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즐겁게 파티를 끝내고 다음 날.
어린이집 아이들이 집들이에 왔다.
뭐 말이 집들이지 그냥 시하 집에 놀러 온 거나 다름이 없었다.
쌍둥이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시하에게 집 소개해 줘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집 소개!”
시하는 친구들을 끌고 갔다.
아무래도 집을 소개해 주려나 보다.
“여기 형아랑 시하 방이야! 여기서 형아랑 가치 자. 매일매일 가치 자!”
“침대는 없어?”
“침대 업써. 이불 깔고 자.”
“숨을 때는?”
“!!!”
시하가 장 하나를 열더니 이불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여기 이불에 숨으면 대!”
“오오오! 역시!”
승준이 눈을 반짝였다.
오자마자 숨바꼭질할 곳을 탐색하다니. 역시 애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형아 양말이랑 시하 양말도 이써.”
“여기는 못 숨겠다.”
어이. 오승준. 너 여기서 숨을 생각뿐이냐! 얼마나 숨바꼭질을 하고 싶은 거야?!
시하는 별 신경 쓰지 않는지 애들을 끌고 가서 어항에 있는 물고기를 소개해 주었다.
“여기 일피, 이피, 삼피…….”
물고기들도 어느새 많아졌다.
이놈들이 생각보다 번식이 왕성했다.
시하도 구분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매일 이름을 정해준 애들이 바뀌고 있다.
오로지 새우 하나만이 올바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두 마리였으면 한 번씩 바뀌었겠지.
“밥 엄청 잘 머거. 엄청나!”
종수가 그걸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도 거북이 키운 적 있는데. 시하는 거북이 키운 적 없지?”
“부기부기?”
“야! 이름 마음대로 붙이지 말라고!”
“시하도 나중에 부기부기 키우 꺼야.”
“거북이 뭐 좋아하는지 모르잖아.”
“부기부기는 시하 조아해.”
“그 말이 아니야!”
미래에 키울 거북이의 이름이 정해진 것도 모자라 이미 시하를 좋아하고 있다.
대체 뭐지?
미안하지만 시하야. 거북이는 키울 생각이 없어.
“여기는 삼춘 방이야. 침대 이써!”
“와! 침대!”
“군데 옷이랑 침대만 이써!”
삼촌은 침대랑 옷가지 몇 개를 서랍에 넣으셨다.
뭐 생각보다 자기 물건 같은 건 별로 사지 않으셔서 놀랐다.
그래도 침대는 포기하지 못했나 보다.
우리에게도 침대를 사자고 했는데 그냥 그 돈을 쓰기보다는 이불에 같이 자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하랑 같이 자려면 큰 침대를 사야 하는데 그건 조금 그렇다.
어차피 크면서 시하는 자연스럽게 자기 방에서 잠을 잘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저런 큰 침대도 필요 없을 테니까.
만약 그때가 되어서 이 넓은 침대를 나 혼자 쓴다고 생각해 봐라.
괜히 쓸쓸한 마음이 들어찰 것 같다.
“푹신푹신해!”
시하가 침대 위에 폴짝폴짝 뛴다.
아이들도 올라가서 열심히 뛰었다.
뭐, 삼촌의 침대는 시하의 장난감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하는 모든 물건을 장난감화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이제 시하 장난감 방 보여주께.”
“!!!”
시하 방에 들어가자 주문한 책상과 의자가 있다.
장난감 상자도 있고 전에 만든 페페 프라모델도 있다.
“우와! 시하 장난감이다!”
여기 어린이집 애들이 다 같이 놀기에는 많지는 않지만 어느새 하나, 둘, 셋씩 사주니 점점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은 없었다.
한 번씩은 다 갖고 논다.
“시하가 새로 장난감 또 이써. 이거야. 청청이야. 청청이.”
로봇청소기. 시하가 붙인 이름은 청청이.
충전기와 함께 시하 방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 방에 넣어봤는데 잘 때 충전기의 불빛이 은근 거슬렸다.
종수가 말했다.
“그거 로봇청소기잖아?”
“마자! 청청이야.”
“장난감 아니잖아!”
“아냐. 청청이 장난감이야. 똑똑해. 바바. 청청이야. 청소해. 청소.”
그렇게 명령하자 나는 얼른 폰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앱에 들어가서 청소 시작을 눌렀다.
“청소를 시작합니다!”
“!!!”
로봇청소기가 위잉 움직이면서 청소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놀랐다는 얼굴을 했다.
뭐, 음성인식이 되는 줄 알겠지만 사실 내가 앱으로 조종하고 있는 거다.
“청청이야. 멈처!”
“청소를 중지합니다.”
“다시 청소해!”
“청소를 시작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놀랐다는 듯이 청소기를 바라보았다.
“우와! 시하 말 잘 듣는다!”
승준이 감탄을 뱉는다.
전에 갔을 때 승준이 집은 로봇청소기가 아니라 진공청소기가 있었나? 아마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종수가 코웃음을 쳤다.
“이거 앱에 누르면 되거든! 분명 시혁이 형아가 눌렀을걸.”
이런 예리한 녀석.
역시 괜히 똑똑한 종수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다.
나는 옆에 있는 삼촌이랑 폰을 바꾸자고 했다.
이제 명령은 삼촌에게 맡기자.
“시하 말대로 눌러주세요. 알았죠?”
“물론. 당연하지.”
믿고 맡기라는 듯이 엄지를 치켜든다.
불안한데. 그냥 선생님이랑 폰 바꿀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종수라면 선생님 폰이 뭔지 알고 있겠지.
“아냐. 형아. 안 눌러써.”
“거짓말! 내가 확인할 거야.”
시하 방에서 종수가 나왔다.
다른 아이들도 따라 나왔는데 정말 그런지 호기심이 가득했다.
“시혁이 형아. 폰 줘.”
“응? 왜?”
“시하가 말하는 대로 하는지 보게.”
“알았어.”
폰 압수.
그리고 시하를 보더니 명령해 보라고 한다.
시하가 로봇청소기에 대고 말한다.
“멈처!”
“청소를 중지합니다.”
“바찌!”
하지만 종수가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
외국인 삼촌을 바라보았다.
아앗. 안 돼! 왜 이렇게 믿음이 부족한 거야.
“시하 삼촌! 폰 주세요!”
“어? 그래.”
삼촌이 왼쪽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다.
어라? 저기에 왜 폰이 더 있지?
삼촌이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자! 다시 명령해봐!”
“명령 아냐. 부탁이야.”
“아무튼!”
“청청이야. 청소해!”
삼촌이 씨익 웃으며 뒷짐을 진다. 뒷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더니 앱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
“충전 스테이션으로 돌아갑니다.”
“???”
지이잉.
충전기로 향해 로봇청소기가 돌아간다.
“청청이야. 밥 먹고 청소하려고?”
“푸흡.”
나는 그 말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니, 밥 먹고 청소하는 건 뭔데? 너무 웃기잖아.
저 정도면 진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인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또 삼촌이 장난 병 도졌네.
“충전을 시작합니다.”
로봇청소기가 충전을 시작했다.
“청청이야. 밥 마니 머거. 종수야. 청청이 밥 먹느라고 청소 안 해.”
“어? 이게 왜 알아서 하지? 명령하면 들어야지.”
“명령 아냐. 부탁이야. 청청이 배고파서 일 못 태.”
“그럴 리가 있냐!”
“군데 전기 머거야 청청이 일한다고 했눈데.”
“어? 그건 맞지. 그건 맞는데!”
그 와중에 청청이는 충전을 중지하고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청청이. 배불러? 다시 청소해?”
“청소를 중지합니다.”
“갑자기 왜 멈처? 다시 배고파?”
“정해진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청청이 가고 시푼데 있대. 청청이 노라.”
삼촌이 그런 시하를 보며 킬킬대고 있다.
어이쿠. 맨날 장난이 심하다니까. 시하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청청이로 만들고 있다.
저 정도면 애완동물 아닌가?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쪼르르 청청이를 따라간다.
“청청이랑 산책해!”
시하야. 청청이는 강아지가 아니야…….
선택된 구역에 가서 다시 청소하는 청청이. 아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말도 안 돼.”
종수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고 두 개의 폰을 보고 있다.
저 두 개 다 삼촌의 폰이라는 게 웃긴 점이지만.
“종수야. 이제 폰 줘야지.”
“아! 네!”
다시 폰을 받았다.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시하는 자신만만하게 종수를 보았다.
“바바! 청청이 똑똑하지? 아라서 청소도 하고 산책도 해. 군데 청청이 하장실은 안 가. 노푼 거 무서어 해.”
그거 그냥 높이 방지 센서가 있어서 일정 높이면 못 지나가는 거야.
물론 시하가 그걸 알 리는 없지만.
재휘가 말했다.
“헐. 나도 높은 곳 무서워하는데. 나랑 같네.”
“청소가 완료되었습니다. 충전 스테이션으로 복귀합니다.”
지이잉.
“청청이 또 밥머그러가? 청청이 대지라서 매일 밥 머거.”
청청이는 먹방 너튜버.
24시간 전기 먹기!
시하의 머릿속에는 이런 느낌으로 영상이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새로 생긴 애완장난감(?) 청청이의 소개도 끝났다.
하지만 아직 집안 소개는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베란다하고 부엌도 틈틈이 소개해 주며 자랑을 한다.
이게 자랑할 거리가 되나 싶지만.
승준이 말했다.
“그럼 다 봤으니까 이제 숨바꼭질하자!”
역시 그렇게 되나?
다들 집안 구조를 열심히 본 이유가 있었다.
모든 소개는 이걸 위한 게 틀림없다.
“가위바위보 하자.”
“형아도 하자.”
“어? 형아는 여기 있으면 안 될까?”
안 되나 보다.
결국, 같이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술래는 나로 당첨되었다.
이렇게 많은데 하나같이 가위를 냈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확률이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열심히 하자.
“흠흠. 그럼 지금부터 30초를 셀게. 다들 빨리 숨어.”
소파에 앉아서 눈을 감고 천천히 숫자를 셌다.
우당탕.
다들 열심히 뛰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 숨지? 어디 숨지? 넌 이쪽으로 가! 난 이쪽에 숨을게.
아주 소리가 요란하다.
“야! 이시하! 여기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시하도 여기 할래!”
“야!”
종수와 투덕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20초쯤 셌을 때 다 숨었나 싶었지만,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마음이 바뀌어서 다른 곳을 가나 보다.
어찌 보이지도 않는데 소리만으로 충분히 유추 가능한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본 게 있어서 그런가?
“30! 다 셌다! 다 숨었나!”
조용.
세 살 때는 시하가 다 숨었다고 꼬박꼬박 말했는데 이제 한 살 먹었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역시 네 살은 다 아는 것 같네.
일단 소파에서 일어나 삼촌 방을 열었다.
침대 위에 있는 이불에 볼록 솟아 나와 있는 걸 보니 누가 봐도 여기 숨었다고 말해준다.
“여기 있네!”
“아앗!”
“히히히!”
연주와 하나가 두 손을 배에 올리고 똑바로 누워있다.
앞으로 남은 사람은 6명.
집이 그렇게 크지 않는데도 이렇게 숨는 게 애들은 재밌나 보다.
“다음은 화장실에 가볼까?”
끼익.
화장실에 들어가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문 뒤에 숨어있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왜냐면 화장실 슬리퍼를 신은 발이 보였으니까.
아니. 화장실에 숨었으면서 왜 슬리퍼를 신는 거야?
“슬리퍼 보인다.”
“아앗!”
숨어있는 사람은 재휘였다.
이번에는 베란다로 갔다. 사실 여기는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도 벽에 붙어서 숨어있다.
“윤동이 찾았다.”
앞으로 네 명.
은우, 시하, 종수, 승준이 남았다.
아까 듣기로는 시하랑 종수가 한 곳에 숨어있을 테니 찾아야 하는 곳은 최소 세 군데일 것 같다.
근데 대충 어딘지 한 곳은 알겠다.
내 방으로 가서 이불이 있는 곳을 열었다.
“으악! 들켰다!”
“푸하하!”
승준이랑 은우 아웃.
나는 시하 방으로 갔다. 벌컥 열었지만, 기척이 없다.
근데 삼촌이 여기에 있다.
아항. 나는 대충 어디에 숨었는지 알 것 같았다.
옷장.
여기 옷장밖에 없다.
옷걸이 있는 곳에 앉아서 숨기 좋다.
딱 애들이 말이다.
삼촌도 내가 눈치챈 걸 느꼈는지 씨익 웃는다.
또 뭘 하려고.
뭔가 저렇게 장난기 어린 웃음을 내보일 때면 불안하다.
“시하 옷장에 있다!”
“푸흡.”
이걸 대놓고 알려준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옷장을 열었다.
시하랑 종수가 들어있다.
“아! 삼춘! 가르쳐주면 안 대지!”
“맞아! 시하 삼촌! 왜 알려줬어요!”
오랜만에 시하랑 종수가 의견이 맞았다.
“큭큭큭. 그러게 왜 삼촌이 숨으려는 곳에 숨었어! 삼촌도 안 보게 숨어야지.”
“잉잉!”
하여간 시하 놀리기에 진심이라니까.
“삼춘이 시하 자꾸 따라다녀!”
“응. 그랬어?”
“삼춘이 술래해! 술래! 눈 감고 해!”
좋은 방안이었다.
그러면 시하 따라다니면서 가르쳐주지 못할 테니까.
삼촌이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러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