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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화 (352/500)

352화

저녁은 호텔에서 식사했다.

뷔페식으로 되어 있어서 상당히 괜찮았다. 아마 아침도 저렇게 나올 것 같긴 했다.

그리고 승준이가 있는 방에 한데 모였다.

이유? 그거야 여느 여름에 놀고 왔다면 달아오른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마사지 팩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크림을 발랐다고 한들 뜨거운 햇볕은 상당히 강하다.

“형아. 얼굴 빨개.”

“어? 응. 시하도 빨개.”

“시하 형아랑 가타?!”

너는 그게 중요한 포인트니?

얼굴뿐만 아니라 여름옷을 가볍게 입어서 팔이랑 다리도 빨갛다.

다리는 그나마 낫다.

“자. 자. 다들 누워보세요.”

승준 엄마의 말에 다들 침대에 쪼르르 누웠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알로에가 얇게 썰어서 나왔다. 수제 팩이구만.

근데 손에 들린 얼굴 팩도 있었는데 그것도 알로에였다.

온통 알로에 천국이다.

“아하하. 웃기다.”

“헤헤헤.”

“형아도 여기 와.”

세 명이 한 침대에 누워서 시시덕거린다.

나도 거기에 눕고 싶지만 자리가 마땅치 않다.

저기는 아이 세 명이 딱 알맞다.

“형아는 시하 팩해 줄게.”

“형아는?”

“형아는 시하 해 주고 할 거지롱.”

“시하 기대하께.”

“???”

대체 뭘? 뭘 기대한다는 건데?

그런데 시하야. 너 그림 그리는 거 까먹었지? 아주 여유롭다?

분명 아이디어가 생각났는데 여기 오면서 까먹었나 보다.

아니면 팩하는 것에 정신이 팔렸으려나.

“와. 시원하네.”

알로에 팩을 뜯어서 시하의 얼굴에 붙여 주었다.

나머지 알로에는 골고루 팔과 다리에 붙인다.

셋이서 그러고 있는데 너무 웃긴다.

“시혁 씨도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형님. 저는 이미 하고 있습니다.”

백동환은 호텔 방에 마련된 편한 의자에 앉아서 천장을 보고 있다.

나는 침대에 기대 있을까?

“형아. 여기.”

“글쎄 형아는 거기 못 간다니까. 대신에 시하 얼굴 있는 쪽에 얼굴 기댈게.”

먼저 다리를 쭉 뻗고 얼굴에 알로에를 놓았다.

팔에도 해야 하지만 눕지 못해서 좀 그랬다.

대신에 알로에 크림을 발랐다.

온통 알로에구만.

“어. 시원하다.”

“형아. 시언해. 진짜 시언해.”

“시혁이 형아. 이제 이렇게 팩하면 피부 좋아.”

“하나도 이거 하고 예뻐질 거야.”

얘들아. 너희 피부는 이 이상 좋아지려야 좋아질 수 없거든? 그리고 이거는 진정시키기 위해 쓰는 것이다.

물론 피부에 좋기도 하겠지만.

“형아. 따뚜테지고 이써.”

“응. 원래 그래.”

시간이 지나면 알로에는 따뜻해져 버린다.

“왜?”

“얼굴이 빨개졌잖아. 그런데 알로에가 그 뜨거움을 가져가고 있거든.”

“정말?! 알로에 사우나 해?!”

“푸흡.”

“시하 얼굴에서 사우나 하고 이써!”

표현 뭐냐고. 시하 얼굴 위에서 알로에가 ‘어이구 뜨뜻하다.’ 하면서 할아버지처럼 즐기는 게 상상된다.

승준이 말한다.

“나 이제 능력자야. 몸에 불나와서 알로에가 구워지고 있어.”

승준이 몸은 불판으로 비유하는 거니?

하여간 애들이 엉뚱하다니까.

“하나는 알로에가 얼굴이랑 몸에 때밀이 해. 그래서 더워져.”

하나가 똑똑하구나. 마찰열이라니.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겠지만.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어떻게 저렇게 귀엽게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생각하는 거겠지만.

이것도 은근 시하가 애들을 많이 물들여놓은 건 아닐까 싶고.

“형아. 이거 언제 때?”

“어? 한 번 더 리필할 거야.”

때마침 승준 엄마가 나와서 말했다.

“자. 또 왔어요. 엄청 시원해요.”

원래 이런 건 한 번 더 시원하게 해주고 끝내는 거 아니겠나.

이번에 나는 알로에를 떼고 팔에 했다.

팔이 좀 시원했으면 했다.

우리는 그렇게 팩을 다 하고 나서야 교수님이 승준 엄마에게 팩을 해주었다.

고생했다면서.

보기 좋은 부부처럼 보였다.

“저희는 이만 돌아갈게요.”

“네! 오늘 재밌었어요.”

“네네. 좋은 밤 되세요.”

다들 지쳤는지 승준과 하나는 우리를 막지 않았다.

그저 손 흔들며 내일 놀자고 기약했을 뿐이다.

“형아. 이제 시하 그림 그릴래.”

“응. 그래. 안 피곤해?”

“시하 좀 그리고 형아랑 잘 거야.”

“푸흡. 그래라.”

시하가 패드를 꺼냈다.

아까와 다르게 거침없이 펜으로 그려나간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띤다.

슬며시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위에서 봤던 미로를 그리는 것 같았다.

위에서 본 네모난 형태의 나뭇가지 잎사귀들을 둥글게 풀처럼 그리고 있었으니까.

역시 저게 좋았던 거겠지.

나는 옆에서 시하가 그리는 걸 계속 구경했다.

***

1박 2일이었지만 충분히 계곡에서 논 것 같다.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다.

그냥 놀다가 온 거니까 말이다. 준비하는 시간도 좋았고 의외로 아이들이랑 노는 게 재밌어서 좋았다.

다만 여느 사람들처럼 휴가 갔다 오면 이상하게 몸이 힘들다. 죽겠다.

하지만 해야 할 것은 해야 하지 않겠나.

시하가 그린 그림도 편집할 생각이다. 그냥 조금만.

편집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프레임을 자르고 붙이는 정도다.

자막도 붙이고 말이다.

어렵다기보다는 노가다를 많이 요구하는 것 같다.

하다 보면 넋 놓을 때도 많으니까.

‘이제 올리자.’

영상을 올렸다.

제목은 ‘미로’였다. 흰 도화지에 둥글둥글한 수풀이 그려진다.

점점 많아진다. 일정한 길로 쭈욱 가다가 꺾인다.

그렇게 꺾이고, 꺾이고.

놀랍게도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확대해서 그리고 있어서 단편적인 그림들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전체적으로 도화지를 보는 장면을 다 잘라내었다.

시청자들이 대체 뭘 그리는지 궁금하게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여러분. 시하페페입니다.]

[아마 제목에서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미로를 그리고 있습니다.]

[확대로 그려도 다 보이죠?]

[어떻게 보면 게임 맵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옛날 게임이지만 크레이지 아케*드가 생각나네요.]

[거기 물풍선을 놓고 풀숲을 파괴하기도 했는데. ㅎㅎ]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 그림을 잘 봐주세요 ㅎㅎ]

영상이 빨라진다.

이게 바로 장점이다. 빠르게 그림이 완성되는 걸 시청자들이 볼 수 있으니 굉장히 스피드 있게 진행된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뿐인데 눈을 뗄 수 없는 효과가 있다.

점점 완성되는 게 눈에 보이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다.

[드디어 미로가 완성되었네요. 전체 그림을 한번 볼까요?]

그림이 점점 축소된다.

그리고 드러나는 미로의 전체적인 모습.

바로 페페의 형상이었다. 물론 몸 안은 미로로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가장 외각 테두리만큼은 페페였다.

옆모습의 페페.

꼬리가 입구였고 입이 있는 쪽이 출구였다.

그리고 그림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출구까지 함께 여행해 볼까요?]

푸른색이 미로의 길에 점점 채워지기 시작한다.

시하가 색칠하는 장면이었다.

그걸 딱딱 끊어서 물이 점점 채워지는 거로 편집했다.

[물은 거침없이 들어갑니다.]

물이 막혔다. 출구가 아닌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막혀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고일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물 들은 결국 흘러서…….]

몇 번이나 물들이 가로막히지만 결국 페페의 입까지 다가온다.

출구로 빠져나오는 물.

페페의 물대포!

[어느 순간 출구에 도달해 있습니다.]

[가다 보면 막히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지만 정말 출구가 있어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물의 흐름은 막을 수 없죠.]

[여러분이 어쩌면 지금은 미로 속에 갇혀 있을지라도 걷다 보면 언젠가 빠져나와 있지 않을까요?]

미로의 초록 잎사귀의 한쪽 부분이 붉게 다시 칠해진다.

정확히 페페의 심장 부근 쪽에.

[가는 길에 적어도 따뜻한 만남의 행운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그림이었으면 하네요.]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언제나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체적으로 한 번 더 나와주고 페페가 물을 뿜는 곳으로 크게 확대를 했다.

거기에 표지판 두 개가 튀어나온다.

[구독!], [좋아요!].

센스 있는 표현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댓글들도 하나씩 달리기 시작한다.

-와 미로!

-근데 맨날 영상 보면 뭔가 가슴이 따뜻해짐

-bgm도 일부러 그렇게 고르는 듯ㅋㅋㅋ

-그림체 너무 귀여웡ㅎㅎㅎ

-미로 출구 같이 찾자고 해서 눈 빠지게 따라갔는데 물이 채워질 줄은 진짜 예상 못 했다ㅋㅋㅋ

-심지어 물 채워지는 곳이 잘 못 가서 막혀버릴 줄은ㅋㅋㅋ

다들 재밌어하고 있었다.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와 근데 어떻게 미로에 물 채울 생각을 했지?

-저 말 하려고 일부러 물 채우기 시작한 듯 ㅎㄷㄷ

저거는 그냥 시하가 계곡 갔다가 바위에 물 부딪치는 것을 보며 떠올린 아이디어일 뿐이다.

한마디로 미로랑 합쳐진 것이다.

같이 가본 내가 시하가 어떻게 이렇게 생각했는지 함께 봐서 다 안다.

시하는 경험을 그림으로 녹인다.

물론 글로 내가 의미부여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 해석가 댓글 달렸다.’

이상하게 이 댓글이 없으면 이제 섭섭하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시 시하페페 작가다.

심장 부근에 붉은 숲을 그려 넣었다. 물이 피처럼 따뜻해지길 바라는 거겠지.

다들 알다시피 저렇게 되면 가고 있는 물이 따뜻해질 거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만남의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아마 시하페페 작가는 모두 가는 길이 따뜻해진 채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부끄러워서 우연한 만남의 행운 한 번으로 말하긴 했지만 나에게 다 들켰다.

너무 차갑기만 하면 힘드니까.

여기서 시하페페의 따스함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언제나 위로를 받는다.

계속 그림을 올려줬으면 좋겠다.]

해석가의 댓글을 보고 있는데 띵-동- 하는 벨 소리가 들렸다.

택배라도 왔나 싶어서 문을 열었는데 알리사가 보였다.

“어? 알리사. 이거 주려고 아까 뭐 하냐고 톡 보낸 거예요?”

알리사가 손에 커피를 흔들며 싱긋 웃는다.

“들어와요.”

“네.”

“근데 같이 커피 마시러 왔어요?”

“아니요. 해명 들으러 왔는데요?”

“네?”

알리사가 폰을 들고 SNS를 보여주었다.

인별에 있는 사진들. 백동환의 계정에 즐겁게 피서를 즐긴 사진이었다.

“어?”

“왜 저는 초대 안 해 주고 동환 씨만 초대해줬어요? 작년에 우리 다 같이 놀러 가놓고서는. 섭섭해요.”

“아, 그게. 저희만 간 게 아니라 승준이랑 하나도 같이 갔거든요. 교수님 부부랑 함께.”

이렇게 말하니까 작년에도 함께 갔었구나 하고 떠올리게 된다.

어라? 이걸 왜 변명을 하고 있지?

“시하는 어린이집 갔어요?”

“네. 앉으세요. 잠시만요.”

서랍에서 쿠키 몇 개를 꺼냈다.

들고 온 커피랑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무튼, 너무 섭섭해요. 저도 계곡 좋아하는데.”

“아하하하. 다음에 같이 가요. 다음에.”

“그러지 말고 저도 놀아줘요. 왜 시커멓고 몸 큰 남자랑만 논대.”

쿠키를 놓자 알리사가 고요하게 눈을 맞춘다.

살짝 뾰로통한 표정, 윤이 나는 머리카락.

이제야 제대로 얼굴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뭐 하고 놀까요? 푸흡. 아, 이거 시하가 자주 말하는 건데. 뭐 하고 노냐고.”

알리사가 아메리카노를 쭈욱 마시며 바라본다.

“일은 언제 끝나요?”

“그냥 제가 원할 때? 근데 오늘 할 일은 다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네요.”

“시하 어린이집 끝날 때까지 하려고 했죠?”

“음. 뭐 그래요. 막 그렇게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이렇게 대답을 하면 거절의 의미가 되려나?

알리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저녁에 시하랑 같이 영화 볼래요?”

“???”

“여름 피서면 영화죠!”

그녀의 배려에 나도 커피 한 모금을 했다.

빨대의 길을 따라 쭈욱 올라온다. 힘차게. 다 마시면 다시 내려가기도 하고.

알리사에게 말했다.

“그럼 영화관에서 만나요.”

“그래요. 그럼.”

“대신 아무것도 안 사고 기다리기.”

“???”

웃으며 커피를 짤랑 흔들었다.

“이게 너무 시원해서 딴 건 제가 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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