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영화 촬영 현장에 왔다.
세트장이라서 그런지 주변에 스태프와 배우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어쩐지 구경 오라고 했다 싶다.
아무래도 장소, 시간, 시기가 적절해서 구경 오기 좋은 것 같다.
건물 하나가 세트장이라서 신기하기만 하다.
일단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스미스 교수님.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내가 뭘. 다 친구 덕분이지. 이왕이면 다 같이 가서 인사나 하자고.」
「그래야겠네요.」
촬영장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니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잠깐만 구경하고 건물에 있는 다른 곳을 안내해 준다고 한다.
아직 영화가 만드는 중이니까 나중에 영화 볼 때 어? 저기? 구경시켜 줬던 곳이네? 하면서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하야. 여기가 세트장이래. 세트장.”
“세투?! 형아랑 시하랑 세투인데? 그 세투야? 그러면 형아랑 시하랑 가치 있는 곳이야?”
“어?”
“아냐?”
“이건 그 세트라는 영어이기는 한데 뜻이 달라. 여긴 무비 세트장이라고 할까? 촬영하는 장소라는 거지. 여러 가지 이런 가구들도 마음대로 놓아서 영상 찍는 거야.”
“시하도 영상 찌거.”
“응. 이건 그림이 아니라 여기 건물을 찍는 거야. 사람이 연기하는 거하고.”
“시하도 연기해써. 시하도 오늘 찌거?”
“글쎄. 시하가 하고 싶으면 할까?”
“!!!”
“일단 연기하는 배우들 구경부터 하고. 아니지. 여기 구경할 수 있게 허락한 감독님한테 인사부터 드리자. 알았지?”
“시하 인사 잘해.”
시하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꾸벅 인사한다.
배에 두 손을 두고서 말이다.
어릴 때 자주 하는 배꼽 인사지. 너무 귀엽다.
“이제 갈까?”
영화감독에게 갔다.
이름은 고동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었고 상당히 유명한 감독이었다.
눈이 작아서 웃으면 아예 감은 것처럼 보였다.
“오! 샤이먼.”
“오늘 구경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
“보는 게 뭐라고.”
둘이 서로 인사를 한다. 상당히 친한 모습이다.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허락을 해줬겠지.
털털한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스미스 교수님이 우리를 가리키며 손짓한다.
아이들도 우르르 다 같이 가니 사람들이 막 쳐다본다.
고동수 감독도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자. 인사합시다.”
선생님의 말에 다들 배꼽 인사를 꾸벅한다.
세트장에 ‘안녕하세요!’라는 아이들의 미성이 울려 퍼진다.
스태프와 배우들이 귀엽다는 듯이 바라본다.
승준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아저씨. 감독님이잖아요.”
“어? 응. 그렇지.”
“그러면 만화도 찍어요?”
“아니. 나는 그쪽 분야는 아닌데.”
“그럼 사커는요?”
“사커는 하는 걸 좋아하긴 한데 찍지는 않아. 사커 좋아하니?”
“네! 저 사커 좋아해요! 제일 잘해요. 나중에 아저씨도 저랑 사커 할래요? 저 시혁이 형아에게 슛도 배웠어요!”
“하하하. 그럼 나중에 사커 할 때 연락 줘.”
“나중에 사커 영화도 찍어 주세요.”
“???”
뭐, 애들 대화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선생님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는지 괜히 승준의 두 볼을 주물럭거렸다.
다른 아이들도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시하도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내 손을 꼬옥 잡는다.
딱히 궁금한 거 없으려나?
고동수 감독이 연주랑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스미스 교수의 딸을 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어느새 감독의 눈길이 우리 쪽으로 향한다.
“감덩님.”
“푸흡. 왜 그러니?”
“영화 찍는 거 재미써여?”
“어. 그럼. 재밌지.”
“시하도 그림 그리는 거 재미써여. 그림 그리는 거 찌거여.”
“오오! 대단하구나!”
“시하 대다내여. 군데 형아가 더 대다내여!”
시하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배를 내밀었다.
질문이 없냐고 하니 시하는 형아를 찬양하는 대답을 한다.
고동수 감독이 나를 본다.
표정에서 무언가 읽힌다.
아, 젊은 아빠가 아니라 형이었구나. 라고.
“안녕하세요.”
“음. 그래요. 샤이먼하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는 한번 들어본 적 있어요. 연극 대본으로 활약도 했다면서요?”
“아, 그랬죠. 들으셨구나. 부끄럽네요.”
“아니에요. 저도 그 부분 참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재밌게 구경하세요. 그럼.”
이제 잠깐의 담소가 끝났는지 촬영을 시작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자고 쉿! 이라는 행동을 했다.
“그럼 촬영 들어갑니다!”
영화의 제목은 ‘일개미’였다.
***
장난식으로 이야기하던 배우들이 슛이 들어가자마자 표정이 싹 바뀐다.
배역에 몰입하면서 하나의 씬을 끝낸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무래도 이런 걸 보는 건 처음이었을 거다.
다채로운 변화가 신기한 거겠지.
물론 나도 보면서 신기했다. 감독이 컷 하는 소리에 실컷 소리를 치던 배우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다시 이야기한다.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응? 왜?”
“형아. 거짓말쟁이 가타.”
“아.”
확실히 시하 말대로 배우들이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 있다.
화나지도 않는데 화난 척. 흥분하지도 않는데 이마에 핏줄이 불룩 튀어나오며 표정으로 말하기.
사실은 그건 모두를 속이는 거였고 실제로는 웃고 떠드는 게 진실이다.
연기란 건 어쩌면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는 거짓말쟁이인 직업인지도 모르겠다.
“형아. 군데 카메라에 말해.”
“그렇네.”
사실 상대 배우에게 말하는 거겠지만 어떨 때는 카메라만 보고 말할 때가 있다.
저기에 상대를 상상하며 하는 거겠지.
감정이 잡힌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시하도 카메라에 잘 말할 수 이써. 안녕. 메라메라야. 시하는 지금 화나써. 바바. 여기 눈이 부리부리해져찌.”
시하가 카메라 감독님을 보며 말한다.
카메라 감독이 그런 시하가 귀여운지 가까이 잡아준다.
두 손으로 카메라 앞부분을 잡는다.
“왜 그래. 왜 날 못 자바서 난리야. 진짜.”
오늘 들은 대사를 시하가 한다.
그 배우가 시하가 하는 행동이 웃긴지 풋 하고 웃는다.
화난 표정보다는 귀여운 표정이다.
눈에 힘을 빡 주는데 부리부리한 표정이니? 하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군데 자브면 술래야. 나 술래하기 시러.”
대사가 변형되었다.
시하야. 그 대사가 아니야…….
주변 스태프들이 시하 때문에 키득 된다. 술래잡기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메라메라야. 이제 내가 술래야. 도망쳐야 해.”
“푸흡.”
“형아. 시하도 잘해써?”
“응. 진짜 잘했어.”
카메라 감독이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촬영 장소를 옮겼다.
근데 배우는 옮기지 않고 시하랑 이야기하고 싶은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우리 같은 일반인이 저런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닐까?
“저기 배우님이 시하랑 이야기하고 싶은 거 같은데?”
“아?”
시하가 배우를 보았다.
“안녕하세여.”
“응. 안녕. 아까 연기 엄청 잘하던데? 나 따라 한 거야?”
“마자여. 시하 잘해써여?”
“응. 나보다 더 연기 잘하던데? 근데 볼 한 번만 만져도 돼?”
“시하 볼 찹쌀떡이라고 형아가 그래써여. 군데 진짜 머그면 안대여.”
“푸흡. 아, 진짜 귀엽네. 안 먹을게. 안 먹을게.”
“구러면 대여.”
배우가 시하의 볼을 만졌다.
말랑말랑.
“와 진짜 찹쌀떡이라 먹고 싶네.”
“안 대여!”
시하가 놀라서 배우의 손을 잡았다.
배우인 김석현이 키득키득 웃는다. 이 영화에 주요 인물이었다.
뭐, 주연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사람이 주연이 아니라 여기서 회사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이 주연급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충분히 만졌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촬영 가세요?”
“아, 나는 이제 좀 쉬어요. 저기 자리 옮기는 건 다른 사람 씬 찍을 차례예요. 전 안 나오는 분량이죠.”
“아, 그렇구나.”
하긴 그러니까 다른 스태프들이 이동하는데 안 가고 여기 시하랑 노닥거리고 있지.
다른 아이들은 스태프들을 졸졸 따라가 버렸다.
“아, 혹시 가야 해요?”
“아니요. 뭐, 볼 만큼 본 거 같은데요. 근데 진짜 연기 잘하세요. 역시.”
“아하하. 아니에요. 선배님들이 진짜 더 잘해요.”
“그건 그렇더라고요.”
“으악. 엄청 솔직하시네요.”
“하하하. 저도 일하는데 확실히 연륜이나 경험 같은 거 무시 못 하더라고요.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그렇죠? 익어간다는 게 진짜.”
이야기하다 보니 김석현 배우가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그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요. 그냥 엄청 자연스럽게 대화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희 어색할 만도 한대요.”
“시하 덕분이죠. 귀여우니까.”
“아냐. 시하는 머시써. 형아가 머시쓰니까.”
나는 또 웃음이 터지며 김석현 배우에게 ‘그렇다고 하네요.’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 진짜. 나도 이렇게 나이 차이 나는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한테 물어봐야 할까 봐요.”
“그랬다가는 등짝 맞지 않을까요?”
“역시 늦둥이는 선 좀 넘었죠? 하하하.”
“하하하.”
“아, 이제 가야겠다. 또 씬이 끝났네요. 아! 가기 전에 번호 좀 주실래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와. 그래도 돼요?”
“안 될 게 뭐 있어요.”
“그래요. 그럼.”
“역시.”
“???”
“그냥 뭐라고 할까? 약간 평범하게 대하는 느낌이 좋아서.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느 정도 얼굴 알려지면서 좀 그런 시선이 있거든요. 근데 시혁 씨는 아무렇지 않게 대해 주네요.”
“그냥 평범한 건데요?”
“그냥 제가 오랜만에 편해서 그래요. 하하. 그냥 연락하고 지내면 좋겠다 싶은?”
“영광이네요.”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이제 스태프가 그냥 세트장을 구경시켜 준다고 한다.
너무 이렇게 우르르 구경하는 것도 좀 그럴 수 있으니까 구경이나 실컷 해야겠다.
“시하야. 갈까?”
“어디? 메라메라도 가치 가?”
“아니. 그건 아니고.”
스태프가 왔다.
안내한다면서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아, 맞다. 아까 아이가 김배우님 연기 따라 한 거 있잖아요.”
“네? 아, 네.”
“혹시 그거 저희 메이킹 필름으로 써도 되는지 물어봐 달라고 해서요. 혹시 괜찮나요?”
“전 괜찮은데 시하에게 좀 물어볼게요. 시하야. 괜찮아? 어? 메이킹 필름이라고. 으음. 아! 너튜브에 영화 이렇게 재밌게 찍고 있어요. 하고 올리는 거야. 혹시 아까 시하 연기한 거 올려도 괜찮아?”
시하가 나를 빤히 본다.
“형아도 가치 나와?!”
넌 네 얼굴 팔리는 것보다 내가 같이 나오는 게 중요하니?
그 대답은 스태프의 입에서 나왔다.
“아마 뒤에 있어서 같이 나올걸?”
“구럼 갠차나여. 올려여. 올려.”
“푸흡. 고맙다.”
뭐, 메이킹 필름에 잠깐 나오는 건데 별일 있으려나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봤는데 세상 사람들은 막 관심이 높지 않다는 거였다.
100만 너튜버들도 못 알아보는 사람 천지였다.
서수현도 그냥 너튜브 본 사람만 아는 느낌?
하긴 연예인과 참 다르니까.
관심 없으면 모르는 거지. 뭐.
영화는 봤어도 메이킹 필름까지 찾아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관심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오! 감사합니다. 오늘 안내 재밌게 잘해 볼게요.”
“하하하. 네.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언제 시하 옆에 왔는지 쫑알쫑알 떠들었다.
“시하야. 어디 갔었어?”
“시하 여기 이써써.”
“아, 안 움직였어?”
“시하 잡혀서 술래여써.”
“응? 언제 술래잡기했어?”
“메라메라랑 해써.”
“???”
시하야. 너만 아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승준이랑 하나가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있잖니.
“시하가 배우님 연기 따라 한 게 카메라에 찍혔어.”
내가 보충 설명하자 아이들이 놀랐다는 얼굴을 했다.
“우와! 그럼 시하가 영화 나와?”
“진짜?! 하나도 나오고 싶은데!”
“시하야. 나보다 빨리 연기 데뷔했어?”
아니. 너희들 너무 갔어.
그냥 카메라에 배우님 따라 한 게 찍힌 거뿐인데 왜 출연까지 확정된 거야?!
돌아와. 거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