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3화 (353/500)

353화

시하를 데리러 왔다.

여전히 나에게 도도도 달려와서 안긴다.

이렇게 반겨주는 건 늘 좋다. 시하가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형아. 형아.”

“응. 형아. 여기 있어.”

“형아. 형아.”

“응. 왜.”

“오늘 모하고 노까?”

“오늘은 영화 보러 갈래?”

“영화?! 재미써?”

“으음. 무슨 영화를 볼지는 모르겠는데 재밌겠지?”

“시하는 조아.”

“근데 알리사도 같이 보는데 괜찮겠어?”

“알리사 누나랑? 갠차나. 시하는 형아 여페 안즈면 다 갠차나.”

“그래.”

너는 내 옆자리에 앉는 게 중요하지?

근데 그냥 별생각 없이 영화 보자는 말에 그러자고 했는데 뭘 볼지 모르겠다.

요새 무슨 영화를 상영하지?

너무 갑작스럽게 생긴 약속이라 알아볼 생각도 못 했다.

뭐 영화관에 가면 여러 영화가 있겠지.

“시하야. 일단 가자. 선생님께 인사해야지.”

“샘. 바이바이.”

“그래. 시하야. 잘 가.”

차에 타면서 시하가 묻는다.

“형아. 시하는 사이다 할 껀데 형아는?”

“벌써 메뉴를 시키는 거야?!”

“형아도 사이다 해.”

“이미 정했어?!”

차를 끌고 가면서 팝콘도 어떤 거 고를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전에 승준이랑 하나랑 간 이후로 영화관을 같이 안 갔구나.

하긴 애들이 보는 영화가 그리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여름이면 공포 영화가 성행할 시기이기도 했다.

으스스한 걸 보면서 여름을 즐기는 거지.

사실 귀신 나오는 영화는 별 감흥을 주지 않는다. 무섭지도 않고 사운드에 놀라기만 한다.

현실에 일어날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또 스릴러는 좀 무섭긴 하다.

특히 살인마가 뒤쫓아오는 거면 말이다.

이건 진짜 있을 법하니까 그런 것 같다.

“다 왔다. 전화해 볼까?”

“리사 누나?”

“응.”

전화하자마자 곧바로 받는다.

나는 시하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리사 누나. 시하 영하간이야.”

「어? 시하야. 나는 영화관 입구야. 앞에 문 들어가는데.」

“문에 이써? 시하도 문이야.”

「응? 어디? 안 보이는데?」

“유리가 이써. 문 여러서 드러가써.”

「아. 건물 안으로 들어왔구나?」

나는 피식 웃었다.

알리사가 뭐라고 말하는지 안 들리지만 상상이 가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알리사가 바로 앞에 보였다.

통화를 끊고 우리 앞에 섰다.

아마도 통화하면서 이쪽 엘리베이터로 올 줄 알았나 보다.

근데 시하는 폰을 붙잡고 있다.

“리사 누나. 어디야?”

“여기 있는데?”

“리사 누나랑 전화하고 이써. 리사 누나가 어디찌?”

“여기 있지!”

알리사가 다시 폰으로 전화를 받는 척했다.

시하의 놀이에 맞춰주나 보다.

“리사 누나. 차자따! 이제 시하가 이따가 전화하께. 리사 누나 차자써.”

“???”

나도 시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거 볼일 생기고 나서 친구에게 또 통화하자고 말하는 대사 아니야?

하여간 웃기다.

“언제 도착했어요? 저희가 늦은 거 아니죠?”

“헤헤헤. 5분 전?”

“오래 안 기다려서 다행이네요. 뭐 볼까요?”

“공포 영화요.”

“어? 시하가 보기 조금.”

“당연히 시하가 볼 수 있는 공포 영화죠.”

“???”

알리사가 영화 팜플렛을 건네줬다.

시하가 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귀신 탐정’이라는 거였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다.

극장판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원작 애니메이션이 있다는 거겠지.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요?”

“시하가 좋아하면 됐죠. 뭐.”

“고마워요.”

“왜 고마워해요? 제가 영화 보고 싶어서 가자고 했는데.”

“그냥.”

“오히려 제가 고마운데요? 이렇게 놀아주고.”

우리는 팝콘과 사이다를 사서 들어갔다.

시하가 팝콘을 끌어안아서 제일 가운데에 앉혔다.

소중소중한 팝콘인가 보다.

“시하야. 이거 무서운 건데 괜찮겠어?”

“시하는 형아가 이써서 갠차나.”

“크흑.”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래. 형아가 다 물리쳐 줄 수 있으니까 괜찮은 거지?

옆에 있던 알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나도 시하에게 좀 배워야겠다.”

“뭘요?”

“저런 멘트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게 아주 선수네요.”

“시하는 순수해서 선수 아니에요.”

“아하하. 그러네요. 아! 이런 거 저 알아요. 천연 바람둥이!”

“바람둥이는 빼시죠.”

대체 누가 알리사에게 이상한 단어를 주입하는가. 범인을 찾으면 혼내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등에 있는 가방을 벗으며 아래에 놓았다.

그리고 안에 담요를 꺼냈다.

“알리사. 이거요.”

“어?”

“예쁜 다리 추울 테니까 써요.”

“…고마워요.”

“뭘요.”

“…천연은 여기 있었네.”

“네? 뭐라고요?”

“고맙다고요.”

“푸흡. 아까 말했잖아요.”

나는 담요 하나 더 꺼내서 시하를 덮어줬다.

영화관은 에어컨 바람이 강하다.

그래서 시하 걸 챙겨왔다. 혹시나 알리사가 치마를 입고 오는 거 아닌가 싶어서 하나 더 챙겼다.

물론 핫팬츠 입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름이니까.

역시 생각대로 예쁜 스커트를 입고 나왔다.

“형아. 시작해!”

“응?”

하지만 나오는 건 안내문이었다.

시하가 실망했다는 듯이 팝콘을 먹는다.

뭐, 영화의 시작은 비상통로를 말해주는 거지.

“형아. 진짜 해!”

“응. 이제 조용히 보자.”

“우웁!”

시하가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뭐, 사실 말이 조용히지 여기 아이들이 한가득이라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원래 아이들이 시끌시끌하게 잘 보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게 싫으면 아이들 없는 시간대에 이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볼 수밖에.

영화가 시작했다.

귀신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자동차 귀신이다.

빨간불을 환상으로 보여줘서 못 가고 있는 자동차를 욕먹게 하는 귀신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하구만.

“형아. 무서어.”

이게? 정말?! 무서운 거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어떤게?”

“기신 나와서 시하 차 머라 하면 어떡해.”

“그런가?”

화면을 봤다.

선량한 피해자가 빨간불인 줄 알고 가지 않는다.

사실은 파란불인데 뒤에 있는 귀신이 빨간불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 자동차가 그 차 뒤에 서 있다.

앞의 차가 들리도록 욕을 한다.

“마! 서퍼티지!”

“아따! 날세겠네!”

“왐마! 미치겠네! 증말!”

“보소! 보소! 빨리 안 가나!”

앞의 선량한 피해자가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내가 욕을 먹지? 하면서 뒤를 돌아본다.

근데 하나같이 자신에게 뭐라고 한다.

앞을 다시 보니 파란불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

차를 출발하고 나니 주황불로 바뀌어버린다.

앞으로 나가는 차는 또 욕을 실컷 듣는다.

전체관람가라서 심한 욕은 나오지 않았지만.

선량한 피해자는 귀신에 씌어서 욕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근데 귀신이 부산 사람인가?

알리사에게 물었다.

“이거 한국 만화 극장판이었어요?”

“몰랐어요?”

“네.”

어쩐지 상황이 좀. 뭔가 현실적이라고 했어!

요즘 귀신이 이렇게 나오나? 저런 귀신이면 좀 무서울지도?

근데 애니메이션인데 왜 이렇게 흥미롭지?

주인공이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그래! 아는 경찰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보았다.

은근히 재밌네.

경찰이 와서 선량한 피해자가 된다. 귀신이 나타나는 시간은 제일 욕을 많이 먹을 수 있는 퇴근에 가까운 시간.

6시.

빨간불인데도 무전이 귀에 들려서 출발하는 선량한 피해자인 척하는 경찰.

귀신 차도 당황하며 출발하지만 경찰의 신호 조작으로 빨간불이 된다.

끼익.

차가 멈춘다.

그때 뒤로 따르고 있던 주인공이 창문을 내린다.

“마! 서퍼티지!”

주인공이 차에서 내린다.

귀신 차에 다가가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쩌기요! 거 내려보소! 내려보라니까!”

하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는다.

“와따 마! 손 마이간다. 마이가! 와씨 마 바빠 뒤지게꾸마 돌아삐겠네!”

똑똑. 똑똑.

주인공은 귀신이 했던 것처럼 그대로 돌려준다.

이게 바로 역지사지라고 속으로 말한다.

이거 참. 신박하네. 신박해.

귀신이 창문을 살짝 내려 말한다.

“미안합니다. 좀 바주이소. 초보 운전이라 그럽니더.”

“운전 똑바로 하이소!”

주인공이 씩씩대며 차로 돌아간다.

귀신은 식은땀을 뻘뻘 흘린 채로 차를 출발한다.

이게 끝인가? 싶었지만 끝이 아니었다.

경찰이 LED 경광봉을 들고 멈추라고 한다.

귀신이 차 창문을 내린다.

“수고하십니다. 후! 불어 주세요.”

음주 운전 측정.

귀신이 후! 하고 기계에 분다.

삐빅.

“와 술 많이 마시셨네요. 0.1%입니다.”

“저 술 안 마셨는데예.”

“내리세요. 면허취소입니다.”

주인공이 다시 차에서 내린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아까 파란불인데 차가 안 가더라고! 창 조금 내려서 말하는데 술 냄새가! 어후!”

“내리세요! 면허취소입니다!”

귀신이 주변을 둘러봤지만 차가 둘러싸여 있어서 도망칠 곳이 없었다.

뻘뻘 땀을 흘리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귀신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면허증을 경찰에게 줬다.

그리고 운전을 못 하게 된 귀신을 빛으로 화해서 차와 함께 사라졌다.

“후우. 이제 운전 못 하게 되었으니까 귀신이 나타날 일 없습니다. 이렇게 오늘 귀신 사건은 해결!”

나는 저걸 보며 배가 아팠다.

해결하는 장면이 너무나 웃겼으니까.

그리고 엄청 신선했다. 누가 저런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다.

감독이 누구지?

“형아! 이제 해결대써!”

“그러게.”

아이들도 우스꽝스러운 귀신이 웃긴지 하하 호호 웃는다.

공포보다는 개그가 더 알맞지 않을까?

아무튼, 주인공이 이렇게 해결하고 편안히 운전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끝났다.

안전운전이라는 푯말 나오며 엔딩 크레딧이 올랐다.

나는 기지개를 켰다.

“으윽! 재밌었다.”

“형아. 시하 시 마려.”

“아, 그렇겠네!”

영화 끝나면 화장실 가는 건 국룰이지.

***

“여기 잘 썼어요. 진짜 좀 추웠네요. 너무 오랜만에 영화관 와서 생각도 못 했어요.”

알리사가 담요를 접어서 준다.

나는 그걸 가방에 넣었다.

“영화는 재밌었어요?”

“네. 재밌었죠. 의외로 애들 보는 거로 생각했는데 웃기기도 하고 나쁘지 않던데요.”

“다행이네요.”

한국적인 느낌의 귀신이라 안 웃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재밌었나 보다.

“형아. 시하도 재미써써!”

“응. 옆에서 봐서 알지.”

“이제 집 가?”

“응. 집에 가야지. 이제.”

나는 알리사를 봤다.

“집에 데려다줄게요. 차에 타요. 차 안 끌고 왔죠?”

“네. 그랬죠.”

차에 타서 운전했다.

시하가 같이 영화를 봤음에도 이야기를 쫑알쫑알 들려주었다.

아무래도 감상을 나누고 싶은가 보다.

“형아. 기신 만화 또 보고 시퍼.”

“응. 집에 가면 찾아볼게. 하루에 하나씩만 보자. 알았지?”

“아라써. 시하는 마니 보고 시푼데 하나만 보께. 구러면 시하한테 착해 해져.”

“푸흡. 그래.”

“선물도 져야 해.”

“선물까지?! 어떤 거 받고 싶은데?”

“시하랑 좀 더 가치 있기!”

“크흐.”

오히려 내가 막 들어주고 싶은 말이었다.

알리사가 시하의 말이 귀여운지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물었다.

“시하가 참 귀엽죠?”

“그것도 그런데 시혁 씨 반응해 주는 게 너무 웃겨서.”

“그렇게 웃긴가요?”

“네. 많이요. 말할 때마다 웃겨요.”

“???”

그 정도로 웃긴가?

의문이 들었지만 뭐 사람마다 웃음 포인트가 다르니까.

알리사가 손으로 길을 가리켰다.

“아, 저기서 오른쪽이요.”

“어? 저기 아니에요?”

“올 초에 이사했어요. 학교랑 직장이랑 가까운 곳에.”

“아하.”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 여기가 아닌데?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어? 빨리 말해 주지 그랬어요.”

“이야기한다고 놓쳤네요. 헤헤.”

뭔가 이야기한다고 자주 놓쳐서 빙빙 둘러가긴 했지만 어쨌든 도착했다.

내리면서 알리사가 말했다.

“오늘 고마웠어요.”

“뭐, 저도요. 그냥 영화만 봤는데 잘 놀아줬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드라이브했잖아요. 히힣.”

알리사가 눈을 찡긋거렸다.

나는 한 대 맞은 듯이 멍하니 쳐다봤다.

“그럼 잘 가요. 시하도 안녕~”

“리사. 바이바이~!”

탁.

총총 걸으며 알리사가 집으로 쏙 들어간다.

뭔가 당한 것 같은데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시하야. 집에 가자.”

차를 몰았다.

신호에 걸려서 빨간불에 멈춘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 있었던 일을 말이다.

파란불로 바뀌는데 앞에 있는 차가 뒤늦게 움직인다.

뒤에서도 빵빵거린다.

뭐 하는 거야. 정말.

“형아. 이거 시하 아라.”

“???”

“마! 서퍼티지!”

“푸흡!”

시하야. 앞에 차는 그 이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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