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이래저래 대충 정하고 찍기로 했다.
종수도 어떤 영상이 될지 알 수 없다.
시나리오 짜는 건 어렵고 대충 춤추면 되지 않나 싶었다.
“그럼 다들 뭔가 하다가 갑자기 춤추는 거야. 알았지?”
종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부터 나와?”
“으음. 윤동이부터 나올까? 춤이니까.”
막상 아무거나 찍으려고 하니 그것조차 어렵다.
윤동이 조금 생각하다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거로 했다.
재휘가 편의점 알바생 역할이다.
“그럼 시이~작!”
종수는 카메라도 윤동의 모습을 비춘다.
저벅저벅.
걸어가면서 준비된 물건을 고른다. 헤드셋.
편의점에 왜 헤드셋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어린이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다가 재휘에게 건네준다.
“이거 주세요.”
“아. 만 원입니다.”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윤동이 헤드셋을 들고 문을 열고 나가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어? 어디서 노래가 들리는데?”
두리번거리다가 노래가 나오는 곳을 쳐다본다.
헤드셋.
아무것도 연결되어 있지 않는데 노래가 들린다.
안에서 그걸 들은 재휘가 갑작스러운 설정에 ‘무, 무서워.’ 하며 오들오들 떤다.
그걸 승준이 전담하여 찍고 있다.
“여기서 소리가 들리네? 뭐지?”
그렇게 말하며 윤동이 헤드셋을 낀다.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윤동이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리듬을 탄다.
앞으로 한 발짝 나가면서 팔로 웨이브.
몸통까지 이어지면서 다시 팔로 돌아오며 손가락을 튕긴다.
딱.
실제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진짜 노래가 나오는 것처럼 춤을 춘다.
종수는 촬영이라는 것을 잊고 멍하니 그 춤을 감상했다.
그만큼 윤동이 잘 췄다.
“무, 무서워.”
재휘는 돈 받은 그 자리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윤동이 설정한 내용만 보면 귀신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이제 재휘가 윤동에게 가서 뭐 하냐고 물어봐.”
“어? 내가?”
“응.”
재휘는 떨면서 착실하게 문을 여는 시늉을 했다.
윤동이 편의점 문을 연 것을 기억한 것이다.
“저, 저기. 뭐 하세요?”
“…….”
윤동은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을 하며 계속해서 춤을 춘다.
재휘가 용기 내서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뭐 하세요.”
윤동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휙 돌려 재휘를 쳐다본다.
재휘가 히익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낸다.
“윤동아?”
춤을 멈춘 윤동이 다시 아래에서 웨이브를 타며 헤드셋을 벗었다.
그대로 재휘에게 씌웠다.
풀썩.
윤동이 쓰러진다.
재휘는 어쩔 줄 몰랐다가 친구들이 춤, 춤 하는 소리에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른바 안마춤.
좌우로 열심히 주먹으로 안마하듯이 두드린다.
윤동처럼 춤은 잘 못 추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다.
그때 종수의 카메라에 불쑥 등장하는 승준의 뒷모습.
“야! 오승준! 내 카메라에 나오면 안 되지!”
“나는 재휘 찍고 있는 사람인데?”
“아니! 윤동이 이제 비켰잖아. 그러면 내가 재휘 찍을 수밖에 없잖아.”
“그럼 미리 말했어야지. 나는 열심히 찍고 있는 것밖에 없어.”
“아무리 그래도 내 카메라에 나오면 안 되지!”
“그것도 미리 말했어야지!”
“으아악.”
원래 영상을 찍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것들이 화면에 잡히는 법이다.
그렇게 NG가 나며 다시 찍어야 한다.
종수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탕탕 쳤다.
“그것도 알려줘야 해?!”
“응!”
“후우. 그래. 재휘 춤추는 것부터 다시 찍자. 재휘야. 다시 그 자리에서 춤춰줘.”
“으응. 알았어. 종수야.”
다시 재휘가 춤추는 걸 찍었다.
이번에 카메라에 승준이 찍히지는 않았다.
“그럼 여기까지 찍고 다음은 어떡할래? 하나랑 연주랑 시하도 이제 나와야지. 아, 은우도 있구나.”
“하나는 떡볶이 먹고 있을게. 그럼 재휘가 와서 헤드셋 주는 거야.”
“오! 그러면 되겠다. 근데 이거 헤드셋 춤 귀신이야?”
“몰라. 근데 귀신이 된 거 같아.”
“그러네. 역시 여름은 귀신 영화지!”
재휘는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하는 건 좀 재밌기도 해서 열심히 하기로 했다.
보는 건 많이 무섭지만.
“그럼 떡볶이집으로 가자.”
“응.”
시하가 장난감 통을 가지고 오더니 소꿉놀이 세트를 꺼낸다.
접시와 떡.
오늘 소품 담당을 알아서 맡고 있었다.
“하나야. 여기 떡.”
“시하야. 고마워. 근데 이거 떡볶이 떡 아닌데?”
“떡볶이 떡 업써. 구래서 이거.”
삼색이 그려진 네모난 떡.
아쉽게도 가래떡이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여기 파. 파도 이써.”
접시 위에 커다란 대파도 올려졌다.
누가 보면 대체 저기는 어떤 음식점인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종수도 아쉽지만 없는 소품을 만들 수는 없어서 그냥 빨리 준비하자고 했다.
“야. 이시하. 빨리빨리 준비해.”
“아라써. 시하가 빨리 준비해 주께. 보글보글 요리하고 이써여.”
장난감 식칼을 들고 도마를 탕탕 두드렸다.
“야! 그냥 준비만 하라고.”
“시하가 준비하고 이써. 떡보끼는 있눈데 순대가 업써. 순대 만드러 주께.”
“아니! 그냥 물건만 준비하면 된다고.”
“구러니까 시하가 준비하고 이써. 빨리 요리하께.”
“???”
종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요리해서 준비해 주는 과정이 필요 없다고!
그냥 완성된 요리만 내오면 된다고!
하지만 핀트가 어긋난 대화로 시하는 땀 닦는 시늉을 하며 열심히 요리를 준비한다.
원래 과정도 중요한 법이다.
“다 해따. 하나야. 순대 나와써.”
“응. 고마워.”
소꿉놀이에 익숙한 하나는 종수가 답답해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얌전히 식탁 앞에 앉아 요리를 기다릴 뿐.
“나만 이상한 거야? 나만?”
종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승준은 시하가 열심히 요리하는 모습을 찍고 있다.
“시하 잘한다.”
이 영화는 감독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너무 개성 있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마음대로 주위를 휘두르고 있다.
종수는 아, 감독 괜히 한다고 했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잠시 후. 조금 정리가 되자.
“흠흠. 이제 하나가 떡볶이 먹고 있고 재휘가 나오는 거야. 알았지? 자! 레디! 큐!”
다시 시작된 씬2.
하나가 맛있게 삼색 떡을 먹었다. 저래 보여도 떡볶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메뉴 떡볶이라는 설정이다. 맛은 보장할 수 없다.
“여기 떡볶이는 좀 신기한 맛이네. 그냥 떡에 떡볶이 국물도 있고. 그치. 연주야.”
“응. 여기 대파도 주는데 왜 주는지 모르겠어.”
소품에 대한 의문을 말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그때 춤을 열심히 추는 재휘가 등장한다.
헤드셋을 끼고 열심히 팔을 흔들며 다가온다.
하나가 말한다.
“저 사람 왜 춤추면서 들어오지?”
“아마 떡볶이 먹을 생각에 신난 건 아닐까?”
“여기 떡볶이가 춤도 추게 할 정도로 맛있다고?!”
“주먹으로 위아래로 흔드는 걸 보면 너무 맛없어서 때리고 싶어서 온 건 아닐까?”
너무한 말을 하고 있다.
시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손에 땅을 짚고 엎드려 있다.
좌절 중.
“시하 열심히 만드러써. 군데 맛 업써. 큰일이야. 이제 손님 안 와. 싸게 해주께. 와져여.”
그런 열연을 승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찍고 있다.
“시하가 한 거 너무 맛 업쓰면 형아한테 만드러 달라고 하께.”
마음대로 시혁을 주방장으로 취직시키는 시하였다.
가족 경영의 표본이 여기 있다!
종수는 그런 시하를 신경 쓰지 않고 하나와 재휘를 찍고 있다.
저기에 휘말리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걸 이미 몸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어? 이게 뭐야?!”
재휘가 하나에게 헤드셋을 씌운다.
그리고 풀썩 쓰러진다.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점프하기 시작한다.
“점핑! 점핑! 다 같이 뛰어, 뛰어!”
“하나야. 왜 그래?”
“점핑! 점핑!”
“하나야!”
그 와중에 연주의 열연이 돋보인다.
깜짝 놀라며 입술을 파르르 떤다. 동공도 지진 난 것같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나가 이상해졌는데 친구라서 도망칠 수도 없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점핑! 점핑! 다 같이 놀아! 놀아!”
춤추고 있는 하나의 어깨를 잡는다.
“정신 차려 하나야!”
열심히 흔들지만 하나는 계속해서 춤을 춘다.
그리고 헤드셋이 연주에게 넘긴다.
풀썩.
이제 연주가 춤출 차례.
우아하게 자세를 잡는다. 마치 앞에 누군가의 허리를 잡듯이.
원 스텝. 투 스텝.
매끄럽게 둥실둥실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왈츠를 추듯이.
“갑자기 손님이 이상해져써!”
좌절에서 벗어난 시하가 손으로 볼을 감싼다.
두 사람이 쓰러져 있고 한 명은 열심히 춤추는 광경.
참으로 공포스럽다.
그 와중에 연주는 두 사람 머리 위를 지나가면서 춤추고 있다는 게 관전 포인트다.
“119 불러야 해! 119!”
시하가 폰을 꺼내는 시늉을 하면서 귀에 갖다 댄다.
“여보세여. 시하에여.”
일단 누군지부터 밝히는 이시하.
“여기 하나랑 재휘가 쓰러져써여. 그리고 연주가 열심히 그 위에서 춤쳐여.”
손님의 이름까지 아는 사장님.
아무래도 손님이 단골이라서 이름까지 아나 보다.
“빨리 오세여. 차 조심하고 오세여. 빨리.”
119가 사고 날까 봐 차 조심까지 당부를 한 다음에야 통화가 종료되었다.
시하는 이제 연주를 말리러 간다.
“연주야. 정신 차려.”
연주가 자연스럽게 시하의 손과 허리를 잡는다.
그대로 끌려가서 몸을 맡긴다.
춤을 추다가 자연스럽게 시하에게 헤드셋을 주었다.
풀썩.
연주가 쓰러지고 시하가 열심히 춤을 춘다.
바로 페페춤!
들썩들썩.
신나게 추다가 카메라에 점점 다가온다.
종수는 ‘왜 여기로 오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뒷걸음질 친다.
카메라에 비치는 시하의 얼굴이 점점 커지며 종국에는 배를 들이밀면서 렌즈를 덮었다.
오로지 까만 배경만이 종수의 눈에 담겼다.
혹시 이런 무서운 연출?!
역시 시하는 방심하지 못하는 엄청난 센스를 발휘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종수!”
헤드셋이 종수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시하는 그런 연출 상관없이 헤드셋을 종수에게 넘기고 싶었던 것뿐이다.
“???”
털썩.
시하가 쓰러졌다.
“야! 이걸 나한테 주면 어떡해!”
“시하 쓰러져써. 말 못 해.”
“아니! 지금 말하고 있잖아!”
“아코! 읍읍.”
시하가 그대로 입을 막는다.
종수는 그런 시하를 어이없다는 듯이 본다.
이게 대체 뭔가 싶다.
“야! 이미 말해서 늦었거든.”
“…….”
“왜 이제 안 말하는데!”
“종수 몰라?”
“뭘?”
“감덩님은 컷 해야 해. 컷. 시하가 아라. 그래야 마음대로 말할 수 이써.”
“…컷.”
“이제 말할 수 이써!”
“나 가르쳐주느라고 말했잖아!”
“아냐. 그거 타임이야. 타임.”
“타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무튼, 영화는 이걸로 끝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종수의 어깨를 콕콕 건드렸다.
“푸하하. 나 이제 나오면 돼?”
“아…. 까먹었다.”
“푸하하. 까먹었대! 푸하하.”
종수는 은우를 어떻게 넣을지 고민했다.
이 난장판인 식당에 은우를 넣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시하가 마지막으로 페이드아웃을 한 덕분에 뭔가 끝난 느낌이었으니까.
“으음. 어떡하지?”
“왜? 그냥 넣으면 되지. 나는 춤 말고 랩 할래.”
“넌 대체 왜. 다들 춤추는데 왜 너만 랩이야.”
“시하는 하고 싶은 페페 했잖아.”
“아니! 그래도 춤은 췄잖아!”
“푸하하. 괜찮아. 나는 랩이 춤을 추니까. 오선지에 춤을 추니까. 비트 위에 우리들은 렛즈 기릿! 우루루루루루~”
“???”
“푸하하.”
그때 시하가 말했다.
“구럼 은우는 사람해. 사람.”
“푸하하. 너희들은 원래 사람 아니었어?”
“우리는 춤이어써. 사람이 춤 대써.”
종수는 뭔 좀비 됐어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이 시하를 쳐다보았다.
“구러니까 은우는 사람 해. 사람.”
“푸하하. 좋은 생각이야.”
진짜 좋은 생각 맞아?
종수는 알 수가 없었다.
“아! 그러면 되겠네. 너 사람 해.”
드디어 종수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 영화의 결말 부분이 정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