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띵-동-
시하가 도도도 달려간다.
‘누구세여!’ 하고 외치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내가 문을 열자 앞에 택배 박스가 있다.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담요였다.
“시하야. 담요가 왔네!”
“정말?! 볼래! 볼래!”
“응. 잠시만.”
나는 박스를 뜯었다. 비닐에 감싸진 담요 하나, 둘, 셋.
하나는 할머니에게 드릴 선물이고 두 개는 시하랑 내가 가질 것이다.
“펼쳐볼까?”
“응!”
담요를 펼치자 페페가 짠 하고 나왔다.
이게 바로 과거로 돌아가는 문을 여는 담요지.
또라에몽이 생각나는 아이템 같은 거다.
시하도 마음에 드는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페페! 페페!”
“이건 시하 꺼야.”
“형아. 시하 망토 해져. 망토.”
“어? 응. 그래.”
양 끝을 잡아서 시하 목에 묶어 주었다.
애들은 왜 망토를 이리 좋아할까?
“간다! 시하페페다!”
페페랑 시하랑 합쳐서 시하페페가 되었다.
그거 네 채널 이름이잖냐. 원래 그렇게 안 해도 시하페페 아니야?
“시하 이제 날 수 이써.”
그,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은 어디 가고 날 수 있게 되었냐!
하긴 망토가 있으면 나는 건 당연하긴 하지만.
“형아도 망토 해. 망토!”
“어? 나는 좀.”
이 나이에 망토 하면 너무 부끄럽잖아!
시하가 내 바지를 잡고 흔든다.
“형아. 시하랑 가치해. 가치. 형아는 시하랑 세투야. 세투.”
“그건 그렇긴 한데.”
“시하가 이케 부탁하께. 안 대?”
두 손 꼬옥 모으며 올려다본다.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아, 그건 반칙이지. 어디서…. 귀, 귀여운 것만 배워서. 크흠.
“아, 그럼 망토를 둘러볼까?”
아무래도 나는 키가 있어서 멋있게 망토가 아래로 펄럭 펼쳐지지는 않았다.
원래 그런 법 아니겠나.
“형아. 망토 해써!”
“응. 그렇네. 망토 했네.”
아니! 이 나이에 망토 하고 놀아야 한다니! 너무 부끄러워!
그래도 집이라서 다행이지 밖이었으면 바로 마스크 끼고 선글라스 썼다.
적어도 얼굴을 보이지 말자.
“형아. 이제 날아가자.”
“어? 어디로?”
“이제 할무니한테 가.”
“그건 좀 봐주지 않을래?”
할머니에게 선물 주는 망토 입은 두 형제.
이상하잖아! 진짜 이상하잖아!
“흠흠. 시하야. 망토로 놀기 전에 꼭 해야 할 게 있어.”
“모야?”
“바로 할머니 선물 포장하기!”
“!!!”
“형아가 포장지를 사 왔어. 이걸로 포장하는 거야. 시하는 편지 쓸래?”
“시하 편지 쓸래! 시하 이제 글 잘 써. 이름도 저글 수 이써!”
“엄청나네!”
이름이야 예전부터 적을 수 있지 않았니?
심지어 ‘시하’는 이름 적기 쉽다. 받침도 없고 말이야. 그리고 부르기도 쉽지 않은가.
“그럼 형아는 포장을 할 테니 시하는 떡이 아니라 편지를 쓰거라.”
“아라써. 시하가 열심히 쓰께.”
“응. 응.”
사실 포장은 쉽다.
그냥 물품을 포장지에 둥글게 말아서 테이프를 붙인다.
그럼 다음 양옆을 밀봉해야 하는데 이것도 상자 포장하듯이 접어서 테이프를 붙이면 끝.
그래도 한쪽은 일단 열어두었다.
시하가 편지 쓰면 넣어둬야 하니까.
“우웅. 할무니. 할무니. 이거 시하가 만드러써여. 이거 써서 아푼 거 빨리 나으세여!”
음음. 간단히 저렇게 썼구만.
확인해 보니까.
[하무 하무. 시하가 만두ㅅㅇ. 아푸푸 ㅂ리 나우사ㅇ!]
뭐냐. 이 암호는.
시하는 만두가 되어버린 거 같은데? 아푸푸는 아픈 거인가? 뭔가 세수하는 느낌이고.
나우사!는 나으세요 느낌이 나긴 한다.
그래도 편지의 발전이 있어!
아무튼, 그래!
“시하야. 이제 다 적었어?”
“아냐. 그림 그려야 해.”
“그림까지!”
시하는 하트를 안고 있는 페페를 그리고 나서 마무리 지었다.
이거 내가 해석 적어야 할까? 큼지막하게 써서 사실 쓸 곳도 별로 없었다.
그냥 말로 전해주는 게 낫겠지?
나는 엽서를 들어서 포장지에 넣었다.
이 선물이 할머니를 낫게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전해지길.
설사 잊어먹으시더라도 추운 날에 따뜻한 담요를 덮으시길.
그런 마음을 담아서 포장을 마무리했다.
“그럼 갈까?”
“망토 입고?”
“아니. 망토는 벗고.”
“왜?”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서 형아가 부끄러워!”
“시하는 형아가 머씨써서 갠찬나. 시하가 형아 자랑해! 머씨다고!”
시하가 자기 배를 쭈욱 내민다.
거, 그만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 응? 지금도 충분한 것 같은데?
아니면 기자회견이라도 열어서 대대적으로 자랑할래?
아무튼, 망토는 벗었다.
***
경찰에게 미리 주소를 받아놓았다.
물론 혹시 찾아뵐 수 있겠냐고 허락을 먼저 구했고.
그래서 시하랑 집으로 찾아갔다.
할머니는 빌라에 사셨는데 여기 근처여서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하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얼굴 보는 게 쉽지 않은데 뭐.
띵-동-
벨이 울리자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아, 전에 연락드렸던 시혁입니다. 그, 양갱이랑 봉투 돌려준.”
“아. 들어와요.”
집 안에는 할머니 한 분만 계시고 같이 사는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모시고 있다고 하던데 일을 하러 나가신가 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여!”
할머니가 살며시 웃으셨다.
소파를 손으로 탁탁 쓸더니 앉으라고 하신다.
그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마실 거 줄까요? 우유 줄까요?”
“아, 전 괜찮습니다.”
“시하는 초코 우유 주세여.”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설마 집에 초코 우유가 있을 줄은 몰랐다.
양갱 몇 개랑 초코 우유, 그리고 물을 떠서 오셨다.
친절하신 분이었다.
“내가 그때 정신이 없어서. 많이 놀랐죠?”
“아니에요. 그냥 돈하고 양갱이 있길래 누가 잃어버렸나 싶었어요.”
“요즘 내가 좀 그래요. 늙으면 다 그렇게 되는 거지. 뭐.”
“아…….”
“젊었을 때 딸에게 못 해준 게 많아요. 매일 아들만 챙기고. 그래서 그랬나 봐. 괜히 용돈 챙겨주고 간식 챙겨주고. 나는 기억 못 하는데 그랬다고 하니까.”
“아…….”
“처음에는 충격이어서 너무 슬펐는데 지금은 편해요. 받아들였어. 어머. 내가 애들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요.”
나는 솔직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기억에 없는 일을 내가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무서울까.
만약 여기서 정신연령이 더 어려진다면?
“할무니.”
“응?”
“이거여! 이거 이쑤면 다 나아. 이거면 갠차나여.”
“이거 선물이니?”
“응!”
할머니가 선물을 풀어보았다.
“담요네? 이건 무슨 캐릭터니? 내가 요즘 애들이 보는 만화를 몰라서.”
“그거 시하가 그린 거예요.”
“정말? 천재네? 이런 예쁜 그림도 그리고.”
할머니가 시하를 보았다.
시하는 그 말이 자랑스러운지 앉아서 배를 쭈욱 내밀었다.
“할무니. 그거 가거 가는 문이에여. 열쇠로 가거 갈 수 이써여.”
“오. 그러니?”
“할무니 가거에서 와짜나여. 시하 다 아라. 이제 가거 가서 빨리 갠차나져여.”
“응? 아! 그러네. 할머니는 과거에서…. 하하하. 재밌는 표현이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과거의 내가 한 일이라.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편해지네.”
의외로 이런 말이 위로가 되었을까?
할머니는 담요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무릎 위에 덮은 담요를 보며 따뜻한 눈을 하셨다.
“고마워. 할머니가 소중히 할게.”
“할무니. 그거 얼굴까지 더퍼서 짜잔 하면 가거로 가여.”
“정말? 대단하네.”
“딸이 할무니 걱정해서 빨리 가야 해.”
“푸흡. 그렇겠네. 정말.”
“양갱도 져야 해.”
“응. 줘야지. 이름이 시하라고?”
“시하에여.”
“시하도 양갱 먹어볼래? 맛있어.”
포크로 양갱을 찍어주자 시하가 받아서 먹었다.
“마시써!”
“후훗.”
오물오물 잘 먹는 시하를 잠깐 바라보신다.
그리고 엽서를 꺼냈다.
“이건 편지?”
“아, 네. 시하가 쓴 거예요.”
“하무?”
“아, 그건 할머니라고 쓴 거예요. 아직 한글을 잘 쓰지 못해서.”
“이 정도면 정말 잘 쓴 거지.”
내가 대충 편지 내용을 이야기하자 웃음소리를 작게 내셨다.
아무래도 만두 이런 게 적혀 있었는데 설마 그런 내용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근데 동생이라고?”
“아, 네.”
“부모님은?”
나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할머니는 다 알아들으셨는지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는 의문 섞인 눈동자로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잘하겠지만 소중히 정말 소중히 대해줘요.”
“네.”
“나는 딸 어릴 때 못 해준 게 그렇게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과거로 돌아갈 때 그렇게 빨간 차만 찾았나 봐.”
“지금은 흰 차시라고.”
“맞아요. 지금은 흰 차. 결혼도 했고.”
“아드님은요?”
“아들은 결혼도 못 했어요. 엄마가 이렇게 챙겨줬는데 독신으로 살고.”
“하하하.”
“저한테 자기 결혼했으면 이렇게 모시고 살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어찌나 생색 아닌 생색을 내던지. 저는 됐네요! 하고 말했어요.”
“엄청 사이가 좋으시네요.”
“이제 지겨워요. 나, 가면 혼자 어떻게 살려고. 그게 걱정이지.”
“에이. 그런 말 마세요.”
할머니가 눈을 내리깐다.
“할무니.”
“으응?”
“언제 가여?”
“응?”
“딸이 걱정해여. 형아도 시하 업쑤면 마니 걱정해. 구래서 가치 오래오래 이써야 해여. 시하는 형아랑 매일매일 마니 놀고 시퍼여.”
“후훗. 그렇구나. 그렇지. 음! 오랫동안 있고 싶지. 함께. 정말 내가 괜한 소리를 애 앞에서 했네요.”
“빨리 가야 해여.”
“응. 알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희는 갈게요.”
“아, 그럴래요?”
할머니는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또 올게요.’라는 말을 하며 문을 열었다.
“으악!”
“아! 깜짝이야!”
앞에 아줌마랑 딱 마주쳐서 엄청 놀랐다.
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 네가 웬일이야?”
“아!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나 진짜 오빠한테 엄마 그런 일 있었다고 해서 얼마나 내가!”
아무래도 딸인 모양이다.
이렇게 달려오는 딸이 있어서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딸에게는 닿지 못했지만 지금의 딸에게 닿았으니까.
그 그리움과 후회, 아쉬움은 떠나보내셨으면 한다.
“그런데 이쪽은?”
“아! 빨간 차 주인입니다.”
“아! 아! 그분.”
“여기 제 동생하고 선물 좀 전해주고 싶어서 왔어요.”
“아! 감사해요. 이렇게 챙겨도 주시고.”
“하하. 아니에요. 시하가 선물하고 싶다고 해서 그랬어요.”
“정말요? 우와. 안녕! 시하야? 고마워. 딸인 나보다 훨씬 낫네.”
시하가 내 다리 뒤로 쏙 숨어서 경계 어린 표정으로 따님분을 쳐다본다.
왜 그러지?
“내, 내가 뭘 했나? 혹시 무섭게 생겼나?”
“힌 차.”
“으응?”
“빨간 차 버려써여. 배신이야. 배신.”
“푸흡.”
설마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냐.
너, 아직도 빨간 차에서 흰 차로 바꿨다는 게 그렇게 충격적이었어?!
***
시하랑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금 산책이나 할까 싶어서 같이 주변을 빙 둘러서 걸었다.
시하는 내 손을 잡고 신난 표정이었다.
사실 오늘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안타까움도 있지만 부럽다는 마음도 있다. 어쩌면 나도 겪었어야 할 부모님의 형태가 아니었나 싶어서.
“형아. 나중에 망토 쓰고 가자.”
“그건 좀.”
또 딸이 찾아왔을 때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는 한편 부러운 감정도 피어올랐다.
누군가 보고 싶어서 찾아갈 수 있구나.
난 보고 싶어도 못 찾아가는데.
마치 할머니가 과거의 따님을 못 찾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내가 저 망토를 쓰고 과거로 가고 싶다. 그래서 그때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고모집 나중에 가면 안 되냐고.
오늘은 같이 있어 달라고.
다 컸지만 그런 어리광을 부려서라도 그날 가지 못하게…….
“형아? 갠차나?”
“응? 괜찮지. 왜? 얼굴 이상해?”
“구냥.”
“형아. 시하랑 있어서 정말 정말 괜찮아. 행복해.”
“시하도 행복해! 왜냐면 시하는 형아 동생이니까.”
“크흑. 형아도. 시하 형아니까.”
그래. 난 시하 형아니까. 그러니까. 이러면 안 된다.
시하를 두고 과거로 갈 수는 없지.
“이제 집 갈까?”
“가자!”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시하를 쳐다보며 걷는다. 총총 움직이는 발걸음을 보면서 걷는다.
괜히 눈을 마주칠 때면 ‘왜?’ 하고 물어본다.
“오늘은 시하 보면서 집 가고 싶어서.”
“시하는 아페 볼래.”
“어? 형아 안 보고?”
“형아 시하 보니까. 시하가 아페 잘 보고 형아 지켜.”
“크흑.”
이렇게 한 수 배웁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시하가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킨다.
“애국인이야. 애국인.”
“외국인이겠지. 외국인!”
“외국인.”
시하에게서 시선을 떼고 외국인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형아?”
외국인이 다가오며 말한다.
“보고 싶었다. 시혁아.”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