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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화 (374/500)

374화

적당히 요리를 냈는데 인원수에 맞추다 보니 양이 참으로 많아 보였다.

물론 늘 2인 기준으로 차린 나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내온 음식들은 확실히 다 사라져버렸다.

일회용 수저를 다 버린다고 해도 음식을 담은 일반 접시는 설거짓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술도 마시고 간단한 안주를 내올 거라서 상관없긴 하지만.

“형아. 설거지해야 해.”

“응. 그렇네.”

아무래도 시하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모양이었다.

“형아. 설거지 정하기 오키? 겜 오키?”

게임에 진심인 오상환 교수님에게 물들어버렸다.

내가 뭔가 대답하기 전에 안경호가 말을 받았다.

“역시! 우리 경트리오 회사 게임개발부의 마스코트! 남다르네! 설거지하는 사람 정하는 건 역시 게임이지!”

언제부터 시하가 마스코트가 되었냐?

KI 출판사도 그렇고 경트리오도 그렇고 마음대로 시하를 직원으로 넣지 말아 줄래?

박경준이 좋다면서 어떤 게임을 할지 묻는다.

신경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말리지는 않는다.

그도 역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서수현이 손을 든다.

“수현아. 개구리 게임은 없어.”

“아! 오빠! 제가 설마 그런 제안을 하겠어요!”

“응.”

“아 진짜!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시하도 할 수 있는 게임이면 좋겠다고 말하려고 손든 거거든요!”

“아, 그래? 난 또 스트레칭하는 줄.”

“갑자기 한 팔만 스트레칭할 리가 없잖아요.”

“아니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라면 가능성 있어.”

“아 진짜!”

백동환이 손을 들었다.

“간단한 눈치게임 하시죠.”

“아니야. 그건 너무 많이 했어.”

“그럼 2인 1조로 할 수 있는 게임 할까요?”

“응?”

“몸으로 말해요. 적게 맞추는 사람이 설거지하기.”

“오! 좋은데?”

“그럼 2명이 팀을 하죠.”

그 말에 시하는 내 다리에 찰싹 붙었다.

“시하는 형아랑! 팀이야. 팀. 세투야. 세투.”

응.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대충 짝이 정해졌다.

먼저 시작한 것은 안경호와 박경준이었다.

그걸 본 신경환은 이렇게 평했다. 미친놈들이 팀을 먹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신랄한 거 아니냐.

“시하야. 우리는 마지막이니까 잘하자.”

“아라써!”

안경호가 맞추고 박경준이 몸으로 말하는 역할.

스케치북에 감정들을 써서 문제 내는 건 백동환이 맡았다.

“의성어도 안 돼요. 오로지 몸하고 얼굴만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문제가 나왔다. [쾌감]이라는 단어였다.

박경준이 엉거주춤 의자에 앉는 척을 하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힘을 주다가 인중을 늘어뜨리며 기쁜 표정을 짓는다.

뭘 표현하려는지 알겠는데 괜히 더러웠다.

시하는 옆에서 ‘똥! 똥!’이라면서 흥분했다.

이런.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표현하다니.

“어? 쾌변?! 아니야? 비슷해? 쾌락? 환희? 기쁨? 상쾌?”

의외로 연상되는 단어가 많다 보니 헷갈리나 보다.

겨우겨우 맞추고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속상하다]

박경준이 입을 살짝 벌린 채 가슴을 부여잡는다.

“아프다! 아니야? 어?”

손가락으로 몸을 가리킨다.

아무래도 ‘속’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리고 손날로 배를 가른다.

“고통! 통각!”

“패스!”

[편안]

“어? 아까 그거 아니야? 쾌변? 상쾌?”

아까랑 똥 싸는 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일어서서 배를 문지르는 것까지 추가되었다.

저걸 어떻게 맞추냐고.

“편안! 오! 맞았어!”

이걸 맞추네?

그렇게 2개를 맞추게 되었다. 생각보다 엄청 어려운데?

“다음은 제 차례입니다.”

신경환과 백동환.

백동환이 몸으로 말하는 역할이다.

[무겁다]

보자마자 바로 누워서 역기를 힘들게 드는 시늉을 한다.

아니. 저거 마음이 무겁다는 뜻 아니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참 백동환스럽다고 여겨진다.

당연히 신경환은 쉽게 맞혔다.

다음은 [벅차다]

백동환이 다시 누워서 역기를 든다.

[무겁다]라는 표현과 똑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숨도 헉헉 몰아쉬는 느낌이다.

아니. 저거 가슴이 막 벅차고 기쁨을 표현하는 감정 단어 아니었어?

왜 헬스 단어처럼 보여?!

아무튼, 뭔가 표현이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아주 잘 맞혔다.

뭔데. 저게. 반칙 같은 느낌인데?

다음은 서수현과 삼촌.

“아, 저. 뭐라고 불러야 하죠? 삼촌분?”

“삼촌분이라 부르면 돼.”

“아, 네! 제가 문제 낼까요? 한글 읽으실 줄 아세요?”

“아니.”

“아. 그러면 제가 문제 낼게요.”

서수현이 아주 불안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꼴찌 할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저기. 수현아. 삼촌 한글도 읽을 수 있고 한국어도 잘해. 속지 마.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승부는 냉정한 법이다.

[상큼하다]

서수현이 환하게 웃으며 윙크를 했다.

과즙미 팡팡 뿌리려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오! 노우! 유혹!”

“???”

“오! 알았다! 아내의 유혹!”

“드라마 이름 맞추는 거 아니거든요! 감정! 감정! 필링! 이모션!”

“오케이. 오케이.”

다시 환한 얼굴로 뭔가 상큼한 아이돌 춤을 살짝 춘다.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 뻑뻑하다?”

“어후!”

서수현이 답답해했다.

저기. 수현아. 저거 삼촌이 일부러 저러는 거야.

“아 진짜 한쿡말 너무 어려어요!”

“삼춘. 거짓말!”

“뭐지? 상큼? 발랄?”

상큼하다가 나와서 정답으로 간주해 주기로 했다.

문제 내는 사람들도 속는구만.

하긴 다들 삼촌을 처음 봤으니까.

아주 장난기가 가득하다. 정말.

[예쁘다]

서수현이 얼굴에 꽃받침을 한다.

“꽃? 아니지. 음. 아! 좋아해서 바라본다? 아니야? 뭐지?”

서수현은 손가락으로 볼에 콕 찌르는 듯이 예쁜 짓을 하지만.

“어디 아프다?”

“아니! 이 삼촌분! 진짜 오빠랑 똑같네!”

어디가? 아닌가?

어쩌면 내 놀리는 버릇이 어릴 때부터 삼촌에게 배운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 돋는데?

역시 통찰을 가지고 있구나. 괜히 너튜버하는 게 아니네.

아무튼 서수현, 삼촌 팀은 겨우 하나 맞혔다.

“시하야. 2개만 맞히면 우리 설거지 안 할 수 있어.”

“정말?!”

“응. 적어도 하나를 맞혀도 다시 재경기하면 돼. 그러니까 꼭 맞추자.”

“형아. 시하가 문제 낼래!”

“아. 그럴레?”

“시하가 잘해.”

“근데 너 한글 읽을 줄 모르잖아.”

“갠차나. 시하에게 말해주면 대! 깃속말해. 깃속말.”

“아. 그러면 되겠네. 천재네?”

그런 명안이 있나.

아무튼, 시하가 문제 내는 거였다.

그래! 형아가 어떻게 내든지 간에 다 맞혀줄게!

“형아. 시하 한다.”

“응. 해.”

눈가를 두 손으로 가리고 도리도리.

“귀엽다?”

“아냐.”

계속 도리도리하는데 뭐지? 귀엽게만 보인다. 큰일 났다. 이러다가 뭘 하든지 귀엽다, 밖에 대답 못 할 것 같다.

“아! 부끄럽다?”

“마자!”

다음은 시하가 눈물을 흘리는 시늉을 한다.

흑흑 소리를 내서 바로 이 문제는 탈락이었다. 아쉽다. [슬프다]라는 아주 쉬운 문제였는데.

다음 문제를 백동환에게 귓속말을 듣고 시하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게 뭐지?

“정답! 귀엽다!”

“아냐! 구리고 시하는 머시써.”

“정답. 멋있다!”

“아냐.”

하나같이 다 빗나간다. 대체 빤히 쳐다보는 게 무슨 감정이지?

너무 어려워서 패스해야겠는데?

“패스!”

답은 [원망하다]였다.

아니! 표현하기 어렵잖아!

그런데 듣고 나서는 알겠다. 원망의 눈빛을 보내려 한 거였네!

너무 초롱초롱한 눈빛이어서 알 수 없었어!

좀만 더 열심히 보면 원망이 보일지도 몰랐다.

“다음!”

시하는 뭔가 들었는지 환한 표정을 지었다.

배를 쭈욱 내밀며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나,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뿌듯하다!”

“마자!”

역시 그거였나?

다행히 꼴찌는 벗어났다.

초조해하던 서수현이 머리를 헝클였다.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백동 형아. 또. 또.”

“어? 어, 그래. 아직 시간이 남았지. 다음은.”

하지만 우리 시하는 아직 시간이 남아서 문제를 더 내고 싶나 보다.

그래. 형아가 끝까지 어울려 줄 테니까 열심히 하자!

갑자기 시하가 한쪽 눈을 찡긋하고 윙크한다.

뭐지? 이거. 그거 아닌가? 서수현이 했던 거.

“귀엽다?”

“아냐.”

“예쁘다!”

“아냐.”

다시 시범을 보여주는 이시하.

찡긋.

옆에서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고 백동환이 부추긴다.

찡긋. 찡긋.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어서 생각나는 감정에 대해서 다 말했다.

“달콤하다. 감사하다. 신난다. 상큼하다. 즐겁다.”

“3, 2, 1. 땡! 끝났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어버렸다.

대체 정답이 뭐지? 다른 사람들도 정답을 몰라서 의문 어린 눈빛이다.

귓속말로 말해준 백동환만이 정답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답이 뭔데?”

“정답은 찡하다, 입니다.”

“어렵잖아!”

시하는 찡하다가 뭔지 모르고 눈만 찡긋거렸던 이유가 있었다.

대충 눈치챘어야 했는데. 크흑.

모르는 단어가 있을 수밖에 없지.

근데 발상 자체는 좋은 것 같았다. 들어보고 나서야 아! 하는 그런 게 있었으니까.

“형아. 우리 서이 개 마쳐써?”

“아니. 두 개.”

털썩.

시하는 좌절했다.

서이 개가 아니라 실망했나 보다.

꼴찌보다 서이 개 못 맞춘 게 그렇게 큰일이냐고.

아무튼, 삼촌과 서수현이 설거지를 담당하게 되었다.

“삼촌분. 가위바위보 할래요?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 콜?”

“콜.”

그리고 결과는.

“아악! 졌어!”

서수현이 다시 한번 머리를 감싸 쥐게 되었다.

원래 먼저 제안하는 사람이 지는 법이지.

서수현도 거기에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터벅터벅 싱크대로 간다.

나는 서수현의 어깨를 잡았다.

“응?”

“괜찮아. 우리 집 식기세척기 있어.”

“!!!”

서수현의 고개가 삐그덕 움직인다.

“그, 그럼 왜 설거지 게임을?”

“그래도 누군가 식기를 좀 넣어줘야지.”

“그건 그렇죠. 네. 그렇죠.”

“쓸 줄 알아?”

“아니요. 저희 집에는 없어서.”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헤헿. 네!”

왜 좋아하는 거지?

아! 식기세척기가 있어서 좋아하는 건가?

역시 설거지는 귀찮기도 하니까 말이다.

***

식기세척기를 쓰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배도 부르기도 하고 말이다.

잠깐의 게임을 하면서 한바탕 웃기도 했지만 역시 다들 술상을 기다리고 있다.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야겠다.

있는 재료를 꺼내서 참치 카나페 정도?

다들 배부를 테니 간단하게.

과자인 크래커를 꺼냈다. 참치와 마요네즈 그리고 후추를 살짝 뿌린 걸 만들고 치즈를 크래커 위에 올렸다.

마지막으로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잘라서 올린다.

간단한 안주 완성.

“형아. 머해?”

“응? 아! 술이랑 같이 먹을 간식 만들었어.”

“간식?”

“응. 한번 볼래?”

내가 접시 위에 예쁘게 담은 것을 보여주자 시하가 눈을 반짝였다.

식탁 위에 올리러 가자 졸졸졸 따라온다.

아무래도 간식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컵을 꺼내서 각자의 잔에 따른 뒤에 술자리를 시작했다.

간단히 마시고 집들이는 끝낼 생각이다.

“자. 건배!”

“건배!”

시하가 안주를 보다가 자기 배를 본다.

“형아. 시하 배불러서 다 못 머거. 군데 너무 마시께 생겨써.”

“그치?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조금만 먹자. 알았지?”

“응!”

그때 삼촌이 안주 하나를 들더니 한입에 쏙 넣었다.

“음! 삼촌이 다 먹어야지.”

쏙쏙.

두 개 더 들어간다.

시하 머리에 느낌표가 생기는 것 같다.

“삼춘! 대지야. 대지! 욕심쟁이야. 혼자 다 머그면 안 대.”

“근데 시하는 배불러서 못 먹겠다며?”

“아냐. 시하 배부룬데 머글 수 이써. 이거 간식이자나. 개굴 누나가 간식 배 따로 이따고 해써.”

아무래도 나한테 말하기 전에 서수현에게 배부르다고 했나 보다.

서수현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이 코웃음을 쳤다.

“하! 세상에 디저트 배가 따로 있을 리가 없잖아.”

“디저투 모야?”

“디저트는 영어. 한국어로 간식이고.”

“정말?”

“어! 근데 간식 배 같은 거 따로 있을 리가 없잖아.”

“아냐. 개굴 누나가 있다고 해써. 마찌?”

서수현이 말했다.

“응. 응. 디저트 배는 따로 있지. 얼마든지 들어가지.”

시하가 배를 쭈욱 내밀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다.

삼촌이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더니.

“그래? 그럼 어디 보자. 따로 있는지. 이거 다 먹어.”

접시를 잡고 시하 앞에 툭 내민다.

“이거 다 먹으면 디저트 배 따로 있는 거 맞는 거야.”

“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을 건다.

시하가 우물쭈물하더니.

“형아가 나너 머그면 더 마시데써. 구래서 시하는 다 안 머거.”

“괜찮아. 형아는 더 만들 수 있거든. 그러니까 먹어. 먹어. 다 먹어.”

아무리 그래도 다 먹은 건 무리지.

시하가 고민하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이렇게 말했다.

“시하 다이어투 해! 다이어투! 구래서 마니 머구면 안 대.”

그 말에 다들 빵 터졌다.

삼촌은 어이없는 눈으로 시하를 보았다.

“너 다이어트치고는 아까 엄청 먹었는데. 쿨피스도 두 잔이나 마시고.”

“어휴. 삼춘은 다이어투 몰라. 몰라.”

“허.”

시하가 간식 하나를 집더니 입에 쏙 넣었다.

“마시써!”

이번에는 시하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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