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4화 (354/500)

354화

다음 날.

시하는 어린이집에서 어제 봤던 영화를 자랑했다.

공포 영화! 무서운 영화! 귀신 나오는 영화!

이것은 하나의 훈장처럼 자랑할 수 있다.

“시하는 하나도 안 무서어써! 그래서 다 바써! 형아도 재미써 해써!”

사실 시하 차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닐까 싶어서 무서워했지만 그런 기억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있었다.

승준과 하나가 대단하다면서 손뼉을 친다.

“시하 대단해!”

“우와! 시하 멋있어!”

시하가 열심히 배를 내밀며 뽐냈다.

뭔가 게임의 끝판왕을 클리어한 듯한 느낌이었다.

승준이 말했다.

“나도 무서운 영화 보고 싶다.”

“하나도. 하나도.”

“시하가 나중에 기신 만화 보여주께. 형아가 하루에 하나씩 보여준대.”

실제로 애니메이션이 있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승준과 하나가 어떤 만화인지 물어봤다.

귀신 탐정!

요즘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 인기 있는 만화였다.

굉장히 신기하고 특이하게 해결해 나가는 점에서 아이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우와. 귀신 탐정? 안 봤는데 그거 나도 봐야지.”

“오빠. 하나랑 같이 보자. 하나 혼자 보는 거 무서워.”

“으이구. 그게 뭐가 무섭다고. 알았어. 같이 보자. 오빠 손 꼭 잡고 봐야 해.”

“응.”

오랜만에 오빠 노릇을 한 승준이었다.

연주는 만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요즘에는 드라마나 영화에 더 관심이 있었다.

엄마를 졸라서 같이 보는 경우가 많아서 불만이긴 했다.

혼자 보고 싶은 거 마음대로 볼 수 없었으니까.

“나는 진짜 공포 영화 보고 싶은데. 다들 어떻게 연기하는지 보고 싶다.”

“시하가 드러써. 그거 어룬둘만 보는 거야.”

“응. 근데 나도 보고 싶어.”

“그거 진짜 무서어서 다칠 수 있대.”

그때 재휘가 오들오들 떨면서 말했다.

“진짜 무서운데 연주가 보고 싶으면 나도 같이 볼래. 근데 귀신이 우리 잡아갈 수 있대.”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야. 귀신은 있어. 그, 그러니까 연주야. 혼자 보면 안 돼.”

재휘가 벌벌 떨며 말하니까 연주가 진짜 귀신이 있나? 싶은 느낌이었다.

그때 종수가 나섰다.

“귀신은 있을지도 몰라. 귀신 잡는 사람이 실제로 있으니까. 우리 눈에만 안 보이는 거야.”

“거 봐! 무서워!”

종수가 재휘를 더 무섭게 했다.

똑똑한 종수는 귀신이 있다고 믿었다.

왜냐면.

“나 어릴 때도 귀신 봤어. 잠에서 깨서 일어나는데 엄마아빠가 안보였는데 갑자기 흰색 옷이 스르륵 있어서 너무 무서워서 이불에 쏙 들어갔어. 귀신이야. 귀신.”

종수는 모르지만 그건 엄마가 흰 빨래만 건조대에 널어둔 것이었다.

한마디로 종수가 잠결에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였다.

귀신 이야기. 여름 하면 빠질 수 없는 거였다.

“무, 무서워.”

재휘는 머리를 감싸며 쪼그리고 앉았다.

옆에서 연주가 그런 재휘를 토닥토닥하며 진정시켰다.

“야. 이시하. 너는 귀신 봤어?!”

“기신?! 기신이다~ 기신이다~”

시하가 팔은 들고 손은 축 늘어뜨린 채 귀신 흉내를 냈다.

무섭지는 않고 귀엽기만 했다.

“야. 흉내 내지 말고 귀신 봤냐고.”

“기신 못 바써. 왜 못 바찌? 아! 시하는 형아 이써서 형아가 다 혼내져서 못 바써. 형아 머시써!”

“???”

왜 결론이 거기로 튀는가?

종수는 순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시하는 귀신을 못 봤다는 거다.

그런데 저렇게 말하니까 뭔가 귀신 본 게 자랑이 아닌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시혁이 형아 덕분에 못 본 게 더 자랑같이 들렸으니까.

종수는 또 뭔가 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흥! 귀신도 못 봤대.”

그저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 여러분! 귀신 이야기 하나요?”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님이 나섰다.

이런 기회는 놓칠 수가 없다. 관심이 갔을 때 실컷 놀아야 한다.

“귀신 이야기는 선생님도 좋아하는데요. 제가 무서운 거 하나 해줄까요?”

“아니요!”

“그럼 우리 귀신 놀이할까요?”

“귀신 놀이?”

“네! 귀신 놀이요! 각자 만들고 싶은 귀신을 만드는 거예요. 음. 선생님은 이런 귀신을 만들었답니다.”

선생님이 스케치북을 꺼냈다.

아이들에게 예시로 보여주려고 만들기도 했다.

노래방이 그려져 있었다.

“노래방 귀신이에요.”

“!!!”

“다들 노래방 한 번씩 가봤을 거예요. 자, 보세요. 아이들이 여기서 노래를 1시간 부르고 있습니다.”

스케치북을 넘겼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30분이 추가되었네요! 다시 시간을 다 쓰려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20분이 추가되었어요!”

“또 못 끊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지칠 때까지 노래를 부르게 해서 목이 쉬어버렸어요. 하지만 노래방 시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부를 수 있어요.”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서 서로 가자고 합니다.”

“문을 열어서 사장님에게 갔습니다.”

스케치북에 사장님이 나온다.

“사장님 시간 많이 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 서비스 안 넣어줬는데?”

“소름! 그렇습니다. 노래방 귀신이 서비스를 넣어준 겁니다! 아이들이 목이 쉬면서 지치게 만드는 귀신이었던 겁니다!”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무서운 귀신이 있다니!

선생님은 여기서 이야기를 마쳤다.

“네. 이렇게 귀신을 만들어서 이걸 쓰러뜨릴 방법을 말하면 승리! 이게 바로 귀신 놀이예요.”

종수가 손을 들었다.

“응. 종수야.”

“그럼 노래방 귀신은 어떻게 쓰러뜨렸어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구나? 다들 궁금하나요?”

“네!”

이것 역시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럼 다음 이야기를 해볼게요.”

스케치북을 열었다.

아이들이 아주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며 노래방 기계를 보고 있다.

“이 귀신을 물리칠 방법이 생각났어!”

“뭔데?”

“바로 노래방 기계를 코인 노래방 기계로 바꾸는 거야!”

“!!!”

“그건 시간이 아니라 코인이 기록되어서 시간을 못 줘!”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노래방 기계 화면이 시간이 아니라 코인으로 바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 곡당 3코인. 천 원을 넣으면 9코인도 적혀 있었다.

“그렇게 귀신은 추가 시간을 줄 수 없어서 사라졌답니다!”

“우와!”

아이들의 반응에 선생님은 쑥스러웠다.

정말 별거 아닌 이야기가 아닌가.

“그럼 다들 귀신 놀이 시작할까요? 먼저 귀신을 만들어주세요!”

그렇게 귀신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

생각보다 아이들이 귀신 만들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떤 귀신을 만들지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승준이는 일단 원을 그렸다.

그걸 본 종수가 말했다.

“승준아. 너 또 축구공 그릴 거지!”

“아니거든! 아니거든!”

승준은 뜨끔해서 오히려 소리를 높였다.

다 들켜버렸다. 편하게 사커공 그리려다가 어쩔 수 없이 다른 귀신을 그렸다.

눈, 코, 입을 그리고 그 밑에 네모를 그린다.

“어? 그건 뭐야?”

“미리 안 가르쳐줘.”

승준이 고개를 휙 돌린다.

종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떠나간다.

사실 탐색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어떤 걸 그리고 있을지.

“야. 이시하. 너 뭐 그려?”

“시하는 페페 그려.”

“또 페페야?! 이제 페페 귀신이네.”

“시하는 페페가 조아.”

“그렇구나.”

좋았어! 페페 귀신이라면 별거 아니겠어.

그렇게 생각한 종수는 페페보다 더 엄청난 귀신을 구상하려고 고민에 빠졌다.

이런 귀신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똑똑함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종수야, 대단해! 하며 자신을 띄워주는 상상을 하게 된다.

“하하.”

종수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옆에 있던 재휘는 갑자기 혼자 종수가 웃어서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설, 설마 종수가 귀신에?!”

오들오들 떨다가 확인해 보기 위해 종수의 볼을 콕 찔렀다.

공포 영화에서 보면 꼭 귀신이 있나 확인해보는 캐릭터가 있는데 그게 재휘였다.

가장 먼저 죽어버리는 사람.

“왁! 뭐, 뭐야?!”

“으아악!”

종수랑 재휘가 서로 놀랐다.

재휘는 가슴이 벌렁벌렁하며 헉헉댔다.

“종수지?”

“어? 어. 당연히 종수지. 재휘야. 갑자기 볼은 왜 찌른 거야?”

“혹시 귀신이 종수 몸에 들어갔을까 봐 확인하려고.”

“에이! 난 귀신한테 안 져!”

“그, 그렇지? 종수 맞지?”

“맞다니까!”

재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행동을 연주가 지그시 보고 있었는데 재휘도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움찔거렸다.

“연, 연주야. 만약 귀신이 몸에 들어가면 내가 지켜줄게.”

“응. 고마워. 재휘야.”

하지만 공포 영화에서 보면 꼭 저런 여자 캐릭터만 마지막에 살아남는다.

아마 공포 영화였다면 연주는 살아남을 것이다.

“푸하하. 귀신이 몸에 들어간대! 그럼 내 엉덩이로 나오나? 푸하하!”

“래퍼 귀신 그릴 거야?”

“푸하하 래퍼 귀신! 푸하하.”

“그릴 거라는 소리네.”

은우은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고 윤동은 그 말을 아주 잘 해석했다.

“윤동이 너는 뭐 그릴 건대?”

“화장실 귀신.”

“푸하하. 화장실 귀신! 응? 춤 귀신이 아니라?”

“화장실 귀신이야.”

“!!!”

그렇게 아이들이 각자의 귀신을 정하고 그림을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자기 생각대로 귀신을 설정을 추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자! 그럼 오늘 귀신들을 퇴치해 볼까요! 아! 퇴치라는 건 귀신들을 쓰러뜨린다는 말이에요.”

“네!”

“자, 누가 먼저 엄청난 귀신을 보낼 것인가!”

의외로 윤동이 먼저 손을 들었다.

아이들이 좀 하는 걸 보다가 중간에 손을 드는데 오늘은 특이했다.

“오! 윤동아. 오늘은 빨리 발표하고 싶은 게 있구나?!”

“네.”

“그럼 친구들에게 귀신을 소개해 보렴.”

윤동이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네모가 있고 그 밑에 동그라미가 있었다.

그 동그라미를 관통하는 ‘ㄴ’ 자 모양도 있다.

대체 저게 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윤동이는 참 난해한 그림을 그린다고 선생님은 늘 생각했다.

“그게 무슨 그림이니?”

“이거는 화장실 귀신. 열심히 똥을 누는데 휴지가 없어. 화장실 귀신의 장난이야. 휴지를 없애.”

“엄청나게 무서운 귀신이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그런 화장실 귀신이 아니었다.

“엄마가 맨날 아빠에게 휴지 다 쓰고 왜 안 넣냐고 혼내요.”

“그건 불필요한 정보 아닐까?”

“아니요. 이게 다 귀신이 노리는 거예요.”

“거기까지 노린다고?!”

아이들 반응도 꽤 긍정적이었다.

시하는 ‘큰일 나써! 휴지가 업써! 무서어!’라고.

승준은 ‘으악! 우리 아빠도 그렇게 혼나는데!’ 하고.

하나는 ‘하나도 바써!’라고 동조한다.

연주는 ‘휴지 없으면 엄마 불러야 해.’라며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종수는 ‘윤동이 꽤 하네. 엄청난 귀신이야.’라고 칭찬.

재휘는 ‘너무해.’ 하며 오들오들 떤다.

은우는 ‘푸하하! 저게 뭐야! 똥 못 닦잖아!’ 하면서 좋아한다.

“어마어마한 귀신이네. 엄청나요!”

선생님이 일단 칭찬부터 했다. 똥 방귀 좋아하는 아이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귀신이었다.

윤동이 먼저 나서서 손을 들며 자신 있게 나올 만했다.

“그럼 이 귀신을 어떻게 퇴치하면 좋을까요?”

문제는 이걸 퇴치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고민에 빠졌다.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승준이 말했다.

“그럼 화장실에 휴지를 가득 넣는 거야!”

“휴지 다 가져가는 귀신인데?”

“어? 엄청 욕심쟁이네. 그 많은 걸 다 가져가다니.”

순식간에 귀신이 욕심쟁이가 되었다.

종수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지 끙끙대었다.

그때 시하가 노래를 불렀다.

“딱지 말고 씨스세여. 룰루루~ 랄라~ 딱지 말고 씨스세여. 룰루루~ 랄라~”

아이들 모두 시하를 쳐다보았다.

“그거다!!!”

“아?”

시하가 깜짝 놀랐다.

그냥 화장실 하면 변기가 생각나길래 부른 노래였다.

종수가 소리쳤다.

“물로 씻으면 휴지가 필요 없지! 그렇게 퇴치해!”

시하의 노래가 정답이 된 순간이었다.

시하는 뭔지 몰라서 그냥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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