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9화 (379/500)

379화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사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사실은 별거인 일을 한 느낌.

시하는 오늘 삼촌이랑 맛있는 거 먹고 집에 왔겠지?

또 서로 투덕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삼촌은 왜 이렇게 장난이 많은지. 내 어릴 때부터 그래서 익숙하지만 사람이 익어감에 따라 조금은 진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어찌 된 게 더 장난기가 많아진 느낌이다.

“다녀왔습니다.”

“형아! 다녀와써?”

도도도 달려서 시하가 내 품에 안긴다.

시하가 내 목을 감싸며 힘주는 느낌이 기분이 좋다.

푹신한 베개보다 묵직한 시하가 더 좋다.

“오! 어서 와.”

삼촌이 소파에 누워서 손을 흔든다.

그러고 나서 티비로 시선을 돌린다. 요새 재밌는 예능이라도 하는 건지 시선을 떼지 못한다.

“푸하하.”

“삼촌. 오늘 시하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근데 오늘 뭐 드셨어요?”

“그냥 대충 먹었지.”

시하가 내 어깨를 탁탁 쳤다.

“형아. 내려져.”

“어? 응.”

부엌으로 가더니 의자 위로 올라가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온다.

아까부터 있었는데 저 검은 봉지는 뭘까?

“형아. 이거. 시하가 싸와써.”

“응?”

“시하 오늘 삼춘이랑 떡볶이랑 순대 머거서. 이거 형아 꺼.”

“와. 맛있겠다.”

안에는 순대가 있었다.

물론 돈은 삼촌이 낸 거겠지만 이렇게 형아를 위해 챙겨준 게 너무 기특했다.

근데 지금쯤 식었겠네.

“그럼 한번 먹어볼까?”

“형아. 이거 마시써.”

“응. 고마워.”

“형아 마니 먹고 마니 커.”

“형아는 이제 안 크는데.”

“구럼 마니 먹고 마니 건강해져.”

“푸흡. 알았어.”

나는 삼촌을 보았다.

탱자탱자 놀고 있는 삼촌의 다리를 찰싹 때렸다.

“아야! 왜?”

“아무리 그래도 저녁을 떡볶이로 먹이는 건 뭐예요.”

“맛있잖아. 떡볶이. 국민 음식이라고.”

그걸 외국인이 말하니까 뭔가 묘하다.

“하여간 시하 식단 신경 써주세요.”

“어릴 때는 이렇게라도 식사 때우는 것도 알아야지. 그리고 밥도 먹었어. 볶음밥.”

“채소는요?”

“하하하. 채소야. 뭐.”

“과일은?”

“과일 안 먹어도 잘만 살아.”

나는 피식 웃었다.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골고루 먹어야 해. 알았지?”

“시하는 형아랑 가타서 골고루 잘 머거. 오늘 양파도 머거써.”

“와. 양파를?”

“보꿈밥 해주는데 이게 머에여 물어써. 군데 아줌마가 양파에여. 해져써.”

“그랬구나.”

“군데 떡볶이 맛이야.”

“푸흡. 양념이 떡볶이 양념이니까.”

나는 순대를 열어서 입에 넣었다.

뭐 순대는 식어도 맛있었다. 시하도 내가 먹는 모습을 보더니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입안에 쏙 넣어줬다.

“형아. 마시써.”

“응. 맛있네.”

하나둘씩 먹으니 어느새 없어졌다.

원래 이 시각에 이렇게 안 먹는데 시하가 사줘서 앞에서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형아 다 먹어따!”

“그렇게 동네방네 소문 안 내도 알고 있어.”

“삼춘! 형아 다 먹어써!”

소문내지 말라니까 삼촌에게도 소문내는 시하였다.

삼촌이 귀찮은지 시하의 머리를 밀었다.

“안 보인다.”

“삼춘 맨날 티비 바. 시하랑 놀아져.”

“형아 왔으니까 형아한테 놀아달라고 하면 되잖아.”

“형아랑 삼춘이랑 다 가치 노꺼야.”

시하가 삼촌의 시야에 있는 쪽으로 앞에 섰다.

삼촌의 손이 안 닿는 범위만큼.

“하하! 그렇다면 앉는 방법이 있지!”

시하가 도도도 부엌으로 달려가 의자를 끌고 티비 앞에 놓는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 팔을 쫙 펼친다.

“이야.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삼춘 이제 그만 보꺼야?”

“이거 중요한 장면인데!”

“이거 전에 본 거자나. 시하 다 아라!”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네.”

“형아 대다내.”

“???”

아마 시하의 머릿속에는 형아가 기억력 좋으니까 닮은 시하도 기억력이 좋다. 그러니 형아는 대단하다. 뭐 그런 공식이 성립했나 보다.

삼촌도 이제는 시하 언어에 익숙해졌는지 헹!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확인해 볼래?”

“어떠케?”

“기억력 게임이야.”

“!!!”

그렇게 셋이서 기억력 게임을 하게 되었다.

삼촌이 방에서 그림 카드를 가지고 왔다. 대체 언제 사신 거지?

저런 그림 카드가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시하랑 놀아주기 위해 사신 것 같다.

설마 집에서 혼자 놀려고 산 건 아닐 테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하를 열심히 챙겨주고 계신다.

“자! 여기 동물 카드가 있어. 막 섞는 거지. 이렇게. 이렇게.”

“!!!”

“그리고 바닥에 놓아. 한 사람은 두 번 뒤집을 수 있어. 같은 그림을 찾으면 가지는 거지. 많이 찾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시하 형아 달마서 똑똑해.”

“그래. 얼마나 닮았는지 한번 보자. 참고로 삼촌은 미국 같은 그림 맞추기 금메달리스트야.”

“금메달도 이써?!”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아니. 대회 같은 건 있나? 아무튼, 삼촌이 딸 일은 없겠지.

“그럼! 있지. 암! 엄청 열심히 하는 게 좋을걸?”

“구러면 시하는 형아랑 팀이야.”

“야! 그건 너무 치사하지. 혼자 열심히 해봐.”

“삼춘 금메달 이짜나. 치사해.”

“시하가 형아를 닮았으면 금메달리스트인 삼촌을 그냥 이길 수 있어. 왜냐면 시혁이는 삼촌을 그냥 이기거든.”

“!!!”

내가 같은 그림 맞추기 게임을 삼촌이랑 한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런 거 한 적 없는 것 같다.

“시하 혼자 잘해.”

“그래. 다 개인전이야. 알았지?”

삼촌이 카드를 바닥에 한 장 한 장 열심히 놓는다.

뭐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같은 그림 두 개가 있어서 그런가?

“그럼 시작하자. 삼촌 먼저 할게.”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게임은 처음 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아직 초반이기 때문에 전부 틀린 카드가 나온다면 다음에 차례가 돌아왔을 때 아주 유리한 위치가 될 수 있다.

물론 카드를 전부 기억하고 있을 때 이야기다.

원숭이와 토끼가 나왔다.

“다음은 형아가 할까?”

“아아.”

휙. 휙. 카드 두 장을 뒤집는다.

코끼리와 뱀.

시하가 카드 한 장을 뒤집는다. 원숭이. 이건 아까 삼촌이 뽑은 카드다. 운이 좋았다.

시하도 그걸 기억했는지 눈을 굴린다.

그래. 시하야. 너는 할 수 있어.

아직 어리니까 누구보다도 뇌가 아주 쌩쌩하다고.

“여기!”

시하가 원숭이가 있는 자리를 기억해냈다.

맞혔다고 기뻐서 방방 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두 개를 뒤집는다.

코뿔소와 기린.

이번에는 다른 카드가 나왔다.

삼촌이 씨익 웃는다. 재빨리 손을 쓰더니 휙휙 같은 카드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기억력이 나쁘지 않으셨다.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다. 귀신같이 나왔던 동물들을 모두 가져가는 거로 모자라 운도 좋았다.

척척 하나씩 가져간다.

“하하하. 시하야. 삼촌이 이기겠는데?”

“안 대!”

삼촌이 가지고 있는 동물은 6개. 시하는 1개. 나 0개.

이대로면 확실히 위험하다.

특히나 내가 맞히는 개수가 많을수록 시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겠지.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운 안 좋은 메타로 가야지.

“이번 판은 삼촌이 이기신 것 같은데요?”

“그렇지?”

“네. 그럼 다음 판으로 넘어갈까요?”

승부는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다.

시하를 이기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도 있다.

“이번에는 제가 섞을게요.”

카드를 받아서 섞기 시작한다.

기억력이라면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자신 있다.

특히 순간 기억력은 통역사에게 어느 정도 필요한 덕목이다.

물론 수첩을 들고 다니기도 하지만.

“시하도 섞을래?”

“할래!”

시하도 열심히 카드를 섞는다.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그럼 배치하겠습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바닥에 깔린 카드들.

먼저 시하가 했다.

“아코!”

처음에는 틀릴 수밖에 없다.

삼촌이 카드를 연다. 역시 틀린다.

나도 카드를 여는데 시하가 뽑은 그림이 나왔다. 코끼리.

하지만 나는 모른 척 다른 카드를 연다.

“아앗! 형아. 틀려써!”

“응. 까먹었네.”

일부러 틀린 거다.

시하는 당연하다는 듯이 코끼리 카드를 열어서 가져갔다.

운이 좋아서 하나 더 맞추고 삼촌에게 넘겼다.

이로써 2장의 동물을 얻었다.

“시혁이 치사하네. 일부러 시하가 뽑을 수 있게 기억 안 나는 척했지?”

“하하. 글쎄요?”

“형아. 정말?!”

나는 그저 웃음을 보냈다.

시하가 이기면 형아가 이긴 거지 뭐.

삼촌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2장의 동물을 얻었으니까.

이제는 좀 맞혀야 할 타이밍이다.

휙. 휙. 동물 두 마리 획득. 휙. 휙. 또 동물 두 마리 획득.

남은 동물은 앞으로 3마리. 카드는 6개.

그중 두 개는 오픈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제외하고 4개의 카드 중에 2개를 뽑으면 된다.

왜냐. 다음 차례는 시하니까.

현재 스코어. 나 4쌍, 삼촌 2쌍, 시하 2쌍.

남은 것을 다 맞춘다고 할 때 3쌍을 더 얻을 수 있다.

시하가 다 뽑게 되면 5쌍을 얻게 된다.

이게 바로 설계이자 팀플레이지.

개인전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거. 이거. 아! 둘 다 다른 동물이네?”

“!!!”

“아, 운이 안 좋았다.”

시하가 눈을 반짝였다.

이제 오픈 안 된 카드는 3개.

시하는 그 카드를 뒤집으며 하나씩 맞추었다.

“아싸! 시하 이겨따!”

“우와! 축하해!”

“아싸!”

삼촌이 피식 웃는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뭐, 사실상 2 대 1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너무 일부러 져주는 거 아니야?”

“아닌데요? 운이 없었어요.”

“운이 없는 척하는 거겠지.”

“삼촌이야말로 애 상대로 너무 진심으로 이기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게임은 원래 전력투구로 해줘야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라고!”

그런 마인드는 참 좋다.

얕보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좋은 말이고 명언이지.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 명언이 아니라 망언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아니. 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있나? 너무 지면 스트레스받는 법이다.

“인생에 쓴맛도 좋은 교훈이지.”

“등짝의 쓴맛도 보실래요?”

“이제 네가 내 등짝을 때리는구나. 와라! 삼촌이 다 받아주겠다.”

“진짜요?”

“아니. 그렇다고 진짜로 때리려고 하지 말고. 요즘 늙어서 그런지 뼈가 쑤셔.”

“맨날 집에서 뒹굴거리니까 운동 부족이 아닐까요?”

“아아아아. 안 들려~”

삼촌이 손으로 귀에 뗐다 붙였다 했다.

일부러 이렇게 유치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런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시하가 삼촌에게 말했다.

“삼춘! 시하 똑똑하지. 시하 혼자 다 아라.”

“풉. 넌 아직 멀었어.”

“왜? 시하가 이겨짜나.”

“시하야. 아까 삼촌이 이겼으니까 1 대 1이 아닐까?”

“!!!”

결국, 카드 게임을 다시 한번 했다.

내가 열심히 도와주려고 했지만 각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내가 이기는 거로 마무리했다.

삼촌이 이기면 또 시하를 놀릴 테니까.

차라리 내가 이기는 게 더 낫다.

두 판을 그렇게 내리 이기고 게임을 마무리 지었다.

시하는 반짝이는 눈으로 ‘역시 형아 대다내!’라면서 좋아했다.

너 졌는데 형아 이겼다고 그렇게 좋아하냐?

사실 삼촌만 안 이기면 되는 거 아닐까?

***

시간을 조금 거슬러.

시하랑 삼촌이 떡볶이를 먹고 있을 때쯤.

“삼춘. 오늘 시하가 형아 선물 만드러써. 그립톡이야. 그립톡.”

“아. 네가 전에 부순 거?”

“시하가 형아 생일 선물 준비해써.”

시하가 시혁이에게 이리저리 말하는 것처럼 삼촌에게도 오늘 어린이집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삼촌 선물도 준비했다는 말은 쏙 빼고.

그리고 오늘 어린이집에 있었던 이야기를 시혁에게 못 하는 것도 있으니 이리저리 이야기한다.

삼촌이 순대를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 시하야.”

“아?”

“시혁이 생일이 며칠이지?”

“어휴. 삼춘. 그것도 몰라?”

“어? 어. 음. 너무 오래 외국에 있어서 그래. 근데 시하야. 지금 며칠이지?”

“몰라.”

하도 놀아서 오늘 며칠인지도 모르는 삼촌이었다.

“군데. 형아 생일 왜 몰라. 삼춘 잘모태써여. 잘모 안 해써여.”

“잘못했어요.”

그제야 시하는 형아 생일을 알려주었다.

“125야. 125. 시하 생일이랑 가타.”

“아. 그랬지. 이제 나도 생각나네!”

“거짓말!”

“진짜거든.”

“거짓말!”

“뭐 나도 시하보다 엄청난 선물 준비할 거다!”

“!!!”

“삼촌이 말이야. 엄청난 케이크를 들고 올 거거든. 놀라지 마.”

“시하 선물이 더 조아.”

삼촌은 코웃음 쳤다.

하지만 속으로 조금 초조해하고 있었다.

시혁이가 뭐 좋아하지? 뭐가 필요할까? 선물로 뭐가 좋으려나?

그런 고민을 했다.

그래서 시하에게 살며시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아, 근데 시하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형아는 뭐 좋아하냐?”

“시하!”

삼촌은 어이없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아니. 그거 물어본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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