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0화 (360/500)

360화

스태프가 숨을 고르게 하고 입을 열었다.

“아역 배우가 영화 촬영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뭐? 하기 싫대?”

“그게 아니라 놀다가 다쳐서 뼈가 부러졌다고.”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지금 깁스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촬영은 무리겠다고. 죄송하다고 하네요. 영화에는 빠져야 할 것 같다고.”

“많이 다쳤대?”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뼈 부러진 거면 많이 다친 거 아닐까요.”

“그것도 그렇네. 너무 상심하지 말고 잘 치료하자고 전해줘. 아, 이거 어쩌지? 아이 분량이 많은 게 아니긴 한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찍어둘 걸 그랬나?”

“지금부터 구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음. 어려야 하는데. 그리 쉽나.”

너무 어린아이를 쓰지 않는 건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연기도 잘하고 말도 잘 들으면 그건 어른이지 아이가 아니니까.

여러 가지 까다로운 부분이 있기에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역을 쓰기는 하지만 이번 영화에는 4살 정도의 애가 필요했다.

말을 막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 하는 것도 아닌 그런 나이.

“저 감독님. 혹시 연주는 어떨까요? 오늘 온 스미스 교수님 딸 말이에요.”

스태프의 말에 고동수 감독이 눈을 껌뻑거렸다.

“연주?”

“네. 아까 제가 안내할 때 애들끼리 영화 찍는 놀이를 했는데 애가 차분하게 잘하더라고요. 스미스 교수님이라면 연기 지도도 좀 해줬을 텐데. 애드리브도 잘하고.”

“혹시 그 영상 있어? 한번 봐도 돼?”

“아, 그거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교수님 캠코더에 있더라고요.”

“그럼 한번 볼까?”

옆에 있던 김석현 배우가 고동수 감독에게 말했다.

“근데 괜찮으세요? 디테일 엄청 신경 쓰시잖아요.”

“뭐 이런 건 어쩔 수 없잖아. 어떻게든 해야지. 한탄한다고 뭐가 달라져.”

“역시 다르다니까.”

“어떻게 보면 아이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뒤로 미룬 게 잘된 걸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에 찍고 넘어갔으면 아찔했다.

영화 촬영이라는 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돈이 드는 법이다.

그래서 씬의 순서대로 찍을 때도 있지만 그 장소에 찍을 수 있는 건 다 찍을 때도 많았다.

촬영 허가 날짜가 짧을수록 뽑을 수 있는 장면을 최대한 뽑아야 하니까.

“일단 가자고.”

고동수 감독과 함께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

이제 볼 것도 다 봤고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뭔가 감독님이 오더니 스미스랑 이야기하며 캠코더를 찾아본다.

눈이 이리저리 바쁘다.

살며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혹시 연주 카메라 테스트 한번 볼 수 있나? 아빠가 찍어서 안 어색한 거일 수도 있는데.”

저 말을 하면서 원래 있었던 아역 배우가 다쳐서 출연을 못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신기해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연주를 보았다.

하나가 말한다.

“연주야. 영화 출연해? 우와!”

“몰라.”

“근데 진짜 영화 출연하면 재밌겠다. 하나가 꼭 가서 볼게.”

“응. 근데 안 될지도 몰라.”

확실히 그렇다.

캐스팅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그래도 연주는 기쁜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 역시도 잘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연주야.”

“아빠.”

“카메라 테스트 한번 해볼래? 저기서. 근데 친구들이랑 못 들어가. 이게 여러 가지 테스트하는 거거든. 아빠랑은 들어가고.”

아무래도 친구들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교수님은 뭐. 촬영현장에 부모님이 있으니까.

놀이가 아니라 연기를 하라고 하면 어떨지 확인하는 것 같다.

“대사는 이거거든. 좀 간단해.”

나도 슬쩍 아이들과 확인해 보니 진짜 별거 아닌 대사였다.

‘아빠!’ 하고 안기면서 ‘다녀오셨어요.’ 하며 속삭이는 장면.

또 다른 장면은 ‘아빠, 안 보고 싶었어?’라는 말에 ‘보고 싶었지!’라고 대답하는 거였다.

주연의 가족 중 아이가 나오는 장면이다.

대본을 보니 전체적으로 아이가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대사만 봤을 때 적은 분량이라고 하면 글쎄?

“그럼 갔다 올게!”

“바이바이!”

“연주야. 잘하고 와!”

“안녕!”

연주가 자신 있게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니 잘하겠다 싶었다.

방에 문이 닫힌다.

스미스 교수도 들어가 있으니 뭐 무섭거나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형아.”

“응?”

“시하도 해 보까?”

“시하도 저기 테스트해 보고 싶어?”

“시하는 영화에 나와서 형아 대다내! 하고 시퍼!”

넌 오히려 형아 홍보 목적이냐!

영화를 몰입해서 보는데 갑자기 아이가 나와서 형아 대다내! 형아 머시써! 하고 나오면 관객들이 대체 저게 뭐지? 싶을 것이다.

그렇게 시하랑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데 테스트는 금방 끝났다.

연주가 나와서 브이 싸인을 보낸다.

아무래도 합격했나 보다.

근데 감독님이 나와서 내 쪽으로 오신다.

“혹시 동생도 테스트받아볼 생각 없습니까?”

“네? 연주로 뽑힌 거 아니었어요?”

“연주는 뽑혔는데 영화 마지막에 잠깐 나올 아이도 필요해요. 그건 할 만한 아이가 없어서 나중에 찾자고 했는데…. 배우들하고도 안 만납니다. 영상을 아버지에게 보내는 거라고 할까? 그래서.”

“아하.”

“대사도 별거 없습니다. 보고 싶어. 이 정도거든. 사실 테스트라고 거창하게 받아볼 건 아닌데 어떤 의미로 중요하거든요. 감정 같은 게.”

감정 연기라면 우리 시하가 부족한 거 같은데요?

물론 내가 봤을 때는 아주 풍부하고 완벽하지만.

근데 보고 싶어. 저 말은 확실히 잘할 것 같았다.

“시하야. 어떻게 할래? 한번 해볼래?”

“시하 해볼래!”

그렇게 카메라 테스트를 받기로 했다.

대본대로 위에서 카메라로 시하를 찍어야 했다.

“시하야. 올려 보면서 이 대사를 해야 한데. 으음. 정말 형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말하면 돼. 알았지?”

“아라써. 시하 잘해.”

“오! 파이팅!”

“하팅!”

시하가 카메라를 올려다본다.

감독이 큐! 라는 싸인을 준다.

시하는 아까 내가 말했던 대사를 그대로 말한다.

“형아. 언제 와? 시하는 여기서 잘 놀고 이써. 할부지랑도 시하가 놀아주고 이써. 형아. 보고 시퍼.”

원래 대사는 ‘형아’가 아니라 ‘아빠’다.

근데 감독님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시고 카메라에 담긴 시하만 보았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좋아. 나중에 한번 찍자고.”

어떻게 하다 보니 시하가 영화에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얼렁뚱땅해도 되는 걸까?

“저기 제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이상한데 감정이 막 얼굴에 풍부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물론 시하가 예전이랑 다르게 표정이 많이 풍부해지긴 했지만.

“굳이 연기할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저렇게 뭔가 좀 표정이 적은 게 좋아.”

“그래요?”

“괜히 그게 더 먹먹하게 하거든.”

“충분히 풍부한데요!”

“??? 아니. 아까는 풍부하지 않다며?”

“원래 부모 마음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고동수 감독이 피식 웃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

영화 촬영할 때 연주랑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나오는 씬도 다르고 장면도 달라서 함께하지는 못했다.

솔직히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시하는 그냥 혼자 찍고 연기를 해야 한다.

단독 샷이라고 할 수 있겠지.

대본을 보니까 어떤 상황인지는 이해가 간다.

정확히는 카메라가 아니라 CCTV를 보고 말하는 거였다.

“그럼 찍을게요.”

“네!”

시하랑 대사 연습을 했다.

이왕 하는 거 잘하면 좋지 않나.

여기 장소는 옛날 철제문이 있는 집이다.

그나마 마당도 있고 안에는 고추 널린 풍경도 보인다.

마당에 있는 현관문에 설치된 CCTV가 있는 곳이 오늘 영상을 찍을 배경이다.

대본 상황을 말하면 이렇다.

시하의 역할은 주연과 대립하는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원의 아들이다.

사정이 있어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기고 일한다고 멀리 떨어져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시하가 아빠가 보고 싶어서 CCTV에 보고 말하는 장면.

할머니가 저기 찍힌 영상은 아빠가 볼 수 있다고 말해준 걸 기억한 것이다.

“시하야. 잘해. 알았지?”

“아라써.”

스태프는 예전에 촬영한 세트장에서보다 많이 없다.

찍을 장면도 많지 않고 빨리 찍고 가자는 느낌이다.

감독이 큐 싸인을 내린다.

나 역시도 시하에게 위를 보라고 손가락으로 콕콕 가리킨다.

시하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는지 CCTV를 본다.

문에 등을 찰싹 붙여서 카메라에 잘 비치게 자리를 잡는다.

시키지 않았던 건데 아주 자연스럽다.

“아빠~ 아빠~ 언제 와? 시하는 여기서 할무니랑 잘 놀고 이써. 할부지는 시하가 노라주고 이써.”

꼼지락대면서 이것저것 말한다.

“아빠. 보고 시퍼~ 보고 시퍼~”

“컷! 이야. 잘하네. 한 방에 끝났다. 이거면 되겠는데?”

감독이 다시 돌려보고 모니터링은 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CCTV 화면 느낌으로 편집한 다음에 다시 실제 현실에 나오는 장면을 번갈아 교차 편집하면 되겠다고 카메라 장면과 의견을 나눈다.

시하는 내게 달려와 안긴다.

“형아. 시하 잘해써?”

“엄청 잘했지. 완전 잘했지. 나중에 대배우가 될지도 모르겠는걸?”

“정말? 안 대.”

“왜? 왜 안 되는데?”

“큰일 나. 큰일.”

시하가 놀랐다는 듯이 두리번거렸다.

나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대체 뭐가 큰일이라는 걸까?

“시하 인기 만으면 피곤해. 피곤해서 형아랑 마니 못 노라. 큰일이야.”

“푸흡.”

시하의 말에 다른 스태프들도 터져버렸다.

큭큭 웃으며 철수하자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대사를 배운 거야. 저기 대본에 쓰여 있었니?

아니지. 시하는 아직 글 못 읽지. 물론 몇몇 단어는 읽을 수 있었다.

스티커 공부의 성과인 것 같다.

“오늘 여기서 마무리할 건데 괜찮으면 밥이나 한 끼 같이하지.”

고동수 감독의 말에 좋다고 대답했다.

부대찌개 집에서 보자고 약속을 잡고 차를 몰았다.

시하는 오늘 자신의 연기가 뿌듯했는지 이것저것 말했다.

“형아. 시하가 메라메라 보고 딱 연기해써.”

“응. 응. 그랬지.”

“아찌가 메라메라 아니고 사람이야 하고 연기한대써.”

“응. 김석현 배우님 말하는 거지?”

“마자.”

김석현 배우랑 나랑 나이 차이를 보니 3살뿐이 안 났다.

근데 나는 형아고 저쪽은 아저씨니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든다.

하긴 시하 나이 생각하면 아저씨 맞지 뭐.

나랑 20살 차이 나지만 내가 호적상 형인 것도 맞고.

뭔가 내가 빠른 년도 생이라 족보를 이상하게 꼬이게 만드는 것처럼 시하의 형이라 족보를 더 이상하게 꼬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원래 이런 운명의 장난이 예정돼 있던 건 아니었을까.

“시하는 군데 메라메라가 사람이라 생각 안 해써.”

“그럼 뭐라고 생각했는데?”

“폰이야. 폰. 영상통화야.”

“아.”

저기 카메라 너머로 영상통화 한다고 생각했구나.

“우와! 시하 진짜 대단한데? 연기 천재야. 천재!”

“아냐. 시하 연기 천재면 인기 마나져. 구러면 형아랑 못 노라. 시하 연기 천재 아냐.”

“으음. 그렇구나. 그럼 시하 잘하네. 마치 형아 같았어!”

“시하 형아 가타?!”

“응. 형아. 같아.”

“시하는 형아 동생이라서 그래. 형아랑 가타!”

이 칭찬은 넣어두는 거냐!

시하는 천재라는 말보다 형아랑 같은 게 더 좋은가 보다.

“근데 형아는 천재인데 시하도 형아랑 같으면 인기 많아져서 곤란한 거 아닐까?”

“!!!”

시하가 그거 생각 못 했다는 듯이 안절부절못했다.

“어떠카지! 형아. 어떡해!”

괜찮아. 형아, 막 그렇게 인기 있는 사람 아니야.

어? 아닌가? 다들 뭔가 나에게 능력적으로 탐내던 거 같은데?

그건 넘어가자.

“괜찮아. 시하야. 사실 사람들은 영화에 엄청 많이 나오는 사람을 기억하니까. 인기가 그렇게 막 많아지거나 하지 않을 거야.”

정말 저거 잠깐 나오는 거라서 잊어먹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하가 자랄 테니 더더욱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형아는 영화 안 나와서 갠차나.”

“응?”

왜 네가 괜찮은 거냐?

“형아 인기 마나지면 시하랑 못 노니까.”

“아하. 걱정 마. 시하야. 인기 많아져도 시하랑 매일 놀 건데.”

“!!! 시하도 그럴래!”

“근데 시하는 인기 많아지면 일도 많아질 건데?”

“시하 일 안 해. 어룬 아냐.”

“그건 그렇지.”

똑똑한데? 물론 어린이가 일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시하는 일을 안 한다.

나도 시키고 싶지 않으니 그럴 일 없지.

시하는 일보다 형아랑 노는 걸 선택하니까.

“아! 도착했다. 부대찌개 앞이네.”

“형아. 시하가 부대찌개 만드러 주까? 시하 해바써.”

“그거 어린이집에서 재료만 얻은 거 아니야? 시하가 만든 거 아니잖아.”

“구럼 시하가 저기서 어드께. 시하 게임 잘해써.”

음. 저기 시하야? 부대찌개 집에서 재료 얻으라고 게임 하는 곳이 아니거든?

그냥 돈 주면 재료 알아서 넣어서 나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시하도 아라. 게임 해서 돈으로 사써. 여기서부터 여기.”

“응. 형아도 들어서 알지.”

“시하가 맛있는 소시지 사주께. 시하 돈 이써.”

“돈 있다고?”

시하가 주머니에서 짤그랑 소리를 내며 돈을 꺼냈다.

300원.

“이거.”

시하야. 그걸로 소시지 못 사…….

추가 토핑도 못 하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