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경찰관은 고민했다. 이걸 과연 답으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다음은?”
“형아랑 건너!”
“땡!”
“???”
어째서 틀렸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이번에는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하나는 아라요. 초록불 되면 잠시 멈춰서 차오는지 한 번 더 보고 건너요.”
“딩동댕!”
“아싸!”
“그리고 건널 때도 뛰면 안 되고 걸어야 합니다. 알았죠?”
“네!”
“그럼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축하해요.”
“우와!”
설사 초록불이라도 그대로 밀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미친 운전자도 많다.
그런 경우는 적겠지만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경찰관이 하나에게 포장된 선물을 건네고 말했다.
“그럼 다음 문제! 건너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죠?!”
“형아 손 자바여!”
“땡!”
“손들고 건너야 해요!”
“맞아요. 손들고 건너야 하죠.”
그렇게 퀴즈를 내고, 깔아둔 돗자리에 손들고 건너기도 다 같이 해 봤다.
다음은 경찰 아저씨에게 질문 시간.
“자! 궁금한 거 뭐든지 물어보세요.”
시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경찰 아찌. 머 들고 다녀여? 수갑이써여?”
“응. 당연하지. 보여줄까?”
경찰이 품에서 수갑을 꺼냈다.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뭐라고 엄청나게 집중하는지 모르겠다.
“나쁜 사람 잡는 봉!”
“우와!”
“밤에 뭔가 위험한 거 없는지 확인하는 후레쉬!”
“우와! 우와!”
“범인을 찾는데 정보를 적는 수첩! 안에 뭐가 적혔는지는 비밀이야.”
“!!!”
“엄청난 비밀이 적혀있지.”
사실 별거 안 적혀있다.
자잘한 메모나 전화번호, 그리고 그날그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적혀있을 뿐이다.
모 만화처럼 가는 곳마다 범죄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고 같은 게 많이 일어나지.
하지만 여기서 아이들이 있으니 허세를 한번 부려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범인을 잡을 총!”
“우와!”
실제 총은 아니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형 총이다.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눈을 반짝인다.
혹시나 가짜란 걸 들키지 않을까 싶어서 품에 재빨리 총을 넣는다.
“또 딴 거 물어볼 거 없니?”
승준이 손을 들었다.
“경찰 아저씨! 사커 잘해요?”
“어? 못하지는 않지.”
“우와!”
그 와중에 축구 잘하는지 궁금한 승준이었다.
정말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하나는 공주님 지키는 경찰이 있는지 물어봤고 연주는 경찰서에도 촬영을 오느냐고 물었다.
종수는 경찰 되려면 공부 잘해야 하냐고.
재휘는 오들오들 떨면서 무서운 사람 많이 잡았냐고.
은우는 갑자기 랩을 했고 윤동은 그냥 아무 질문 없이 멍하니 있기만 했다.
“그럼 아저씨는 갈게. 다들 재밌게 놀아.”
“안녕히 가세요.”
아이들이 경찰 아저씨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선물 받은 하나와 재휘에게 시선이 몰렸다.
“빨리 풀어보자.”
선물을 풀자 나온 것은 경찰 아저씨가 가지고 있는 후레쉬였다.
그것도 한 박스에 4개가 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다 나눠 가졌다.
“우와! 이제 경찰이다!”
달칵. 달칵.
작은 후레쉬의 불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한다.
그걸 가지고 아이들은 경찰인 척을 많이 한다.
***
“이사 가자!”
“???”
삼촌이 이상한 말을 꺼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어디로?
“돈이 어딨다고 이사 가요?”
“돈이야 나한테 있지.”
아무래도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 전에 했던 말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삼촌은 진짜 진심인 것 같았다.
“진짜요?”
“어. 벌써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누구한테요?”
“있어. 내 돈 관리하는 사람. 나 모은 돈도 많고 굴린 돈도 많아서 굉장히 부자야.”
“???”
“그렇잖아. 내가 자주 몇 년간 사라지는데 그 돈은 다 어쨌겠어. 다 주식 투자를 했지. 진짜 뭐 이상한 제약회사나 그런 거 아니라면 대부분 우상향이야. 돈 쓸 때도 없었고.”
“그건 그렇죠.”
매번 출장을 길게 나가는데 아무래도 가지고 있던 자금은 투자자에게 맡겨서 많이 불렸나 보다.
하긴 돈 쓸데가 거의 없긴 하신 사람이니까.
한국 오면 우리에게 얹혀살았지. 다음 일이 있으면 또 어느새 훌쩍 떠나지.
돈 쓸데가 없다기보다는 쓸 시간 자체가 없었을 것 같았다.
“근데 집 산다는 거는 아예 여기로 산다는 거예요?”
“응. 그렇지.”
“진짜요?”
“왜? 싫어?”
“싫은 건 아닌데.”
“싫어도 난 옆에서 눌러살 거다. 아무튼, 집은 빨리 해결할 수 있어.”
“으음. 1층이면 좋겠는데.”
“아. 시하가 뛰어놀 수 있게?”
“네.”
“걱정 마! 나 돈 많아! 그것까지 고려해서 전해주지 뭐.”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사하는 날이 되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이사하게 될 줄은 몰랐다.
32평 아파트.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에서 주방까지 이어져 있다.
베란다와 다용도실도 있었고.
특히 1층이었다.
이삿짐센터에서 물건을 옮겨줘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었다.
청소도 말끔히 하고 가시고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거실은 소파가 없어서 그런지 훨씬 넓게 보였고 괜히 티비가 작아서 더더욱 휑하니 보이기도 했다.
시하는 굉장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형아! 형아!”
“응?”
“화장실 두 개야. 두 개!”
“그렇네.”
“이제 여기서 물놀이하고 저기서 물놀이하면 대!”
“그렇게까지 한다고?”
“마자!”
우리 둘이 살다가 이런 곳에 오니 텅텅 빈 곳도 많고 침대도 없이 방바닥에 이불 깔고 자니 더더욱 집이 넓게만 느꼈다.
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겨서 시하에게 물어봤다.
“근데 시하야. 시하 방은 필요 없어? 여기 작은데 시하 방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시하는 형아랑 가치 자. 형아랑 가치야.”
“그렇지.”
아직은 나랑 같이 붙어 있고 싶어 한다.
하긴 벌써 자기 방 갖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시하 방이야.”
“아냐.”
“아니. 맞아. 바로 시하의 장난감 방!”
“!!!”
시하의 눈이 커졌다.
뭐, 장난감이 막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대충 그렇다고 하자.
나중에 옷장도 사서 시하 옷은 여기다 둘 생각이다.
기왕이면 책상이랑 의자도 말이다.
물론 지금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얼마 안 있으면 꼭 필요할 때가 온다.
그리고 언제까지 거실 식탁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엎드려서 그리거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런 걸 좋아하긴 하지만 몸에 안 좋다.
삼촌이 말했다.
“우리 쇼핑 가자. 쇼핑!”
“쇼핑이요?”
“필요한 것들 사야지.”
“아. 가구들은 제 돈을 살게요.”
“무슨 소리야. 내 집인데 당연히 내 돈으로 사야지. 나 돈 많아. 나도 몰랐는데 엄청 많더라.”
시하가 말했다.
“삼춘. 시하 아라. 그거 아라.”
“뭘?”
“돈 마는 백수라고 해써. 삼춘 돈 마나.”
“삼촌이 전부터 돈 많다고 했지!”
“마자!”
이래도 되나 싶지만 나는 그냥 순수하게 삼촌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열심히 벌어서 언젠가 독립해야지.
삼촌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시겠지만 얹혀사는 형태이니까.
“그럼 갈까? 운전은 시혁이가 할 거지? 나 운전 못 한다?”
“아, 네.”
집은 있는데 차는 없는 삼촌이었다.
운전도 잘하실 수 있으시면서 이렇게 나에게 떠넘기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면허증 문제가 있나? 발급받아야 하긴 하겠지.
어쩌면 그냥 배려일 수도 있다.
내가 삼촌을 잘 아는 만큼 삼촌도 날 잘 아니까.
어느 정도 나의 자리를 마련하는 거겠지.
차에 탔다.
“아! 나는 뒷좌석이 그렇게 편하더라.”
“시하도 맨날 뒤에 이써.”
“푸하하. 그래?”
아무래도 배려는 아니고 그냥 귀찮아서 발급 안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렛츠 고!”
“렛츠 고!”
삼촌의 말을 시하가 따라 한다.
나는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일단 먼저 가구를 보았다.
시하의 책상과 의자.
이건 최대한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직원분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이리저리 말한다.
“요즘 가장 잘 팔리는 유아 책상은 이거예요. 저희 아이도 이거 썼는데…….”
삼촌이 말을 가로막았다.
“책상 누르면 홀로그램 촥 나오면서 세계 지도 펼쳐지고 정세 뉴스 촥 흘러나오는 거 없습니까?”
“네?”
나는 삼촌 보고 또 시작이냐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까지 말 잘하던 직원분이 당황하는 게 느껴진다.
시하는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형아. 형아.”
“응? 왜? 마음에 드는 거 있어?”
“홀로구램 모야?”
“아. 그거는 말이야.”
“시하 아라.”
“응?”
“홀로 구래. 혼자서 구래! 하는 거야. 그래서 매일매일 구래만 외쳐.”
“아니야. 그거 영어야.”
“정말?!”
“응.”
“군데 삼촌이 맨날 시하가 말하면 응. 구래. 응. 구래. 하는데 홀로구래 아냐?”
“응. 아니야.”
너 삼촌을 그렇게 생각했구나?
하긴 삼촌이 시하 말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맨날 ‘그래.’라고 대답하긴 했지.
영혼 없는 대답을 시하는 아주 잘 기억하나 보다.
그거 사실 놀리는 건데.
“시하는 삼춘이 시하 말할 때 대신 구래 하는 책상 사눈 줄 알아써.”
“푸흡.”
“삼춘 시하 말 잘 안 들어. 맨날 구래 해.”
“그렇네.”
뭐, 이렇게 책상과 의자를 사고 필요한 것들도 샀다.
편한 게 있다면 이사할 때 옵션인 가구들이 있어서 막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다음은 햄버거 가게 갈까?”
“!!!”
시하랑 햄버거 가게를 갔다.
여러 버거가 있는 걸 보고 눈이 빙글빙글 도나 보다.
일단 직원분께 메뉴판을 받아서 시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러면 다른 분들이 주문할 수 있겠지.
“우웅.”
“아직도 못 골랐어?”
“형아는?”
“형아는 시하 고르는 거 보고 고르려고.”
“우웅.”
사진에 있는 햄버거가 다 맛있어 보이나 보다.
“삼춘. 이거 마시써?”
“그래.”
“이거는?”
“그래.”
“저거는?”
“그래.”
“그래만 하지 말고!”
“응. 그래.”
“삼춘 바부.”
“응. 그래.”
“!!!”
삼촌은 별 관심 없는지 그냥 멍하니 기다리기만 했다.
이미 마음속에서 다 골랐음이 틀림없다.
“삼춘은 머 골라써?”
“이거.”
더블 패티가 있는 아주 큰 빅 버거를 고른다.
시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진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말 컸으니까.
“삼춘. 이거 엄청 커. 이거 입에 다 드러가?”
응. 그래. 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눈에 생기가 돌아온다.
아주 장난기 어린 눈동자다.
“삼촌은 미국에서 이것보다 더 큰 버거도 먹었는데?”
“정말?!”
“정말이지. 미국에서는 말이야. 이~~만~~한! 버거도 팔거든. 팔로 다 안아서 먹어야 해.”
“!!!”
삼촌이 뭔가 커다란 공을 안듯이 마임을 한다.
“입을 엄청 크게 벌리고 한입 크게 베어먹어야지.”
“그거 입에 다 안 드러가. 삼춘 거짓말!”
“미국에는 말이야. 과학 기술이 엄청 발전되어 있거든. 그래서 입을 크게 만들어주는 로봇도 있어. 그래서 한입 크게 베어먹을 수 있지.”
“정말?!”
“그럼. 정말이지. 그래서 이 정도 큰 버거는 겨우 한입이면 충분해. 시하도 한번 이거 먹어봐. 이거 그림만 이렇지 별로 안 커.”
“!!!”
시하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삼촌이 실실 웃음을 흘린다. 결국, 시하가 저 큰 걸 먹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도와줘야지. 저 작은 입에 저게 들어갈 리가 없잖아.
“형아는 치즈버거 먹어야지.”
“!!! 시하도!”
고민하는 거 다 날아가고 바로 태세전환.
“형아랑 가튼 거!”
삼촌은 허탈하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거의 다 넘어왔는데 나 때문에 일이 틀어졌으니까.
“그럼 시하는 치즈버거 해. 형아는 불고기 버거 할게. 같이 나눠 먹자. 두 배로 맛있겠지?”
“형아랑 가치?!”
“응. 형아랑 같이.”
“시하도 조아!”
삼촌이 말했다.
“아, 다 넘어왔는데.”
“삼촌은 시하 너무 놀려요.”
“시혁이 네가 안 거들어줬으면 아주 큰 거 먹일 수 있었는데.”
“안 그랬을걸요.”
아마도 시하는 내가 고른 거로 바로 바꿨겠지.
삼촌도 그건 인정하는지 반박을 못 했다.
“삼춘! 시하는 두 개 머거! 그래서 시하가 더 커!”
“응. 그래. 너 많이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