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햄버거가 나왔다.
시하가 왕 하고 한입 베어 문다. 오물오물.
“마시써!”
“맛있지!”
다시 한번 왕 하고 베어 문다.
나중에는 내 햄버거도 같이 맛을 본다.
나는 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다람쥐처럼 볼에 잔뜩 저장하는 것도 아닌데 툭 튀어나와서 귀엽다.
입에 소스를 다 묻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다 묻네. 다 묻어.”
휴지로 입을 닦아주었다.
어차피 또 묻을 테지만 그래도 닦아주고 싶었다.
“형아. 안 머거?”
“먹어야지.”
한입 먹었는데 햄버거 빵의 푹신한 느낌과 패티의 질감이 느껴진다.
아삭하게 씹히는 채소와 불고기 소스의 끈적함이 입안에 감돈다.
그냥 익숙한 햄버거 맛이다.
그렇게 먹고 있는데 삼촌도 열심히 햄버거를 먹는다.
시하가 놀라서 그 모습을 본다.
“삼춘. 진짜 입 크다!”
“우우웅우우웅.”
“삼춘! 언래 다 먹고 말하는 거야!”
“우우웅우우웅.”
“삼춘 입 큰 거 이제 시하도 다 아라.”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시하는 다 알아들었나 보다.
이게 왜 이야기가 통하지? 신기하다.
“감자튀김도 먹어봐.”
나는 케첩을 콕 찍어서 시하의 입에 넣어주었다.
시하가 맛있는지 케첩을 몇 번이나 찍어 먹었다.
감자와 케첩은 사기적인 만남이지.
나는 햄버거보다 이 감자튀김이 더 좋더라.
개인적으로는 집에서 만드는 게 좀 덜 짜게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형아. 진짜 마시써! 형아도!”
시하가 감자튀김을 콕 찔러서 내 입에 넣어준다.
“시하가 먹여주니까 더 맛있네?!”
“시하가 자꾸 먹여주까?”
“푸흡.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앞에서 삼촌이 말한다.
“나는? 나는 안 먹여줘?”
“삼춘은 손이 업써 발이 업써. 삼춘이 머거.”
“WOW! 이런 걸 차별이라고 하는 거야. 너 다른 곳에서 그러면 큰일 난다.”
“차별이 모야? 차랑 별이 이써? 조은 거야?”
“몰라.”
“삼춘 삐져써?”
원래 삐진 사람에 삐졌다고 하면 더 심통해지는 법이다.
별 대꾸도 안 하고 햄버거를 열심히 먹는다.
“시하가 티김 주께. 여기!”
“됐거든!”
“구럼 시하가 머거야지~!”
삼촌이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하는 표정으로 시하를 쳐다본다.
이번에는 삼촌이 한 방 먹었다.
“형아. 아~”
“시하가 먹는 거 아니었어?”
“형아 주꺼야.”
나는 시하가 주는 걸 받아먹었다.
삼촌이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보낸다.
“내 손으로 먹어야지!”
시하 앞에 있는 감자튀김을 한 손으로 크게 쥐고 입에 집어넣는다.
시하는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시하 티김!”
“우우웅우우웅.”
“삼춘 욕쟁이야! 욕쟁이!”
“우우웅우우웅.”
시하야. 욕쟁이가 아니라 욕심쟁이겠지. 발음 하나 빼지 말자. 완전 다른 의미가 되잖아.
그리고 삼촌은 시하를 놀리는 데 너무 진심이다.
“시하 티김 업어져써.”
“형아 꺼 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뭐, 시하가 감자튀김을 많이 먹지도 않을 거다.
저 작은 배에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삼촌이 음식과 함께 콜라를 쭉 빨아 마시고 말한다.
“하하하. 시하가 주는 감자튀김 진짜 맛있네!”
“잉잉!”
사실 시하가 저러는 게 너무 귀여워서 삼촌을 처음부터 말리지 못한 것도 있었다.
미안해.
시하가 너무 귀여워서 빨리는 못 도와줬어.
아무튼, 우리는 햄버거를 열심히 같이 먹었다.
***
경트리오의 매출이 나왔다.
시작부터 좋은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2주 안에 판가름 나며 하강 곡선이 예쁘게 떨어졌다.
출시를 많이 기다려서인지 기대수익이 충분히 나왔고 시즌1이 함께 팔리는 낙수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책 출간도 광고해서 그런지 적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한다.
폭발적인 흑자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다고.
이 정도면 나름 준수한 성적이라고 하니 그쪽 출판사에서는 별 불만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리스크를 줄인 투자로 괜찮게 뽑았다고 생각하니 내 나름대로 만족이었다.
길게 보면 시즌3도 게임이 개발되어 나올 거니 그사이에 또 책이 팔릴 걸 생각하면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의외인 것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외국인들이 책을 샀다는 것이다.
경트리오는 톡에서 난리였다.
-안경호 : 이야! 역시! 마니아층이 있을 줄 알았어! 모두 ㅊㅋㅊㅋ!!!
-박경준 : 하긴 게임에서는 생략되는 사이드 스토리도 소설에 있으니 마니아층이라면 책을 살 만해!
-신경환 : ㅇㅇ
-박경준 : 와! 그럼 이거 나도 몇 개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줘야겠다!
-신경환 : 친구들이 책 집어 던질걸?
-박경준 : 왜???
-신경환 : 생각해봐. 너라면 영어로 적힌 소설 읽고 싶겠냐.... 공부하는 느낌일걸???
-박경준 : 왜??
-안경호 : ㅋㅋㅋ또 일부러 저런다ㅋㅋㅋ
다들 이리저리 신나서 떠들고 있다.
하여간 웃긴 애들이다. 저렇게 실없는 거로 맨날 투덕거리면서 게임은 기막히게 만드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오히려 그러니까 잘 만들었나?
뭐, 그런 생각도 든다.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이상한 흐름으로 바뀐다.
-시혁 : 나 이사했다.
-안경호 : ???
-박경준 : 와씨! 출판해서 엄청 벌었나 보네?! 벌써 이사할 정도라고?!
-신경환 : 미친놈들....
-시혁 : 아니, 뭐. 아는 삼촌이 집 사서 여기 들어오라고 해서 말이야....사정이 좀 있어...
-박경준 : 와씨! 재벌2세 삼촌이 둘 다 집에 들어오라고 해서 시혁이에게 회사 다니라고 했다고?! 낙하산으로 처음에 눈총받다가 성과를 인정받고 지금은 대리 달고 있다고?!
-시혁 : ???
-안경호 : 경준아....너 요즘 웹소 보냐???
-박경준 : ㅎㅎ회사물 꿀잼ㅎㅎ
이런 이야기로 이어지다가 집들이를 해야 한다고 난리가 났다.
-안경호 : 그럼 시혁이 집들이 겸 출간과 게임 매출 잘 나온 파티 해야겠다.
-시혁 : ???
-박경준 : 오! 대박! 그러면 되겠다. 시혁이 집에서 하자!
-신경환 : 진정 좀 해....미친놈들아!
[이시혁 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안경호 님이 이시혁 님을 초대했습니다.]
-시혁 : ;;;
어쩌다 보니 집들이 겸 파티를 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말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생각이 돼서 이사 소식을 알렸다.
백동환은.
“형님!”
“아, 왜!”
“어째서 바로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 집에 찾아가지 않았는데 이사를 했다뇨!”
“너무 급하게 이사한 바람에 나도 못 알려줬어. 지금이라도 말하잖아.”
“그래서 집들이는 언제 합니까! 집들이해야죠!”
그놈의 집들이.
왜 다들 집들이에 진심이야?!
어쩌다 보니 그 날 경트리오랑 집들이 겸 매출 잘 나왔다는 축하 파티를 한다고 하니 백동환도 꼭 참가하겠다고 한다.
점점 사람이 불어나는 것 같은데 이거 집에서 해도 되나 싶었다.
문도 아니, 문도환 형에게 말하니 축하한다고 한다. 혹시 집들이 오겠냐고 물어보니.
“나? 그렇게 많이 가면 좀 그렇지. 나는 따로 가서 선물 줄게. 그리고 크흠. 그날 일이 있어서.”
“데이트?”
“아, 아니 뭐. 흠흠.”
“데이트구나?”
“커흐흠.”
사귄 지도 꽤 됐는데 뭐가 부끄러운지 데이트를 데이트라고 말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남에게 말하는 게 좀 부끄러운 것도 있나 보다.
알리사에게도 이사했다는 걸 말했는지 도환이 형이랑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서수현에게도 말했다.
“오빠. 저 이미 초대받았어요.”
“???”
“몰랐어요?”
“누구한테?”
“저 그 방에 있었는데?”
“엉? 어느 방?”
“톡방. 오빠 몰랐어요?”
진짜 확인해 보니 경트리오방에 서수현도 있었다.
말을 안 해서 몰랐다.
아니, 여기 얘는 대체 왜 있는 거야?
내가 그런 시선을 보내자 그걸 눈치챘는지 이렇게 말했다.
“나 여기 OST 만들어서 또 참가했잖아요. 저도 이 게임에 지분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데?”
“어? 네가 왜 여기 있냐는 시선 아니었어요? 딱 그렇게 느꼈는데.”
“아니. 있었으면 즉각즉각 ‘개굴개굴’ 하고 톡을 보냈어야지. 나 여기 있다고 티 냈어야지.”
“이 오빠가 진짜!”
어찌 되었든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얼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디 안 나가고 보는 거지 않나.
시하랑도 같이 있을 수도 있고.
시하도 좋아할 거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니.
***
시하는 아침에 형아에게 나중에 집들이한다는 말을 들었다.
“집들이? 집들이 모야? 아! 형아 시하 아라써.”
“형아가 말 안 했는데도 알았어?”
“집들이 모여서 회이해. 회이. 이 집 보고 너 왜 나랑 또가치 네모나? 그러면 저 집이 응 나는 아파트라서 구래. 너도 아파트지?”
“어? 아파트가 겉으로 보기에는 다 똑같긴 하지.”
“마자. 구래서 다른 집들이 우리는 몸에 그림 그려따! 하고 자랑해.”
“어. 아파트 벽면에 페인트칠하기는 하지.”
아무래도 시하는 집들이를 집의 다수로 생각하나 보다.
근데 시하야. 그거 아니야.
무슨 아파트들의 회동인가.
“집들이는 그거 아니고 새집으로 이사 왔어요! 모두 함께 파티해요! 하는 게 집들이야. 집에 오면 이사했다고 선물도 줘.”
“왜? 선물 왜?”
“어? 새집에서 잘살라고 선물을 주는 거야. 휴지나 티슈 같은 걸 줘. 이거 다 쓸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라! 뭐 그런 뜻이지.”
“정말?!”
정말인지 잘 모른다. 그냥 지금 내가 막 생각해낸 거다.
“구럼 휴지랑 티슈 다 쓰면 또 이사가? 이번에 시하가 집 사주께. 형아.”
“푸흡. 그래. 휴지 다 쓸 때까지 시하가 돈 많이 벌어야겠네.”
“시하가 지굼 돈 모으고 이써. 이제 집 살 수 이써.”
시하야. 현실은 그 돈 가지고 집 못 사.
정확히는 수도권에서 살려면 꽤 힘들다. 그걸 들은 삼촌이 나섰다.
“이 집보다 더 큰 집을 사려면 시하 통장에 있는 돈보다 훨씬 많아야 하는데!”
“!!!”
“보자. 삼촌이 휴지 엄청 많이 쓰거든! 코 닦을 때도 티슈 세 장이나 넘게 써!”
“서이 장?!”
“그래서 엄청 빨리 쓸 건데 시하는 그때까지 돈 모을 수 있을까!”
또. 또. 시하 놀리기 시작하는 삼촌이었다.
“삼춘! 아껴 써야지!”
“그럼 시하가 아껴 쓰면 되겠네. 삼촌은 많이 쓸 거야. 시하는 똥 닦을 때 휴지 한 칸도 아니고 반 칸만 쓰면 되겠네.”
삼촌이 휴지 한 칸을 뜯어서 반으로 접은 다음에 찢어주었다.
시하는 그걸 보며.
“삼춘.”
“응?”
“딱지 말고 씨쑤면 대. 룰루루 랄라라.”
“푸흡. 우리 집은 비대가 아닌데? 휴지를 써야 한다고!”
“!!!”
“이제 어쩔래? 응?”
“휴우. 삼춘. 시하가 휴지 사께. 이거 시하 휴지니까 쑤면 안 대. 알아찌.”
창과 방패의 대결.
과연 시하는 잘 방어한 것 같다.
열심히 고민해서 내놓은 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연 창인 삼촌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어? 머라고? 한쿡말 너무 어려어요! 잘 모루게쒀요!”
“시하 꺼 휴지! 삼촌 꺼 휴지! 이케 써!”
“너, 너무 어려어요! 모르게쒀요!”
“잉잉!”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야. 괜찮아. 형아가 삼촌이 휴지 많이 쓰는지 안 쓰는지 감시할게.”
“정말?!”
“응. 삼촌이 많이 쓰면 형아가 이노옴! 하고 혼낼게.”
“구러면 휴지 빨리 안 업써지게따.”
“응. 그렇지.”
시하는 안심했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형아에게 맡기면 전부 안심! 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삼촌은 옆에서 키득키득 웃고만 있다.
하여간 짓궂으시다니까.
뭔가 엄청 유치한 싸움으로 보이는데 그게 또 재밌어 보이기도 한다.
“아, 근데 시혁아.”
“네?”
“집들이 날에 내가 자리 비켜줘?”
“아니요. 안 그러셔도 돼요.”
“아니, 혹시 친구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집주인이 나가면 어떡해요. 저도 친구들에게 삼촌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 친구들 엄청 정신없는 애들이라 그런 거 신경 안 쓸걸요?”
“어? 그래?”
“네. 다들 굉장히 친화력이 좋아요.”
삼촌이 어깨동무했다.
“다행이다.”
“네? 뭐가요?”
삼촌이 씨익 웃으며.
“나 찜질방에서 시간 때울 뻔했잖아. 하하하!”
“엑!”
“아니면 피씨방 가거나! 아! 오랜만에 한국 피씨방 가고 싶네!”
하여간.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