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0화 (370/500)

370화

누워서 배를 긁적긁적. 과자를 아그작아그작.

티비를 보면서 피식피식.

그런 행태를 보이는 삼촌을 보며 시하가 물었다.

“삼춘.”

“응?”

“삼춘 백수야?”

설거지하고 있던 나는 푸흡 하고 웃음이 나왔다.

대체 백수라는 말은 어디서 들어서 이리 말하는지.

지금 삼촌이 딱 동네 백수 같은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저러고 있지 않나 싶다.

쉴 때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몇 번이지 매일 반복되면 진짜 백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사실 나는 어릴 때 많이 봐와서 익숙하다. 삼촌이 저러고 휴가처럼 우리에게 오랫동안 머물렀다가 돌아가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시하는 지금 처음 보는 거다.

“백수? 그게 뭐야?”

“백수 몰라? 백수는. 웅?”

시하도 정확히 백수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다. 느낌은 어느 정도 아는데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말을 찾아내지 못하는 거지.

한국 학생들에게 자주 보이는 형태.

대답을 안 하면 모르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대충 뭔지 아는데 뭔가 사전적인 정의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그거.

뭔지 알지? 다들?

그래서 침묵을 지키는데 선생님들은 한 명도 모르는 줄 안다. 그거 아닌데.

“아! 백번 쉬는 거야. 백번.”

“아하!”

그러면 ‘백수’가 아니라 ‘백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삼촌은 백수가 뭔지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다.

또 ‘한국말 잘 모르겠어요’ 상태이다.

“시하야.”

“아?”

“삼촌은 말이야. 일 안 해도 매일 돈 들어와.”

“!!!”

“하하하. 이게 바로 젊을 때 열심히 일해서 그래! 그러니까 시하도 열심히 일해라!”

“아냐. 형아는 시하가 열심히 놀라고 해. 일하지 말라고 해써.”

“그럼 형아는 맨날 일하는데?”

“!!!”

“형아랑 같은 거 좋아하면서 형아만 일 시키네.”

참으로 짓궂은 말이다.

아주 애 놀리는데 진심인 사람이 있다면 바로 여기 있는 삼촌이다.

내 어릴 때도 그랬다. 어찌 된 게 달라진 게 없냐.

“시하 노라도 돈 벌어. 나중에 형아 집도 사져.”

“오오오! 돈 벌어?”

“시하 통장도 이써. 대지저굼통도 돈 마나. 보여주까?”

시하가 방으로 쏙 들어가더니 돼지저금통이랑 통장을 들고 온다.

일단 먼저 코를 똑 하고 때더니 돈을 와르르 쏟는다.

“시하 많아.”

“와! 돈 주웠다! 주운 사람이 임자!”

“!!!”

“으하하하! 봐봐! 삼촌은 일 안 해도 돈 들어오지!”

“삼춘! 그거 시하 돈이야!”

“푸하하. 시하가 땅에 버렸으니까 주운 사람이 임자지.”

“주우면 경찰서 가서 주인한테 돌려져야 해! 삼춘 나뿐 짓이야.”

“응. 삼촌 나쁜 사람이라서 나쁜 짓 해도 된다.”

“!!!”

시하가 잉잉하면서 삼촌이 들고 있는 팔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쉽게 뺏길 삼촌이 아니었다.

몸을 일으켜 아예 닿지 않게 했다.

시하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지만 소용없었다.

“삼춘. 나쁜 짓 하면 경찰이 자바가.”

“으하하. 삼촌은 나쁜 짓 해도 경찰이 손 못 대지롱! 바로 풀려나지롱!”

“이거 시하 돈이야! 빨리져!”

“으하하!”

나도 어릴 때 저런 삼촌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주먹이 꽉 쥐어진다.

“삼촌! 시하한테 돈 돌려져!”

“쇼미더머니! 쇼미더머니!”

아버지가 가끔 등짝을 때리거나 헤드록을 했는데 지금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시하가 몇 번 점프하다가 안 되겠는지 어휴 하고 한숨을 쉰다.

“그거 삼춘 주께. 시하가 주는 용돈이야. 알아찌?”

“엉?”

삼촌이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어서 시하를 쳐다보았다.

이걸로 시하에게 한 방 먹은 거지.

잘한다. 이시하!

“흠흠. 그럼 고맙게 받을게. 그럼 통장에 있는 돈도 삼촌 해야지!”

“잉잉!”

삼촌이 이번에는 시하의 통장을 들고 놀린다.

시하는 다리에 찰싹 붙어서 다시 뺏으려고 한다.

“하하하. 얼마 있는지 볼까. WOW! 뭔 아기가 이리 돈이 많아?!”

“구걸로 형아 집 사주 꺼야. 빨리 져.”

“아니. 이거 보험금이야?”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시하가 번 돈이라고 했다.

삼촌은 놀라면서 뭔 아기가 이리 잘 벌어 라며 말한다.

뭐, 광고 찍는 아역들은 엄청 벌지 않나?

그거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지.

사실 시하가 우리 집 제일 부자이기는 했다.

나는 설거지를 다 하고 손에 물기를 닦았다.

“그런데 삼촌. 언제까지 이 집에 있을 거예요?”

“왜?”

“삼촌 있기에는 너무 좁아서요.”

“응? 안 좁은데.”

“뭐가 안 좁아요! 오늘도 거실에서 잤으면서.”

“그래서 나 나가라고?”

“네.”

“너무하잖아!”

삼촌이 실망했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사실 오래 머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집이다.

옷가지 한두 개씩 늘면 넣을 때도 없고.

“그럼 이사하면 되겠네!”

“그게 막 쉬운 게 아니에요.”

“아니야. 쉬워!”

“어휴. 3년 전이랑 또 다르거든요. 아! 시하야. 어린이집 갈 시간 됐다. 가자.”

“어린이집? 시하는 어린이집 가?”

“네. 삼촌도 같이 가실래요?”

“오! 그럴까?”

백수 삼촌이 자리에서 툭툭 털며 일어났다.

시하가 가방을 쏙 메고 나온다.

“삼춘도 어린이집 가?”

“어.”

“삼춘. 구러면 어린이집에서 시하랑 가치 노라.”

“What? 어, 어린이집? 한쿡말 너무 어려어여!”

“거짓말! 아까 어린이집 간다고 했짜나!”

“뭐라는지 모르게쒀여!”

나는 둘의 콩트를 보며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하여간 웃기다니까.

***

시하는 형아랑 삼촌에게 인사하고 친구들이랑 방으로 들어갔다.

승준이 호기심을 못 참고 물어봤다.

“시하야. 같이 온 외국인 누구야?”

“삼춘이래. 삼춘.”

“시하 삼촌 외국인이었어?! 대단해!”

“시하 대다내!”

시하가 배 내밀며 자랑을 한다.

그렇게 집에서 삼촌이랑 투덕거렸으면서 자랑은 하고 싶은 거였다.

“삼춘 백수야. 백수.”

“헐! 삼촌 돈 많아?”

“삼춘이 일 안 해도 돈 들어온다고 해써.”

“대박!”

선생님은 그런 두 아이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대화만 들어봤을 때 저 외국인 삼촌은 아주 장난꾸러기임이 틀림없었다.

미국 재벌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이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나.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으니. 바로 종수였다.

“거짓말! 어떻게 숨만 쉬어도 들어와.”

“시하가 그러케 안 말했눈데?”

“아무튼! 일 안 하는데도 돈이 어떻게 들어와!”

“시하도 재미께 노라서 돈 들어와써.”

“어?”

시하는 재밌는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임티로 돈을 번다.

일이 아니다. 재밌는 놀이다.

그러니 삼촌이 한 말도 사실일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외국인 삼촌이면 영어 잘해?”

“영어 엄청 잘해.”

“한국어는?”

“한국어 잘 모룬데. 군데 아는 것도 있는데 모룬데.”

“무슨 말이야. 그게.”

“시하도 몰라.”

종수는 시하의 삼촌을 더더욱 모르게 되었다.

이상한 삼촌.

아이들에게 그런 인식이 박혔다.

“나는 삼촌이 용돈 준다~ 엄청나지?”

“시하도.”

“시하 너도 용돈 받았어? 외국인이니까 달러 받았겠네?”

“아냐. 시하가 삼춘 용돈 져. 삼춘 백수라서 시하가 용돈 져서 마시는 거 사 머거야 해.”

“!!!”

종수의 머리에 있는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드디어 시하의 말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시하의 외국인 삼촌은 백수다. 돈을 벌지 않는다. 그렇게 노는 데도 돈이 들어온다. 그 이유는 시하가 용돈을 주기 때문이다!

“야. 이시하. 너희 삼촌 괜찮냐? 이상한데?”

“삼춘 차캐. 형아도 삼춘 조아해.”

“속고 있는 거 아니야?”

“아냐. 삼춘 차캐.”

“???”

종수가 아무리 생각해도 시하의 삼촌은 아주 몹쓸 삼촌이었다.

코 묻은 어린이에게 용돈을 받다니.

종수가 시하의 어깨를 토닥였다.

“힘내라.”

“아?”

아무튼, 다들 삼촌 이야기에 시끌시끌하다.

윤동이 스윽 오더니 시하의 어깨를 콕콕 찌른다.

“왜?”

“우리 삼촌도 엄청나.”

“???”

“비보이 대회에서 1위 했었어. 정말 멋있어.”

“엄청나!”

“춤 많이 가르쳐줘. 배에 힘주는 것도 가르쳐줬고.”

“배?!”

시하가 옷을 들고 자신의 배를 보았다.

볼록한 배를 더욱 볼록하게 만들기! 요즘 배운 것이다.

“어때? 힘져써!”

“보자. 딱딱하네.”

“시하는 더 힘주면 배가 남산만 해져.”

“???”

은우도 삼촌이라는 대화에 참여했다.

부산 사람인 삼촌이라서 사투리를 많이 가르쳐준다고 했다.

“안녕하세예. 은운디예! 푸하하!”

“안녕하세예?”

“사투리 랩도 해.”

“사투리 랩?”

“보여줄까?”

“볼래!”

은우가 아아 하면서 목을 풀었다.

머리에 쓴 모자를 삐딱하게 튼다. 그리고 입을 연다.

“니 진짜 내한테 왜 그라는데! 왜 그라는데!”

“!!!”

“내 억울해서 이리 못산다. 내도 이제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살끼다.”

“끼다!”

“여! 보소! 딴따라 한다고 내 등짝 후리지 마소!”

“마소!”

“여! 보소! 와이리 삐리하노 하는데 내 삘만 충만합니더!”

“합니더!”

“여! 보소! 마! 마! 마! 그만 좀 하소! 내가 확 마! 를 갈아 마셨삘끼다!”

“끼따!”

“알았나?”

은우는 삼촌에게 배운 사투리 랩을 선보였다.

시하가 박수를 보냈다.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은 부분도 있었지만 강렬한 억양이 귀를 사로잡았다.

은우가 아주 강하게 보였다.

“푸하하! 여기까지!”

“은우 정말 잘해! 엄청 머씨써.”

“우리 삼촌 사투리 랩 잘한다? 모든 랩을 사투리로 바꿔.”

“정말?!”

“응. 노래도 다 사투리야.”

“!!!”

선생님은 애들을 보며 생각했다.

뭔 삼촌들이 다들 능력자네. 능력자야.

짝짝짝.

“자, 여러분. 이제 삼촌 이야기 그만하고 오늘 할 일을 해보겠습니다!”

“???”

“바로바로 경찰 아저씨가 온대요!”

“!!!”

“오늘은 안전 교육이라서 재밌게 보고 듣고 질문합시다!”

그리고 잠시 후.

진짜 경찰관이 왔다.

아이들은 멀뚱멀뚱하게 들어오는 걸 보았다.

시하만이 경찰관을 향해 소리쳤다.

“경찰 아찌다! 경찰 아찌!”

“오! 시하야. 안녕.”

“경찰 아찌. 주인 차자 져써여. 시하 다 아라여.”

“하하. 그랬지.”

전에 경찰서에서 본 사람이 교육을 나온 것이다.

사실 시하가 이 어린이집 아이라는 걸 알고 지원한 거였다.

그래도 아는 아이가 있으면 좀 더 편하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

“그럼 오늘은 안전 교육을 해볼까요?”

교통안전 교육.

요즘 아이들에게 맞게 잘 준비되어 있다.

보통 영상을 시청하는 방법이 있다. 재밌는 캐릭터가 나와서 열심히 설명해 주는 것이다.

“열심히 보고 나중에 퀴즈도 맞추면 선물이 있어요!”

“!!!”

“영상에서 문제가 나오니까 잘 봐야 해요.”

선물은 사실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거지만 경찰이 준비한 거로 말을 맞췄다.

아이들이 영상을 볼 때 집중력을 더더욱 올려주는 방법이다.

경찰관이 USB를 티비에 꽂아서 영상을 틀었다.

재밌는 캐릭터 아이가 나와서 안전 교육을 설명한다.

아이들이 집중력 좋게 티비를 보았다.

영상 길이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그럼 문제 나갑니다!”

경찰관이 가지고 온 물품 하나를 꺼내서 펼쳤다.

돗자리 같은 거였는데 그 위에 도로도 있고 횡단보도도 있었다.

“자. 여기 도로입니다. 횡단보도가 빨간불이 되었어요. 그럼 건너가면 될까요? 안 될까요?”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경찰관이 종수를 가리켰다.

“아싸! 안 돼요! 건너면 안 돼요!”

“네! 건너면 안 되죠. 이건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종수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낚여버린 것이다.

“초록불이 되었을 때! 어떻게 건너야 하죠?! 아는 사람!”

이번에도 아이들이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영상을 집중해서 본 효과였다.

경찰관이 시하를 가리켰다.

시하가 자신 있게 일어서서 말한다.

“형아 손 자바여!”

“???”

형아 손잡는다는 답은 영상에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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