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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화 (349/500)

349화

남은 인원을 정리해 보자.

승준, 하나, 시하, 나, 백동환. 총 5명이 서로를 보고 있다.

모자는 거의 다 젖어 있다.

사실 탈락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가자.

시하는 이미 내 옆에 딱 붙어서 주변 경계를 한다.

근데 지켜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시하 뒤에 숨을 만큼 작지도 않고 키 차이가 있어서 모자를 지켜줄 수 없다.

오히려 내가 승준 엄마가 했던 것처럼 시하를 뒤로 숨길 수는 있을 것이다.

“후우.”

백동환은 계곡물에 들어가 있다.

이제 충전할 수 없는 작은 악어 물총을 가지고 뒤로 물러선다.

거대한 손바닥으로 오면 물을 뿌릴 준비를 한다.

이를테면 꼼수.

어차피 모자가 물에 푹 젖어야 탈락인 것처럼 굳이 물총이 아니더라도 된다.

“형아. 공격해야 해.”

“응. 근데 꽤 멀리 있네.”

어떻게 해서든 백동환의 사정거리에 갈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물에 들어가면 저 물보라를 피할 수 있을까?

“구럼 백동 형아 나두고 하자.”

“???”

“시하 똑똑하지?”

“어마어마하네.”

백동환은 내버려 두고 승준과 하나를 노리면 된다.

시하가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섰다.

멍하니 백동환을 보고 있는 승준을 그대로 공격했다.

피슉!

“악!”

승준이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선다.

삐꾸삐꾸.

총을 쏜다. 푸쉭.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난다. 승준은 이제 물을 충전할 수 없다.

“으악!”

그래. 어쩔 수 없이 물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저 멀리 있는 백동환과 같은 전략이다.

시하는 멀어지는 승준을 향해 물총을 쏜다.

승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하려고 하지만 그대로 명중한다.

저 정도면 충분히 젖은 듯한데?

“어? 승준아. 뒤에!”

승준 뒤에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

백동환이 먹이를 노리는 상어처럼 쏜살같이 물을 뿌렸다.

촤악!

모자는 변명할 수 없을 만큼 푹 젖어버렸다.

“으악! 괴물이다!”

“으하하하! 승준이 탈락이네!”

그 둘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축축해졌다.

하나가 빈틈을 노리고 쏜 것이다.

“앗! 형아!”

“어? 모자 다 젖은 거 같은데?”

“아냐. 말리면 대.”

“그건 반칙이지. 형아도 탈락해버렸네.”

남은 사람은 셋.

시하가 형아의 복수를 한다고 하나와 마지막 전투를 치렀다.

백동환이 천천히 멀리서 다가오는 게 보인다.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다.

“하나야. 그뉴기 와.”

“앗! 괴물이 온다!”

잠시 소강상태.

서로 견제하며 대치하게 되었다.

어느 누굴 공격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상황.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백동환이었다.

재빠르게 빠져나와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시하랑 하나가 놀라서 물총을 쏘지만 거대한 손에 가로막힌다.

“잡았다!”

먼저 잡힌 이시하.

백동환이 물에 끌고 가려고 달린다.

“안대!”

“으하하하.”

백동환의 손에 계곡물이 닿고 그대로 시하의 머리에 촤악 하고 뿌린다.

하지만 맞은 건 시하의 모자가 아니라 머리카락.

이미 끌고 달릴 때 시하가 모자를 벗어서 그대로 밖으로 던진 것이다.

우리 시하. 순발력이 대단해!

“헤헤헤!”

하지만 적은 백동환뿐이 아니었다.

바닥에 달랑 놓여 있는 시하의 모자를 향해 하나가 물총을 쏜다.

아주 푹 젖어버려서 그대로 시하가 탈락했다.

참 아쉬웠지만, 어차피 저리될 운명이었다.

“시하는 형아랑 가치 탈락이야!”

탈락했는데도 해맑은 시하다.

그래. 탈락도 형아랑 같으면 좋은 거지?!

“꺄악!”

하나는 백동환의 옆구리에 낀 채 버둥거리는 게 보인다.

마지막 최후였다.

저건 막을 수 없다. 인간의 싸움에 괴물을 들이는 순간 장르는 변해버렸다.

“형님. 제가 이겼습니다.”

“근데 진짜 물에 있으니까 괴물 느낌이 더 난다.”

“형아. 아냐. 그뉴기야.”

백동환이 ‘너무하십니다. 형님.’ 하고 말한다.

너 이제 시하 말은 괜찮은 거야?! 인간이 아니라 근육이 되어버렸는데?!

뭐, 물총 대회는 이렇게 끝났다.

애들이 재밌어했으면 됐지.

***

텐트에서 아이들이 잠시 낮잠을 잔다.

더운지 땀을 흘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아마 곧 일어나게 되겠지.

아이들 쪽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백동환이 수박을 꺼내서 썰기 시작했다.

아이스박스에 있던 얼음도 꺼낸다.

안에 파인애플 캔과 사이다도 있었는데 그대로 척척 집어넣더니 화채를 만들어버린다.

얼음이 수박을 시원하게 보관하는 용도로만 가지고 온 건 아니었나 보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형님. 다 만들었습니다. 드셔보시죠.”

유리그릇에 담아서 주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시원해서 좋기도 하고.

“오! 대박!”

“애들 깨어나면 먹이면 될 겁니다.”

백동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오상환 교수님과 승준 엄마도 맛있다며 칭찬을 했다.

“형아?”

시하가 부스스 일어난다.

눈을 반쯤 감으며 나에게 안긴다.

“더어.”

“더운데 왜 안겨.”

“더워도 가치야.”

“!!!”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

아무튼, 나는 다시 시하를 향해 부채질을 해줬다.

다른 아이들도 깨어났다.

“이거 시원해. 먹자.”

“이거 모야? 수박이야?”

“응. 백동 형아가 수박이랑 파인애플이랑 사이다랑 또 뭐 넣었냐? 아무튼, 넣어서 만들었어. 시원하고 맛있어.”

“!!!”

수박을 포크로 꼽아서 시하의 입에 넣어줬다.

안에 만든 주스도 후루룩 마시게 했다.

머리에 느낌표가 뜨는 표정이다.

“형아. 마시써! 백동 형아. 갱장해.”

“파인애플도 맛있어.”

“파인애플? 시하 아라. 애플은 사과야. 사과. 파인은.”

설마. 파여 있는 거 말하는 거 아니겠지? 그건 한국어인데?

“아임 파인 땡큐에 파인이야. 구래서 사과 감사해. 사과 감사해 과일이야. 마찌?”

“???”

“아냐?”

이게 바로 직독직해다!

사실 ‘fine’이 아니라 ‘pine’이긴 한데.

“흠흠. 아쉽네. 파인애플은 이렇게 딱딱하게 생긴 과일이야.”

내가 폰으로 파인애플 사진을 보여주자 시하가 신기한지 눈을 깜빡 떴다.

“거북이 등이야.”

“푸흡. 그렇게 생기긴 했지.”

시하가 이제 다 알았는지 화채를 냠냠 먹었다.

백동환이 또 다른 그릇을 가지고 승준과 하나에게 나눠주고 있다.

“시하 것도 들고 왔는데요.”

“시하는 형아랑 가치 머거.”

“시하야. 너 혼자 먹고 있는데?”

“아냐. 시하가 주고 이써.”

시하가 수박을 포크로 찍고 내 입에 넣어줬다.

백동환은 피식 웃더니 많이 먹으라며 그릇을 주었다.

포크가 하나 더 생겼다.

“근데 플라스틱 그릇으로 준비 안 했네?”

“네. 플라스틱은 쓰레기를 배출하잖아요. 그리고 그릇이야 근처에서 씻을 수 있기도 하고. 괜히 캠핑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설마 여기서 캠핑장 각을 본다고?!

“캠핑할 건 아닙니다. 아, 맞다. 여기 호텔 근처에 산책로가 있거든요.”

“이 더운데 산책?”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특별한 게 있거든요.”

“???”

“미로가 있습니다.”

“갑자기?!”

“네. 미로 정원이요. 애들도 좋아할걸요.”

“아, 거기가 미로였어?”

차 타고 오면서 풀숲 같은 건 봤는데 미로였는 줄은 몰랐다.

탁 트인 평지에 정원이 잘되어 있다고만 생각했지.

확실히 거기 가면 좋을 것 같기도?

“형아. 시하가 형아 꺼 머거도 대?”

“응? 아. 응. 어차피 너 처음부터 형아 꺼 먹고 있었어.”

“정말?!”

뭘 또 처음 들었다는 듯이 보고 있냐.

하여간 웃기다니까.

승준과 하나도 싹싹 먹었는지 한 그릇 더 찾았다.

하긴 유리그릇이 그렇게 크지 않긴 하지.

“형아. 다 먹고 또 물에 놀자.”

“안 지겨워?”

“재미써!”

옆에서 승준과 하나도 시하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진짜 재밌어! 또 들어가서 시원해할래!”

“하나도! 하나도! 물놀이 정말 좋아!”

나는 한바탕 물놀이를 즐겨서 그런지 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가 보다.

너희 언제쯤 지겨워지니?

“시하야. 가자.”

아이들이 말리고 있는 구명조끼를 다시 입고 물에 들어간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운이 참 넘치는 저 모습이 너무나 좋다.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저게 다 추억이 되니까.

물론 기억에는 점점 사라지겠지만 좋았던 감정만이 가슴에 남아있는 게 중요하다.

“애들은 왜 지치지 않을까요?”

백동환이 옆에 털썩 앉으며 화채를 먹었다.

그런데 너는 왜 그릇이 더 큰 거 같냐? 너만 크기가 확 다른데? 너는 간식으로 화채를 먹는 게 아니라 어디 식사로 먹는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했다가 집어넣었다.

저 덩치를 보면 이해 안 가는 게 아니라서.

“지치지 않는 게 아니라 회복이 빨라서 그런 것 같아.”

“아! 진짜 그런 거 같아요. 지치는 것보다 회복이 더 빠른 느낌?”

“고마워.”

“네?”

“오랜만에 계곡 온 것 같아. 어릴 때 한두 번 말고는 간 적이 없어서.”

“그런가요?”

“응.”

몇 없는 그 기억이 난다.

아버지와 둘이 와서 신나게 물놀이를 했었다.

“어린 맘에 조금 싫기도 했어.”

“왜요? 물 안 좋아해서?”

“아니. 가족이 너무 많아서.”

“아…….”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 가족이 계곡에 대다수여서. 그게 괜히 부러워서. 그냥 더 신나게 아버지에게 물 뿌렸다.

나도 재밌다. 우리도 못지않게 재밌다.

그래도 괜히 싫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 가고 또 가자는 말을 어린 나이에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운동회도 싫었다.

엄마가 너무 많았다. 난 없는데. 그 속에 아빠가 손 흔들고 오시는 게 너무 좋았다. 너무 슬펐다.

그 순간 감정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두 번은 안 갈 거라 생각했는데 중학교 때 딱 한 번 더 갔지.”

“친구랑요?”

“아니. 있어. 외국인 삼촌.”

지금은 뭘 하고 사는지 연락 없는 그 삼촌.

내 인생에 새로 생긴 두 번째 가족이라고 한다면 그 삼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뭔가 장난 잘 치는 삼촌처럼 아버지에게 혼날 만한 걸 많이 가르쳐주었는데 내 사춘기 시절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지금 어디 있을까?

아마 어떤 외지에서 수상한 임무를 하고 있어서 연락조차 못 하는 것이리라.

몇 년에 걸쳐서 오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근데 만약 올해나 내년에 일이 다 끝나서 왔을 때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라 말해야 할지…….

근데 상상이 간다.

삼촌이 왔을 때 나에게 물어볼 질문이.

‘장혁이 어디 갔냐?’며 두리번거릴 모습이.

“외국인이면 혈연은 아니죠?”

“응.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남이지.”

“흐음.”

“결혼도 안 하셨어.”

“오우.”

“나를 저 계곡 깊은 곳에 막 집어 던졌지. 이제 중학생이면 수영도 하고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면서.”

“어마어마하신 분인데요?!”

“약간 철없는 삼촌이긴 했어. 아버지에게 뒤지게 등짝 맞았지. 그 당시 나 수영할 줄 몰랐거든. 그 뒤부터 아버지가 수영 배우라고 보내더라.”

“설마 물에 빠져서 가라앉은 건 아니죠?”

“숨 참고 발 닿는 곳까지 잠수했지. 뭐.”

“맞을 만한데요?”

“그러게.”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추억이다.

“형아!”

시하가 도도도 달려온다. 뭔 일인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제 다 놀았어?”

“아냐. 시하 점프하고 시퍼. 승준이랑 하나도 하고 싶대.”

“아. 점프.”

“형아가 이써야 할 수 있짜나. 시하 다 아라.”

“응. 내가 그렇게 말했지. 근데 혹시 자랑했어?”

“시하가 저기서 점프했다고 자랑해써!”

시하가 뿌듯한 표정으로 배를 쭈욱 내밀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러니까 승준이랑 하나도 하고 싶어 하지. 네가 호기심을 부추겼구만!

나는 괜히 손가락으로 구명조끼 사이를 찔러 넣었다.

콕!

정확히 배꼽을 눌렀다.

“아코!”

시하가 배를 잡으며 뒤로 물러섰다.

“시하 배꼽 마니 드러가써. 저기서 점프해야 해!”

“왜?”

“배꼽 놀라서 나와.”

이유 짓는 거 진짜 대단하구만!

“그래. 가자. 형아가 다이빙시켜 줄게.”

나는 삼촌에 의해서 다이빙을 당했지만, 시하는 스스로 다이빙을 한다.

그래서 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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