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1화 (361/500)

361화

부대찌개 집에서 자리를 잡았다.

다들 하나둘씩 도착했는데 나와 시하가 앉은 테이블은 감독님과 함께 썼다.

“감덩님.”

“응?”

“감덩님은 부대찌개에서 머 조아해여?”

“아. 나는 소시지를 제일 좋아하지.”

“감덩님도 소시지 조아해여?”

“응. 좋아해.”

“시하는 다 조아하는데! 감덩님 골고루 머거야 해여.”

“어? 그렇지. 골고루 먹어야 하지. 이야. 너 진짜 말 잘하네. 뭔가 낚인 느낌인데?”

원래 시하가 그렇다.

뭔가 맞는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말린 느낌이다.

나는 그 속에서 부대찌개를 주문하면서 음료도 함께 주문했다.

“혹시 쿨피스 있어요?”

“네. 있어요.”

“그럼 그거 하나 주세요. 큰 거로.”

“알겠습니다.”

고동수 감독이 나를 보더니.

“쿨피스? 아! 시하 주려고?”

“네. 뭔가 탄산보다는 쿨피스가 더 나은 거 같아서. 저도 마시게요.”

“이야. 사실 나는 부대찌개 집 오니까 술을 마시고 싶은데 이렇게 같이 오니까 쿨피스도 먹게 되네.”

“술은 아쉽지만 운전해야 해서.”

“그렇지? 대리 부르면 되지만 애도 있는데 하하. 사실 뭐, 저쪽에는 마실 사람은 마시기도 하니까.”

“혹시 저랑 술 한잔하고 싶으셨어요?”

“뭐.”

고동수 감독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그랬나 보다. 하지만 굳이 대리를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이렇게 밥 한 끼라도 아니면 술 마시러 나갈 시간이 없다.

보통 마시면 저녁쯤일 텐데 그때는 시하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 같이 있어야 한다.

일이 많아서 못 오는 건 아니다.

시하랑 함께 조금이라도 더 있어 줘야 해서 그럴 뿐.

이런 것만 보면 회식은 꿈도 못 꾸는 별나라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요즘은 이렇게 건전하게 먹고 카페 가서 친분을 다진다며?”

“글쎄요? 술도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그런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

감독님은 어느 순간 존댓말과 반말이 오갔는데 촬영 전에 통화도 하고 몇 번 만나니 말을 놓게 되었다.

사실 나도 그게 좀 편했다.

뭐라고 할까. 아는 사람의 친구인데 교수님은 나에게 반말하고 감독님은 나에게 존댓말 해서 뭔가 어색하다고 할까.

한 번 만남은 그럴 수 있지만 두세 번이면 말 편하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물어보기도 하셨고.

“아, 왔다.”

부대찌개가 도착하고 감독님과 이래저래 말을 나눴다.

시하가 옆에서 쿨피스를 꼴깍꼴깍 마시며 맛있다고 한다.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먹는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그렇게 밥을 다 먹을 때쯤 고동수 감독님이 말했다.

“혹시 영화 번역에 관심 있나?”

“네?”

“원래 배급사에서 팀이 있는데 괜찮으면 나는 너한테 한번 맡기고 싶어서. 영어로.”

“아니. 저한테 왜요? 전문 번역하시는 분들 쓰시지.”

“그냥 이래저래 좋은 것 같아서. 전에 통화 들어보니까 영문 소설도 출간하는 것 같던데? 아, 일부러 몰래 훔쳐 들은 건 아니고 들렸어.”

“푸흡. 저도 알아요.”

“괜히 이거 갖고 스파이다! 하면 안 돼. 알았지?”

“큭큭. 갑자기 스파이는 뭐예요. 스파이가 이 정보 어디다 팔려고.”

가끔 이런 시답지 않는 농담이 재밌기도 했다.

유명한 감독이면 좀 더 권위적인 느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고동수 감독이 턱짓을 한 번 하더니 젓가락 하나를 들고 휘적휘적 젓는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딱 말해.”

“할게요. 맡겨 주시면 영광이죠.”

“근데 미리 말하는데 상당히 귀찮을 수 있어. 문장 하나, 하나 나한테 검수받으면서 의견 나누는 작업도 해야 해. 괜찮아?”

“그거야 뭐 맞춰가는 작업이니까. 어차피 책도 편집자랑 서로 말하는 거잖아요.”

“그건 그렇긴 하지.”

젓가락 하나를 입에 가져가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책상을 똑똑 두드렸다.

“감독님. 제가 잘 맞춰드릴게.”

“크흡. 아니, 부탁은 내가 했는데 왜 네가 부탁하는 모양새야.”

“아무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한번 잘해 볼게요. 영어 번역.”

“오케이. 알았어. 그럼 나는 그렇게 알고 있는다?”

“넵!”

어차피 곧바로 번역을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본이 있긴 하지만 원래 영화가 만들어지다 보면 애드리브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찍을 때 느낌이 다를 수 있는 거니까.

일단 대본을 받고 가이드라인을 좀 체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쓰는 일은 2권이 다 완성되어가니 번역 일도 맡을 만했고.

아무튼, 뭔가 끝날 때쯤 일거리가 들어오는 걸 보니 일복이 많은가 보다.

그리고 기대가 되었다.

영화를 번역하면서 감독이랑 호흡을 맞추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형아도 영화 나와?”

“아니. 영화를 영어로 번역하는 거야. 영화 나오면 아래에 영어로 글자를 적는 일.”

“구럼 형아랑 시하랑 영화 가치야. 가치.”

“응. 같이.”

번역 그딴 거 모르겠고 형아랑 영화 같이했다는 게 중요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익숙한 장면이지만 고동수 감독님은 아직 그렇지 못했는지 웃음을 보인다.

“가만 보니까 형아 엄청 좋아해.”

“감덩님. 모두 형아 조아해여. 군데 시하가 더 조아해.”

“푸핫.”

언제부터 나는 만인의 사랑을 받은 걸까?

알 수가 없다.

***

어린이집은 영화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았다.

정확히는 다들 영화라는 것을 찍고 싶었다.

연주가 가끔 어린이집을 안 나오는 날이 있었는데 바로 영화 촬영을 가는 날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더욱 열기가 식지 않았다.

승준이 말했다.

“연주는 좋겠다. 영화도 찍고.”

“시하도 찌거써.”

“어? 진짜? 시하 너도 찍었어?”

“시하 다 찌거서 이제 안 가.”

“하루만 간 거야?”

“하루만 가써.”

주말에 찍어서 어린이집 아이들은 시하가 영화 촬영 갔다 왔는지도 몰랐다.

승준은 또 부러웠다.

“나도 영화 촬영하며 놀고 싶다.”

촬영보다는 노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끼리 막 찍어서 영화 만들고 그러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여러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그저 부럽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연주와 시하를 보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분명 촬영 현장을 견학했지만 궁금한 건 지금에서야 터져 나왔다.

“감독님이 혼 안 냈어?”

“감덩님이 채고야! 해져써.”

“찍고 나서 물도 져?”

“더어서 물도 머거써.”

뭐, 아이들의 질문이라고 해봤자 이 정도의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여러분. 영화 촬영 구경하러 갔을 때 우리도 영화 찍었잖아요. 그렇죠?”

“네!”

“그럼 선생님이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 여러분이 찍어 볼래요? 내용도 여러분 마음대로!”

선생님이 캠코더를 꺼내서 종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나마 조심히 다루고 잘 찍게 작동시킬 수 있는 게 종수였으니까.

간섭은 안 한다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카메라 감독이 정해졌다.

“응?”

“왜? 종수야?”

“아, 아니에요.”

종수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진행을 했다.

“자! 다들 역할을 정하자. 나는 감독하고 싶은데. 감독하고 싶은 사람!”

손을 든 사람은 종수와 승준.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가 감독할 건데?”

“아니야. 내가 할 거야.”

“가위바위보 할래?”

“그래!”

신경전이 있었지만 평화롭게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한다.

승리한 사람은 종수.

승준이 크윽 하면서 가위를 낸 자신의 손을 본다.

“져버렸어. 아악! 보 낼걸!”

“이미 늦었거든.”

종수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다가 슬쩍 캠코더 하나를 더 꺼냈다.

“승준아. 여기.”

“어?”

“카메라 찍을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하잖니. 생각해봐. 영화 촬영할 때 카메라가 여러 개였지?”

“아! 그럼 나도 카메라로 찍는 사람!”

승준이 기운을 차렸다.

종수는 혹시나 몰라서 자기가 감독이니까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주의를 시킨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종수는 영 못 미덥다.

“그럼 다들 배우야.”

“종수야.”

“응? 왜?”

“근데 머 찌거?”

시하의 말에 종수의 입이 다물어졌다.

일단 하는 것은 좋았는데 뭘 찍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이 주제나 이런 것들을 정해 줬지만 현재는 자유주제라는 백지가 들이밀어졌다.

종수로서는 이런 게 처음이었다.

공부할 때도 학습지나 스티커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으니까.

아무리 창의력 학습지를 해도 완전 백지인 창작은 생전 처음이었다.

“으음. 뭐 찍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린 결론이 아이들에게 물어보기였다.

현명하다면 현명한 판단이었다.

브레인스토밍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의견이 나오는 법이니까.

승준이 말한다.

“사커! 사커하는 영화!”

“넌 맨날 사커야?! 그리고 넌 카메라 찍고 있잖아!”

“아, 맞네.”

하나도 말했다.

“하나는 아이돌! 아이돌 되는 거 찍자! 하나 알아. 직캠이야. 직캠!”

“이건 영화인데?”

연주는 ‘나는 아무거나 좋아.’라고 말했다.

제일 결정하기 힘든 대답이다.

재휘는 ‘무서운 것만 빼고 하자. 종수야.’라며 몸을 떨었다.

전에 귀신에 대한 이야기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은우는.

“난 래퍼야. 영화에 래퍼로 나올래. 푸하하.”

그냥 자기 배역을 정해 버린다.

윤동은 그런 은우를 보다가 살며시 고민했다.

“춤추는 영화 좋지 않아?”

“갑자기 춤?!”

“실제로 있어. 삼촌이랑 같이 봤었는데.”

“진짜 있었어?!”

마지막으로 시하가 말한다.

“종수야. 형아 찍자. 형아.”

“넌 맨날 시혀기 형아지!”

“아냐. 형아 페페 찌그까?”

“그거 전에 찍었잖아!”

“또 찌그면 대지.”

맞는 말이었다.

종수는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브레인스토밍이라는 것이 산으로 가기도 쉽다는 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종수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원래 의견을 받으면 더더욱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럼 윤동이 말대로 춤 영화로 하자! 근데 계속 춤추는 영화야?”

결국, 실제로 있었다는 춤 영화를 하기로 했다.

윤동의 입꼬리가 살짝 씰룩였다.

기분이 좋은 티가 났다.

“계속 춤추는 영화는 아니야.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고 춤추고 해. 사랑도 하고.”

“아, 그렇구나.”

“근데 꼭 그거랑 똑같이 할 필요는 없잖아. 춤추는 영화라고 하고 또 다른 이야기도 하면 되지.”

“그렇지.”

“춤은 뭐로 할까? 자유롭게? 비보잉? 팝핀? 락킹? 근데 애들이 잘 못 추니까 좀 쉬운 거?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데.”

“어, 어, 어…….”

종수는 윤동이 많이 말해서 조금 당황했다.

이렇게 강하게 의견을 피력한 것도 처음 보았다.

잠시 뒤로 물러선다.

윤동도 그걸 느꼈는지 머쓱한 기색을 하며 말을 멈춘다.

원래 좋아하는 분야를 이야기할 때는 묵묵한 사람도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윤동이 그랬다.

“흠흠. 윤동이 말은 잘 알았어. 으음. 그러면 주인공은 전부라고 하자. 전부 춤도 추고 열심히 하는 거지.”

시하가 종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왜? 뭐?”

“종수야. 시하는 페페 춤 추고 시퍼.”

“페페 춤이 뭔데?”

“종수도 몰라?!”

“내가 알 리가 없잖아! 페페는 시하가 만든 캐릭터인데!”

“종수도 모르는 거 이써?!”

“아니! 네가 만든 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구래도 종수는 아라야 해!”

“대체 왜!”

시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종수를 바라보았다.

종수는 이게 그런 표정을 지을 정도야? 하는 얼굴이 되었다.

“시하가 알려주께. 페페 춤이야.”

“아니. 안 알려줘도 돼!”

“잘 바.”

“안 알려줘도 된다니까!”

시하가 페페 춤을 출 준비를 한다.

두 손바닥을 붙여 합장한다. 그리고 좌우로 리듬에 맞춰서 이동한다.

“페페. 페페. 페페. 페페.”

발도 뒤꿈치가 좌우로 한 발씩 띄웠다 붙였다 한다.

좌우. 좌우.

어떻게 보면 코브라 춤 같기도 하다.

윤동이 말한다.

“쏘리쏘리 춤 같기도?”

종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대체 저게 왜 페페 춤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영화는 대체 언제 찍는데! 페페 춤이 중요해?!”

“종수야. 춤 영화 찍짜나. 중요하지.”

“어? 그건 그런데. 꼭 페페 춤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아냐. 페페 춤이야 해.”

“???”

시하는 페페를 양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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