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드디어 물놀이가 끝났다.
주섬주섬 챙겨서 돌아가는데 아쉬움 하나 없다.
다음에 또 오고 싶은 마음만 남아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 웃음이 나오나 보다.
하핳. 웃으니까 시하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다가 같이 웃는다.
웃음이 바이러스처럼 다른 아이들도 전염된다.
하하. 히히. 헤헤.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우리는 길을 걷는다.
너희들 대체 왜 웃니?
따라 웃는데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재밌었다는 마음이 전해져서 얼굴에 번진 건지도 모르겠다.
“형아. 다움에 또 와.”
“응. 또 오자.”
“그리고 오늘 미로 가서 놀자.”
“응. 미로 가서 놀… ???”
“백동 형아가 미로 있대.”
우리 시하야. 다 들었니? 나랑 백동환이 그 이야기할 때 저 멀리서 물에 들어가지 않았니?
내가 백동환을 쳐다보자 뿌듯한 표정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그 표정 뭔데? 그 표정 아니니까 집어넣어. 칭찬 바라는 거 아니지? 대체 언제 그런 놀이를 찔러 넣었어!
“와! 미로?! 사커하면서 가면 훈련되겠다!”
“시혀기 오빠. 어디 미로 이써? 하나는 못 봤는데?!”
두 아이도 반짝이는 눈으로 참전했다.
일단 승준아. 너는 여기 미로를 보고도 사커할 생각밖에 없니? 하긴 수비수에 둘러싸였다고 생각하면 훈련이 될 것 같기도 하네!
똑똑한 건지 아닌 건지 구별이 안 된다.
“그러게. 우리 차 타고 지나오면서 키보다 큰 나뭇가지들 봤지? 거기가 정원인데 미로처럼 되어 있대.”
사실 나도 한번 가 보고 싶긴 했다.
미로라는 게 왠지 모험을 떠나는 느낌이 들지 않나.
출구까지 도착하면 드디어 빠져나왔다는 뿌듯한 마음도 들고 말이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한 번 탈출하고 나면 흥미를 잃는다는 점이지.
그 부분이 미로의 아쉬움이다.
“그럼 호텔에 짐 놓고 정원에 가 볼까?”
“형아. 시하는 이미 가 이써.”
“???”
“마움이 가 이써. 마움이.”
이미 시하의 마음은 정원에 도착해 있나 보다.
그 정도로 가고 싶어?!
백동환이 뒤에서 말한다.
“그럼, 거기 한 번 가고 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아요.”
“넌 조용히 해라.”
“너무하십니다. 형님. 정말 좋은 정보인데. 아! 그리고 밤에.”
“조용. 조용!”
“이거 진짜 중요한 정보인데!”
“안 중요해. 안 중요해.”
나는 백동환의 말을 끊었다.
더는 위키백과처럼 입을 나불대지 말지어다.
옛날 사람들도 조언하지 않나. 모든 원흉은 입에서 비롯된다고.
“조신하게 있어!”
“이미 몸이 조신하지 않습니다.”
“푸핫! 셀프 디스 뭐냐고.”
이건 쫌 웃겼다.
그렇게 말하다 보니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놓았다.
호텔에 세탁기가 있다고 하길래 젖은 옷을 빨았다.
각자 조금 씻고 모이기로 했다.
아무리 계곡물에서 놀았다고 해도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샤워까지 끝낸 뒤에 침대에 누웠다.
톡방에 톡을 남겼다.
[시혁 : 다 끝나면 말해 주세요. 나갈게요.]
[교수님 :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귀여워’하는 삼촌 이모티콘)]
[시혁 : ???]
[교수님 : 미안. 승준이가 눌렀어. 일단 하나랑 아내가 씻으러 들어갔어. 다 끝나면 톡 줄게.]
[시혁 : 저희도 지금 백동환이 들어갔어요.]
[교수님 : 10분이면 끝나겠네.]
음음. 그렇지. 남자들이면 10분이면 끝난다.
뭐, 좀 더 따뜻한 물을 맞고 싶을 때는 한 30분은 걸린다.
“형아. 푹신푹신해.”
“그러네.”
“형아. 우리 집에도 침대 이쓰면 조케따.”
“근데 침대 놓을 자리가 없어.”
매트리스만 들여놓는다고 해도 방을 꽉 채울 게 분명하다.
사실 방이 탁 트인 게 보기도 좋다.
‘빨리 돈 모아서 이사해야겠네. 아니면 청약 신청해 볼까?’
좀 더 넓은 집이면 시하가 좋지 않을까.
2명이 살기에는 지금 집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넓으면 좋으니까.
아, 청소할 구역이 넓으면 안 좋긴 하다.
“후우. 형님. 다 했습니다.”
“벌써?!”
“머리랑 몸만 씻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아, 저기 드라이기 있던데.”
“감사합니다. 근데 다 모이려면 세탁도 다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부 다 씻으면 그쯤 되지 않을까? 대충 샤워해도 좀 기다려야 하나?”
“시하는 그림 그리고 이써서 갠차나.”
시하의 말에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언제 패드를 꺼냈는지 모르겠다. 침대 위에 엎드려 발을 동동 구른다.
“뭐 그릴 거야?”
“몰라. 형아. 모 그리까?”
“오늘 계곡에 있었으니까 계곡을 그리면 되지 않을까?”
“아냐.”
시하는 뭔가 떠오르지 않는지 그냥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흐음. 계곡은 딱히 그리고 싶지 않은가? 그냥 마음대로 그릴 줄 알았는데 시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리는가 보다.
지금까지 많이 그려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벌써 창작의 고통을 받고 있다니.
근데 그래 봤자 페페 그릴 것 아닌가?
휘이잉. 드라이기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하도 뭔가 딱히 안 떠오르는지 나와 같이 침대에서 천장을 본다.
둘이서 그렇게 멍하니 있었다.
백동환이 말했다.
“티비라도 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시.
“시하야. 티비라도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무시.
“무시하지 마십쇼!”
안 봐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게 틀림없다.
***
빨래는 시간이 좀 남았는데 승준 엄마가 널어주기로 했다.
호텔에 제공된 빨래 건조대에 널면 되니까 다 되면 정원에 오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세탁기를 보며 좀 쉬고 싶은 모양이다.
뭐, 교수님과 함께 가면 되긴 하겠지만.
“형아. 정언이야!”
“응. 여기가 미로 입구인가 보네.”
백동환의 키만큼 만든 곳이다.
백동환이 점프하면 보이겠지. 그래도 저만큼 크니까 확실히 압도하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어쩌면 여기 애들에게 더 엄청난 걸 느낄지도 모르겠다.
시야가 높지 않으니까.
“형아. 엄청 커!”
“그러게.”
승준이 입구 쪽을 가리켰다.
“시혁이 형아. 저기 간판도 있어!”
“시혀기 오빠. 뭐라고 적혀 있어?”
“어디 보자. 비밀의 숲.”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비밀의 숲이라니. 어마어마하게 흥미진진한 모양이다.
“빨리 들어가자!”
“하나도 그러고 시퍼. 시혀기 오빠. 빨리.”
“형아!”
뒤에서 교수님이 ‘얘들아. 아빠 있는 거 까먹은 거 아니지? 왜 시혁이만 찾아?’라며 중얼중얼하고 계셨다.
뭔가 어둠의 오라가 나오는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그럼 들어가자.”
“응!”
미로에 들어서자 시작부터 장난질을 쳐둔 게 있다.
두 갈래 길로 나뉘고 있으니까.
근데 특이한 점이 여기 표지판이 세 개가 있다는 것이다.
[유아 문제], [초등 문제], [중등 문제].
아무래도 좀 더 헤매게 하려고 이런 문제들을 냈나 보다.
또 신기하긴 하네.
정답이든 오답이든 오른쪽이나 왼쪽을 가게 될 테니까.
아마 오답이면 막히는 곳으로 안내되겠지.
“여기 세 문제가 있네. 셋 중에 선택하라고 하는데? 여기 제일 쉬운 문제가 유아 문제일 것 같아. 제일 어린아이가 풀라고.”
“!!!”
“여기 가운데는 초등학생 수준, 옆에는 중학생 수준이래.”
여기서 문제 선택이 갈린다.
먼저 하나.
“하나는 쉬운 거!”
유아 문제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승준은 다르다.
초등학교 문제를 선택한다.
“그래도 좀 어려운 거 풀어야지.”
제일 어려운 건 힘들지만 그래도 이왕 어려운 문제를 선택하나 보다.
시하가 의외로 중등 문제를 선택한다.
“진짜 이거 풀 거야?”
“시하는 형아가 다 아라. 형아가 다 푸러.”
“어마어마하네.”
나한테 다 떠넘기는 작전이냐!
아니, 원래 이런 건 분업으로 하긴 하는데 그래도 자기가 풀어봐야 재밌지 않냐.
“일단 문제는 다 보고 싶네요.”
“그건 그래.”
먼저 유아 문제.
표지판에 걸려 있는 코팅된 종이를 치우자 문제가 나왔다.
“사람들이 달리기했습니다. 두 번째 선수를 앞질렀어요. 그럼 당신은 몇 등입니까?”
대답은 승준, 하나, 시하 순으로 나왔다.
“1등!”
“2등!”
“서이 등!”
시하야. 너는 그냥 3등을 외치고 싶은 거지?
보기에는 1등이면 왼쪽, 2등이면 오른쪽으로 되어 있다.
정답은 당연히 2등이겠지.
“그럼 각자 답이라고 생각한 곳으로 갈까? 시하야. 3등은 없어.”
“구럼 너이 등?”
“아니. 1등 하고 2등뿐이야.”
“구럼 2등 할래. 서이랑 가까어.”
“???”
그런 식으로 답을 정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님. 초등 문제도 한번 보면 안 됩니까?”
“그럴까?”
“보자. 이집트 춤의 이름이 뭘까요? 1번 하로초, 2번 탄누라. 아니 초등학생 문제가 너무 어려운 거 아닙니까?”
이게 초등학생 문제라고?! 거짓말하지 마! 뭐, 답은 알지만 말이다.
나는 살며시 백동환의 귀에 대고 답을 말해주었다. 2번 탄누라.
“어떻게 아십니까?”
“유아 문제 정답을 알면 자동 아니야? 2번이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니까.”
“아…. 그런 방법이?!”
뭐, 답을 알았다고 했지 내가 이집트 춤 이름을 알고 있다고는 안 했다.
나머지 중등 문제는 근의 공식을 묻고 있다.
엄청나네. 진짜.
“그럼 각자 생각한 곳으로 갈까?”
승준은 당연히 왼쪽으로 가서 교수님과 함께였다.
한 사람당 아이 한 명씩이니 백동환과 나 그리고 시하랑 하나는 오른쪽으로 향했다.
어차피 승준은 여기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거기는 막힌 곳이니까.
“형아. 예뻐.”
“그러게.”
푸른 잎사귀들이 우리를 반긴다.
표지판 문제는 저기서 끝인가? 어느 정도 헛돌기도 하고 막힌 곳이 나왔다.
“백동 형아. 시하 목마 해져.”
“응? 왜?”
“위에서 보고 시하가 말해 주께.”
“!!!”
이런. 시하가 꼼수를 발동했다.
아마 진짜 시하를 목말 태우면 보이긴 할 것 같다.
백동환이 또 들어준다고 시하를 들어서 목말을 태웠다.
“보여?”
“보여!”
“오 진짜! 어디 가면 돼?”
시하야. 그거 반칙이지!
“군데 어디 갈지 모르게써. 보이는데 안 보여.”
“???”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뭔가 보이는데 출구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안 보인다는 이야기다. 좀 더 높아야 아래를 조망할지도 모르겠다.
“백동 형아. 시하가 어깨 위에 올라갈래.”
“그건 좀 너무 위험한데.”
“아냐. 백동 형아 어깨 땅처럼 커서 안 넘어져.”
“내 어깨는 대체 얼마나 큰 거야?!”
“그뉴기야. 그뉴기.”
“내 근육은 대체 얼마나 큰 거야!”
어마어마한 근육이네.
아무리 그래도 어깨에 서는 건 너무 위험하다.
“시하야. 위험하니까 그건 하지 말자.”
“아라써!”
백동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가 위험하다고 했을 때는 저리 반응 안 했으면서! 시혁이 형님 말은 찰떡같이 듣네!”
“시하는 형아 말 잘 드러!”
시하가 목말 타면서 허리에 손을 하고 배를 쭈욱 내밀었다.
백동환의 뒤통수에 눌려서 나오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근데 시하야. 내 말 잘 듣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야?
알다가도 모를 시하의 마음이다.
“그럼 다시 돌아가자. 여기는 막힌 길이네.”
돌아가는 길에 승준과 합류했다.
막힌 길로 오고 있던 것이다. 어찌 이런 우연히.
“시하야!”
“승준아!”
서로 다시 만나서 얼싸안는다. 누가 보면 이산가족인 줄 알겠다.
너희 헤어진 지 아직 얼마 안 되었거든요?
왜 맨날 오랜만에 봤던 격한 반응이냐고. 웃긴다니까 정말.
“형님!”
“넌 하지 마라.”
“그럼 갈라지게 되면 저도.”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너무하십니다…….”
우리는 다시 걸었고 푸른 잎사귀가 붉은 잎사귀로 바뀌는 지점에도 새로운 표지판을 발견했다.
갈림길이 보인다.
또 세 개의 문제가 나온 것이다.
그래. 유아 문제야. 이건 무조건 유아 문제! 쉬운 거로.
“형아. 어려운 문제!”
“맞아! 시혁이 형아는 중등 문제 해야 해.”
“시혀기 오빠는 다 풀 수 있어!”
너희 나한테 대체 왜 이래?
여기서 못 풀면 쪽팔리게 되잖아!
그런 기대를 보며 중등 문제를 열었다.
[1111=0, 1981=3]
[6666=4, 5555=0]
[7262=1, 3841=2]
[9133=1, 3333=0]
[8690=5, 8908=6]
[9828=?]
이게 뭔 규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