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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화 (369/500)

369화

며칠 전. 미국 워싱턴.

시혁의 삼촌이라고 불리는 레이먼드가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위험한 임무라서 폰도 놔두고 신분세탁해서 잠입 수사를 맡았었다.

3년.

긴 시간 동안 꼬리를 잡았고 임무를 마쳤다.

그 전까지는 뒤를 잡히지 않기 위해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오로지 CIA에만 몇몇 보고를 했었다.

“레이먼드. 오랜만에 돌아온 기분이 어때?”

“피곤하군. 다음 임무는 좀 쉬다가 맡지.”

레이먼드가 소파에 앉아서 물을 입에 머금었다.

“내가 선별할까?”

“마음대로.”

“국장님이 이제는 현장에서 좀 빠질 때 되지 않냐는데?”

“아직 멀쩡한데 왜?”

“뭐 너야 베테랑이지만 그래도 나랑 동기인데 아직 밑에서 일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관심 없어. 내가 원하는 데나 배정해줘.”

“당연히 우리를 위해 해준 게 얼마인데 원하는 곳이면 다 갈 수 있지. 없는 자리도 만들어야 할 판인데?”

“그럼 수고해.”

“또 한국 갈 건가?”

레이먼드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인다.

상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미국에 친구도 안 만들고 말이야.”

“인맥 정도 만들었으면 된 거 아닐까. 괜히 친구 만들었다가 약점 잡히는 것도 별로거든.”

“어이쿠. 그래서 한국에는 친구 만들었어요?”

“그나마 여기보다 안전하니까. 일단 눈먼 총에 맞을 일은 없잖아.”

“뭐, 그건 그렇지. 아무튼, 병원부터 가. 정신적인 진료도 받고. 임무에서 돌아왔는데 멀쩡할 리가 없잖아. 너 동료들도 꽤…….”

“됐어. 나는 날 잘 알아. 그냥 쉬면 괜찮아.”

“하긴. 거기서 맘 편히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맞아. 거긴 내 휴식처거든.”

“나도 나중에 가면 관광이나 시켜줘.”

“일이나 줄이고 말해.”

레이먼드는 손을 흔들며 떠났다.

동기인 상사만 사무실에 남았지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어딜 가나 한자리 차지할 수 있는 능력자인데 왜 현장에서 안 벗어나는지 모르겠다.

저 친구만 보면 자신은 이미 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휴식 되라고.”

들리지 않는 등을 향해 뱉는 건 그 정도의 위로뿐이다.

어느 정도의 배려와 함께.

“전화를 안 받네?”

레이먼드는 폰으로 이장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나 싶었지만 일단 집에 가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갔는데 살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이사하였나 싶어서 일단 주한미국대사관에 쳐들어가서 사람 하나 찾아 달라고 강짜를 부렸다.

동기인 상사가 전화 와서 잔소리했지만 레이먼드는 귀를 파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쩌라고?”

조카인 이시혁이 강인대학교에 간 걸 기억해서 정보를 주고 조회를 했다.

그리고 돌아온 사실은 친구의 죽음이었다.

“…….”

레이먼드는 충격을 받았다.

총기도 없는 이 한국에서 설마 친구가 사고로 죽을 줄은 몰랐다.

자신은 살 떨리는 죽음이 턱 끝까지 올라오는 임무에서 살아 돌아왔는데 친구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로 돌아오지 못했다.

레이먼드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

주변에 사람이 있든 말든 눈물을 흘렸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유일한 안식처였다. 임무에서 돌아와서 괜히 조카를 놀리고 철없이 굴며 하는 모든 행동이 즐거운 휴식처.

유일하게 돌아갈 집.

가족 없는 자신에게 그래도 가족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준 친구와 조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친구가 없다.

오로지 조카만 남아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정신을 추슬렀다.

동료의 죽음은 슬펐지만, 친구의 죽음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자신은 이럴진대 시혁이 얼마나 슬퍼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순간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불쑥 치솟았다.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해서.

그게 미안해서.

“가야지. 만나러 가야지.”

초췌한 얼굴은 보여주기 싫어서, 면도하고 얼굴을 씻고 손에 쥔 정보를 가지고 시혁이 이사한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다.

“보고 싶었다. 시혁아.”

“삼촌…….”

그나마 하나 남은 유일한 자신의 안식처를 말이다.

***

삼촌이 다가와서 나를 끌어안았다.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게 느껴진다.

“많이 힘들었지? 미안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복잡했는데 삼촌은 알고 있구나 싶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내가 시하를 키우며 산다는 것. 모두. 전부.

저 말 하나에 다 들어있었다.

“어서 오세요.”

“응. 다녀왔어.”

그 말을 끝으로 살며시 품에서 벗어나 눈물이 나는 걸 닦았다.

우리 둘 사이에는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냥 서로 짧은 말 한마디에 많은 감정이 들어있었기에.

그거면 충분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올 일도 있었네.’

아까 느꼈던 부러움이라는 감정 하나가 반갑고 그냥 봐도 그립고 그런 느낌으로 변해갔다.

하루에 감정이 왜 이렇게 자주 변하는지.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형아?”

“응? 아!”

“누구야? 형아 왜 우러?”

“아니야. 안 울어.”

“아찌. 누구야. 형아 개롭히지 마!”

시하가 삼촌의 다리를 착착 때렸다.

삼촌은 그런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삼촌이다.”

“삼춘?”

“그래. 삼촌.”

“정말? 군데 형아 왜 개롭혀?”

“이제 안 괴롭힐게.”

“약속이야.”

“그래. 약속.”

삼촌이랑 시하랑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에다가 복사까지 했다.

정성스럽게 해주는 그 행동이, 장난이 아니라 진지한 그 표정이, 무언가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삼촌. 밥 먹었어요?”

“아니! 당연히 안 먹었지.”

“그럼 우리 밥 먹어요. 뭐 먹고 싶어요?”

“시혁이가 해주는 밥.”

“아…. 그래요. 그럼.”

시하가 배를 쭈욱 내밀며 말했다.

“형아 밥이 제일 마시써. 하늘만큼 땅만큼 마시써!”

이 와중에 형아 자랑이냐!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그래도 시하 덕분에 눈에서 흐르려고 고였던 눈물이 자취를 감췄다.

“그건 나도 잘 알지! 시혁이 밥은 우주최강이야!”

“우주최강?!”

시하는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처음 봐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뭔가 시하랑 잘 맞을 것 같다.

“일단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요. 맛있는 거 해드릴게요.”

집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김치찌개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이 처음에는 많이 매워했는데 나중에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한 3년간 안 왔으니까 지금 다시 매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김치찌개는 그런 맛으로 먹는 거지.

거기에 계란말이에 흰 쌀밥.

“좀 걸릴 거니까 시하랑 놀아주고 있으세요.”

“내가 그건 시혁이 어릴 때부터 놀아줘서 잘하지!”

삼촌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여전하신 거 같아서.

“아기야.”

“시하 아기 아니야. 시하 다 커써.”

“꼬맹이.”

“시하 꼬맹이 마자.”

그건 또 인정하는 거니?! 꼬맹이가 다 큰 거였어?!

아무튼, 둘이 신나게 대화를 나눈다.

“아까 내가 우주최강이라고 했는데 우주 가봤어?”

“시하 아직 안 가바써. 삼춘 가바써?”

“어! 당연하지. 우주에는 말이야. 초능력자가 있거든! 엄청 큰 로봇도 있고.”

“정말?!”

“그럼! 차가 로봇으로 변신한다고.”

“시하 차는 변신 못 하는데.”

“괜찮아. 그 외계인이 오면 시하 차도 로봇이 되게 할 수 있어.”

“!!!”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앉아 있다.

시하는 정말이냐는 듯이 이미 삼촌의 말에 빠져있고.

이런, 이런. 저거 다 거짓말이야.

허풍도 이런 허풍이 없다.

근데 묘하게 영화에 나온 이야기 같네.

역시 미국인인가!

“군데 삼춘은 어디 사라?”

“삼촌은 아메리카에서 살지.”

“!!!”

“어때? 대단하지?”

“삼춘 아메리카노에서 퐁당 사라? 커피 안에서 사라서 쪽쪽 마셔?”

“???”

“시하도 아메리카노 아라. 군데 어룬이 마신대. 시하 다 아라.”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아메리카. 미국 말이야. 미국.”

“시하도 미역국 조아해. 마시써.”

“???”

뭐 가끔 대화도 안 통하는 법이다.

시하 언어 마술에 걸려들었구만.

삼촌은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삼춘. 삼춘.”

“으응?”

“잠 와? 왜 누어 이써?”

“이렇게 누워 있는 게 편해.”

“누어 있지 말고 시하랑 술래잡기하자.”

“what? 뭐라고?”

“술래잡기!”

“oh! woo! 한쿡말 잘 모태여! 잘 모르게써여!”

“???”

나는 요리를 하면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자기 불리할 때면 나오는 한국말 못 해요.

선택적 못 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까지 잘만 해놓고 한국말 못 하는 게 말이 되나.

어릴 때 나도 저거에 많이 당했었다. 어? 저 말을 모르나? 이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하고 말이다.

그때는 뭐 스마트폰도 없었으니까.

“삼춘 한국말 모태?”

“한쿡말 너무 어려어yo! 뭐 하는지 모르게쒀yo! yo!”

“구럼 시하가 한국말 가르쳐주께!”

“???”

하지만 시하는 강적이었다.

바로 선생님 놀이로 돌변하기.

방으로 들어가서 장난감 검을 가지고 온다.

아무래도 지팡이 대용인가 보다.

그걸로 티비를 가리킨다.

“이거 티비야. 티비.”

“한쿡말 모르게써여.”

“구러니까 티비! 텔레비전!”

“오우! 너무 어려워요!”

“삼춘! 거짓말! 텔레비전 영어야!”

“오우! 들켜써yo!”

아무리 그래도 시하가 영어를 몇 개 안다고!

컵이라던가 티비라던가! 피아노라던가! 우리 시하 다 안다!

“구럼 시하가 영어로 하까?”

“영어 할 줄 알아?”

“시하 엄청 잘해. 삼춘 놀라서 별나라가.”

“아무리 그래도 영어 잘하는 거로 놀라서 별나라까지 간다고?!”

이게 바로 삼촌을 능가하는 허풍쟁이 이시하다!

내가 왜 요리하는데 이렇게 귀를 기울이는지 모르겠다.

“잘 드러바. 헬로! 바이바이.”

“오!”

“에이 비 씨 디!”

이제 노래를 부른다.

뭐, 레퍼토리가 그렇지 뭐.

삼촌은 엉덩이 긁기도 하면서 누워서 박수를 보낸다.

진짜 국적만 다르지 여느 한국인 삼촌이나 다를 바 없는 행태였다.

보글보글.

그래도 요리하는 동안 심심하지 않았다.

“다 됐다!”

“오!”

“수저 가져가시고요.”

밥상을 세팅하고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삼촌이 먼저 국을 떠서 입에 넣었다.

“콜록. 콜록. 콜록.”

원래 매운 게 들어가면 목에서 기침이 나오는 법이다.

“매워.”

“매워요? 많이 매워요?”

“아니. 괜찮아.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래. 후루룩. 콜록. 콜록.”

시하가 말했다.

“삼춘. 어룬인데 매운 거 못 머거?”

“콜록. 콜록. 아니. 잘 먹는다니까. 정말…. 오랜만이라고 했잖아. 오랜만…….”

삼촌이 옆에 있는 티슈로 찔끔 나온 눈물과 손을 닦았다.

“시하처럼 잘 머거야 키 크지.”

“너나 많이 커라.”

삼촌이 밥을 푹 뜨면서 김치찌개의 김치를 건져서 입에 넣었다.

티슈로 이마를 닦으면서 눈가도 함께 닦는다.

“진짜. 왜 이렇게 맵게 했냐.”

나는 김치찌개가 맵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눈가가 매웠다.

정말 이상하게도.

***

레이먼드는 집에 나와서 밤길을 걸었다.

폰을 꺼내서 상사에게 전화했다.

「어! 레이먼드. 만났나?」

“만났지.”

「어때? 좋아?」

“좋더라. 슬프기도 하고. 내 친구가 하늘 계시다네.”

「아…. 너무 슬퍼 마라.」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해. 제일 힘들 때 같이 못 있어 줬거든. 친구 아들이랑 말이야.”

「임무 중인데 어쩔 수 없지. 연락도 못 하는 곳이었잖아.」

“사정이 있다고 해도 옆에 못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건. 그렇지.」

레이먼드는 한숨을 쉬다가 하늘을 보았다.

서울이라서 그런지 별은 보이지도 않고 오로지 달빛만이 가득했다.

저 위에서 아들을 볼 수나 있을는지.

“없는 자리도 만들어준다고 했지?”

「어? 야! 그건 농담으로.」

“만들어줘.”

「으응?」

“여기 한국에. 주한 미국대사관에 자리 하나 만들어줘.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진심이야?!」

“어. 내가 미국에 해준 게 얼만데 이것 하나 못 해줘?”

「아니.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나 일은 안 한다.”

「와. 진짜. 너.」

“왜? 뭐?”

「알았다. 알았어. 그 정도는 가능하지. 내가 국장님에게 잘 말할게. 별로 반대도 안 하실 거야.」

“고맙다.”

「그런데 계속 거기 있을 거야?」

“모르겠어. 그냥 그렇네. 또 잃어버릴까 봐. 또 시기를 놓칠까 봐. 그래서 무서워.”

「동료들이 알면 기겁을 하겠다. 레이먼드도 무서운 게 있다니 하면서.」

“난 뭐 사람 아니냐.”

「임무 할 때는 기계지. 기계. 알았어. 그렇게 처리해 둘게.」

통화를 종료했다.

대충 일주일 내면 일자리도 해결될 것이다.

“음.”

레이먼드는 문 앞을 서성였다.

‘비밀번호가 뭐지?’

결국, 삑삑삑삑 누르다가 틀려서 시혁이 문을 열어줬다.

비밀번호도 모르고 왜 나갔냐고 구박을 받았다. 폰은 장식이냐면서 구박을 한 번 더 받았다.

레이먼드는 억울했지만,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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