”

“정말?”

“응. 어때? 요리 쉽지?”

“엄청나! 대다내!”

“이걸 잘 알면 시하는 국밥도 만들 수 있고, 치킨, 만두, 꼬지. 많은 요리를 할 수 있어.”

“!!!”

시하는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하는 요리를 할 수 있어. 형아에게 밥도 많이 해줄 수 있어.

뭐 그런 생각을 한다.

사실 간편식이 그냥 전자레인지를 돌리거나 물을 부으면 손쉽게 되지만 그걸 요리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그랬다.

이미 만들어진 요리이니까.

“이제 물 붓자. 뜨거우니까 삼촌이랑 같이 잡고 붙자. 알았지?”

“아라써.”

물을 붓고 1분 정도 지나자 미역이 풀어진다.

삼촌이 시하에게 젓가락을 쥐여주고 휘휘 저으라고 말한다.

삼촌의 말대로 하니 정말 미역국이 탄생했다.

코를 대서 킁킁 맡아보니 미역국 냄새가 났다.

“미역국 다 만드러써?”

“응. 이게 끝이야.”

“!!!”

시하는 신기하다는 듯이 컵을 쳐다보았다.

형아가 미역국 만들 때는 냄비에 보글보글했는데 삼촌이 알려준 방법은 물만 뿌리니 완성되었다.

“이제 형아 깨우자.”

“시하가 깨우꺼야.”

시하는 방에 들어가 이불을 들쳐서 형아의 품에 쏙 들어갔다.

시혁이 잠결에 시하를 느꼈는지 으음 하면서 안아버린다.

토닥토닥 조금 두드리다가 다시 잠을 잔다.

“형아. 형아. 일나. 일나.”

“으음? 시하야?”

“형아. 시하가 미역국 해써. 형아 생일 추카야.”

“???”

시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하의 손에 잡혀서 밖으로 나오자 미역국을 볼 수 있었다.

“푸흡.”

“형아. 이거 시하가 만드러써. 시하 이제 요리 잘해.”

“어? 그래? 그렇구나.”

“밤에는 생일 추카 노래 불러.”

“어? 정말? 엄청나네.”

시혁이 모르는 새에 모든 계획이 다 짜여 있었다.

시혁은 방금 막 일어나서 그런지 그랬구나. 시하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기만 했다.

“형아. 머거바.”

“어? 그래.”

시혁은 미역국을 후후 불어서 먹었다.

그냥저냥 괜찮은 맛이었다. 심플한 맛. 먹을만한 맛.

“형아. 마시써?”

“시하가 해줘서 더 맛있네?”

“만세!”

시혁은 그저 시하가 기뻐했으면 됐다는 듯이 웃었다.

“시혁아. 이제 밥 차리자.”

와장창 분위기 깨는 삼촌의 대사에 시혁은 아침잠이 달아났다.

왜 삼촌은 밥은 안 차리고 미역국만 만든 것이지?

그런 의문이 들어선 순간이었다.

***

어느덧 시하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천천히 차를 몰면서 오늘 아침의 일을 떠올린다.

푸흡.

웃음이 나온다. 설마 내가 시하에게 미역국을 받을 줄은 몰랐다. 비록 즉석 미역국이었지만 마음이 너무 예쁘지 않은가.

아버지가 나에게 미역국을 받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제는 물을 수 없어서 그저 상상만 하게 된다.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는 것보다 더 기쁜 것 같다. 그냥 괜히 오늘 큰 선물을 받은 느낌.

삼촌에게도 고마웠다.

삼촌이 없었으면 시하가 미역국을 만들지도 못했을 테니까.

끼익.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서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시하야! 형아 왔어.”

“형아!”

“시혁이 형아다!”

“시혀기 오빠다!”

오늘은 도도도 달려오는 게 시하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거. 뭔가 익숙한 풍경인걸?

그런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데 시하가 아이들의 선두에서 서서 예쁜 포장지를 내밀었다.

“형아. 선물!”

“와! 이게 뭐야?”

“친구들이랑 시하랑 가치 만드러써. 마나!”

“응? 이 안에 선물이 많이 들어있어?”

“마자!”

“고마워. 지금 열어봐도 돼?”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도 기대 어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대체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서 빨리 리본을 풀고 뜯어보았다.

“와.”

안에는 8개의 그립톡이 개별 포장지에 하나씩 들어있었다.

“얘들아. 진짜 고마워. 진짜 잘 쓸게.”

“형아. 생일 추카해!”

“시혁이 형아 생일 추카해!”

“시혁이 오빠 생일 추카해!”

다 같이 축하의 인사를 받았다.

나는 다시 한번 고맙다고 답했다.

시하는 나를 빤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형아. 이제 마쳐야 해.”

“응? 이거 누가 만들었는지 맞춰야 한다고?”

“마자!”

이거 맞출 수 있으려나? 그런 고민이 들면서 하나, 하나 맞혀보기로 했다.

의외로 제일 쉬운 것도 있었다.

“이건 승준이 꺼네?”

누가 봐도 썬더 쓰리 동호회를 상징하는 그림.

이런 건 눈치로 알아맞힐 수 있다.

아이들이 우와! 하면서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뭔가 별것도 아닌데 칭찬받는 기분이다.

괜히 이렇게 기대감을 줘서 점점 실망시키는 건 아닐까?

일단 시하 것은 마지막에 맞혀야겠다.

그림이 페페라서 누가 봐도 시하가 그린 거라고 티가 난다.

“이건 재휘가 그렸지? 옷이네. 그리고 이건.”

이런 정답을 맞히는 데 소거법이 좋다.

확률을 점점 높이자.

헤드셋의 은우, 제일 이상한 그림인 윤동.

그림체를 봤을 때 왠지 여자아이들이 그릴 것 같았는데 책 모양이 더 잘 그린 것 같다.

연주의 실력은 예전부터 알고 있으니 두 개 다 맞혔다.

“이건 종수가 그렸네? 어? 사람인데 누구니?”

“시하요.”

“아하! 그렇구나. 크흐흠.”

“크흑.”

왠지 못 맞혀서 미안했다.

대체 이건 누구 얼굴인지 몰랐으니까. 이런 얼굴 그림은 특징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어쩔 수 없지. 뭐.

“마지막으로 이건 시하 꺼!”

“마자! 형아 대다내!”

“역시 시혁이 형아야!”

“시혀기 오빠. 어떻게 맞혔어?”

“진짜 짱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칭찬한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띄워주는지.

아마 다른 어머니들도 다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어린이집 친구들을 봐왔으니까 말이다.

“흠흠. 다들 고마워. 이거 소중히 할게.”

근데 이거 귀여워서 너무 쓰기 아깝다.

혹시라도 부러지면 어떡하나. 그런 심리적 방어기제 때문에 이대로 소중히 보관만 할 것 같다.

“시하야. 이제 갈까?”

“형아. 가자!”

우리는 친구들과 인사를 하며 차로 향했다.

시하가 가방을 벗고 차를 타며 말했다.

“형아. 시하가 삼춘 선물도 이써.”

“응?”

“삼춘 선물. 그립톡.”

“아, 정말? 형아랑 같은 거야?”

“아냐. 형아랑 다른 거야. 구리고 줄 사람 마나.”

“푸흡. 그래?”

아무래도 이왕 만드는 김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립톡을 줄 건가 보다.

근데 나만 특별히 천사페페인 걸 보니 뭔가 뿌듯하다.

“이거는 삼춘 꺼.”

“오!”

악마페페. 아주 장난기 넘치게 웃는 것 같다. 정말 삼촌을 닮았구나.

나머지도 악마페페인가 싶었는데 그냥 페페가 그려져 있다.

양산용이구만.

천사 날개랑 악마 날개가 특별한가 보다.

우리 시하가 뭘 좀 아는 것 같다. 본 게 있으니 팔 줄을 아네!

이건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함이다.

“형아. 빨리. 빨리.”

“응. 알았어. 그 선물들은 언제 주게?”

“다움에?”

뭐, 다들 시하 선물을 좋아하겠지.

***

집으로 오니 삼촌이 우리를 반겼다.

삼촌이 온 뒤로부터 집안에 반기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는 것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냥 평범하게 다녀왔냐고 묻는 건데도 그게 너무 좋아서 가슴이 따뜻해진다.

물론 티는 안 냈지만 말이다.

“둘이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어.”

“거짓말하지 마요.”

“진짜라니까? 내가 엄청난 케이크를 들고 왔거든!”

“또 무슨 짓을 하시려고.”

“어허. 무슨 짓이라니.”

삼촌이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낸다.

뭔가 특별한 제작일까?

케이크를 꺼냈는데 내 얼굴이 있다.

“형아다!”

종수의 얼굴 그림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특징을 잘 잡아서 그린 것 같다.

근데 얼굴 케이크라니. 난 이거 좀 무서운데. 내가 떨떠름하게 있자.

“왜? 엄청 좋지 않아?”

“뭐. 그저 그런데요.”

“그래도 시하는 엄청 좋아하잖아. 반응도 뜨거웠어!”

시하는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거로 보였는지 바로 태세 전환했다.

“아냐. 시하 안 조아해.”

“아까 형아다! 하고 좋아했잖아?”

“아냐. 이거 초 형아 얼굴에 못 노아. 안 조아.”

“오호. 그렇단 말이지? 근데 이거 어쩌나? 이거 쿠키랑 설탕공예로 만든 거라서 떨어지거든.”

“???”

삼촌이 케이크 윗면에 있는 얼굴 부분을 들어 올렸다.

확실히 저 부분만 케이크랑 분리되게 한 것 같았다.

시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까의 논리가 부정당하게 되었다.

이제는 초를 꽂을 수 있으니까.

삼촌이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듯이 씨익 웃었다.

“삼춘. 이거 모야?”

“이거 호일이지. 크림 망가지면 이상하잖아.”

케이크 윗면에 있는 호일을 때자 평평한 케이크가 제대로 자태를 들어낸다.

“이래도 안 좋아? 그럼 이거 삼촌이 지금 다 먹을까?”

“아냐. 시하가 한 번 더 보께. 아까 잘 모 바써.”

“어? 지금 내가 먹을 건데?”

“삼춘! 형아 부수지 마!”

시하야. 그건 형아 아니야. 그냥 쿠키랑 설탕이야.

삼촌이 또 놀릴 걸 찾았는지 씨익 웃었다.

“싫은데. 안 줄 건데.”

하지만 시하도 만만치 않다.

“구럼 시하도 삼춘한테 선물 안 져.”

“어? 선물? 삼촌한테? 뭔데?”

“말 안 해. 비밀이야. 삼춘이 주면 시하가 선물 주께.”

“어. 그래. 알았어. 자!”

“형아다!”

안 좋아한다고 해놓고는 사실은 제일 좋아하는 시하였다.

나는 저게 떨어지는 걸 보니까 좀 그렇다.

뭔가. 음. 그렇다. 이상한 느낌이다. 뭐라 잘 설명은 못 하겠지만 말이다.

“이거 여기에 노코.”

선물을 꺼내려면 가방을 열어야 한다.

식탁 위에 쿠키를 올려놓고 삼촌의 선물인 그립톡을 꺼낸다.

“삼춘. 이거.”

“오! 그립톡이네? 악마네?”

“앙마야. 앙마.”

“오호. 이거 요즘 말로 그거 아니야? 선물이라고 하면서 멕이는 고도의 수법?”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대? 예능을 자주 보시니 예능에서 배우셨나?

“안 되겠다!”

시하 손에 있는 쿠키를 빼앗았다.

시하가 잉잉! 하면서 삼촌 손에 있는 얼굴을 뺏으려고 점프했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또 이러려고 일부러 시하 손에 쥐여준 거 아닌가 싶다.

“이제 생일 축하 파티해요.”

“아, 그랬지. 놀리느라 잠깐 깜빡했네.”

역시 놀리는 데 진심인 삼촌이었다.

우리는 거실에 앉아서 초에 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시하가 제일 열심히 부른다.

그리고 이런 건 생일 초를 두 개 주니.

“형아! 또!”

불을 두 번 켤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생일 축하 노래를 두 번 듣는다.

아무튼, 이렇게 재밌는 케이크도 먹고 좋은 선물도 받아서 기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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