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3화 (363/500)

363화

마지막 장면을 위해 시하가 이불을 깔았다.

은우가 그 위에 누워서 잠을 잔다.

종수가 손을 들어 큐 사인을 보낸다.

“으음. 하암. 잘 잤다.”

자리에서 일어난 은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데 주변이 엄청 어질러져 있다.

“어? 왜 이래?”

주위를 둘러보지만 무슨 폭풍이 지나갔는지 모른다.

그때 아이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은우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 여기 왜 그래요?”

“…….”

헤드셋을 낀 시하가 먼저 페페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뒤로 한 명씩 감염되듯이 페페 춤을 춘다.

둠칫. 둠둠칫.

은우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 당황한다.

모두가 페페 춤을 추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어? 어? 몸이 마음대로!”

은우 역시도 손이 갑자기 합장하게 된다.

그렇다. 헤드셋을 안 껴도 춤추게 되는 힘이 더더욱 강해진 것이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푸하하. 이게 뭐야.”

점점 몸이 움직이며 춤을 추게 된다.

“손은 붙어서 미안 하는데. 아무도 내 기도 들어주지 않는데. 그저 이런 춤을 추는. 이모저모 춤을 추는. 조종당해! 바디! 에블바디! 렛츠 댄스!”

둠칫. 둠둠칫.

다 같이 페페 춤을 춘다.

어느새 승준이도 참가해서 시하를 중심으로 옆으로 쫙 퍼진다.

7명이 추는 페페 춤.

합장한 손으로 좌우로 흔든다. 왼발, 오른발이 순서대로 까딱까딱 움직인다.

손이 왼쪽으로 갈 때는 오른 발꿈치를 들고 오른쪽으로 갈 때는 왼 발꿈치를 든다.

번갈아 반복하는 동작.

다 같이 신나는 표정으로 춤을 춘다.

종수는 한참을 찍다가 이렇게 외친다.

“컷! 끝났어. 다 했다!”

아이들이 힘들다는 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드디어 영화가 마무리된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수고했다고 손뼉을 쳤다.

그리고 준비된 음료수를 들고 와서 하나씩 주었다.

“시하 다 찌거써.”

“시하야. 진짜 힘들었다. 그치? 근데 나도 마지막에 나와서 좋았어.”

“승준이 열심히 찌근 거 시하가 다 바써.”

“그치? 푸하하.”

“다 가치 보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찍은 것을 다 같이 보았다.

다들 웃긴지 키득키득 웃었다.

가끔 이렇게 자신들이 만든 게 너무 웃기고 재밌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 봐도 재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재밌으면 되는 거다.

이런 추억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대단한 것이다.

“그럼 선생님이 영상을 편집해 줄까?”

“!!!”

“근데 지금은 안 되고 조금씩 해줄게. 안에 음악도 넣어서 이어붙이면 진짜 재밌을걸.”

“샘. 이거 감덩님이 해야 하는 거예여.”

“으응? 그렇긴 한데.”

종수는 시하의 말에 당황했다.

편집 프로그램은커녕 그런 경험조차 해보지 못했다.

폰은 있지만 그건 대충 쓸 줄만 알 뿐이다.

“아직 종수가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으니까 선생님이 할게. 그리고 꼭 감독님만 편집하는 거 아니야.”

“정말?”

“응. 정말.”

선생님의 설득에 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의 숨을 뱉었다.

하마터면 모르는 것을 해볼 뻔했다.

***

유다희 선생님이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저번에 시하에게 들은 영화 촬영인 것 같았다.

시작은 윤동이 헤드셋을 사는 것부터다.

재휘에게는 편의점 직원이라는 자막이 달린다.

윤동이 헤드셋에서 음악 소리를 듣고 그대로 써버린다.

그 순간 영상은 주변 소리가 음소거 되며 멜로디 하나가 흘러나온다.

즉석에서 선생님이 영상에 입힌 노래인 것 같다.

순식간에 웨이브를 추며 헤드셋이 다음 타깃으로 넘어간다.

다시 한번 노래가 뒤바뀐다.

“잘 만들었네.”

춤과 어울리는 적절한 노래를 찾아서 입힌 것 같다.

선생님이 이걸 만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진짜 정성이었다.

장면이 바뀌고 연주와 하나가 나온다.

시하는 주방장인지 요리를 만든다.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다음 재휘가 나오고 하나에게 헤드셋을 넘기는데 익숙한 노래가 나오며 하나가 점프를 한다. 점핑! 점핑!

차례로 건네받으며 마지막으로 시하가 헤드셋을 쓰며 페페 춤을 춘다.

집에서 보여줬던 페페 춤.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애들이 해서 더 귀여운 것 같다.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는 게 보이며 시하가 얼굴이 점점 커지는 장면에서 페이드아웃이 되어 버린다.

까만 화면이 이어지며 페이드인이 되는데 낯선 천장이 보인다.

장면이 바뀌며 은우가 일어선다.

“와. 편집 잘했다.”

화면이 꺼지는 것과 켜지는 것.

자연스럽게 눈꺼풀을 뜨는 장면 전환.

그리고 다음 날로 넘어갔다는 암시를 순식간에 주는 장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유다희 선생님의 편집 센스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으음. 하암. 잘 잤다.]

은우의 목소리가 나오며 밖으로 향한다.

그리고 어질러져 있는 현장. 다 같이 바이러스에 걸린 듯이 페페 춤을 춘다.

은우도 당황하며 그 춤에 저항하지 못한다.

그렇게 시하를 중심으로 하늘의 새들처럼 삼각형을 만든다.

쫙 펼쳐지는 것이다.

다 같이 추는 페페 춤. 확실히 재밌다.

음악이 나오며 신나게 추는데 순식간에 화면인 검은 화면으로 바뀌더니 제목이 나왔다.

[페페 춤 바이러스]

영상이 끝이 났다.

나는 그 자막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한참을 웃고 있자 시하가 불쑥 방에서 나왔다.

“형아. 재밌는 거 이써?”

“아, 응. 그림은 다 그렸어?”

“시하, 다 그려써.”

“그럼 선생님이 보내오신 영상 한번 볼래? 전에 친구들이랑 영화 찍었잖아.”

“볼래! 볼래!”

시하가 내 무릎 위에 탁 앉더니 영상을 보았다.

또 돌려봐도 참 재밌는 것 같았다.

사실 영화라고 하기에는 아주 짧은 영상이지만 말이다.

실제 영화처럼 2시간 정도 만들 수는 없겠지.

어떻게 보면 UCC처럼 짧은 영상으로 보인다.

“재미써!”

시하가 다 봤는지 재밌다고 좋아했다.

“시하는 편집된 거 처음 보지?”

“시하 찌근 거 바써. 군데 이게 더 재미써. 샘 대다내!”

“응. 선생님 대단하네.”

“형아도 대다내. 형아가 시하 그림 잘 만드러서 올려져.”

“그렇지. 나도 그렇게 올리지.”

애들이 원체 재밌게 찍은 것도 있지만 선생님이 재밌게 편집해준 것도 있다.

이 영상 나만 보기에는 좀 아까운 것 같다.

“아, 맞다. 근데 선생님이 어린이집 채널에 이거 올려도 되냐고 묻던데?”

“대. 대. 갠차나.”

“그래? 그럼 올려달라고 할게.”

“아라써.”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고동수 감독님의 영화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전에 시하를 찍으면서 이게 거의 마지막 촬영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이제 편집만 하면 되는 걸까?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잘 모르겠다. 씬마다 찍으시기는 했는데. 음. 다 머릿속에 계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폰에 전화가 왔다.

고동수 감독님이었다.

양반은 못 되시는 모양이다.

“네. 감독님.”

「오. 통화돼?」

“네. 됩니다. 무슨 일이세요? 혹시 자막에 관해 겁니까?”

「이야. 역시 눈치가 빨라. 일단 편집이 끝났거든. 그래서 같이 좀 확인하면서 자막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하려고. 언제 시간 괜찮아?」

“시간이야 제가 한번 빼볼게요. 그리고 주신 대본 보면서 제가 영어로 일단 1차 번역을 했거든요. 나중에 영화 보고 또 한 번 같이 상의했으면 해요.”

「오! 일 처리 빠르네. 좋아. 일단 같이 한번 보고 그때 해보자.」

“내일 어떠세요? 전 내일 괜찮을 것 같은데.”

「나야 뭐 언제든 시간 되지. 아직 영화 개봉도 안 했으니까. 뭐, 그때부터 바쁠 테니.」

“개봉은 언제로 잡혔는데요?”

「내년이야. 칸 영화제에 넣을 거고. 칸에서는 5월 개봉이겠다.」

“오! 대박! 상 받는 거 아니에요?!”

「반응도 모르는데 무슨 상이야. 푸하하.」

“에이. 그래도 모르잖아요.”

막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고 막 그렇게 급하지도 않은, 남은 일수였다.

괜히 여유 부리다가 부랴부랴 하게 될 것 같은 느낌?

아무튼, 충분히 할 수 있는 느낌이다.

“그럼 내일 아침에 뵐까요? 아무래도 제가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그럴래? 난 너무 많이 봐서 같이 보지는 못하겠다. 네가 해둔 번역 좀 봐야겠어.」

“애드리브나 그런 건 안 되어 있어요.”

「그건 나도 알아. 내가 애드리브 부분은 체크해서 파일에 저장해 두기는 했어. 색깔도 다르게 표시했는데 지금 보내줄까?」

“아, 그럼 그래 주실래요? 저도 확인하고 그 부분은 추가해서 내일 갈게요. 좀 더 상의할 시간을 가지고 이런 부분은 시간을 줄여요.”

그렇게 통화를 종료했다.

뭔가 기대가 된다. 어떻게 의견을 나누고 할지.

“형아. 내일 영화 봐?”

“응. 전에 감독님이 찍은 영화 있지? 그거 편집 다 했대. 여기 시하가 친구들이랑 찍은 영화처럼 말이야.”

“정말?”

“응.”

“시하도 볼래.”

“시하는 어린이집 가야지.”

“아냐. 시하도 볼래.”

“그럼, 나중에 영화관에 나오면 같이 보자. 아니면 시사회? 그때.”

“시시해?”

“시시해가 아니라 시사회. 어, 영화관에 영화가 나오기 전에 미리 친한 사람들끼리 보는 거야. 시하도 이 영상 내일 친구들이랑 같이 보고 이야기할걸?”

“페페 춤 이야기할래! 페페 춤!”

“푸흡. 그래. 페페 춤 이야기 실컷 해라.”

아이들이 페페 춤 이야기를 실컷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다음 날.

시하를 데려다주고 감독님을 만났다.

원래 가는 회사는 연차를 낸다고 했는데 뭘 또 그렇게 하냐면서 그냥 출장 간다고 하라고 했다.

어차피 지금 일도 없다면서.

뭔가 이래도 되나 싶지만 사장님 마음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하구만.

이게 바로 성과를 톡톡히 보여준 직원의 위엄인가!

물론 배려해 주신 점은 감사하고 있다.

아무리 지금 일이 별로 없다고 해도 말이다.

사실 사장님 혼자 일해도 돌아갈 수준이다. 물론 좀 빡빡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직원이 한 명 더 있으니 그냥저냥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

“저 이렇게 풀타임으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대본은 다 봤는데.”

“그렇지?”

“네. 아, 이건 제가 만든 번역이에요.”

“파일로 주면 되는데 뭘 또 뽑아왔어.”

“펜으로 좀 끄적이면서 상의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런 게 더 편하지 않아요? 막 패드 써서 펜으로 고치는 것보다는.”

“어떻게 알았어? 벌써 나랑 호흡이 잘 맞는데?”

“하하하.”

이상하게 이런 게 더 편하긴 했다. 물론 파일로 다시 정리해서 고쳐야 하지만.

그래도 두껍지는 않다. 대본집보다는 훨씬 얇다.

당연한 게 대사만 번역해서 넣었으니까.

물론 영화니까 대사가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 영화 한번 볼게요.”

“오케이. 나는 이거 좀 검토하고 있을게.”

감독님은 펜을 굴렸고 나는 편집실에서 영화를 틀고 감상을 했다.

활자들이 영상화된다.

영화 ‘일개미’.

굳이 말하자면 코믹한 회사의 내용이다. 근데 코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을 위해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김석현 배우 나온다.’

신입사원 김석현.

출근 한 지는 좀 되었고 이 회사에서 PF(Project Force)팀이 만들어진다.

김석현은 거기에 배정되며 2팀인 부장에게 하나의 명령을 받는다.

PF팀에서 일어난 정보를 제공하라는.

사실 2팀 부장은 어떻게 보면 빌런에 가깝다.

성공에 대한 집착이 심한 인물.

성과가 생기면 자기 이름을 넣는 얄미운 인물.

다들 어떻게든 한 방 먹이고 싶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는 인물이다.

김석현은 거기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거절할 수도 없다.

사원은 언제든지 써먹기 좋은 장기 말 중 하나기 때문에.

언제든 꼬리 자르기를 할 수 있다.

“어우!”

2팀장이 등을 보이자 김석현은 양팔을 벌리며 흐느적거리는 댄스를 춘다.

어떻게 보면 2팀장이 안 보일 때 하는 반항의 일종이다.

그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개그 포인트다.

‘재밌다.’

들었던 대로 프로젝트의 너무 전문적인 지식은 나오지 않는다.

그 엿 같은 상황과 그걸 풀어내는 배우의 코믹한 행동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재밌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김석현 역시도 성공을 바라고 줄을 잡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2팀이 아닌 3팀의 부장이 또 손을 내민다.

이번 PF팀의 성과에 뭔가 냄새를 맡았다.

3팀 부장은 2팀 부장과 좀 다른 사람이었다. 그나마 회사에서 정이 있다. 살아남은 것만으로 능력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편법은 쓰지 않는다.

능력이 있다.

김석현은 오히려 2팀 부장보다는 3팀 부장에 관한 환상이 있다.

이를테면 롤모델.

‘버릴 캐릭터가 없네.’

두 부장의 기 싸움 역시도 관전 포인트다.

서로에 조금 유치하지만 하는 행동들도 은근 웃음을 자아낸다.

“잠시만.”

감독님이 영화를 정지하고 나를 보았다.

“이왕이면 여기까지 보고 앞부분 자막 좀 상의할까?”

“좋죠.”

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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