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화
삼촌이 술래인 채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외국인 삼촌인 걸 자랑하듯이 영어로 숫자를 센다.
“원! 투! 쓰리!”
아이들이 어디 숨을지 꺅꺅대고 있다.
나도 어디 숨긴 해야겠는데 마땅치가 않아서 곤란했다.
어른은 숨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형아. 어디 숨으까?”
“글쎄? 저기 숨을래?”
나는 종이상자를 가리켰다.
내 몸은 무리더라도 시하라면 충분히 들어갈 것이다.
“형아는?”
“형아는 근처에 있을게.”
“아냐. 시하랑 형아랑 가치.”
“응? 알았어.”
시하가 베란다에 끌고 간다.
그리고 박스 하나를 뒤집어서 그 속에 쏙 들어간다.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박스를 내 머리에 씌우며.
“다 해따!”
“이거 다 보이는데. 형아 눈만 가리면 어떡해?”
“우웅. 형아. 몸 숙여바. 몸 찌구리면 대.”
“아니야. 찌그려도 안 돼.”
내가 엎드리며 몸을 웅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하는 주변 종이들을 내 몸에 세우는지 여기저기 붙이는 느낌이 든다.
“다 해따! 큰 종이 쑤레기야.”
진짜 종이 쓰레기 제대로 만든 거 맞아? 그리고 갑자기 집에 커다란 쓰레기가 생겼는데 의심 안 하겠니?
“구럼 형아. 가만히 이써. 시하도 숨으께.”
시하가 박스를 뒤집어 덮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정도 큰 박스면 시하가 웅크리는 거로 다 덮이긴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수상하다는 걸 대번에 알 것이다.
“얘들아. 다 숨었니?”
삼촌의 말에 침묵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무래도 다들 빠르게 잘 숨은 듯했다.
이제 두 번째로 하는 건데 다들 집안 구조에 익숙해졌나 보다.
삼촌이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봐도 이시혁인 거 같은데.”
그야 그렇겠지.
이렇게 큰 종이 쓰레기가 갑자기 생겼는데!
그런데 박스를 들춰내지는 않고 찰칵하는 셔터음이 여러 번 들렸다.
이걸 찍는다고?
“저건 누가 봐도 이시하인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그냥 빨리 찾았다고 하시라고! 이렇게 또 놀려먹는다.
“아,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에 뒤집어 씌워진 박스를 든다.
아무리 모른 척해도 떡하니 몸이 보이는데 안 잡을 수 없는 법이다.
“어? 시하는 없네? 같이 숨어있을 줄 알았는데.”
나를 보며 말하는 삼촌.
멍하니 있는 모습을 또 사진으로 담는다.
왜 이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거야! 확인사살이야?!
삼촌은 오랜만에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나에게 장난기 어린 얼굴을 보인다.
나는 어이없어하며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아, 종이 쓰레기 정리해야지.
지금 치워야 한다.
박스를 바로 세우고 치우고 있자 삼촌은 옆에 시하가 있는 박스를 바라본다.
“아. 시하가 어딨지? 못 찾겠네.”
그렇게 말하며 박스에 살포시 앉는다.
“우웅.”
혹시 무거울까 봐 폭삭 앉지는 않았고 다리에 힘이 빡 들어가시는 것도 보였다.
그래도 무게는 느껴지니 시하가 소리를 조금 내버린다.
“어?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시하인가? 그럼 좀 더 여기 앉아서 쉬어보면 또 소리가 들릴지 모르겠네.”
다 찾아놓고 시하 놀리기.
완전 고단수다. 나라면 그냥 시하 어딨지? 하며 시하가 더 재밌을 수 있게 긴장감을 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삼촌은 오로지 시하를 놀리는 데 사고가 집중되어 있다.
저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지?
“어? 저기에 박스 들고 앉아야겠다. 읏차!”
박스를 엉덩이에 붙이며 자리를 성큼성큼 옮긴다.
그리고 뒤로 돈다.
“아! 시하 찾았네.”
“삼춘 거짓말! 시하 여기 있눈 거 알고 이써찌!”
“아닌데. 진짜 몰랐어.”
“거짓말!”
시하는 삼촌에 대한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야 그렇지. 시하가 있는 곳에 앉았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시하에게 해왔던 놀리기가 충분히 의심을 사게 한다.
“진짜라니까. 삼촌은 몰랐어요.”
삼촌이 억울한 표정을 짓자 시하가 정말인가? 하며 또 속는다.
으이구. 이걸 또 속아?
삼촌이 킬킬거리며 베란다를 떠난다.
시하는 그런 삼촌을 졸졸 따라간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어떻게 찾는지 같이 볼 생각인가 보다.
“형아. 빨리 와.”
“응. 그래.”
나랑 같이 볼 생각이구나. 이시하.
어쩔 수 없이 시하랑 같이 삼촌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어차피 숨을 곳이라고는 다 똑같을 것이고 아까와 달리 아이들만 바뀌어 있겠지.
화장실에 들어가자 욕실에 누워서 숨어있는 승준이 발견.
삼촌이 안 보이는 척 말했다.
“어? 아무도 없네. 물 잘 나오는지 볼까?”
샤아.
살짝 물을 틀자 승준이가 으악! 하며 일어선다.
옷이 조금 젖었다.
그런데 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 정도면 금방 마르겠지.
“그럼 다음은.”
역시나 이불장에 있는 한 사람을 찾아냈다.
이불 하나를 위에 깔고 누워서 숨어있었다. 이불이 위로 볼록 튀어나와서 누가 봐도 여기 있다는 게 티가 났다.
“여기 없나? 이불이라도 바로 펴야겠다.”
삼촌이 그 위로 올라탄다.
“으악!”
종수의 비명이 들렸다.
시하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삼촌에게 말했다.
“삼춘! 아까 일부러 그래찌!”
“아닌데? 진짜 몰랐는데 여기서 비명을 지르네.”
“거짓말!”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 정도로 장난치는 걸 보면 확신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삼촌은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그게 또 얄밉게 보인다.
이래저래 아이들을 다 찾고 나니 삼촌을 보는 눈들이 달라져 있다.
하하하. 저럴 줄 알았지.
“그럼 처음 찾게 된 시혁이 술래네?”
“네. 삼촌도 어디 숨어주세요.”
그렇게 세 번째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사실 나도 삼촌이 내 굴욕 사진을 찍은 원한을 잊지 않았다.
어릴 때 삼촌이 이렇게 가르쳐주었다.
당한 만큼 갚아주라고. 가만히 있으면 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법이라고.
오늘에서야 그 말을 그대로 실행할 때다.
“하나, 둘, 셋!”
숫자를 다 세고 먼저 한 것은 삼촌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삼촌은 자기 방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
이제 귀찮아져서 숨는 것도 쉬면서 하려는 속셈이겠지.
제법 노련하지만 이건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나는 삼촌을 내버려 둔 체 조용한 발걸음으로 떠나갔다.
일단 아이들을 전부 찾았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얘들아. 저기 침대 위에 삼촌이 있거든. 근데 우리 같이 삼촌 찾는 척하고 올라가는 거야. 대답은 하지 말고. 알았으면 고개를 끄덕이기.”
아이들이 재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득키득 웃는 애들도 있다.
가자! 복수하러!
나는 침대 위에서 이렇게 말하며 습격했다.
“어? 삼촌이 어딨지?”
“삼춘 어디찌!”
바로 십자가 형태로 몸을 겹쳤다.
그 위로 애들이 차곡차곡 올라온다.
으윽. 나도 무거워! 하지만 삼촌은 더 무거울 거다.
“어억! 무거워! 항복. 항복.”
“삼촌 어딨지?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항복이라고! 어억!”
아이들이 와다다 올라간다.
시하는 이불 덮은 머리 위로 엉덩이를 내렸다.
“삼춘 어딨지?”
“푸헉. 이 엉덩이 뭐야!”
삼촌이 목에 힘을 주고 시하 퉁 하고 띄운다. 머리를 터는 거로 이불을 떨쳐낸다.
얼굴이 보였다.
“나 여깄어! 여깄어.”
“삼춘 안 보여.”
시하가 다시 삼촌의 얼굴에 이불을 덮었다.
아주 친절한 이시하다.
“어억!”
한동안 삼촌은 무거움에 짓눌렸다.
이게 바로 업보다. 업보. 그러니까 아이들을 적당히 놀렸어야지.
“나 오랜만에 여기 임무지인 줄 알았어. 생명의 위협을 느꼈어.”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정말이야.”
그때 삼촌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왔다.
“무사히 살아남으면 배가 고픈 법이지.”
띵-동-
그리고 타이밍 맞춰서 유다희 선생님이 피자를 들고 오셨다.
***
실컷 놀아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아이들이 피자를 열심히 먹는다.
먹는 방식도 각자가 다양했다.
먼저 오승준.
“시하야. 이거 피자 두 개를 햄버거처럼 쌓아서 먹으면 더 맛있다?”
“정말?”
“응. 입에도 많이 들어가서 좋아.”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 그렇게 많이 먹으면 엄청 배불러서 큰일 나거든!”
“아니거든. 그리고 하나 너는 왜 뒤에 부분 안 먹어?”
“내 맘이야.”
원래 뒤에 부분 안 먹는 애가 나오기도 하지.
연주는 뒤에 부분이 제일 맛있다고 말한다.
이런 부분에서도 취향이 다 다르구나 싶다.
“형아.”
“응?”
“형아는 어떠케 머거?”
“음. 형아는 반 접어서 먹는데?”
나는 피자 한 조각을 반 접어서 먹는 타입이다.
입안에 두툼하게 들어가는 걸 좋아해서 그렇다.
“구럼 시하도 그러케 머글래!”
“어. 고마워.”
이제는 익숙한 반응이다.
종수가 시하를 보았다.
“나는 그냥 정상적으로 이렇게 먹는 게 좋은데. 여기 파마산 치즈도 뿌리고.”
종수는 뭔가 뿌려 먹는 타입인 거 같았다.
“종수 파마해?”
“야! 내가 파마한다는 게 아니라 이게 파마산 치즈라고.”
“치즈가 파마해? 치즈가 막 꼬부랑 꼬부랑 해서 막 실패해서 막 가루대써?”
“그게 뭔 말이야?”
은우가 시하의 말에 꽂혔는지 한 곡 뽑는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갑자기 떼창 잔치.
다들 먹다 말고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어마어마한 단합력이구만.
선생님이 진정시킨다.
“얘들아. 먹으면서 노래 부르면 안 되죠.”
“네!”
우물우물.
잘 먹으니까 보기 좋다.
삼촌은 열심히 먹다가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삼춘 왜?”
“미국에는 이것보다 훨씬 큰 피자를 파는데. 대왕 피자야.”
“거짓말!”
“정말인데? 여기 사람 다 입에 넣으려고 해도 다 못 먹어. 보여줄까?”
“보여져!”
삼촌이 폰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아주 큰 피자 사진을 보여주었다.
저기가 미국인가? 그건 알 수가 없다.
“어때? 엄청나지?”
“엄청나!”
아이들이 자기들도 보고 싶다고 했다.
다들 한 번씩 보더니 엄청나다고 한다.
한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았으면 저게 파는 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이런 나이니까 속을 수 있는 거다.
“엄청 놀랐지? 근데 이건 지구에서 제일 큰 피자고. 우주에서 제일 큰 피자가 있어. 이름하여 우주 피자.”
“우주 피자?!”
“지금 시하가 밟고 있는 땅이 피자지. 거기는 배고프면 땅이 피자라서 뜯어먹으면 돼.”
“정말?! 엄청나!”
“그래서 배고픈 사람이 없지.”
“!!!”
“산도 있어. 파마산이라고.”
“!!!”
그거 아까 파마산 치즈 가루 말하는 거 아닙니까?
“치즈가 산으로 되어 있거든. 알지? 치즈 그림 삼각형인 거?”
“마자!”
“거기 맨날 산꼭대기만 툭 하고 자르면 나중에 자라거든.”
“!!!”
저렇게 우주 피자 행성을 진지하게 말한다.
다른 아이들도 정말이냐면서 엄청 집중해서 듣고 있다.
아니. 저거 거짓말이야.
“군데 삼춘. 어떠케 아라?”
“어? 시하 너 모르는구나? 세상에는 우주를 관찰할 수 있는 로봇이 있거든. 그래서 저기 우주에 로봇을 보내는 거지.”
“우와!”
어?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교묘하게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다.
“시하도 가고 시퍼.”
“근데 사람들에게 좋은 우주 피자는 아니야.”
“왜?”
“피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굉장히 뚱뚱해졌거든. 완전 돼지가 된 거지.”
“!!!”
“그러다가 너 커서 형아처럼 안 되고 아주 큰 풍선처럼 커진다?”
“시하 안 가고 시퍼. 안 갈래.”
“큭큭큭.”
“구냥 피자 시켜 머그면 대지.”
그러면서 피자를 한 입 먹는다.
삼촌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자꾸 킬킬댄다.
시하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삼촌을 빤히 쳐다본다.
“삼춘. 거짓말해찌!”
“뭐가? 아닌데? 진짠데?”
“군데 이상하게 우써써.”
“아닌데? 삼촌은 원래 이렇게 웃는데?”
“…마자.”
시하야. 삼촌 너 맨날 놀리니까 원래 그렇게 웃는 거야.
감은 좋았으나 그 부분을 간과한 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